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韓國 漢文學史

浩 根 書 堂 2013. 2. 19. 19:58

韓國 漢文學史

1. 개관

▶표기문자에 따른 우리 문학 구분 : 漢文學, 借字文學(鄕札, 吏讀), 國文文學

▶민족문학 : 그 나라 사람이 그 나라의 사상과 생활을 그 시대에 보편적으로 사용한 문자로 쓴 문학

▶한자의 전래 : 殷∙周의 교체기에 한자가 유입되었다고 봄(시기를 늦추어 본 경우, BC. 1122) →기자 동래설 인정

▶진한 교체기에도 한족이 이동해 옴(한자에 능숙한 사람) → 유민이 이동하여 辰韓을 형성

▶梁書(중국梁의 책)의 ‘新羅條’ : 無文字 刻木爲信 語言待百濟而後通焉

▶結論 :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건국 이전에 한문을 사용(문자사용), 부정의 기록(양서의 신라조)은 신빙성이 없다

2. 韓國 漢文學의 嚆矢

가. 三皇內文(한치윤의 해동역사에 기록)

黃帝東到靑丘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以刻名萬神

― 황제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땅을 지나다 자부선생을 보고 상황내문을 얻어 여러신의 이름을 새겼다 ―

∙출전 : 중국 가공의 포박자(抱朴子 ; 본바탕을 품고 있다)에서 뽑아옴

나. 神誌『秘史』

⑴ 단군시대의 史官(문헌비고 기록), 스스로 仙人이라 칭함(대동운부군옥)

⑵ 출전 : 용비어천가의 주에 나옴

다. 法首橋(평양의 다리)碑文

∙平壤法首橋有古碑 非諺非梵非篆 人莫能曉 → 固有文字說(증거소멸)

라. 麥秀歌(箕子)

麥秀漸漸兮 禾黍油油 彼狡童兮 不與我仇兮

― 보리 패어 무성함이여 벼와 기장이 번드르르 하도다, 저 철없는 아이들이여 나와 더불어 짝이 될 수 없도다 ―

∙출전 : 『해동역사』 『靑丘詩抄』

마. 河水歌(至德歌)

河水潑潑兮 易維其極兮 明休光兮 維后之懿德兮

― 하수 철철 흐름이여 어찌 그 다하랴. 밝고 아름다운 빛이여 임금님의 좋은 덕이로다 ―

⑴ 출전 : 한치윤의 『해동역사』, 고려사 『악지』

⑵ 분석

㈎ 口傳되어 오다가 고려 시대 문자로 기록되어짐

㈏ 백성들이 箕子를 찬양하기 위해 지은 노래 → 기자 동래설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효시로 보지 않음

바. 公無渡河歌(箜篌引) → 효시로 봄

公無渡 公竟渡 墮河而 將(當)奈公

― 임이여 강을 건너지 마시오, 님이 드디어 강을 건너셨네, 강(물)에 빠져 죽으시니, 장치 임을 어찌 하리오 ―

⑴ 출전 : 崔豹『古今注』

⑵ 연대 : 한사군때나 고구려 시대 → 한무제 동방경략이후 추정(BC. 108)

㈎ 공후란 악기의 발생 → 한무제 때

㈏ 引은 歌∙曲과 같이 樂府의 명칭에 속함(漢代에 성행)

⑶ 作者

㈎ 원작자 : 白首狂夫의 妻

㈏ 가요로 발전 : 麗玉(朝鮮津卒 霍里子高 妻)

㈐ 정착자 : 麗容(여옥의 이웃집 여자)

⑷ 형식 : 四言四句 單章, 每句有韻 → 시경, 漢의 樂府도 四言四句 연장(樂

府詩의 한 例에 해당됨)

⑸ 구분 : 내용상 抒情文學, 배경상 敍事文學(물을 매개로 해서 죽음이 결

합) → 서사문학(神話)에서 서정문학(人間話)으로 전이되는 과정의 작품

※公無渡河歌를 효시로 보는 이유 : ‘將奈公下’의 ‘奈∼下’는 우리 작품에 이어져 내려오는 정서가 되므로

⑴ 신라 : 處容歌 → 奪叱良乙 何如爲理古(아 엇디릿고)

⑵ 고려 : 靑山別曲 → ∼엇더리

⑶ 詩, 조선의 時調의 표현 → ∼어찌하리

Cf) 내용분석

⑴ 차천로 : 朝鮮津을 대동강으로 봄

⑵ 한치윤 : 기자 조선시대 作으로 봄

⑶ 李德懋 : 청장관전서→‘여옥’, ‘여용’이란 이름이 우리의 이름과 같지 않다

⑷ 정병욱 : 白首狂夫(酒神), 白首狂夫의 妻(樂神). 삼국지 위지 동이전[國中大會 連日飮酒(→주신)歌舞(→악신)] → 동서양 신화의 만남으로 보기도

사. 秥蟬縣神祠碑文→ 고조선에서 삼국형성 과정에서 남아있는 金文

⑴ 연대 : 한, 章帝 2년(AD. 85년)

⑵ 내용 : 風雨(기후)가 정상적, 농사가 잘되고 도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비문(낙랑군 점선현)

⑶ 내용 분석 : 列水(大洞江), 서체[예서(古隸書)]

三國의 漢文學

Ⅰ 高句麗(B.C. 37∼A.D. 668)

1. 개관

가. 역사서 : 『留記』,『新集五卷』(영양왕때 李文眞)

나. 고구려의 한문학 발달

⑴ 고구려의 작품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李萬運『雅亭遺藁』] : 당 장수 이세적이 고구려의 문학수준이 당보다 뒤짐이 없자, 불태워 소실시킴

⑵ ‘태학’, ‘경당’ : 문무의 공부를 함께 → 중국의 사기, 서적류, 자전류 등이 많이 읽혀짐

다. 대표적 작품 : 『황조가』, 『여수장우중문시』

2. 고구려의 시

가. 黃鳥歌

翩翩黃鳥 雌雄相 念我之獨 誰其與

― 펄펄 나는 꾀꼬리 암수 서로 의지하네. 나의 외로움 생각하니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偶景托意) ―

⑴ 작자 : 琉璃王

⑵ 설화 : 첫째부인 ; 宋氏. 둘째부인 : 禾姬(골천인의 딸), 雉姬(한족)

⑶ 구분 : 서정시로 본다(서사시로 보는 견해도 있음)

⑷ 형식 : 隔句有韻. 四言四句(단장)

※시경에 나오는 용어 → 翩翩, 黃鳥 등의 字句가 있다(황조가는 시경

시의 영향을 농후하게 받은 시이㈐

※황조가의 분석

⑴ 김태준 : 삼각 연애 싸움에서 형성된 서정시

⑵ 양주동 :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

⑶ 이명선 : 종족간의 싸움을 화해시키지 못한 우두머리의 비탄한 심정을 말한 서사시로 본다

→당시 농경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주몽설화 : 이규보

동명왕편에 보면 농경생활의 시작을 기록했다. 禾姬(농경생활), 雉姬(수렵채취생활)]

⑷ 정병욱 :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화상의 인물이다. 왜나하면 6대조가 태조(흔히 국가 창건 : 태조), 작자를 유리왕이라 보지 않음(신화상 전해오던 얘기에 꾀꼬리를 매개로한 남녀의 애정을 서정시로 만들어 제례시에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구했던 노래이다. 한시로 번역되어 유리왕의 설화에 접목되어진 것이다)

⑸ 교수님의 견해 : 실존인물이다. 한자의 유입은 고조선때 이미 되었다.

왕인 유리왕은 충분히 한자 사용이 가능. 선민의식이 있음.

나. 與隋將于仲文(乙支文德)

神策究天文 妙算窮地戰勝功旣高 知足願云

- 귀신같은 책략은 천문에도 통달했고 절묘한 책략은 지리에도 능통했다 싸움에 이긴 공 이미 높으니, 만족한 줄을 알고 그치기를 바라노라-

(도가사상: 고구려에는 이미 도가 사상이 유입되어 있었다)

⑴ 의의 : 우리나라 최초의 五言 古體詩(→ 失對, 失黏, 犯孤平)

⑵ 작가 : 을지문덕외의 고구려인 → 『삼국사기』에 을지문덕의 ‘世紀(家門)’를 알 수 없다.

