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태극도설(太極圖說) 해설}

浩 根 書 堂 2012. 4. 29. 22:08

◈ 성리학의 聖典 태극도설(太極圖說) 이야기.

                          

 

                                         德田 張 俸 赫
                                  사단법인 동방문화진흥회

 

 

날 선 칼은 사람의 몸을 베어 넘어뜨릴 수 있으나, 정신과 마음을 넘어뜨릴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의 잘 된 문장은 사람의 몸도 마음도 넘어뜨릴 수가 있다. 동양학술 사상사에서 불과 250자도 안 되는 한편의 문장으로 천년의 철학 사상사를 이끌어 온 문장이 있으니, 그 한편의 글은 바로 염계 주돈이의 태극도설 이다. 이 태극도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찬성과 비판과 논쟁이 지속되면서,  송대 성리학을 발현 시켰으며, 생성론적 본체론과, 이상적 인격체의 존재 원리인 가치론적 인성론을 완성하는 데에 어두운 밤길을 환하게 열어준 문장이다. 

 

 

1. 신유학을 발현시킴.

 

 

유교를 시대별로 크게 나누어 본다면, 원시유교시대, 전통유교시대, 신유학의 시대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러한 유교의 역사를 간략 기술하자면, 춘추시대의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으려고 천하를 주유 하면서 인과 예를 설파하던 공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고향에 돌아와 육경(역·시·서·예·악·춘추)을 제자에게 가르치며, 여타 종교와는 달리, 한 종교의 개창자로서 기본이 되는 경전을, 손수 정리하면서 쓸데없는 글자나 구절을 깎고 다듬어서 글을 잘 마무리하였다. 그 이후 이 경전들은 여러 제자들에 의하여 전수되었으며, 자사, 맹자 등에 의하여 유교의 경전은 전통을 이루면서, 육경 이외에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가 형성되었다. 여기까지를 원시 유교시대라고 한다. 

 

 

그 후 진나라 시황제에 의한 분서갱유의 어려움을 만나, 유교 경전은 거의 소멸되었다가 전한 시대에 이르러 한 무제가 유교를 장려함에 따라 다시 부흥하여 불타 없어진 경전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금문(今文)경서와 고문(古文)경서가 나타나는 한편, 문자의 변천으로 인하여, 훈고학이 발생하여 한나라로부터 삼국과 위·진·남북조·수 나라를 거쳐 당나라 시대에까지 이어졌다.

 

 

훈고학이란 유학의 경전에 있는 어려운 문자나 어구를, 정확하게 해석을 위한 학문으로, 이러한 학문을 일으킨 이름난 대표적인 학자들은 정현, 가의, 반고, 마융, 하휴, 허신, 왕숙, 왕필, 하안, 두예, 육덕명, 안사고, 공영달 등으로  모두 훈고학의 대가들이었다.

 

 

훈고학자 이외에 진정한 유학가로는 한의 동중서, 수의 왕통, 당의 한유와 이고 등이 있으며, 이들은 유학의 도를 밝히고 유교 학문의 원리를 밝혀 유교를 크게 고취하고 널리 교화하였다. 여기까지를 훈고학의 시대 또는 전통 유교의 시대라고 한다.

 

 

송 나라 시대에 이르려 전통 유교의 절대 훈고학적 범주에 속하는 논리만으로는 불교와 도교의 두 종교로부터의 우주론적 논리 도전에 대응하기에 미흡함을 느껴서, 이를 탈피 해 보려고  나타난 학술사상이 성리학이다.  이 성리학 출현의 발단은, 염계 주돈이의 단 한편의 문장으로, 불과 249자의 짧은 문장과  하나의 그림으로 된 태극도설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널리 통용되어 온 성리대전의 맨 앞장을 장식하여 오는 글이다. 20세기말에 유가의 학술사상을 풍미하던 풍우란 교수는 이를 표현하여 신유학의 등장이라 하였다.

 

 

2, 성리학적 우주론의 창시자 주돈이(周敦이 1017 - 1073)

 

 

우주론적 철학의 창시자 주돈이의 호는 염계(濂溪), 자는 무숙(茂叔)으로 장횡거, 정명도, 정이천, 소강절 등과 함께 북송 오자(五子)의 한 사람이다. 본래의 이름은 돈실(敦實)이었으나, 북송의 제 5대 황제 영종(재위기간 1064-1067)의 옛 이름자를 피하여 끝 자를 실(實)에서 이(이)라 고쳤다. 아마도 영종 재위기간에 개명하였다면 주돈이의 나이 47세 이후 50세 사이에 바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지는 못하였으나, 외직에 가는 곳마다 치적이 높아서 위로는 황실에서 아래로는 백성들로부터 아낌을 받았다.

 

 

주렴계의 나이 30이 되던 해에 南安에서 벼슬 할 적에 通守의 일을 보던 程珦이 주돈이의 기상을 보고 비범하다는 것을 알고, 두 아들인 정호(程顥)와 정이(程이)로 하여금 주렴계 한테 배우도록 하였다. 성리학 학술사상에서 그토록 유명한 정명도와 정이천이 그 아버지에 의하여 주렴계의 제자가 되었으나, 기록에 의하면, 정이 두 형제는 한동안 학문적 오해로 인하여 무숙이라는 스승의 자(字)를 함부로 불러 스승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학문적 오해란 주렴계의 태극도가 송나라 초기의 도사(道士)인 진단(陳단)에게서 이어져 온 것이라는 점과, 불교 계통으로는 鶴林寺의 스님 壽涯를 사사하였다는 점, 東林寺의 승려로부터 靜坐之法을 배웠다는 점, 또 한가지로는 주렴계의 제자 유정부(游定夫)가 주렴계를 禪客으로 지칭한데에 같은 감정을 느낌에서 비롯되었다. 

