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계사년(癸巳年), 흑사(黑巳)의 지혜로
국운상승의 물결이 넘쳐나는 해가 되길 서원(誓願)하며
손상락(안동시청 문화예술과 세계문화유산담당)
여느 해 같으면 소한에서 대한 무렵에나 느낄 수 있는 강추위가 올해는 12월 초부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세상은 온통 18대 대통령 선거로 어수선하고, 경기는 혹한보다 더 꽁꽁 얼어붙어버려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3분기 경제지표가 0.1% 성장했다는 뉴스는 차가운 한파 보다 더 가슴 움츠러들게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우리 삶이 그리 각박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닥친 암담한 현실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쏟는 노력까지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것이 약이 되어 있다. 도저히 헤쳐 나올 길 없어 보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암담한 현실도 시간이 지나면 안개 걷힌 뒤의 밝은 햇살처럼 그렇게 희망의 빛이 되어 밝게 빛나기도 한다. 한 살 두 살 나이 들어가면서 실감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살다보면 때로는 “세월보다 더 나은 처방전도 약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임진년 용띠 해가 며칠남지 않았다. 이제 남은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인 2013년을 맞이해야 한다. 언제나 새롭다는 것은 가슴 벅찬 희망이 있어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새로움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시간만큼 새로움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는 것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우리의 인생이자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2013년은 계사년 뱀의 해다. 뱀(巳)은 12지의 여섯 번째로 육십갑자에서는 을사(乙巳), 기사(己巳), 계사(癸巳), 정사(丁巳), 신사(辛巳) 등 5번 순행한다. 뱀(巳)은 시각으로는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 4월에 해당한다. 옛 사람들은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삼라만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하늘에는 하늘을 여는 기운이 있고 땅에는 땅을 지탱해주는 기운이 있는데 이 두 기운을 일러 양(陽)과 음(陰)이라 했다. 또 양과 음,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치고 움직여 우주를 형성하는 근본이 되니 양은 하늘이고 음은 땅이라 했다. 또한 하늘에는 열 가지 기운이 있으니 이를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라 하여 이를 십간(十干)이라 했고, 땅에는 12가지 기운이 있으니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로 이를 십이지(十二支)라 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람의 띠는 바로 땅의 기운과 관련되어 있으며 십이지를 상징하는 동물인 12개로 이루어져 있다.
띠는 쥐띠(子), 소띠(丑), 호랑이띠(寅), 토끼띠(卯), 용띠(辰), 뱀띠(巳), 말띠(午), 양띠(未), 원숭이띠(申), 닭띠(酉), 개띠(戌), 돼지띠(亥)로 모두 12개가 해를 돌아가면서 이루는데 그 순서는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습성에 의해 분류해 놓았다. 또 열두 띠 동물을 구성하는 십이지는 시간신과 방위신의 역할로서 그 시간과 방향에서 오는 나쁜 기운을 막는 수호신이 된다. 십이지의 열두 동물을 각 시간과 그 방위에 배열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동물의 발가락 수와 그때 그 시간에 나와서 활동 하는 동물의 습성으로 구분 지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다시 말하면 십이지를 나타내는 동물 중 가장 앞에 있는 쥐는 앞과 뒤의 발가락 수가 다른데 앞발은 홀수이고 뒷발은 짝수로 이루어져 있어 특별하다고 맨 앞자리를 잡았다. 그 뒤를 이어서 소는 네 개, 호랑이는 다섯 개, 토끼 네 개, 용은 다섯 개, 뱀은 발가락이 없고, 말은 일곱 개, 양은 네 개, 원숭이 다섯 개, 닭은 네 개, 개는 다섯 개, 돼지는 발가락이 네 개인데 이와 같이 발가락의 숫자가 홀수와 짝수로 서로 교차되게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음양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동물의 순서를 배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고대 중국인들은 시간을 표시할 때 그때그때 나와서 활동하는 동물을 하나 들어 그 시간을 나타냈는데 십이지를 이루고 있는 동물의 순서는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간지(干支)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간지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순차적으로 배합하여 만든다. 결합방법은 십간의 첫째인 갑(甲)과 십이지의 첫째인 자(子)를 결합하여 갑자(甲子)를 얻고, 다음은 둘째 천간인 을(乙)과 두 번째 지지인 축(丑)을 결합하여 을축(乙丑)을 얻게 되고, 다음은 세 번째 천간인 병(丙)과 세 번째 지지인 인(寅)을 합하여 병인(丙寅)을 얻게 되는 것처럼 순서에 따라 하나씩 간지를 구하면 60개의 간지를 얻게 되고 다시 갑자(甲子)로 돌아오게 된다. 이를 60개의 간지라 해서 육십간지 또는 육십갑이라 했다. 이처럼 간지는 60년마다 다시 같은 간지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를 돌아온다는 의미를 붙여서 환갑(還甲)이라 했다. 어른들이 환갑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태어난 해의 간지로 돌아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래 육십갑자는 날짜를 세기 위해 사용했지만 천간과 지지의 상징적인 기운을 통해 만물의 길흉을 점치기 위해 쓰이기도 했다. 사람이 태어난 간지를 분석하여 그 사람의 성질과 운세를 점치기도 했으며 나날의 길흉과 방위의 선택을 위해서도 쓰였다. 예를 들면 토끼띠는 겁이 많고 온순하며, 소띠는 성질이 소처럼 느긋하고, 범띠는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거칠고 급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병오(丙午)년 말띠 해에 태어난 여자는 성격이 거칠다고 해서 팔자가 세다고 했는데 이는 오행설에 의하면 병(丙)은 화(火)이고 오(午)도 화(火)이므로 화에 화가 겹쳐졌으니 불에 불이 겹친 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3년 계사년은 흑사의 해!