⑶ 韻字 : 理, 止(仄韻詩 → 군가는 측운사용, 빨리 끝나고 짧음)

⑷ 작자∙시평

㈎ 이규보 『백운소설』 : 句法奇古 無綺麗雕飾之習(시짓는 법도가 기이하고 옛 훌륭한 시에 적근했으며 아름답게 꾸미는 버릇이 없다)→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 정인보『조선어문연구』 : 국가가 융성할때의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 나타나 있다

㈐ 유득공 ‘살수회고시’ : 乙支文德眞才士(을지문덕은 참 재주있는 사람이다)

唱五言詩冠大東(오언시를 읊은 것이 대동의 으뜸이다)

다. 詠孤石(定法師)

逈石直生空 平湖四望通 岩根恆灑浪 樹杪鎭搖風 偃流還漬影 侵霞更上紅 獨拔群峰外 孤秀白雲中

― 멀리에 있는 바위 곧바로 하늘로 솟고, 평평한 호수는 사방이 뚫려 있네. 바위뿌리는 물결에 씻기우며 뻗어있고, 나무끝은 바람에 흔들리며 눌려 있네. 흐름을 굽어 보니 그림자 또한 잠겨있고, 자욱한 안개 다시 붉게 피어오르네. 홀로 뭇 봉우리 밖으로 솟아서, 흰 구름 가운데 외로이 빼어났네 ―

⑴ 형식 : 五言八句의 古詩, 齊梁體(→ 6조시대 후반기)

⑵ 특징

㈎ 對偶가 뛰어나다(함련, 경련, 미련에 나타남)

㈏『문선』의 영향을 받음

㈐ 고체시에서 근체시로의 과도기적 시

⑶ 출전

㈎『청구시초』 여수장우중문시 뒤에 기록되어 있다(타당하다고 생각)

㈏『해동역사』 여수장우중문시 앞에 기록되어 있다

라. 人蔘讚

三椏五葉 背陽向陰 欲來求我 椴樹梢尋

― 세 가장귀에 다섯 모난 잎이 햇빛을 등지고 그늘을 향했네. 와서 나를 찾고자 하거든 피나무 줄기 밑에서 찾으시오 ―

⑴ 형식 : 四言四句, 隔句有韻(黃鳥歌와 유사한 시기일것이라고 추측)

⑵ 출전 :『名醫別錄; 고구려 시대 작품이라 되어있음』 『靑丘詩抄』

『博物誌』

※그외의 작품 → 고려사 ‘樂誌’에 배경 설화만 전만

⑴ 來遠城歌 : 북쪽에서 온(귀화한 사람을 살게 해준 노래)

⑵ 延陽歌 : 연양의 어떤 충실한 사람의 충성심을 말함

⑶ 溟州歌 : 유학온 서생과의 사랑의 내용에서 유래(명주: 강릉)

3. 高句麗의 散文

가. 廣開土大王碑文

⑴ 설립 : 장수왕 2년(AD. 414년)에 세움

⑵ 내용 : 시조에 대해, 광개토대왕의 업적, 유훈

⑶ 구성 : 높이 22자, 너비 6자 5치, 44자로 44줄 약 1759자

⑷ 서체 : 예서

⑸ 특징

㈎ 문장이 웅혼하고 옛스러우며 꾸밈없고 소박하다

㈏ 고구려인의 기상을 표현함

㈐ 서경, 시경 구절을 인용했으며, 부분적으로 한문 표현이 한국식이다

Ex) 王於忽本東岡 黃龍負昇天

⑹ 의의 : 문학상 중요함, 역사적 측면에서도 중요, 古拙한 예서체도 서예 연

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나. 牟頭婁墓誌

⑴ 양통두의 고분 모두루묘에서 기록을 찾음

⑵ 내용 : 대사자였던 모두루의 행적(업적)등을 기록, 시조에 대한 내용 전함

(800자)

다. 冬壽墓誌

⑴ 발견 : 황해도 안악 삼호분에서 발견

⑵ 중국사람으로 고구려에 귀화하여 벼슬함, 이름, 연령, 죽은날 등 기록

라. 中原碑文

⑴ 건립 : 장수왕때 영토으 확장 내용

⑵ 발견 : 충북 충주에서 발견

Ⅱ 百濟의 漢文學

1. 개관

가. 백제의 한문학 발달의 증거

⑴ 삼국사기 온조왕때(4년; BC 15년) → 낙랑에 사신파견(국서를 낙랑 임금

이 읽을 수 있도록 한자사용 가능성)

⑵ 백제와 신라의 교서 왕래(국서) : AD 1세기 경(계루왕 28년; 155년)

⑶ 백제 세시와 복납이 중국과 같다

⑷ 五經과 子史를 읽음

⑸ 백제의 阿直岐(284; 成德太子의 스승), 王仁(285; 천자문, 논어, 효경을 전

래해 줌) 등이 일본에 한자 전래 → 고이왕때(3세기)

⑹ 근초고왕(백제의 영토확장) 때(375) 고흥(高興)이 『書記』 저술 : 역사서

⑺『삼국사기』 : 백제에 오경박사, 역박사, 의박사, 역박사, 채악사, 모시박사 등

→ 백제의 한문학 수준이 높음을 알수 있다

나. 백제의 작품

⑴ 백제의 작품이 많이 소실됨 : 현존작이 많지 않음(나당연합군)→ 정읍사, 지이산가, 산유화가 등의 속요가 있었다(무등산가, 선운산가)

⑵ 현존작품 : 무녕왕릉지석(武寧王陵誌石 ; 1971년 발굴, 2개의 誌石 발굴), 사택지적비문(砂宅智積碑文)

2. 百濟의 散文

가. 馬韓王讓百濟書

王初渡河 無所用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其待王不爲不厚 宜思有以報之 今以國完民聚 謂莫與我敵 大設城池 侵犯我疆 其如義何

― (목지국의 왕이 온조왕을 꾸짖는 글) 왕이 처음 강을 건너올 때 발을 용납할 곳도 없었다. 내가 동북쪽 1백리의 땅을 갈라서 안착시켰으니 그 왕을 대접한 것이 후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마땅히 이를 보답할 생각이 있어야할 텐데 이제 나라가 완전해지고 백성들이 모여서 나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크게 성과 못을 철치하고 나의 강토를 침범하니 그 의리상 어떠하냐 ―

나. 武寧王陵誌石

[甲]誌石 前文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 年六十二歲 癸卯年五月丙戌朔七日壬辰崩 到乙巳年八月癸酉朔十二日甲申 安措登冠大墓 立志如左

― 녕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의 나이 62세 계묘년(AD 523) 오월(초하루는 병술일) 7일 임진일에 돌아가시다. 을사년8월(계유일이 초하루) 십이일 갑신일에 대묘에 높이 받들어 편안히 모시고 기록을 세우기를 왼쪽과 같이 했다 ―

[甲]誌石 後面

方位圖 겸 陵域圖

⑴ 크기 : 가로 41.2 세로 35.2 두께 : 4.5

⑵ 서체 : 해서체(六朝體)

[乙]誌石 前文

丙午年十一月百濟國王大妃壽終 居喪在酉地 乙酉年二月朔癸未十二日甲午 改葬遷大墓立志如左

― 병오년 11월 백제의 국왕대비가 목숨이 다하여 임시매장을 유지(대륙서쪽)에 했다. 기유년 2월 계미 12일에 개장하여 대묘(무녕왕릉)로 옮기고 기록을 세우기를 왼쪽과 같이 했다. ―

[乙]誌石 後面

錢一萬文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日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 以前件錢 詢土王土伯土父母上下衆官二千石 買申地爲墓 故立券爲明 不從律令

― 오른쪽 1건을 돈(오수전) 일만문에 샀다. 을사년 8월 12일에 영동대장군 백세사마왕이 앞 건의 돈으로 땅귀신중의 왕, 제후, 부모, 상하 뭇 벼슬아치, 고관들에게 물어서 신지(서서남)의 땅을 사서 묘를 썼다. 때문에 계약서를 써서 밝혀 놓으미, 세속적인 법률을 따지지 않는다 ―

⑴ 분석

㈎ 不從律令 : 세속과 신과의 율령을 별도로 정함

㈏ 崩 : 속국의 임금이 아닌 자주 독립국의 임금이 죽음 → 주체성 반영

㈐ 백제의 역법이 있었다(중국과 동일)

㈑ 12지로 방위를 나타냄

㈒ 토지매매 계약 추측

㈓ 백제시대의 장례법, 풍습, 호칭, 주체의식, 역법, 토지매매 계약문서 형식

다. 砂宅智積碑文

(甲)寅年正月九日 奈祗城 砂宅智積 慷身日之易往 慨體月之難還 穿金以建珍堂 鑿玉以立寶塔 巍巍慈容 吐神光以送雲 峩峩悲懇 含聖明以...

― (갑)인년 정월 9일(추측;의자왕 서기 654년) 내지성사람인 사택지적은 내가 사는 날짜가 쉽게감을 슬퍼하고 내가사는 세월을 돌이키기 어려움을 슬퍼하여 쇠를 뚫어 보배로운 불달을 세우고 옥을 뚫어 보배로운 탑을 세우니 우뚝하게 자비로운 모습은 신비로운 광채를 토하면서 구름을 전송하고 우뚝하게 자비롭고 간절함은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고서... ―

⑴ 문체∙형식

㈎ 댓구가 절묘하게 결합된 騈文(6조 제양, 만당때 유행, 의자왕 말년때이므

로 만당에 가깝㈐

㈏ 절, 탑 세운 이유 의도적으로 꾸밈(수식을 취함)

⑵ 사상 : 인생무상의 허무를 느껴 탑과 불당을 세움(노장사상+불교사상)

⑶ 의의

㈎ 변문이 백제말에 성행함을 알 수 있다(무녕왕릉지석은 質朴, 사택지적비

는 화려하게 단장)

㈏ 불교적이지만 노장적 색채 짙음(인생의 짧음, 현세의 허무함을 슬퍼하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로 불당을 지었다)

㈐ 서체는 구양순 체 → 서예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라. 成忠의 獄中上書(서기 650년 작)

忠臣 死不忘君 願一言而死 臣觀時察變 必有兵革之事 凡用兵必審擇其地 據上流以延敵 然後可保全 若異國兵來 陸路不使過炭峴 水不入伎伐浦 據其險隘 以禦之然後可也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법이니, 한 말씀드리고서 죽기를 원합니다. 신이 시대의 변화를 관찰해보니 반드시 전쟁으로 뒤바뀌는 일이 있을 듯 합니다. 대체로 군대를 쓸 때는 반드시 그 땅을 살펴 골라서 상류에 근거해서 적을 맞이한 연후에야 보전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다른나라 군대가 침입해오면 육로로는 그들로 하여금 탄현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물로는 지벌포에 들어오지 못하게하여 험하고 막힌 곳을 근거로 해서 그들을 방어한연후에야 가능할 것입니다(우국의 단심이 엿보인다) ―

⑴ 출전 : 삼국사기

⑵ 형식 : 구식 불일정→ 고문체(뜻을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형식에는 유념하지 않음)

※백제인은 변문체뿐만 아니라 고문체로도 의사를 표현하는 등 문체구사능력이 뛰어났음

3. 百濟의 歌謠(俗謠)

가. 禪雲山 : 부역 떠난 남편기다리며 불렀다는 노래

나. 無等山(광주의 鎭山) : 산성을 쌓았더니 백성들이 힘입어 편안히 살으므로 산의 덕을 칭송

다. 方等山 : 신라 말엽 도둑이 크게 일어나 이 산에서 기거, 장이현의 여인이 도둑에게 붙들려 갔는데 남편이 구하러 오지않음을 원망하여 부름

라. 井邑 : 행상 떠난 남편 기다리며 근심하여 부른 노래. 망부석(望夫石)

마. 智異山 : 구례현, 예쁜 여인이 지리산에 살았다. 집이 가난한데도 임금이 명하자 죽음을 각오하며 이 노래를 불러 따르지 않았다.