 

 

 


                                         濂溪 周敦이 像

 

 

그러나, 결과적으로 二程子는 과거보려는 공부를 포기하고 理學을 한 계기가 孔子와 顔子가 즐거워 한 일, 즉 孔顔之樂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라는 주돈이의 충고에 의하여 이 두 형제는 주렴계를 다시 스승으로 사사하였다. 그 이후 주자에 의하여 태극도설이 송대 성리학의 연원으로 확인되고, 주렴계의 通書와 태극도설을 註解한 뒤로는 주렴계로부터 명도 이천의 二程子로 이어지는 성리학의 도통이 확립되었다.

 

 

주렴계가 살았던 시기는 북송시대의 중엽으로, 북방 민족의 침입이 비교적 없었던 시기였으므로, 정치적으로는 안정되었다. 사상적으로는 儒·佛·道의 세 종교가 주류를 이루고, 상호간에 많은 교류가 유지되면서 모두가 자유로운 시기였다. 주렴계 또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그의 사상 속에서 도교와 불교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가 있다. 이렇듯 그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과 사상계의 흐름을 이해한다면, 태극도설의 내용에 道·佛의 요소가 담겨져 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宋史 道學傳의 주돈이조에 북송의 문장가 黃庭堅(1045-1105)은 주돈이의 인품을 평하여 "光風霽月 -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 평하였는데, 이는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  없는 인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처형이 되는 蒲宗孟이 쓴 周敦 墓碣銘의 한구절에 "乘興結客, 與高僧道人, 跨松夢,  雲 ,....- 高僧道人과 더불어 친분을 맺는 것에 흥이 났고,  꿈꾸듯이 소나무를 올라타거나, 구름 낀 깊숙한 산에 오르내렸다"는 구절에서 그의 인품을 짐작할 수가 있다.

 

 

주돈이의 역학에 관한 저술로는 太極圖說과 通書가 있다. 태극도설은 그림과 그림을 풀이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내용은 계사전의 사상을 이어받아 우주가 생겨나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함으로서 송대 성리학에서 생성론적 본체론을 완성하는데에 기여하였으며,     나아가 인간의 본질과 성인으로 되기 위한 방법을 내 놓음으로서 송대 성리학에서 가치론적 인성론을 완성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그림 풀이의 맨 처음에 무극과 태극을  말함으로써 철학적 근본원리를  역학으로 접근하겠다는 송역의 특징을 분명하게 갖추고 있는데,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관하여는 뒷날 주희와 육구연 사이에서 큰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주돈이는 무극으로부터 네 계절이 운행하는 데까지 우주가 생겨나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하고는 다시 거슬러서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본디 무극이다라고 말하여 스스로의 우주론을 밝혔는데, 그 속에서 특히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생기게 하고 .... 움직이지 않아서 음을 생기게 한다고 말함으로써 태극이  능동적 원리임을 주장하였다.  어떻든 태극도설은 태극,  음양, 오행, 건, 곤의 원리를 상징적 그림으로 설명하면서도 수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수역학 가운데에서도 象數學이 아닌 象易學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통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무극이라는  용어가 나오지 않으며  그에 담긴  철학 사상이 보다 더 순수하게 유가에 속하는 등, 태극도설 과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통서의 핵심으로 되고 있는 사상은 誠인데, 이것은 주돈이가 주역과 中庸에 담긴 사상을  결합하여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주돈이는 주역의  여러 괘들에 담겨 있는 뜻을 풀이하면서 괘 효의 상징적 모습이나 수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당 나라 이전의 현가 역학자 들의 관점도 인용하지 않고 주로 중용에 나오는 용어로써 역의 원리를 설명하거나 주역으로써   인간의 性理나 도덕을 말하고  있다. 이는 송역의 특징을 분명하게 갖추고 있는 의리역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3, 태극도설의 학술적 위상.

 

 

태극도설의 학술적 위상을 맨 먼저 말 할 수 있는 것은, 유교의 학술적 위상을 타종교 즉, 道·佛의 우주론적 생성 변화에 따른 논변에 대항하여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성리학 형성의 최초의 단서가 되어, 성리대전의 맨 앞장을 장식하는 문장이 되었고,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의 맨 앞면의 내용을 장식하는 내용이 되었다.

 

 

태극도설이 철학사에 기여한 학술적 공헌은 성리학의 본체론 형성에 있어서 주로 動과 靜 및 음양오행의 상호 묘합적 작용, 변화와 생성 등의 변증법적 관점을 이용하여 우주 기원의 생성 과정에 대하여 생성론적 본체론에 이르도록 진지하고도 심도 깊은 탐구를 한 점이다. 또한 성리학에서 가치론적 인성론을 완성 하는데에 어두운 길을 환하게 터 주었다고 할수 있다. 이는 인식 수준이 높지 않았던 당시에는 실로 대단히 발전적 학술사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주렴계가 지니는 학술 사상사적 의미를 황종의는 송원학안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맹이후 한나라 유생들은 經을 전하는 학문에만 그쳐 性道 微言이 끊어진지 오래였는데, 주렴계가 우뚝 솟아 일어난 이후, 二程이 그를 계승하고 또다시 張 橫渠등 大儒가 배출됨으로써 성인의 학문이 크게 성행하였다. 安定과 組徠는 유학자의 규범이 뛰어난 자이라 어떤 것을 시작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그에 앞선 것이 필요하고 그들이 그런 점에 공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心性과 義理의 정미한 이치를 천명한 것으로 논한다면 이는 주렴계가 암흑의 어두움을 깨뜨려 버린 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孔孟而後, 漢儒止有傳經之學. 性道微言之絶久矣. 元公 굴起, 二程嗣之, 又復橫渠諸大儒輩出, 聖學大昌. 故安定, 組徠卓乎有儒者之矩范, 然僅可謂有開之必先. 若論闡發心性義理之精微, 端數元公之破暗也.”- 濂溪學案上 - 宋元學案 卷十一.   

