호근 서당.

[스크랩] 태극기 의대한 고찰.

浩 根 書 堂 2010. 7. 13. 12:46

 
태극기에 대한 고찰| 일반 자유게시판
산머루/박찬일 조회 25 | 10.05.29 06:32 http://cafe.daum.net/sansarang48/ANKv/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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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역사 (太極)


 

 

 태극 문양의 유래 

 
'태극(太極)' 이라는 어휘는 역경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을 뜻합니다. 
태극 문양은 아시아에서 고대부터 유행한 원시적인 종교관에 기인되었다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아시아지역 기원전 유적지 곳곳에서 태극이나 삼태극 도안이 그려진  유물들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삼국시대엔 고대부터 즐겨쓰던 이런 형태의 문양을 한자어를 도입해 태극이라고 불렀으며
각기 이름은 다르지만 계속 전승되었기 때문에 티벳이나 몽골의 국기에도 비슷한 태극 도안이 넣어져 있습니다.


19세기 한국의 태극기 


몽골의 국기에서의 태극


티벳 국기에서의 태극

 

티벳에서는 한국과 똑같은 태극 도형을 사용하는데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의 우주 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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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국기에서 보이는 태극 문양은 남녀를 상징하며, 또한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지혜와 방심하지 않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백제(百濟)

한국의 태극문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부 살펴봅시다. 

이것에 관한 특별한 어휘는 전해지지 않지만 단군신화를 보면 천부인(하늘의 징표)에 근접하는 유물입니다.

마한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물로 고조선계 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 , B.C 300~100

고조선 영역에서만 나오는 거울로 고대의 종교관을 엿볼수있는 유물입니다. 
거울은 작은 삼각형이 모여 소용돌이를 이루고 빛의 방향에 따라서 왼쪽으로 돌기도하고 오른쪽으로도 돕니다.
그야말로 조화롭지만 변화무쌍한 우주 만물의 원리를 실시간으로 볼수있게 디자인한 유물입니다.

그러다가 차츰 곡선의 디자인이 나오게 되면서 대략 원시적인 태극 문양이 갖추어 집니다.

마한의 방패유물(신창동 삼한시대 유적)

소용돌이 문양들이 정형화 되는것은 삼국시대입니다. 
백제의 태극무늬 기와들입니다. 마한 시절의 소용돌이 무늬에서 태극문양으로  세련되게 만들어집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최고 오래된 태극 문양으로 인정된
나주 복암리 고분의 백제 목간 태극입니다



신라(新羅)


                          신라에선 한국 전통 문양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3태극 문양이 발견됩니다.


 

 

가운데 태극은 시계 방향으로 도는것이 재미있죠.

 


 

신라 미추왕릉 보검의 3태극 (三太極)  A.D 400~500
중앙아시아 단검형식에 삼태극이 3개  결합한 신기한 보검.


신라 감은사지의 태극 문양 (682年)




팔괘의 유입.

태극기는 그 형태가 팔괘를 참고하고 있어 도교와 관계가 깊지요.
북한의 낙랑유적에선 기원전후 부근 漢나라의 팔괘유물(나침반)이 발견됬다고 하는데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팔괘같은 주역이론이 한반도에 존재했음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도교의 본격적인 도입 시대부터 살펴봅니다.

고구려(高句麗)

고구려 벽화에서 신선이 팔괘(八卦)를 긋는 모습

도교는 고구려때 성행하여 오늘날 고분 벽화를 통해서 잘 볼수있습니다.

또한  연개소문이 정식으로 당나라 도교를 수입하여 장려하려 했습니다.

한국 태극기에서 팔괘는 ☰ (하늘)  , ☷ (땅)  , ☵ (물) , ☲ (불)  4가지만 사용하는데 

 위치로 보면 동서남북 4방위를 뜻합니다.

고구려에선 음양론으로 해(삼족오와)와 달(토끼,두꺼비)를 사용했고 팔괘보다는

사신도를 선호했기 때문에 태극이나 팔괘 유물을 찾기 힘들죠.




고려시대 - 高麗
몽골내습도(고려,몽골 연합군의 일본 침공)에는 고려 병사들의 방패에 삼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진에서 몽골군 깃발은 붉은 바탕에 노란 태양.


현무,주작,청룡,백호 사신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팔괘나 태극은 여러 유물에서 발견됩니다.  etc



조선시대 - 朝鮮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券) - 임진왜란에 참가한 명나라 화가 작품

조선 수군 배에 조선군 식별을 위한 태극 깃발이 달려있습니다.
정식 태극기가 사용되기 전에 이런 형태의 태극 깃발들이 많은데
태극무늬는 널리 석조 문양, 서원 대문, 별전,  장신구, 여러곳에 활용됩니다



삼도수군조련도 (三軍水軍調練圖 )

師 깃발을 달고있는 판옥선 꼭대기에  펄럭이는  태극 기발

조선시대 태극 배갯모
배개에 세겨놓을 만큼 널리 쓰였다.
조선시대 열쇠고리,  수복십이지장 개금패(開金牌) -대전 화폐 박물관



 

 
정식으로 조선의 국기가 된 박영효의 태극기

우리나라의 국기 제정은 1882년(고종 19년) 5월 22일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 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조인식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청(淸)이 자기나라 국기인 용기(龍旗)를 약간 변형하여 사용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거부하고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 사용해 오던 태극 문양을 흰색 바탕에빨강과 파랑으로
 그려 넣은 '태극 도형기'(太極 圖形旗)를 임시 국기로 사용하였다.

  그 후 국기 제정의 필요성을 느낀 조선 정부는 종전의 '태극 도형기'에 8괘(卦)를 첨가하여 '태극·8괘 도안'의 기를 만들었다.

 1882년 9월 박영효(朴泳孝)는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特命全權大臣) 겸 수신사(修信使)로 이 국기를 지니고

 일본으로 가던 중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만을 그려

 넣은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바로 그 달 25일부터 사용하였다

.  10월 3일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자, 고종은 다음해인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太極旗)를 국기(國旗)로 제정·공포하였다.



【천안=뉴시스】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28일 영국국립문서보관서(National Archives)에서 확인, 발굴한 최초의 태극기 원형을 공개했다.

독립기념관이 공개한 최초의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선상에서 제작한 태극기의 원형을 그대로 그린 것으로 크기는 가로 142.41㎝, 세로 115.14㎝, 태극의 지름 81.81㎝이다.




 

 1882年 미해군이 발행해 소개된 세계의 국기들.
Bureau of Navig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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