※『문헌통고』: 山有花 → 男女相悅之歌, 音調(곡조) 悽惋

Ⅲ 新羅의 漢文學

1. 槪觀

가. 신라의 한문학

⑴ 신라는 古漢字 사용 : 중국에서 이해가 불가능하여 문자가 없었다고 기록

⑵ 신라란 명칭 전의 명칭 ‘辰韓(秦韓)’ : 秦∙韓 교체기의 유민들 → 한자 유입 가능성(낙동강 유역에 유민들을 정착 시킴; 목지국(馬韓)의 왕이 정착시켰다)

⑶ 신라 17대 내물 마립간이 ‘위두’를 전진에 파견 → 역사에 기록된 공식적 왕래의 최초가 된다.

⑷ 신라 22대 지증왕때 : 중국식 관제 유입, 한자의 본격적 사용이나. 신라도 건국 이전에부터 한자의 사용 증거(상황증거)

⑴ 경주의 안압지에서 목간, 가위, 주사위, 거울(중국 秦의 것)

⑵ 경남의 김해에서 갑골(무문)

※한자로 쓰여진 기록은 500년대 초의 것부터 현존함

2. 新羅의 散文

가. 請改定國號及上王號

始祖創業以來 國號未定 或稱斯盧 或稱斯羅 或稱新羅 臣等以爲 新者 德業日新 羅者 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定尊號 今群臣定議 謹上尊號新羅國王 [三國史記 4. 智證 마립간 4年(503)]

― 시조(박혁거세)가 창업한 이래로 국호가 정해지지 않아 혹은 ‘사로’라하고 혹은 ‘사라’라 하고 혹은 ‘신라’ 라하니 저희들이 생각컨데 ‘신’이라는 것은 덕업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라는 것은 4방을 포괄한다는 뜻이니 그것을 국호로 삼음이 마땅합니다. 또 관찰하건데 옛부터 국가를 가진 자는 모두 제라고 일컫거나 왕이라 했는데 우리 시조가 나라를 세우고부터 이제 22대까지 다만 방언으로만 부르고 존호를 정하지 않았기에 이제 여러 신하들이 협의하여 결정해서 삼가 존호를 신라국왕으로 올리나이다 ―

⑴ 신라의 다른 제도 및 모든 것이 한자화되기 시작한 때는 500년대(6C)

→ 대륙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증거

⑵ 글 설명

㈎ 점잖고 정중함

㈏ 대체로 4.6문. 산문적 요소가 섞여 있음 → 騈散文

㈐ 한자의 구사 능력이 높다(大學, 中庸은 禮記의 편명[宋때 분리∙성행됨])

Cf) 四方 : ‘모든’, ‘전부’의 의미

∙분황사지 9층석탑 : 36개의 돌로 이루어짐(36은 사방 모든 국가가 복속되

기를 염원의 의미로 이는 주역의 괘를 총모아 보면 36이다)

나. 諫獵文(金后稷)

古之王者 必一日萬機 深思遠慮 左右正士 容受直諫 孜孜矻矻 不敢逸豫 然後德政醇美 國家可保 今殿下 日與狂夫獵士 放鷹犬逐雉兎 奔馳山野 不能自止 老子曰馳騁田獵 令人心狂 書曰內作色荒 外作禽荒 有一于此 未或不亡 由是觀之 內則蕩心 外則亡國 不可不省也 殿下其念之

― 옛날의 임금된자는 반드시 하루에 온갖일을 처리하고 깊이생각하고 멀리염려하여 좌우에 바른 선비를 두고 직간을 수용하며 열심히 노력하며 감히 편하고 즐거웁지 않은 뒤에야 덕스러운 정치가 순미하고 국가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전하는 날마다 미친 렵사들과 더불어 새매와 사냥개를 풀어놓고, 꿩, 토끼를 쫓아 산과 들을 이리저리 내달으며 스스로 중지할 줄 모르십니다. 노자에 이르기를 이리저리 내달으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미치게 한다하고 서경에 이르기를 대궐안에서 여색에 빠지고 밖으로 사냥에 빠져서 이중에 한가지라도 있으면 혹 망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를 근거로 관찰해보면 안으로는 마음을 방탕하게 하고 밖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여 살피지 않아서는 안되니 전하께서는 유념하십시오 ―

⑴ 분석

㈎ 짤막하면서도 충성스러운 마음이 절절히 흐른다

㈏ 屍諫하였다 : 김후직의 이야기

㈐ 문장 내용이 충성스럽고 간결하고 典實하다

㈑ 유가 경전(서경) 이외에도 제자백가서(시경)에도 능통하다

⑵ 문체 : 4.6문 중심의 騈散體

⑶ 의의

㈎ 신라시대 변문 유행

㈏ 신라의 한문학 수준 높음(노자, 서경 인용)

3. 新羅의 詩

가. 太平頌(眞德王)

大唐開洪業 巍巍皇猷 止戈戎衣定 修文繼百 統天崇雨施 理物體含 深仁諧日月 撫運邁時 幡旗何赫赫 鉦鼓何鍠 外夷違命者 剪覆被天 淳風凝幽顯 遐邇競呈 四時和玉燭 七曜巡萬 維嶽降宰輔 惟帝用忠 五三成一德 昭我唐家

― 대당이 큰 왕업을 열었으니, 높고높게 큰 운세가 창성하네. 전투복입고 무로써 천하를 평정하고, 문치를 닦아서 백왕의 훌륭한 덕을 계승하도다. 하늘을 통제하야 운행우시를 숭상하고, 만물을 다스리니 모든 것이 빛남을 머금었네. (임금의) 깊은 인자함은 해와 달과 짝이 되고, 세상을 어루만져 계절이 운행하고 편안토록 힘쓴다. 나부끼는 깃발 어찌 그리 빛나며, 징, 북은 어찌 그리도 쾅쾅 울리는가. 외이로 임금 명령어기는 자는, 잘리고 엎어져 하늘의 재앙을 입으리라. 임금의 순후한 감화는 유현에 어리고, 멀고 가까운 지방 사람들이 다투어 상서로움을 아뢰도다. 4계절은 옥촉(임금의 덕)같이 조화롭고, 일곱별은 만방을 순회하도다. 산악의 정기가 보필한 재상을 내려보냈으니, 황제께서는 충성스럽고 어진이에게 나라일을 맡기네. 삼황오제의 덕이 하나로 이루어졌으니, 우리 당나라 황실 빛나도다 ―

⑴ 내용 : 당의 창업을 칭송하고 당나라 황제의 위세를 찬양한 시

⑵ 형식 : 五言 古體詩, 10韻 20句 → 短詩에서 長詩로의 발전 보여줌

⑶ 표현 : 시상이 웅대함(渾厚). 대우, 화려한 수식 → 『文選』의 영향

⑷ 작가 : 진덕여왕 때의 强首라고 봄

⑸ 연대 : 진덕왕 4년 6월(650년). 비단에 적어 당 고종에게 보냄(織錦詩)

→ 이해부터 중국 황제의 연호를 쓰기 시작

⑹ 분석

㈎ 고시이나 근체시의 성격이 강함(첫연, 끝연을 제외하고 대장)

㈏ 기풍 : 初唐的 성격이 있다

⑺ 의의

㈎ 왕위 계승에 당의 개입을 부정(선덕여왕 → 진덕여왕) → 자주성 표현

㈏ 阿諛詩라기 보다는 外交詩이다

삼국시대의 오언시 중 가장 뛰어난 작품

Cf) 强首(牛頭) → 任强首(任羅伽倻 출신 6두품 ; 사찬벼슬)

⑴ 대장장이 딸과 연애, 부모 반대에도 혼인 → 높은 신분 선망하지 않고 신

분보다 도덕성 중시(6두품 출신의 사상, 경향)

⑵ 불교적 숙명론 배격 : 사회 체제에 대한 반감

⑶ 화려한 수식, 대우, 많은 고전∙고사 인용(문선, 경전, 이아 등 공부)

⑷ 붓을 가지고 3국 통일에 기여한 사람이라고 칭함

나. 沒斧歌(元曉)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 누가 도끼자루 없는 도끼를 허락하려나. 내가 하늘을 지탱할 기둥을 박아 세우리라 ―

⑴ 출전 : 『삼국유사』 권 4, ‘원효조’

⑵ 시기 : 7세기 중엽(삼국통일 바로 전 쯤)

⑶ 작자 : 원효(6두품 출신) → 파계후 스스로 ‘小性居士’라 칭함

㈎ 불교의 대중화

㈏ 우연히 탈을 얻어서 그 모습을 모방하여 불교를 전파하는 도구 만들고 그 탈을 무애라 하여 탈쓰고 노래하며 불교 전파(불교의 대중화)

Cf) 一切無㝵人 一道出生死(화엄경)

― 어느 곳에도 장애를 받지 않는 사람(완전 자유인), 한 도에서 생사가 나온다(死生同根) ―

∙마음이 죽어 있으면 살아 있으나 해골과도 같다

다. 蛇福의 葬偈

※偈頌 : 불경의 절정부분을 산문이 아닌 시로 표현

※사복의 어머니의 제사의 尸祝

元曉

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

― 태어자지 말아야지 그 죽음이 괴롭다네. 죽지 말아야지 그 삶이 괴롭다네(生死苦兮) ―

蛇福

往昔釋迦牟尼佛 裟羅樹間入涅槃 于今亦有如彼者 欲入蓮花藏界觀

― 옛날 석가모니불이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에 들어갔네. 지금 또한 저와 같은이 있어(사복의 어머니), 넓은 연화장계(공덕이 한없는 넓은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

⑴ 주제 : 이세상에서 멸시 받는 자가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

㈎ 당시의 불교에서는 윤회를 믿었고, 윤회를 극복하고자 했다.