 

 

위의 문장이 담겨 있는 宋元學案이란 중국 명말 청초에 黃宗羲(1610 - 1695)가 저술한 것을 그의 아들 黃百家가 편집하고, 全祖望이 증보 修訂한 중국 송·원시대의 學術史書 100권을 말한다. 위의 글 내용 중에 元公은 주렴계의 시호이다. 安定은 호원(993 - 1059)의 호이며, 組徠는 석개(1005 - 1045)의 호이다.  송나라 초기에 성리학 발생의 역사적 측면에서 호원이나, 석개등이 그 전초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성리학 이론체계를 설정하고 확립하는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하여 어두움을 깨뜨려 버린 공로가 주렴계 에게 있음을 말하는 내용이다. 宋儒의 心性과 義理의 설은 주렴계에 의해 처음 천명되었고 張載, 二程이 뒤이어 배출되어 성인의 학문이 크게 성행할 국면이 마련된 사실과 그 내용을 피력하고 있다. 

 

 

4. 태극도설 원문과 독음-해석문.

 

 

(주렴계의 태극도)

 

 

無極而太極(무극이태극) -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太極動而生陽(태극동이생양) -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생성하고,
動極而靜(동극이정) -  움직이는 것이 지극해서 고요하며,
靜而生陰(정이생음) -  고요해서 음을 낳고,
靜極復動(정극복동) - 고요함이 지극하면 다시 움직이나니,
一動一靜 互爲其根(일동일정 호위기근) -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며,
分陰分陽 兩儀立焉(분양분음 양의입언) -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두 가지 모양이 새워지도다.

陽變陰合(양변음합) - 양이 변하면서 음을 합하여,
而生水火木金土(이생수화목금토) - 수, 화, 목, 금, 토의 오행이 생성되며,
五氣順布(오기순포) - 다섯 가지의 기운이 골고루 펼쳐져
四時行焉(사시행언) - 춘하추동 사시의 계절이 운행 되도다.

五行一陰陽也(오행일음일양야) -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陰陽一太極也(음양일태극야) - 음양은 바로 하나의 태극이니,
太極本無極也(태극본무극야) - 태극은 본래 무극이도다.

五行之生也(오행지생야),- 오행의 생성이,
各一其性(각일기성) -  저마다 하나의 성품을 갖추며,
無極之眞二五之精(무극지진이오지정)- 무극의 진리와 음양 오행의 정수가
妙合而凝(묘합이응)  - 묘하게 합하여서 응결되나니,
乾道成男坤道成女(건도성남 곤도성녀) - 하늘의 도로서 남성을 이루고, 땅의 도로서 여성을 이루어,
二氣交感 化生萬物(이기교감 화생만물) - 두 기운이 서로 느껴져서 만물을 변화, 생성시키나니,
萬物生生(만물생생) - 만물이 태어나고 태어나서,
而變化無窮焉(이변화무궁) - 그 변화가 무궁하도다.

惟人也得其秀而最靈(유인야득기수이최령)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남을 얻어서 만물의 영장이니,
形旣生矣神發知矣(형기생의,신발지의) -형체가 이미 생성되어 정신이 앎을 드러내는도다.
五性感動而善惡分(오성감동이선악분) - 인, 의, 예, 지, 신의 다섯 가지 성품이 느끼고 움직여져서 선과 악이 구분되고,
萬主出矣(만주출의) -  만가지 일을 드러내도다.

聖人定之以中正仁義(성인정지이중정인의) - 성인이 중정(中正)과 (仁義)를 바르게 정하여,
而主靜立人極焉(이주정입인극언) - 고요함을 주로 해서 사람으로서의 지극함 즉, 사람의 태극(人極)을 세우셨도다.

故聖人與天地合其德(고성인여천지합기덕) -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셨고,
日月合其明(일월합기명 ) - 해와 달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셨고,
四時合其序(사시합기서) - 사계절과 더불어 그 차례를 합하셨고,
鬼神合其吉凶(귀신합기길흉) -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하셨으니,
君子修之吉小人悖之凶(군자수지길,소인패지흉) - 군자는 그것을 닦으니 길하고, 소인은 거스르니 흉하도다.

故曰立天之道曰陰與陽(고왈입천지도왈음여양) - 그러므로“하늘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음과 양이라 하고,
立地之道曰柔與剛(입지지도왈유여강) - 땅의 도를 세우는 것을 유와 강이라 하고,  
立人之道曰仁與義(입인지도왈인여의) - 사람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인과 의” 라고 말하도다.

又曰原始反終(우왈원시반종) - 또 말하기를 또 이르되“시작에 근원하여 끝으로 돌아간다. 
故知死生之說(고지사생지설) - 그러므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안다”고 하였으니,
大哉易也(대재역야) - 위대하도다 역의 이치여! ,
斯其至矣(사기지의) - 이것이 그토록 지극하도다.

 

 

이 글은 우주의 생성, 인륜의 근원을 논한 249글자의 짧은 글이지만, 그 뒤 南宋의 大儒 주희가 그의 精緻한 해석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을 서술하였으므로, 성리학의 聖典으로 여겨지고 있는 글이다.   이것은 태극도의 설로서, 그 五位의 순서에 따라 無極而太極·陰靜陽動·五行· 乾坤男女·萬物化生의 전개를 나타냄으로서 생선론적 본체론의 이론 정립의 기초를 세웠다.

 

 

또한 無極의 眞과 二氣五行의 精과의 妙合으로 건남곤녀를 낳고, 만물이 화생하나 만물은 결국 하나의 음양으로, 그리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음양 오행의 秀를 얻은 만물 중에서 가장 靈妙한 존재임을 말하여 가치론적 인성론을 피력하였다.

 

 

5.  잘 못된 역사 기록으로 인한 朱陸論爭

 

 

한번 잘못 된 역사 기록은 후세에 두고두고 말썽이 된다.  송나라의 정사가 쓰여지기 전, 남송의 제 2대 효종 재위기간인 순희(1174-1189) 연간에 洪邁가 四朝國史를 편찬하였다. 사조국사란 북송의 정치적으로 안정을 누렸던 네 명 황제들의 집권 기간동안을 서술한 역사기록을 말한다.  이 기록의 濂溪傳에 태극도설의 내용을 소개하였는데, 홍매(洪邁 1123-1202) 는 일직이 찬술된 주진(朱震 1072-1138)의 漢上易傳에 주돈이의 태극도설 전문이 실리면서 無極而太極으로 시작된 내용을 무시한 체, "無極而太極- 무극이면서 태극이다" 로 시작되어야 할 문장을,  "自無極而爲太極 - 무극으로부터 태극이 되었다" 로 기록하였다. 이 사조국사의 편찬은 염계 주돈이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나서 기록된 역사물이라 어느 문장이 옳고 그른가에 대하여 논쟁이 벌어졌다.