그렇다면 2013년 계사년의 상징성과 한 해의 운세를 풀이해 보자. 계(癸) 는 甲(갑), 乙(을), 丙(병), 丁(정), 戊(무), 己(기), 庚(경), 辛(신), 壬(임), 癸(계) 10개로 되어있는 천간(天干)에서 작은 물(水)에 해당되는 천간이어서 계(癸)를 보통 계수(癸水)라 한다. 사(巳)는 12개로 된 지지(地支)중에서 뱀을 뜻하며 음력으로는 4월이다. 이 때는 한여름으로 들어가는 시기로 불(火) 에너지가 아주 강해서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로 역사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이기도 하다. 1989년은 중국에서 천안문사건이 일어난 해이고, 2001년은 미국에서 911테러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잃은 해이기도 하다. 특히 2013년의 癸(계)는 물로 오행으로 봤을 때 검은색으로 상징되어 계사년(癸巳年)은 '흑사 띠의 해' '검은 뱀의 해’이다.
뱀에 대한 인식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에 의해 그 의미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동물이다. 서양에서의 뱀은 ‘악’을 상징하는 동물로 받아들여진다면, 동양의 뱀은 윤회와 영생,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된다. 불교에서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을 뱀신이라 하여 무지한 인간들을 일깨워 지혜의 등불을 밝혀주고 가르쳐서 올바로 살게 하도록 해줌은 물론 일체의 병으로 하여금 완전케 해줌으로써 광명을 찾게 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 신약선서에도 ‘뱀처럼 신중성 있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는 구절을 볼 수 있어 신중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뱀은 사람들에게 피하고 싶은 징그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둘로 갈라져 날름거리는 혀, 징그러운 비늘로 덮인 몸, 몸으로 기는 기괴한 이동법 등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뱀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 재생(再生), 영생(永生)의 상징이다.
현실에서 뱀의 부정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상상 세계는 뱀의 주무대이자 그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십이지 동물 가운데 뱀처럼 상상의 세계에서 많은 이야기를 가진 동물도 없었다. 한국 설화 속에서 뱀은 인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대리자로서 인간 내면의 여러 요소가 기묘한 동물인 뱀의 입과 몸을 빌려서 나타난다. 설화 속에서 뱀은 은혜를 갚는 선한 존재로, 복수의 화신으로, 때로는 탐욕스런 절대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래 묵은 구렁이인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상징이다. 또한 저승 세계에서 뱀은 악인을 응징하는 절대자로 나타나며, 악한 사람은 뱀이 되어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뱀 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 소리없이 발밑을 스윽 스쳐 지나가는 섬뜩함, 미끈하고 축축할 것 같은 피부, 무서운 독을 품은 채 허공으로 날름거리는 길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게다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교활함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뱀은 분명 우리 인간에게 그리 반가운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또 다른 호기심과 관심을 끄는 부분도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 동물이다. 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재생(再生)→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로 인식했다.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 가복(家福)의 신이며,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뱀을 각기 문화적 맥락 속으로 상징화할 때 생긴 문화적 오해 때문이다.
또 뱀은 치료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이 의술신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둘 말려 있었다. 이 뱀은 의신의 신성한 하인이었고, 해마다 다시 소생하여 탈피함으로서 새로운 정력을 소생시킨다는 스태미너의 심벌로 간주돼 왔다. 지금도 군의관의 뺏지는 십자가 나무에 뱀 두 마리가 감긴 도안이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은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을 상징하는 뱀이다. 한편 뱀은 민간의료의 약용으로도 쓰인다. 약용으로 쓰는 뱀은 주로 살모사, 구렁이, 칠점사, 독사 등이다. 뱀은 정력강장 작용을 하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하강작용을 하며, 일체의 허약성으로 오는 질환에 사용된다고 알려졌다. 뱀허물도 중요한 약재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산림경제(山林經濟)』 등에서도 뱀 허물이 약재로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뱀허물이 정창, 모든 상처에 파리와 구더기를 없애는데, 태(胞衣)가 나오지 않을 때, 경풍(驚風) 등에 쓰인다고 했다.
이와 같이 십이지와 관련된 동물민속은 현세의 평안과 내세의 영생을 기원하는 의식의 반영으로서 민중들에게 삶을 풍요롭게 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세계관과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초석이자 문화의 창이다. 우리 민족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달으며 동물에게 까지 자연의 이치를 부여해 한민족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선사시대부터 오랜 역사를 동물 상징과 함께 해 온 우리 민족은 동물을 정복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경외(敬畏)와 기원(祈願)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대상으로 승화시켜왔다. 선조들이 남긴 예술품에 보이는 동물 상징은 한국인의 토속적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준다. 동물 상징에서 보여 지는 깊고도 유장한 한국인의 정신세계! 한국의 미, 그 이면에는 우주의 질서가 숨어있다.<끝>





출처 : 공공복지 연구소 (公共福祉 硏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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