㈏ 관음의 현세에 나타남은 잘난 것이 아니라, 못나고 불구자로써 나타남

→ 민중 불교의 시작

⑵ 禪詩(偈頌體)의 일종 : 장게 → 고승들이 지은 시를 禪詩라 함

Cf) 불교의 운문

⑴ 偈 : 불교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언어만으로는 부족하여 산문이 아닌

시로 표현(불교의 교리를 시로 적은 것)

⑵ 불교의 기본 생각 : 말과 글로의 표현이 불가. 언어는 筌蹄(고기잡이하는 통발, 토끼 잡는 그물. 고기, 토끼 : 진리). 言語道斷, 不立文字, 以心傳心이란 생각에 정선된 언어를 사용한 시로써 표현

라. 鼻荊詞

聖帝魂生子 鼻荊郞室亭 飛馳諸鬼衆 此處莫留停

― 성스러운 임금의 혼백이 아들을 낳았으니 비형랑댁이라네. 날고 뛰는 여러 귀신 무리들아 이곳에서는 머물지 마라 ―

⑴ 출전 : 『삼국유사』 권 1.

죽은 진지왕 영혼과 도화녀 사이에 난 아들의 이름 : 비형

⑵ 귀신의 출입을 막기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지어 부른 노래 → 일종의 구나가(驅儺歌)

마. 龜何歌 혹은 龜旨歌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 내놓지 않는다면 구워서 먹겠다. ―

⑴ 작품 : 가락국의 건국 설화와 관계

⑵ 출전 : 『삼국유사』 ‘가락국기 조’

⑶ 연대 : 서기 42년 후한시대

⑷ 장소 : 북 구지산

⑸ 설화 : 김수로왕과 6가야의 건국(서사시)

⑹ 설

㈎ 신성한 임금을 맞이하는 노래

㈏ 고기잡이 노래(漁歌; 일종의 노동요)

㈐ 잡귀를 쫓는 주문

㈑ 원시적인 성욕의 표현(거북이를 남성으로 표현)

⑺ 형식 : 無韻詩(시경의 ‘風’에는 ‘也’로 끝남이 많다. 풍이외에는 ‘也’보다는 ‘矣’로 끝남이 많음)

바. 水路夫人에 관한 시가

龜乎龜乎出水路 掠人婦女罪何 汝若㥬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

― 거북아 거북(용왕의 사자)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부녀를 약탈해갔으니 죄가 얼마나 많으냐. 네가 만약 두려워하여 내어 바치지 않으면, 그물을 넣어(어가) 잡아 구워서 먹겠다 ―

⑴ 출전 : 『삼국유사』

⑵ 관련 : 龜何歌와 유사

⑶ 시대 : 성덕왕때 순정공부인(통일신라)

⑷ 형식 : 정제된 7언시

⑸ 설 : 유교적 도의 강조. 한유의 ‘악어문’과 유사(동물과 관련). 가야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7언의 정형시로 바뀌었다. 어가이며 衆唱인 공동 노동요.

4. 통일신라 이전의 문학

▶居柒夫 : AD 6C. 진흥왕 6년 『국사』편찬. 혜량을 고구려에서 모셔 최초의 國統(나라의 불교의 우두머리)이 됨.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에 신라의 『국사』를 많이 참고했다고 봄. 『四方志』(사방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히려는 뜻)

▶金仁問 : 字는 仁壽. 태종 무열왕의 둘째아들. 도량이 넓다. 학문에 능통. 음악에 조예가 깊다. 예서에 뛰어남. 외교에 큰 기여(통일 전후하의 친당외교). 우리나라 최초로 ‘字’를 갖은 인물

▶良圖 : 7차례 당을 다녀옴. 친당 외교에 공헌

▶薛聰의 업적(통일신라 전기의 대표적 인물)

⑴ 吏讀로 九經을 훈독하여 중생을 가르침(이두정리) → 이두: 한자의 음과뜻을 적절히 배합해서 우리말을 표현(吏讀→鄕札)

⑵ ‘국학’ 설립에 크게 기여

⑶ ‘花王戒’를 지음 → 騈散文(변문위주에 산문이 섞여 있음)이라 봄

㈎ 화왕계는 고려말에 유행한 가전체의 효시가 되는 동시에, 조선의 ‘花史’, ‘花王傳’ 등에 영향을 미침

→ 후기 傳奇文學에 영향을 줌이컸다

㈏ 장자를 비롯한 고대 우언의 영향을 받음

㈐ 한퇴지 『모영전』(최초의 가전)의 영향을 받음

㈑ 해석 : 6두품 출신의 정치적 불만을 표시했다고도 봄

㈒ 수필 文學의 대표적 작품으로 여기기도 함

㈓ 주제 : 위정자는 邪佞을 물리치고 正直을 친히 해야 한다는 뜻 → 신문왕

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글

▶金大問(서기 700년대) : 신라 귀족의 자제로 한산도 도독. 빈공과의 사람이 아닌 채 두각. 전하는 글이 없이 책 이름만 남아있음[중국의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민족문학자였을 가능성]

⑴ 저서

㈎ 高僧傳 : 최초의 전기 문학 작품

㈏ 鷄林雜傳 : 경주 지방을 중심으로 내려오는 설화 문집

㈐ 漢山記 : 한산도 도독을 지낼 때 황충을 없앤 이야기(서울 및 경기도 지

방의 설화집)

㈑ 樂本 : 음악에 대한 기록

㈒ 花郞世記 : 신라의 유명한 화랑 200명에 대한 기록(傳記), 이칭 ‘仙史’라

보기도 함. 화랑도 仙道라 함→화랑세기를 傳奇小說로 보는 경향이 있다

⑵ 계림잡전, 화랑세기 등은 중국의 전기소설적인 성격. 殊異傳(최치원, 김천명, 박인량 ; 저자 三說)도 전기 소설적

Cf) 花郞世記

⑴ 우리나라 傳奇의 역사를 통일신라까지 올려야 한다 → 소설, 전기의 맥이 이어지기가 어렵다

⑵『삼국사기』: 화랑세기(김대문)의 영향을 받음

花郞世記曰 賢佐忠臣 從此而秀 良將勇卒 由是而生 → 화랑세기는 변문으로 쓰인 듯 하다

⑶『삼국유사』의 金現感虎. 孝宗. 處容. 鼻荊. 竹旨. 庾信 등은 『화랑세기』의 영향인 듯하다

Cf) 신라의 국민정신 고취에 크게 기여 : 護國佛敎(불국토를 보호)

⑴ 원광법사 : 호국 불교로 국민 단결에 기여, 세속오계

⑵ 자장법사 : 진신가사. 진신사리를 당에서 가져옴

⑶ 원효 : 일반 서민에게 높은 철학을 인식하게 함

Cf) 賓貢科

⑴ 唐의 賓貢科에 신라의 사람이 58명 합격

⑵ 5대 10국 시대에 빈공과에 통일신라인 32명 합격

→ 빈공과 출신중 가장 두각된 사람 : 최치원(고은)

▶結論 : 설총. 김대문(당 유학이 없음)같은 이가 많음은 신라 자체의 한문학의 질이 높았음을 의미한다.

5. 賓貢諸子(統一新羅)의 문학

가. 통일신라시대 한문학 발달의 원인

→ 문교정책에 의해 문학발달(국학, 독서삼품과)

⑴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빈공제자들이 신라의 문학계를 주도함(빈공과 급제생이 58명이나 됨)

⑵ 진덕여왕 2년에(648) 김춘추가 당나라 태학에서 행하는 석전제(釋奠祭;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를 도입함

⑶ 신문왕 2년(682)에 ‘國學’을 설립하여 논어, 효경, 예기, 주역 등을 가르쳤으며, 지방호족 출신의 6두품들이 여기에 입학하였다.