 

 

1189년은 무극과 태극과의 관계를 놓고 유명한 주희와 육구연간에 논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주희는 당시 육구연에게 보낸 글에 선언적으로 태극도설에 自와 爲의 두 글자가 포함되어 있다면 무극은 도가적인 개념이고, 태극은 무극의 하위 개념이라는 육구연의 의견이 옳다고 인정하고 수긍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自無極而爲太極" 으로 시작되는 판본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을 앞 세워,  自와 爲의 두 글자가 근거 없이 洪邁에 의해서 실수든 고의든 사조국사에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만약 그 당시에 육구연 이든 洪邁든 "自無極而爲太極"으로 되어 있는 板本을 제시하였다면 朱陸間의 論爭은 쉽게 象山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 논쟁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 문하생들과 여러 학자들이 직 간접적으로 연결된 당시 남송의 학술계 최대 이슈였음을 상기할 때, 육구연이나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自·爲의 두 글자가 포함되어 있는 板本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自無極而爲太極"으로 시작되는 太極圖說 版本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모기령(毛奇齡)의 비판문  태극도설유의(太極圖說遺義) 1 권.

 

이로부터 수 백년이 흘러 청 나라의 학자 毛奇齡(1623-1716)은 박식하나 당파의식이 강하여, 편파적인 의론을 좋아하였든 학자로, 태극도설유의(太極圖說遺義) 1권을 써서 홍매가 편술한 사조국사의 내용을 들어 염계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自와 爲의 두 글자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적지 않은 신유학의 연구 논문들이 태극도설의 첫 구절을 "無極而太極"이 아니라 "自無極而爲太極"이라는 전제 하에서 자신들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이름난 교수의 지도 아래 통과된 학위 논문이 모기령의 학설을 정설로 앞 새우는 느낌이다. 모기령의 학설이 아무리 고증학적 연구라지만 염계 주돈이의 살아있을 때 의 "自無極而爲太極"으로 시작되는 太極圖說의 版本을 찾아냈다는 구절은 없다.

 

 

오늘날 중국의 학술사상은 고증이라는 이름 하에 기존을 부정하는 태도에서 많이 달라졌다.

 

 


중국사회과학연구원의 교수인 余敦康(1930년생)은 2006년 7월에 간행한 漢宋易學解讀의 제 11장 周敦 의 易學에서 태극도설을 평하여 "周易的 內聖之學을 분명하게 발현시켰다"고 하였다. 내성지학이란 위정자들이 최고 이상으로 삼는 덕목으로 안으로 성인의 지극한 덕을 갖추어서 밖으로 백성들에게 베푼다는 의미이다.

 

 

모기령의 역학을 대표하는 저서는 仲氏易이다.  중씨역 에서는 易에는  變易, 交易, 反易, 對易, 移易의 다섯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그의 移易說은 열두 벽괘와,  주희의 괘변설과는 아주 다르다.

 

 

이상적 인격체의 존재 원리또한 모기령은 송학을 극도로 천시하여, 辨道學을 지었다. 그에 따르면, 북송에 이르러 陳 이 華山道士였던 李漑와 함께 자신의 역학을 부풀리고서, 도가서 無極尊經 및 張角의 九宮을 찾아내어, 太極과 河洛의 설을 창도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후에 주돈이, 소옹, 정호 형제가 그를 사사하여 도교를 유가의 서적 속에 찬입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주장하기를 주희는 史官 洪邁에게 애걸하여 진단을 名臣 大傳에 입전하게 하고 주돈이와 程伊를 위해 四朝國史에 道學總傳을 두게 하였다고 모기령은 통박하였다. 그러나 주희가 세상을 떠난지 이미 두 왕조가 지나고, 45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러한 사실에 대한 論據를 대지는 못하였다. 또한 그는 하도낙서원천편(河圖洛書原舛編)을 지어, 진단이 만든 하도가 大衍之數 五十有五에 대한 鄭玄 注를 근거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鄭玄은 결코 대연지수가 하도라 하지는 않았다.  송나라 시대의 하도는 大衍圖, 天地生成圖, 五行生成圖라 이름하여야 하지, 하도라 할 수는 없다고 모기령은 논하였다.

 

 

모기령의 학문이 조선조에 유입되여 여러 학자들간에 현혹된 사실이 있었다. 학문을 숭상하던 정조는 모기령의 학문에 대한 연구를 하명하였으나, 易, 詩, 書에 관한 그의 학설을 들어보고 程朱의 학문을 숭상하도록 하였다. 당시의 실학자 이덕무 또한 모기령의 학문을 비판하는 시문을 남겼으며,   다산 정약용은 32세때 지은 古詩二十四首의 제21수에서. 모기령을 나무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다.

 

 

◈  毛奇齡을 나무라는 시 - 다산 정약용.

 

 

天下妄男子(천하망남자) - 천하에 터무니없는 남자라면,
我見毛奇齡.(아견모기령) - 나는야 모기령을 보았다네.
突兀起壁壘(돌올기벽첩) - 자기 보루 드높이 쌓아 올리고,
關弓對考亭(관궁대고정) - 주자를 향해 활을 당기다니. 
窮搜摘一疵(궁수적일자) - 샅샅이 찾고 뒤져 흠결 하나 잡아내어, 
踊躍如여정(용약여여정) - 이리저리 날뛰는 게 원숭이 같구나.
平心遜其詞(평심손기사) - 마음 바르고 말도 공손하다면,
獨不能談經(독불능담경) - 경전을 논하지 못한단 말인가.
비부감大樹(비부감대수) - 왕개미가 큰 나무를 흔들어본들,
一葉何曾零(일엽하회령) - 잎사귀 하나라도 떨어진 적 있는가? 