⑷ 원성왕 4년에 ‘讀書三品科’를 설치하여 국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을 독서량에 따라 등급을 정하여 벼슬을 주었다 → 과거제의 효시, 문학발달에 큰 영향(독서량에 따른 인제 등용)

⑸ 성덕왕 17년(717)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국학에 봉안

나. 대표적 작가

▶金雲卿

▶金可紀 : 博學强記, 만당풍 : 문장수려, 수식 많음. 낭만적, 애상적→빈공제자의 특징. 노장사상에 치중

▶崔匡裕 : 『동문선』에 작품이 10수 가량 수록 되어짐

長安春日有感

麻衣難拂路岐 鬢改顔衰曉鏡 上國好花愁裏艶 故國芳樹夢中 扁舟煙月思浮海 羸馬關河倦問 祗爲未遂螢雪志 綠楊鶯語大傷

― 베옷입고 길거리에 티끌 떨치기 어려우니 귀밑머리 세고, 얼굴 주름진 것이 새벽 거울에 새롭네. 중국의 좋은 꽃들 근심 속에서도 어여쁜데, 고국의 꽃나무들은 꿈속에서나 봄이로다. 조각배 타고 달무리 질때는 (바다에) 떠 돌아갈 생각하고 파리한 말 타고 이곳 저곳 여행하며 나룻터 묻기에도 싫증이난다. 다만 형설의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푸른 버들에 꾀꼬리 소리에도 크게 마음을 상하게 되네 ―

감상 : 염세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崔承祐 : 『동문선』에 7언 율시가 10수 전함. 『糊本集』: 변려문(4.6문) 5권 유전함

▶朴仁範 : 박인범(경주용삭사시), 최치원(윤주자화사시), 박인량(고려, 사주귀산사시) 3명의 시인을 말함(빈공과 출신 중 유명함)

∙서거정 『東人詩話』 : 崔致遠... 朴仁範... 朴寅亮... 我東人之以詩鳴中國者 自三子始(우리나라 사람의 시로 중국에서 유행하게 한 것은 이 세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涇州龍朔寺兼柬雲栖上人

(경주땅 용삭사에서 아울러 운서상인에게 지어주다

翬飛仙閣在靑冥 月殿笙歌歷歷 燈撼螢光明鳥道 梯回虹影到巖 人隨流水何時盡 竹帶寒山萬古 試問是非空色裏 百年愁醉坐來

― 날아갈 듯한 신선의 집이 푸른 하늘에 있으니, 달나라 궁전에서 연주하는 생황 노래가 역력히 들리는 듯 하네. 등불은 반듯불처럼 흔들리며 조도를 밝히고, 사닥다리는 무지개 그림자처럼 굽어서 바위 구렁에 이르렀네. 사람은 흐르는 물에 따라 어느때인들 다하랴. 대숲으로 둘리어진 싸늘한 산은 만고에 푸르도다. 시비공색의 이치를 묻다가(진리에 대해, 속세의 잡사에 대해, 번민을 하다가), 평생동안 수심에 취했던 마음이 앉은 자리에서 깨어오네(借景寄意 : 경치를 빌어서 뜻을 의탁함) ―

▶崔致遠(857 ∼ ? ) : 자는 孤雲, 海雲. 東國文宗(우리나라 문학의 시조) → 중국문학(한문학)의 각체를 모방하여 집대성. 僖宗 공명 2년(881년)에 황소난의 진압을 위한 ‘제도행영병마도통관’인 ‘高騈’의 막하의 書記官(녹㈔으로 있으며, 檄黃巢書(4.6문)를 지음. 28세(885)에 귀국하여 侍讀(임금의 스승)이 되었다.

⑴ 『桂苑筆耕』 序

巫峽重峰之年 絲入中原 무산의 중봉(6. 6 봉; 12)의 년에 실로써 중원에 들어갔다

銀河列宿之歲 錦還東國 28세에 우리나라에 금의환향하다 → 4.6 변려문.

⑵ 저서 :『桂苑筆耕』 20권이 유전함

⑶ 사상 : 어느 한 思想에만 편협되지 않고 佛儒道의 사상을 겸했었다

⑷ 문학의 특징

㈎ 詩 : 근체시. 만당풍(낭만적, 애상적, 염려적)

㈏ 散文 : 변문의 성격(예; 討黃巢檄(詔令類), 四山碑銘(碑誌類))

㈐ 단재 신채호의 비평 : 문화적 사대주의자 → 그러나, 문화의 발달에서는 모방단계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최치원은 模倣段階(후일의 창작의 기틀이 되므로 중요)의 集大成者라고 본다

⑸ 이규보의 비평 : ‘중국의 문인에 비해 뒤지지 않으나, 중국인들의 중국인들의 중국인 중시 사상으로 최치원의 기록이 없다’고 하였다.

題伽倻山讀書堂

狂奔疊石吼重 人語難分咫尺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

― 첩첩한 바위사이 미칠 듯이 내달리며 겹겹산 속에서 외쳐대는데(소리내어). 사람 말소리 지척 사이에서도 분간하기 어렵도다. 늘 옳거니, 그르니 하는 소리가 귀에 이르를까 두려워 일부러 흐르는 물로 하여금 산을 온통 에워싸게 하였네 ―

감상 : 염세적, 도피적 생각이 내포 → 만당시풍

Cf) 최치원의 4.6문 대표 비문들

⑴ 崇福寺碑(숭복사비) : 변려문의 묘를 잘 살림

⑵ 眞監國師碑(진감국사비) : 철학적 관심 나타냄

→道不遠人 人無異國 是以東人之子 爲釋爲儒

⑶ 智證大師寂照塔碑(지증대사적조탑비) : 史家的 입장 대변

⑷ 無梁國師白月葆光塔碑(무량국사백월보광탑비) :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희망 피력

▶王巨仁(빈공제자 아니나 유명한 시인) : 진성여왕때, ‘대야주’ 은사

憤怨詩

于公慟哭三年旱 鄒衍含悲五月 今我幽愁還似古 皇天無語但蒼

― 우공(한나라때 인물)이 통곡을 하니 3년동안 가물고, 추연(전국시대 연의 사람)이 슬픔을 머금음에 오월에 서리가 내렸다네. 지금 내가 품은 수심은 옛사람과 같은데, 하늘은 말없이 다만 푸르기만 하네(이밀의 진정표에 있다) ―

▶薛瑤 : 신라시대 유일한 여자 시인. 15세에 스님이 됨(시대상 최치원, 왕거인 보다 앞선다). 관원진[唐]에게 (출가 6년 후에) 시집을 감

返俗謠(악부시: 句式不一定)

化雲心兮思淑貞 洞寂寞兮不見人 瑤草芳兮思芬蒕 將奈何兮靑春

― 구름처럼 변하는 마음으로 맑고 곧게 지낼 것을 생각한다. 골짜기 적막하고 사람이 보이지 않네. 아름답고 고운 풀 향기로우며 분온을 생각하는데. 장차 어찌 할거나, 이 젊음을 ―

Cf) 『文選』

⑴ 역자 : 양 소명태자

⑵ 특징∙의의

㈎ 산문이 변문으로 이루어짐

㈏ 통일신라 한문학에 가장 큰 영향. 고려 초까지 이어짐

※문학 경향

⑴ 통일신라 이전(6조시대 시풍) : 고체시였다(『문선』풍을 본 받음)

⑵ 통일신라시대

㈎ 만당풍으로 근체시

㈏ 빈공제자가 주도함

㈐ 산문은 변문 유행 → 이유 : 交隣事大之文 事尙騈儷故也(외교적으로 국가간에 왕래하는 글은 오로지 변려문을 숭상했기 때문에)

⑶ 수준 : 粗野, 淺薄(수준이 낮았다) → 고려시대 한문학을 꽃 피우기 위한 준비기간

※三國 ∼ 統一新羅의 시풍

⑴ 시경시문학의 영향(삼국 초기) → 황조가

⑵ 문선의 영향에의한 5언시의 발달(삼국중기 ∼ 통일 이후) : 한위시대의 고풍 → 우중문시

⑶ 6조풍에의한 근체시(삼국말기 ∼ 통일신라 말기) → 태평송(5언고체시이나 근체시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음)

※羅末麗初의 說話들(傳奇小說)

가. 설화의 특징∙종류 : 대부분 애정이나 戒世懲人의 내용을 담고 있고, 오랜 세월동안 구전되다가 문자화 된 것 → 후대 소설문학에 영향

⑴ 삼국유사 : 단국신화, 박혁거세, 석탈해, 수로왕 등

⑵ 삼국사기 : 박제상, 비녕자, 계백, 백결선생, 도미, 온달 등

나. 대표적 작품 : 『調信傳』『金現感虎』『崔致遠』『首揷石枏』

⑴『조신전』: 신라말 9세기경 스님의 작품으로 추정. 주인공 조신은 강릉태수의 딸과 사랑해서 부부가 되기를 원했으나 태수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결국 태수의 딸이 집을 나와 조신과 함께 도피하였다. 도피한 이들은 자식들을 데리고 걸식하며 돌아다니다 50대가 되어 끼니를 잇지 못해 자식들을 나누어 생이별을 한다. 그러나 깨어보니 꿈이어서 생에 대한 염증을 느껴 불도에 전념한였다는 이야기 → 기근과 가난에 시달리는 당시 신라인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추측

⑵『김현감호』 : 호랑이와 인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 김현이 탑돌이를 하다가 여인을 만났는데 알고보니 호랑이였다. 그녀는 세 오빠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되어있는데 김현의 손에 죽기를 원한다고 했다. 다음날 성중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므로 김현이 나가서 잡으니 그녀는 김현의 칼을 빼앗아 자살하였다. 그녀가 죽자 김현은 虎願寺를 짓고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⑶『최치원』: 신라말의 최치원을 소재로 허구적인 가식을 덧붙인 작품. 최치원과 두여인의 영혼과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魂交를 소재로 한 것

⑷『수삽석남』: 절실한 사랑의 승리를 표현한 작품. 최항은 애인이 있는데 부모가 반대하자 슬픔에 못이겨 죽게된다. 그의 사후 8일만에 그의 영혼이 애인에게 나타나 혼인허락을 받았으니 같이가자고하여 둘이 손을 잡고 집앞에 이르렀다. 최항이 애인과 石枏을 머리에 나누어 꽂고 집에 들어가더니 날이 밝도록 소식이 없자 그녀가 들어가 가족들에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다. 가족들이 무덤을 파고 관을 열어보니 최항의 머리에 석남이 꽂혀있었고 최항이 다시 살아나 30년간 해로했다는 이야기

高麗時代의 漢文學

Ⅰ時代槪觀

1. 개관

가. 특징 : 氣象이 渾厚

나. 단점 : 溫潤(따사롭고 세련됨), 含蓄(읽을 적마다 더 깊은 뜻을 느끼게 될 경우)이 不足

→직설적인 경우

Cf) 풍부 : 은유적 비유가 많은 경우, 싯구의 굴절이 심할 경우

조선 : 기상이 평협, 온윤가 함축이 풍부

2. 시대구분

가. 무신난을 기점으로(보통의 일반적 구분 방법)

⑴ 고려전기 : 국초 ∼ 18대 의종

⑵ 고려후기 : 19대 명종 ∼ 국말

나. 3기로 구분

⑴ 전기 : 무신난 이전

⑵ 중기 : 무신 집권기

⑶ 후기 : 몽고 지배기

3. 고려의 사상적 배경 : 儒佛仙 공존 → 성리학의 유입(불교

타락시에) 후 갈등

가. 儒學 : 공식교육 기관에서 가르쳐서 전수됨

⑴ 국가가 약할 때 : 誠敬 → 개인 유학

⑵ 국가가 강할 때 : 忠孝 → 집단 유학

⑶ 고려는 집단유학(충효 사상 중시)의 성격 : 한당 유학의 영향을 배움

나. 佛敎

⑴ 개인을 위주로 함.

⑵ 개인구제 사상 → 개인이 자기의 마음을 어떻게 淸靜하게 하는가에 중점

⑶ 고려의 국민사회 사상을 지배. 교단이 성립된다. 仙敎

⑴ 교단이 없었으며, 논리적∙체계적 발전을 이루지 못함

⑵ 노∙장사상과 민간신앙 속에서 이어져 왔음.

4. 고려 시대 문인의 문학에 대한 관념

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공리적 관념 : 문학은 유학의 수레가 된다

→ 載道說, 貫道說(유가의 도에 대한 독립적이지 못하고 종속되어짐)

나. 문학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미적 관념 : 문학을 출세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

(문학은 오직 인간 본연의 정신적 산물로서 문학 본연성과 독자성을 주장)

5. 문학적 특징

가. 고려 초기

⑴ 詩 : 今體詩(광종 9년(958) 과거제 시행으로 금체시만을 존중『문선』의 영향이 꺾임)

⑵ 文 : 騈文

⑶ 吏讀文學 : 예종의 『悼二將歌』가 마지막 작품

나. 문학 장르의 확대(특히 무신 집권 시대)

⑴ 부

⑵ 평론 : 『破閑集』『補閑集』『櫟翁稗說』『白雲小說』

⑶ 소설(가전체 문학) : 『麴醇傳』『麴先生傳』 등

⑷ 수필적 문학 출현

⑸ 경기체가, 시조문학

⑹ 시문학 → 여러 문학중 주류를 이룸

Cf) 설화문학 작품의 보고 : 삼국유사

다. 고려시대의 작가 중 승려가 많다.

라. 고려 시풍 : 蘇黃之風(蘇軾, 黃庭堅의 시풍)

Cf) 고려 과거 합격자 30인 → 三十蘇出

마. 고려의 근체시 시풍 변천 : 만당풍 → 12세기 후반(명종; 1171∼1197) 송시풍이 유입(이인로의 파한집에 의해 시작) → 13세기(고종시기)두 시풍사이 갈등 → 송시풍(고려가 망할때까지 지속)

Ⅱ 詩文學(한문학의 주류. 고려시대: 당시 문학의 70%)

1. 시문학의 흥성과 그 원인

가. 중국식 과거의 실시

⑴ 진사과(문학;詩∙賦∙頌∙策), 명경과(유교경전)의 실시 : 진사과 출신이 더 많이 급제함 → 진사과를 더 중시하는 경향

나. 역대왕(고려 예종, 의종, 인종 등)의 장려

⑴ 文臣月科法 : 매월 詩나 賦를내도록 하여 나중에 벼슬에 영향을 줌(과거 급제한 문신중 중앙 관리들의 계속적인 공부를 위해)

⑵ 지방의 관리들은 1년의 보고를 시∙부로 지어서 받침

다. 학교교육의 진작

⑴ 國子監(국립대학; 성종 11년 992) 설치

㈎ 가을∼봄 : 경∙사서 공부

㈏ 여름 : 詩공부(夏課제도) → 시문학 발달에 영향(刻燭賦詩; 촛불에 금을 긋고 그 금까지 초가 탈 동안에 시를 짓다, 시간제)

⑵ 사립학교 : 12공도 → 국자감 세력 약화

㈎ 최충(고려 문종 11C∼ ; 知貢擧를 역임)의 문헌공도

라. 유학 발달(유학에서도 시를 중시하였다)

⑴ 논어

㈎ 자왈 주남∙소남을 읽었는가? 읽지 않으면 눈이 벽에 마주 대함과 같다

㈏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思無邪(개인수양, 治國;시경의 풍은 통치자를 풍자한 내용이 많음)

⑵ 溫柔敦厚 詩敎也

마. 支配層의 消閑(여가 선용, 심심풀이)에 도움

바. 外交, 交遊에 必需

⑴ 『춘추』(삼전) → 외교상에서 시로써 화답함

⑵ 『논어』‘專對’ → 전권을 가지고 대사(외교)의 역할, 반드시 시에 능한 사람으로 명함

⑶ 외교시 : 三使 → 正∙副∙書狀官(시에 능한 사람)

2. 詩風의 變遷 : 만당풍 → 12세기 후반(명종; 1171∼1197) 송시풍이 유입(이인로의 파한집에 의해 시작) → 13세기(고종시기) 두 시풍사이 갈등 → 송시풍(고려가 망할때까지 지속)

Cf) 11C ∼12C 시단의 특징 : 만당시풍 → 송시풍(만당∙송시풍 혼재)

※宋詩學의 特點 : 시상을 완전하게 표현하고, 평이한 말로 作詩 → 고려 문인들은 소식의 시문학 애호함

⑴ 古風의 詩精神을 존중했다

㈎ 古體詩의 경향 : 시경 시 ∼ 漢代의 詩(형식보다 내용중시)

㈏ 今體詩(今體詩) 용어 : 원진이 처음 사용

⑵ 唐代에 너무나 시의 格式에 拘碍(성조, 대우 등)받았던 것을 반대.

융통 허용

⑶ 내용 : 理致的

⑷ 詩語 : 大衆이 이해할 수 있도록 平易하게 썼다

Cf) 이규보는 九不宜體(시에 적합하지 않은 9가지 체) 주장

⑸ 素材를 取함이 廣範했다

※소동파의 시풍이 유행한 원인

⑴ 시풍이 호방하고 내용이 다양하다[고려 사회 기풍(무신 집권시의 분위기)

과 유사]. 시어는 雅俗을 구별하지 않음 → 獨創的 詩風 : 고려 문인들의 기질과 부합됨

⑵ 佛敎, 老莊的 사상이 바탕 → 고려 시대의 사상적 배경과 유사

⑶ 유배, 좌천시에 지은 작품이 많다 → 무신 집권시기의 불우한 문인들의 처지와 유사

⑷ 출신이 한미한 집안이었다 → 무신집권시에 지방향리 출신 들이 과거를 통해 진출했는데 이는 소동파와 유사

Cf) 당시와 송시의 비교

唐 : ‘情’을 읊음 ; 훈고학(한대 ∼ 당대)

宋 : ‘理’를 읊음 ; 성리학(송대) → 당시에 비해 여운과 함축이 뒤떨어짐

Ⅲ 高麗前期 詩家(건국; 918 ∼ 고종; 1259)

→ 문학사 연구의 공백기(10C∼11C)

▶대표적 詩人들 : 정배걸, 박인량, 김연, 김부식, 정지상(무신정권 이전), 이인로, 임춘, 오세재, 유승단, 김인경, 이규보, 김극기, 진화 등

▶鄭倍傑 : 弘文公徒의 私學 創設者

▶朴寅亮 : 중국에서 시를 잘 짓는 사람(보한집, 동인시화를 보면)을 최치원, 박인범, 박인량이라함. 宋人이 박인량과 김覲의 시문학을 모아『소화집』 간행. 『古今錄』 10권 저작함(不傳)

使宋過泗州龜山寺

(송나랑 사신으로 갔다가 사주땅 귀산사를 지나면서)

巉岩怪石疊成 上有蓮坊水四 塔影倒江飜浪底 磬聲搖月落雲 門前客棹洪濤疾 竹下僧碁白日 一奉皇華堪惜別 更留詩句約重

― 높이 우뚝 솟은 바위, 괴이한 돌이 쌓여서 산을 이루었는데, 그위에 절이 있고 물이 사방을 에워쌓네. 탑 그림자는 강에 매달려 물결 밑에 누워있고, 풍경소리는 달빛에 흔들리며 구름 사이에 떨어지네. 문앞의 나그네 넓은 물결 때문에 급히 노를 젓고, 대 숲 아래 스님 바둑두는데 한낮이 한가롭네. 한차례 사명을 받들고 애석한 작별을 하게 되어, 다시 싯구를 남겨놓고 거듭오를 것을 기약하네. ―

특징 : 여운과 함축이 부족하다. 완벽한 대장을 이룸(시의 대장을 완전하게 이룬 시)

舟中夜吟

故國三韓遠 秋風客意 孤舟一夜夢 月落洞庭

― 고국인 삼한은 멀고, 가을 바람에 나그네 뜻(수심) 많기도 하다. 외로운 배의 하룻밤 꿈에 달이진 동정호에 물경이 이네 ―

감상 : 작가가 송나라를 여행하다 동정호에 이르러 고국 고려에 대한 향수에 젖어 읊은 시이다.