 

 

위 시에서 考亭이란 중국 복건성 건양현에 있는 지명으로. 南宋때 朱熹가 말년이 되어 이곳에 滄洲精舍를 세워 講學하였는데, 송나라 제 5대 理宗이 이곳에  考亭書院이라는 賜額을 내려 朱子를 祭享하게 한데에서 인신하여 주자의 號로도 쓰여오고 있으며, 이 시에서는 朱子를 가리킨다.

 

 

7.퇴계의 성학십도중의 맨 처음 그림이 염계의 태극도.

 

 

퇴계 이황은 경연에 입시 하였을 때에,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서 성학의 대강을 강의하고 심법의 요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성리학자들의 도설 에서 골라 책을 엮고, 각 그림 아래에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여 왕에게 강론한 자료가 聖學十圖 이다.

 

 

이 성학십도의 순서는 태극도·서명도·소학도·대학도·백록동규도·심통성정도·인설도·심학도·경재잠도·숙흥야매잠도의 열가지 그림과 설명문으로, 맨 앞 그림이 염계의 태극도일 만큼 중요시 하였다. 1681년인 숙종 7년에 오도일이 간행하였으며, 1741년인 영조 17년에 중간되었다.

 

 

성학 십도의 제 일도인 태극도의 좌우에는 퇴계의 설명문이 곁들여 있다. 그내용을 번역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 - 퇴계의 성학십도중 제 일도)

 

 

1. 가장 위의 無極太極圖 - ○ 此 所謂無極而太極也. 卽陰陽而指其本體不雜乎陰陽而爲言耳. - ○ 이것이 이른 바 무극이면서 태극이다. 음양에 즉하여 그 본체가 음양과 섞이지 아니함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2. 둘째 陰靜陽動圖)⊙ 此○之動而陽 靜而陰也 中○者 基本體也. (오른쪽 하나의 양) 者 (왼쪽 둘의 양)之根也. (왼쪽 하나의 음) 者 (오른쪽 둘의 음)之根也 - ⊙ 이것은 ○이 동하여 양이 되고 정하여 음이 되는 것이다. 맨 속에 있는 ○은 그 본체요,  (우일양) 은 (좌이양)의 뿌리요. (좌일음)은 (우이음)의 뿌리이다. 

 

3. 가운데 五行圖 - 此 陽變陰合而 生 水火木金土也 -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화목금토를 생하는 것이다.  ○)此無極二五所以妙合而 無間也. - 이것은 무극음양오행이 묘합하여 틈새없이 되는 소이이다. -(가운데 오행도 가장 아래의 그림)

 

4. 乾道成男 坤道成女圖 - ○乾男坤女以 氣化者言也 各一其性而 男女一太極也 - ○<건의 도가 남이 되고 곤의 도가 여가 된다 함은 氣化한 것으로써 말하는 것이니,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가짐으로 남녀가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가진다. -(넷째의 건곤남녀도)

 

5. 萬物化生圖 - ○萬物化生以 形化者 言也 各一其性而 萬物一太極也 -○<만물이 화생한다 함은 형화(形化)한 것으로써 말하는 것이니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가진다. - (맨 아래의 만물화생도)

 

 

8.조선조의 태극 논쟁.

 

 

조선조에서도 무극과 태극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조한보(曺漢輔 생몰년 미상)와 그 후배학자 이언적(李彦迪 1491 - 1553)간에 논쟁인데, 그것은 한국 성리학에 있어서 초유의 큰 논쟁이었다.  조한보는 무극과 태극의 동일성을 강조하여 태극은 곧 무극이고, 그것은 또한 太虛이며 태허의 體는 본래 寂滅한 것이므로, 무극과 태극에 대해서는 有無와 內外를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이언적은 주희와 같이 무극과 태극이 그 근본에서는 동일하나, 각각 초월성과 실재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 차별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즉 이언적은 주돈이의 무극이태극은 도의 極至·始原으로서 만물의 근저임을 밝힌 것이라고 전제하고, 따라서 무극이태극은 태극 위에 다시 또 태극이 있는 것이 아니며, 至無之中에 至有가 있다는 뜻이라 하였다. 이 태극 논쟁은 조선조의 학술사상사에서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9. 우리나라 최초우표에 태극도의 태극 무늬 사용.

 

 

세계우표가 탄생되고 44년 후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근대조선의 선각자인 홍영식(洪英植)선생에 의해 탄생되었다. 홍영식 선생은 일찍이 개화의 눈을 떠 일본과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 근대의 문물 제도를 돌아본 뒤 우편제도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깨닫고 고종황제께 우편제도의 필요성을 상소하였다.  한편 김옥균, 박영효와는 한성순보를 발행해서 우편제도의 실현을 위해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갔다.

 

 

고종황제는 당시 병조참판이던 홍영식 선생을 우정총판(현 정보통신부장관)에 임명하고 우편제도 창설을 왕의 칙명으로 내렸다. 칙명을 받은 선생은 고종황제로부터 하사 받은 당시 궁중의 약방 건물을 고쳐 우정총국(현 체신기념관)으로 만들어 우편제도 실시를 위한 각종 우정법규를 제정하였다. 태극을 디자인한 5종의 우표를 일본의 대장성에 인쇄 의뢰하였다. 이 때에 우표 무늬를 주렴계 태극도의 태극 무늬를 그림과 같이 사용하였다.  이것이 1844년 11월 18일부터 사용된 5문, 10문의 우표로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인 것이다.

 

 

서울(漢城)과 인천(濟物浦)을 시작으로 근대우편이 탄생되었으며,  개화기를 맞고 있는 우리의 정국은 청나라의 지원을 받고 있는 사대당과 일본의 세력을 등에 업은 개화당이 서로 대립하는 혼란 속에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등이 이끄는 개화

당이 우정총국 낙성식 날(1884년 12월 4일) 사대당을 몰아내는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그러나 이 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나고 홍영식 선생은 12월 6일 참살 당하였다. 우리나라의 근대우편은 불과 19일만에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또한, 뒤늦게 도착한 25문, 50문, 100문의 우표는 사용되어 보지도 못하고 최초의 미 발행 우표가 되기도 하였다.