▶金緣 : 宣宗(1084) ∼ 肅宗(1105)까지에서 벼슬, 오랫동안 文柄을 잡고 있었다. 현존하는 시는 『東文選』에 “出鎭龍灣次示門生”, “大洞江”의 七言律詩 2首만이 전해짐

大洞江

雲捲長空水暎天 大同樓上敞華 淸和日色篩帘幕 旖旎香煙泛管 一帶長江澄似鏡 兩行垂柳遠如 行看乙密臺前景 自驗十年表未

― 구름 걷힌 넓은 하늘 물에 비치는데, 대동루위에서 화려한 잔치 열었네. 말고 화사한 햇살 (잔치여는) 장막에 스며들고, 뭉게뭉게 향기로운 연기 피어오르고 관현악 소리 떠있네. 한 줄기 장강 맑기가 거울같고, 두줄 수양 버들 멀리 연기처럼 아스라하게 보이네. 을밀대 앞의 경치 다니며 보기를 십년동안 체험했지만 표현하기 어렵네 ―

성격 : 풍요로움이 지나체서 퇴폐적인 성격을 지님. 낙천적 모습으로 표현 되어짐

→ 건국 초창기의 발전적 모습이 함유되어 있슴(11C 시의 특징)

※건국 초창기의 낙천적인 기상의 작가 : 박인량, 김연

12C▶金富軾 : 『三國史記』 편찬

가. 그의 시문학의 평

⑴ 徐居正 『東人詩話』 : 詞意嚴正典實 直有德者之言也

⑵ 成俔 『慵齋叢話』 : 金富軾能贍而不華

⑶ 崔滋 『補閑集』 : 文烈公寄意浮屠 言理最深

→ 송시 특히 동파의 시문학을 따랐음인지, 그의 시는 내용이 건실하고 시어가 평이하다

나. 고려 전기 문학과 김부식의 역할

⑴ 고려 전기의 문학

㈎ 문벌귀족에 의해 주도되는 귀족문학

㈏ 귀족들의 특권 지속을 위한 활동 → 모화사상(자신의 안일 추구), 형식주의적인 문학활동

⑶ 김부식의 역할 : 귀족문화를 삼국사기의 저술로 대변.

㈎ 유교적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고대문화를 비판

㈏ 중세의 귀족문화를 확립

다. 저서∙작품

⑴ 『三國史記』

㈎ 편찬동기 : 구삼국사의 문장이 거칠고, 사적이 빠져있어서 새로운 역사서가 필요하기 때문

㈏ 단점 : 유교적 합리주의를 지향하던 김부식의 사상이 삼국사기에 그대로 반영

→ 삼국의 건국순서 바뀜, 단국신화 등 우리 민족의 고유한 것들을 많이 삭제

㈐ 장점 : 고려 전기의 우아하고 세련된 귀족문화의 정수. 수식위주의 변문에서 벗어나 고문을 정착시켜 후대문학에 긍정적 영향

㈑ 비판 : 고려전기 귀족문화의 대변자. 사대주의적 역사서. 고대문화를 유교적 시각에서 부정하고 중세문화를 확립하려 함. 신라정통론의 대변자

東宮春帖子(입춘일에 동궁에 지어 붙인 것)

曙色明樓角 春風着柳 鷄人初報曉 已向寢門

― 새벽빛이 건물 모퉁이를 밝히는데 봄바람은 버들가지 끝에 붙어있네. 계인(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처음 새벽을 알릴 때, 이미 침문(부왕께서 계신 대궐문)을 향해 조회하려 가시네(효사상이 들어있다) ―

結綺宮

堯階三尺卑 千載餘其 秦城萬里長 二世失其 古今靑史中 可以爲觀 隋皇何不思 土木竭人

― 요임금 뜰은 석자로 낮았지만 천년동안 그 덕이 남아 있는데, 진나라의 성은 만리나되게 길었지만 이대만에 그 나라가 망했네. 옛날이나 지금의 역사 가운데서 귀감(관식)으로 삼을만 한데, 수나라 황제는 어찌 이를 생각지 않고 토목 공사로 인력을 고갈시켰는가 ―

특징 : 역사적 사실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하는 교훈적, 설명적인 시(‘理’를 나타냄 ; 송시의 특징). 시의 내용이 질박함

※ 송시풍을 개창한 사람 : 김부식

甘露寺次韻

俗客不到處 登臨意思 山形秋更好 江色夜猶 白鳥高飛盡 孤帆獨去 自慚蝸角上 半世覓功

― 속세의 손님 이르지 않는 곳에, 올라와 임하니 마음이 맑아지네. 산의 모습은 가을에 더욱 좋고, 강의 빛깔은 밤에 오히려 밝다. 백조는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배는 홀로 감이 가볍도다. 달팽이 뿔위에 반평생동안 공명을 구한 것이 스스로 부끄럽도다 ―

▶鄭知常 : 睿宗 9년 3월(1114년)의 과거에 급제하여 中書舍人의 벼슬까지 함. 시를 잘하여 김부식과 제일의 자리를 다투었으나 妙淸의 亂에 관련되었다는 협의로 김부식에게 살해당함(仁宗 13년 ; 1135년).

⑴ 시평

㈎ 최자 『보한집』 : 以詩鳴於仁廟時...... 語韻淸華 句格豪逸 讀之 使煩襟昏

眠洒然醒悟 但雄深巨作乏耳

㈏ 徐居正 『東人詩話』 : 鄭詩語韻淸華 句格豪逸 深得晩唐法

※ 만당시풍 마지막 시대의 인물로 최고봉을 이룬 사람 : 정지상

送人(또는 大洞江)

→ 그의 문명을 일세에 드날리게 한 시(海東三疊)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 大洞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

― 비 개인 긴 둑엔 풀빛이 무성한데, 남포에서 남을 보내니 슬픈노래 북받치네. 대동강(이별을 상징) 물은 어느때에나 다하려나. 해마다 이별 눈물 저 푸른 물결에 더하네 ―

※ 三疊 : 세 번 반복하여 읊음. 또는 시가 훌륭하여 세 번 반복하여 읊는 것

送人

庭前一葉落 床下百虫 忽忽不可止 悠悠何所 片心山盡處 孤夢月明 南浦春波綠 君休負後

― 뜰 앞에 오동잎 한 잎 떨어지자, 침상아래 온갖 벌레 슬피우네. 홀홀히 떠나는 임 말릴 수 없는데, 융히 어느 곳으로 가시는가. 일편단심 산이 다한 곳에 (머룸고), 외로운 꿈 달 밝은 때에(꾸노라). 남포에 봄물결 푸르게 되면, 임이여, 뒷날의 기약 저버리지 마소서 ―

특징 : 송인은 富的 對仗을 이룸(미련을 제외한 모든 연이 대장을 이룸).

詩內容이 濃艶하다. 情을 읊음(晩唐詩의 特徵 : 情恨을 읊음)

※ 김부식과 정지상의 비교

金 富 軾

鄭 知 常

문 학 경 향

主理的인 宋詩風(근엄,논리적, 교훈적) 추구∙실용적인 문학

主情的인 晩唐詩風(염려하고 애상적) 추구∙유미적인 문학

정치적 경향

신라 정통론∙보수적∙사대적 성향

고구려 정통론∙개혁적(칭제, 건원)∙자주적(금국정벌) 성향

사상적 경향

현실주의적(유교적 합리주의) 성향의 開京 사람

도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상향을 추구하던 西京 사람

표현상 특징

用事를 많이 씀

함축과 상징을 살려 새로운 뜻 표현하고자 함

Cf) 이규보의 『백운소설』중의 逸話

정지상 作

琳宮梵語罷 天色淨琉璃(사원의 독경소리 끝나자, 하늘 빛은 맑기가 유리같도다 → 고요한 사원의 독경소리 마저 끝이 나서 매우 고요. 고요함에 하늘 조차 맑아 구름의 흐름조차 없이 靜함)

특징 : 漸層法(靜이 점차로 심화되어감), 隱含이 되어짐(글자 글자에 隱含

되어서 靜을 나타냄)

김부식 作

柳條千絲綠 桃花萬點紅(버들가지는 천가지가 푸르고, 복숭아꽃은 만송이에 붉도다) → 정지상 개작 : 柳條絲絲綠 桃花點點紅(버들가지는 가지마다 푸르고, 복숭아꽃은 꽃 송이 송이에 붉도다)

13C▶李仁老 : 海左七賢(竹林高會; 1184년∼약 4, 5년간)

⑴ 중국의 竹林七賢을 애모하여, 海左七賢이라 자처했다

(죽림칠현 : 혜강, 완적(혜완), 산도, 상수, 유영, 왕융, 완함.

해좌칠현 : 李仁老, 林椿, 吳世才, 趙通, 皇甫抗, 咸淳, 李湛之)

⑵ 이인로의 문∙시풍

㈎ 문장 : 당의 한유의 고문[시작은 김부식(‘進三國史記表’)에서 비롯됨]

㈏ 시 : 송시풍 특히 소동파의 시문학을 숭상

㈐ 문학본질론(문학의 독립성과 전문성 주장)

㈑ 문학을 통해 선명한 회화성을 표현하여 탈속의 경지를 모색하였다.