 

 

                                  (그림-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10. 餘談 -  주희와 육구연의 교우관계.

 

 

주육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에 주희와 육구연간의 교우는 1175년 여조겸의 권고로 아호사(鵝湖寺 - :江西省 鉛山縣)에서 처음 이루어져 평소의 講學의 요점에 대한 논변을 벌였으나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 이후 학술사적 표현으로 이들의 만남을 아호논쟁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격렬한 태극논쟁은 이로부터 14년 후인 1189년에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학문을 존중하여 도의적 교유는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아호사에서 만난 이후 6년이 지나, 朱熹(1130∼1200)는 자신이 재건한 白鹿洞書院에 陸九淵(1139∼1193)이 찾아오자 그에게 학생들을 위한 특별강연을 부탁했다. 육구연은 ‘논어’의‘理仁篇’에 나오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는 구절을 가지고 주희의 학생들 앞에서 이런 내용의 강연을 했다. 당시 세간에서 학문하는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이었다. 비록 두 사람의 학문적 입장은 서로 달랐지만 학자가 가야 할 길은 다를 것이 없었다. 육구연이 열변을 토하는 강의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주희의 제자가  있었다고 宋史 유림전의 육구연 조에 기록이 보인다.

 

 

사실 두 사람은 이미 6년 전(1175) 장시성 옌산(鉛山)현의 아호사(鵝湖寺)에서 정면 충돌을 한 적이 있었다. 경전에 대한 엄밀한 학습과 사물 하나하나에 대한 반성을 공부 방법으로 제시했던 주희와 자신의 마음에 모든 이치가 담겨 있다며 내향적(內向的) 반성을 통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육구연의 생각은 쉽게 융화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1189년에 다시 격렬한 태극 논쟁을 벌인 주희는 남송 시대에 들어서 근본을 다지며 착실히 학문과 씨름한 것은 나와 육구연 뿐이라며 그를 높이 평가하였다.  육구연 역시 백록동서원을 찾아와 타계한 형의 비문을 주희 에게 청할 정도로 주희를 존중하였다.

 

 

-이 글은 사단법인 동방문화진흥회 간행<同人> 2007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임-

 

 

 

{태극도설(太極圖說) 해설}



太 ; 클 태, 極 ; 지극할 극,

太極圖說 = 생성론(生成論), 우주론(宇宙論) 을 언급함...

태극도설 설명 ;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 이다...

태극이 동(動)하여, "양"(陽)을 낳는데, 동(動)의 상태가 지극하면 "정"(靜)하여지고, 정(靜)하여지면, "음"(陰) 을 낳는다...

정(靜)의 상태가 지극하면, 다시 동(動)하게 된다...

한 번 동(動)하고, 한 번 정(靜)하는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陰)으로 나뉘고, 양(陽)으로 나뉘어, "양의(兩儀)" 가 맞선다...

양(陽)이 변하고 음(陰)이 합하여,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를 낳는데, 이 다섯 가지 "기"(五氣)가 순차로 퍼져서, 네 계절(四時)이 돌아가게 된다...

"오행"(五行) 은 하나의 "음양"(陰陽) 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 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 이다...

오행(五行)의 생성시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가져서, "무극의 진(眞)과 이(二), 오(五)의 정(精)" 이 묘하게 합하여 응결되면, "건도"(乾道)는 남성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성을 이룬다...

두 가지 "기"(二氣)가, 서로 "감화" 하여 만물을 낳고, 만물이 계속 생성함으로써, "변화" 가 무궁하게 된다...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

형체(形)가 이미 생기자, 정신(神)이 지(知)를 발하고, 오성(五性)이 감동하매, "선악" 이 나뉘고, "만사" 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에, "성인"(聖人)이 "중정"(中正)과 "인의"(人義)로써 이것을 정하고, 정(靜)을 주로 하여, "인극"(人極)을 세웠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聖人)은 그 덕성(德性)이 천지(天地)와 합치하고, 그 밝음이 일월(日月)과 합치하며, 그 질서가 네 계절과 합치하고, 그 길흉이 귀신과 합치한다...

군자는 이것을 닦으므로 길하게 되고, 소인은 이것을 어기므로 흉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 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를 세워, "인"과 "의" 라 한다" 고 하며, 또 이르기를, "원시반종"(原始反終)하면, 사생(死生)의 설(說)을 안다" 고 한 것이니,

위대하도다 "역(易)"이여! 이것이야말로 그 지극한 것이로다...

"주자" 가 말하였다...

도설(圖說)의 머리 부분에서는, 음양에 의한 변화의 근원을 말하였고, 그 다음으로는, 곧 인간의 타고난 것을 밝혔다...

여기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특하다" 고 한 것은,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성(性)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태극"이다...

"형체가 생기자, 정신이 발하였다" 는 것은, 음이 "동" 하고 음이 "정" 하여 이루는 것이다...

"다섯 가지 성(五性)이 감동한다" 함은, 양과 음이 변하고 합하여, 수, 화, 목, 금, 토의 성을 낳는 것을 말한다...

"선악이 나누인다" 는 것은, 만물이 화생하는 "상"(象)이다...

"성인이 중정(中正), 인의(仁義)로 정(靜)하고, 정을 주로 하여, 인극(人極)을 세웠다" 한 것에 이르러서는, 태극의 전체를 얻어서, 천지와 더불어 간격없게 합치토록 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아래 글에서 다시, "천지", "일월", "사시", "귀신" 이라는, 네 가지와 합치되지 않음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주자는 또 말하였다...

"성인은 힘써 닦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여 몸을 닦는 것은, 곧 군자가 길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도리를 거스르는 것은, 소인이 흉하게 되는 까닭이다"

"닦는 것과 거스르는 것은 역시, "경"(敬) 과 "사"(肆) 의 차이에 있을 뿐이다...
경의 태도를 가지면, 욕심이 적어지고, 사리는 밝아진다...
욕심을 적게 하고 또 적게 하여, 아예 없게 하면, "정" 할 때에는 "허" 하고 "동" 할 때에는 곧게 나아가게 되어, 성인을 배울 수 있다"



*** 퇴계선생 말씀 ***

위의 것은 염계 "주자" 가 스스로 만든, "도" 와 "설" 입니다...

평암(平巖) 섭씨(葉氏)는 말하기를,

"이 그림은 "계사"(繫辭)에서 "역"(易)에 태극이 있었다...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았다" 고 한 뜻을 미루어 밝힌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역" 에서는 "괘효"(卦爻)를 가지고 말하였는데, 이 그림에서는 "조화"(造化)를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이것은 도리의 큰 두뇌가 되는 것이며, 백세 도술의 연원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그림을 머리에 내세우는 것은 역시, "근사록"(近思錄)에서 이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첫머리에 둔, 의도와 같은 것입니다...

무릇, 성인을 배우는 사람은, 근본을 여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 "소학", "대학" 등에 힘을 기울이다가, 그 보람을 거두는 때에 이르러, 하나의 근원을 끝가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이것이 이른바 "이"(理)를 궁구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른다" 는 것이고, 이른바 "신묘(神)를 다하고 조화를 알아서, 덕이 성한 사람이 된다" 는 것입니다...



*** 참 고 ***

주돈이 (周敦, 1017~1073)

중국 송(宋)나라의 유학자로서, 자는 무숙(茂叔)이며 호는 "염계"(濂溪)이다...

도주(道州 - 湖南省 道營縣) 출생으로, 장시(江西)의 남강군 지사(知事) 등 지방관으로서, 각지에서 공적을 세운 후, 만년에는 루산산(廬山) 기슭의 "염계서당"(濂溪書堂)에서 은퇴하였기 때문에 문인들이 "염계선생" 이라 불렀다...

북송의 사마광(司馬光), 왕안석(王安石)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도가사상"(道家思想)의 영향을 받고, 새로운 "유교이론" 을 창시하였다...

즉, 우주의 근원인 "태극"(太極 = 無極)으로부터, 만물이 생성하는 과정을 도해(圖解)하여, "태극도"(太極圖)를 그리고, "태극" → "음양"(陰陽)의 "이기"(二氣) → "오행"(五行 = 金 ·木 ·水 ·火 ·土의 五元素) → 남녀 → 만물, 의 순서로 세계가 구성되었다고 논하고, 인간만이 가장 우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중정(中正) 인의(仁義)의 도를 지키고, 마음을 성실하게 하여,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우주생성의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 는 본래 하나라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즉, "태극도" 는 도가(道家)의 "태극선천지도"(太極先天之圖)나, 불교의 "수화광곽도"(水火匡郭圖)와 유사한 점이 많고, 또 실제 그 영향을 받아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주돈이가 〈태극도설〉의 서두에서, "무극(無極)으로부터 태극이 된다" 라고 하여, 무(無)로부터 유(有)가 생겨난다는, 도가적 우주생성론의 흐름을, 받아 들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희" 는 그 구절을, "무극이면서 태극" 으로 고쳤다...

그 구절을 우주의 본체가, "무형이유리"(無形而有理)라고 해석했다...

주희는, "태극"은 곧 "이"(理)이며, "무극이태극" 은, 이를 설명함에 있어, "무극"을 말함으로써, "태극통체일리"(太極統體一理)가 "일물"(一物)이 아니라, "만화"(萬化)의 근본이 되는 것임을, 그리고, "태극"을 말함으로써, "무극"이 "공적"(空寂 = 허무)에 흐르지 않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태극도설〉에 의하면, "태극"은 다시 음양의 "이기"(二氣)로 나뉘고, 다시 수·화·목·금·토의 오행(五行)이 생겨난다...

이어서, 이들이 다양하게 조합되어, "건도"(乾道)는 남(男)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女)를 이루어, 성립된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교감에 의해 만물이 생겨나고, 만물은 생생하여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

따라서, 만물은 헤아릴 수 없지만, 그 근본을 소급하면, 결국 "태극"으로, 그리고 "무극" 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태극도설〉은, 우주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는 가운데,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며, 그 "이성"은 "태극"을,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으로 나뉘는 것은 "음양" 을, "인·의·예·지·신" 의 오상(五常)은 "오행" 을 본뜬다...

"음양오행" 이 교차하여 운행하는 가운데, 인간만이 빼어남을 얻고 있으므로, 인간의 "마음" 은 가장 영묘하고, 그 성(性)의 온전함을 잃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인식하는 힘"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은 "정욕"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성인은 "중정인의"(中正仁義)의 덕목과 정(靜)을 위주로 하는, 도덕적 수양의 방법을 세우는 것이다...

저서에는, 《태극도설(太極圖說)》, 《통서(通書)》가 있으며, 수필 《애련설(愛蓮說)》에는, 그의 고아한 인품이 표현되었다...

남송의 "주자"(朱子)는, 염계가 정호(程顥) , 정이(程燎) 형제를 가르쳤기 때문에, 도학(道學 - 宋代의 新儒敎)의 개조라고 칭하였다...

태극도설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이면 양(陽)이 나타나고

움직임이 한계에 도달하면 고요해진다.

태극이 고요하면 음(陰)이 나타나고

이 고요함이 한계에 도달하면 다시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해지는 것은 서로 각각의 근본이 된다.


태극이 음과 양으로 갈라지니 음/양 두 가지 원리가 성립된다.

음양이 변화하고 통합함으로써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의 다섯 가지 기운[五行]이 차례대로 펼쳐지면서 사계절이 운행되는 것이다.


오행(五行)이 하나로 뭉치면 음양이 되고,

음양이 하나로 뭉치면 태극이 되며,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오행이 발생할 때 오행은 각기 다른 성질을 띠고 나타난다.


무극의 참됨과 음양오행의 정수가 오묘하게 통합되어 응축되면 건도(乾道)는 남성적인 원리가 되고 곤도(坤道)는 여성적인 원리가 되어 만물을 생성시킨다.

만물을 낳고 또 낳으니 그 변화함이 끝이 없다.


오직 사람만이 그 중에서 빼어난 부분을 얻어 가장 영명한데, 육체가 생기면 정신이 지각작용을 하며,

오성[五性:인(仁), 의(義), 예(禮), 지(知), 신(信) 등 오상(五常)의 성품(性品)]이 감응하여 동요할 때 선과 악으로 나뉘고 인간 만사가 일어난다.

성인은 이때 중정인의(中正仁義)의 법도를 정하여 고요함을 근본으로 삼아 인극(人極 : 인간의 표준)을 수립했다.

그러므로 [역(易)에서 말하기를] “성인은 그 덕이 천지에 필적하고, 영명함은 해와 달에 필적하며, 질서정연함은 사계절에 필적하고,길흉의 판단은 귀신에 필적한다”고 했거니와,

군자는 인극(人極)을 닦기 때문에 길(吉)하고,

소인은 인극(人極)을 거스르기 때문에 흉(凶)하다.

따라서 “음양으로 천도(天道)를 수립하고, 강유(剛柔)로써 지도(地道)를 수립하며, 인의(仁義)로써 인도(人道)를 수립하였다”고 하였으며,


또 “시원(始原)을 궁구(窮究)함으로써 종말을 돌이켜보니 생사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하였으니 위대하구나, 역(易)이여!

여기에 지극한 이치가 있구나

 

태극도설(太極圖說)-주돈이(周敦頤)

 

 

無極而太極(무극이태극)은

: 무극이어서 태극인데

太極動而生陽(태극동이생양)이라

: 태극이 움직이어 양을 낳은다

動極而靜(동극이정)이오

: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고요하게 되고

靜而生陰(정이생음)하니

: 고요하게 되면 음을 낳은데

靜極復動(정극부동)이라

: 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一動一靜(일동일정)이

: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해지는 것이

互爲其根(호위기근)하여

: 서로 그 뿌리가 되면서

分陰分陽(분음분양)에

: 음으로 나뉘어지고 양으로 나뉘어져서

兩儀立焉(양의립언)이니라

: 양의가 서게 되는 것이다

陽變陰合(양변음합)하여

: 양이 변하고 음이 합쳐져서

而生水火木金土(이생수화목금토)

: 수,화,목,금,토를 낳는다

五氣順布(오기순포)에

: 이 다섯 가지 기운이 순조로이 퍼짐으로써

四時行焉(사시행언)이니라

: 사철이 운행되는 것이다

五行一陰陽也(오행일음양야)요

: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陰陽一太極也(음양일태극야)라

: 음양은 하나의 태극인 것이다

太極(태극)은

: 태극은

本無極也(본무극야)라

: 본시 무극이다

五行之生也(오행지생야)에

: 오행이 생겨남에 있어서

各一其性(각일기성)이라

: 각각 한 가지 그의 성품이 나고 난다

無極之眞(무극지진)과

: 무극의 진리와

二五之精(이오지정)이

: 음양오행의 정기가

妙合而凝(묘합이응)라

: 오묘하게 합쳐지고 엉기어서

乾道成男(건도성남)하고

: 건의 도는 남자를 이루고

坤道成女(곤도성녀)라

: 곤의 도는 여자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二氣交感(이기교감)하여

: 두 기운이 서로 느끼어서

化生萬物(화생만물)하니

: 만물을 변화 생성케 되는데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만물생생이변화무궁언)이니라

: 만물은 끊임없이 서로 생성하면서 무궁히 변화하는 것이다

惟人也得其秀而最靈(유인야득기수이최영)하니

: 오직 사람만은 그 중 빼어남을 얻어서 가장 신령스러우니

形旣生矣(형기생의)요

: 형체가 생성되고 나서는

神發知矣(신발지의)라

: 정신이 앎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五性動而善惡分(오성동이선악분)하고

: 다섯 가지 성품이 움직이어서 선함과 악함이 나뉘어지고

萬事出矣(만사출의)니라

: 만사가 출혈하게 된다

聖人定之以中正仁義(성인정지이중정인의)하고

: 성인께서 중정과 인의로써 그것들을 안정시키고

而主靜立人極焉(이주정입인극언)이라

: 고요함을 위주로 하여 사람의 법도를 세우셨다

故(고)로

: 그러므로

聖人與天地合其德(성인여천지합기덕)하며

: 성인이란 천지와 그의 덕이 합치되고

日月合其明(일월합기명)하며

: 해와 달과 그의 밝음이 합치되며

四時合其序(사시합기서)하며

: 사철과 그의 질서가 합치되고

鬼神合其吉凶(귀신합기길흉)이라

: 귀신과 그의 길흉이 합치되는 것이다

君子修之吉(군자수지길)하고

: 군자는 이를 닦음으로써 길하게 되고

小人悖之凶(소인패지흉)이니라

: 소인은 이를 거스림으로써 흉하게 되는 것이다

故(고)로

: 그러므로

曰立天道(왈입천도)는

: 말하기를, “하늘을 서게 하는 도는

曰陰與陽(왈음여양)이오

: 음과 양이라는 것이오

立地之道(립지지도)는

: 땅을 세게하는 도는

曰柔與剛(왈유여강)이오

: 부드러움과 강함이라는 것이오

立人之道(입인지도)는

: 사람을 서게하는 도는

曰仁與羲(왈인여희)라

: 인과 의라는 것이다”고 하였다

又曰原始反終(우왈원시반종)이니

: 또 말하기를 “사물의 시작을 추궁하여 사물의 끄트머리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故(故)로

: 그러므로

知死生之說(지사생지설)이라

: 죽고 사는 이론을 알게 되는 것이다”고도 한 것이다

大哉(대재)라

:  위대하다

易也(역야)여

: 역이여

斯其至矣(사기지의)로다

: 이것이 그 지극함인 것이다

출처 : 한사람의 노래
글쓴이 : 한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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