⑶ 林椿의 ‘送李眉叟序’ : 眉叟與善而喜釋氏 → 이인로의 사상이 佛敎思想에 젖었음을 나타냄

⑷ 저서 : 銀臺集∙後集, 雙明齋集(소실). 破閑集(완전됨, 82화)

㈎ 『破閑集』

① 우리나라 최초의 평론서 → 우리나라의 평론문학이 성립

② 문학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주장하여 문학의 권위를 높힘

③ 신라이후 당시까지의 시와 시인들의 문풍을 평론함

④ 죽림고회의 자랑에만 치우쳤다는 평을 듣기도 함(그 중 40화가 자신의 가족, 친지, 친우, 자기 자랑으로 되어 있다)

⑸ 이인로의 시의 특징 : 淸新한 詩辭

煙寺晩鐘

(瀟湘八景 中 一首 → 후인들의 추상을 받은 시)

千回石徑白雲 巖樹蒼蒼晩色 知有蓮坊藏翠壁 好風吹落一聲

― 천구비 돌길이 흰구름에 쌓여있고, 바위와 숲 푸르디 푸른데 저녁빛이 무르렀네. 사원이 푸른 절벽에 감추어져 있음을 알겠는 것은, 시원한 바람결에 한 종소리 떨어져서네(들려와서네) ―

감상 : 俗氣를 벗어남(仙人體)

※전∙결구 도치 : 운을 맞추고자

山居

春去花猶在 天晴谷自 杜鵑啼白晝 始覺卜居

― 봄이 지났는데도 꽃은 아직 남아있고, 하늘이 개었는데도 골짜기는 아직 그늘이 졌네. 두견새가 한낮에 우는 걸 보고 복거(점쳐서 사는 곳)가 깊은 것을 비로소 깨달았네 ―

특징 : 俗氣가 없고, 시상이 깨끗하다. 淸新한 詩辭

Cf) 최자 『補閑集』

⑴ 이인로의 파한집을 모범삼은 것

⑵ 이규보와 이인로의 시를 대립시켰는데, 그 끝에는 이규보의 시를 더 우위로 평가

→ 집권층의 의도 반영

⑶ 이인로의 『파한집』보다 더 빨리 전파시됨 → 집권층의 의도대로 이인로를 깍아내림

▶林椿 : 불우한 시인

⑴ 이인로의 『파한집』 평 : 임춘은 소동파의 眞要를 체득했다 하였다

그의 저서는 없고, 평생에 지은 시문을 그의 卒한 뒤에, 이인로가 『西河先生集』 六卷(이책)으로 간행하여 전함.

Cf) 西河 : 중국 林씨의 관향

⑵ 작품(가전체)

㈎ ‘麴醇傳’ : 술을 의인화. 주인공 국순은 위진시대의 처사로써 귀인들과 항상 자리를 같이하더니 진 후주때 등용되어 급기야 세상을 어지럽히고 은퇴하여 폭사했다는 내용. 술에 의해 인간이 타락하는 것을 풍자

㈏ ‘孔方傳’ : 돈을 의인화. 돈은 두통거리이니 후환을 막으려면 이를 없애야한다는 이야기

暮春聞鶯

田家葚熟麥將稠 綠樹時聞黃栗 似識洛陽花下客 殷勤百囀未能

― 농가에 오디익고 보리 여물려 하는데, 푸른 숲에서 때때로 꾀꼬리 소리 들려오네. 흡사 낙양(서울)의 풍류객을 알아 보는 듯이, 은근히 온갖 소리로 지저귀며 그칠 줄을 모르네 ―

특징 : 시에 여운이 남음. 전원에 閒遊하며 暮春에의 풍경을 노래 부른 것

→ 得意치 못하고, 정처없이 사방을 방랑했던 그의 인생을 추상케 함

▶吳世才 : 임춘못지 않게 불행한 시인. 오세재와 이규보 忘年之交. 오세재는 이규보를 훌륭히 이끌도록 한 스승의 역할을 함. 이규보는 오세재의 諡號를 ‘玄靜先生(우리나라 최초의 사시를 받은 사람)’이라 함.

∙최자 『보한집』평 : 吳先生世才..... 富贍渾厚(풍부하고 스케일이 크다. 戟巖詩; 창바위 같이 날카롭게 우뚝 솟은 것)

病目

老與病相隨 窮年一布 玄花多掩映 紫石少光 怯照燈前字 羞承雪後 待看金榜罷 閉目坐忘

― 늙음과 병이 함께 따르는 평생토록 하나의 날선비(벼슬하지 않은 선비)로다. 눈꼽이 시야를 가림이 많고, 눈동자도 광채가 줄어들었도다. 등불 앞에서 글자 비추어 보기도 겁이나고, 눈 온 뒤에 햇살 받기도 부끄럽도다. 금방(과거 합격 발표 방) 끝남을 보기를 기다리다가, 눈 감고 앉아서 세상에 대한 욕심을 잊었노라 ―

특징 : 염세적이고 의욕상실의 모습이 시 속에 관류하고 있다

→ 작자의 생애가 문학에서 나타나고 있다

Cf) 私諡 : 벼슬하지 않은 사람의 시호를 제자나 후인이 지은 시호를 말함

중국의 도연명 : 제자가 ‘靜節先生’이라 사시를 지음

Cf) 이규보 : 무신난을 통해 정치에 진출. 해좌칠현 : 무신난을 통해 몰락하여 은둔, 피세 경향

칠현이 이규보에게 ‘春∙人(시짓기 어려운 운)’의 운을 주어 지은 시

榮參竹下會 快倒甕中 未識七賢內 誰爲鑽核

― 영예롭게 죽림칠현의 모임에 참여하여, 유쾌히 독속의 술을 마셨는데, 모르겠도다. 칠현속에 누가 찬핵인 인지를 → 중국의 칠현중 왕융과 비교(찬핵인; 지독한 구두쇠), 칠현을 비꼬은 듯한 시 ―

Cf) 詩讖 : 시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는 시

花笑不聞聲 鳥鳴不見淚 → 夭折함

兪升旦 : 康宗이 태자때에 侍學으로 있었음

∙최자의 평 : 兪文安公升旦 語勁意淳 用事精簡

宿保寧縣(보령현에 머물고서)

晝發海豊郡 侵宵到保 竹鳴風警寢 雲泣雨留 暮靄頭還重 朝暾骨乍 始知身老病 唯解卜陰

― 낮에 해풍군을 출발하여, 초저녁에 보령에 이르렀네. 대를 울리는 바람에 잠자다 일어나고, 구름이 울어 내리는 비로 행차를 멈추었네. 저녁 구름 피어오르자 머르 도로 무겁더니, 아침 해가 돋자 뼈가 금방 가뿐하네. 비로소 알았네. 몸이 늙고 병들자 오직 구름끼고 개인 것을 점쳐 알 수 있네 ―

성격 : 시가 매끄럽고 유연하지 못함(奇崛하㈐

金仁鏡 : 淸新함으로써 세인들의 추앙을 받음

∙최자의 평 : 金貞肅公仁鏡 凡使字必欲淸新 故每出一篇 動警時俗 → 시구의 조탁에 힘썼고, 만당시풍에 따름

書黼座後障上(임금님 의자 뒤 가리개 위에 쓰㈐

園花紅鏡繡 宮柳碧絲 喉舌千般巧 春鶯却勝

― 동산의 꽃 붉은 거울에 수 놓은 듯 하고, 궁궐버들(궁녀)은 푸른 실이 놀리운 듯 하네. 목과 혀가 온갖 교묘함을 나타내어, 봄 꾀꼬리가 문득 사람보다 더하네 ―

성격 : ‘풍자시’의 성격

李奎報 : 이규보의 본명 : 仁底, 자는 春卿. 규보 → 하늘의 신선인 奎星이 알려주어 장원급제될 것을 알았다하여 규보라 지음. 글을 잘하여 무신집권시에 문신으로서는 최고 자리인 門下侍郞平章事에까지 이르렀다(무신집권기의 대표적 문인). 齊齊多士하여 華麗했던 고종시 문단에서 문학의 실력으로 제일인자의 위치. 우리나라 한문학사상 崔致遠, 고려의 李齊賢, 조선시대의 申緯 등과 같이 최상급 시인(송시풍에 가깝㈐. 당시의 모든 문학 양식을 잘 지었다. 민족정신(문학은 증언이기도 하여야 한다 ; 동명왕편), 바람직한 문학은 현실인식과 민족적인 문제의식의 조화 강조.

⑴ 최자의 평 : 觀文順公詩 ...... 其豪邁之氣 富贍之體 直與東坡吻合 → 활달한 시풍이 많다

⑵ 시 : 3백운 시(五言)

⑶ 저서∙작품

㈎『東國李相國全集』(53권 14책) → 大敍事(史)詩 ‘東明王篇’을 비롯한 그의 시 수록.

㈏ 평론서 『白雲小說』 : 따로 평론서를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문집에서 짤막한 論評이 많이 있는데 이것들을 훗날 골라내어 따로 엮은 것.

㈐ 가전체

① ‘麴先生傳’ : 술을 의인화, 국선생은 벼슬이 높았는데 아들들이 방자하여 탄핵 받아 파직되고 고향에서 병으로 죽었다.

② ‘淸江使者玄夫傳’ : 거북을 의인화. 아무리 지혜로워도 실수를 범하는 것을 안타까워 함

㈑ 수필적 작품 : ‘命斑獒文’, ‘呪鼠文’, ‘驅詩魔文’

Cf) 東明王篇의 문학사적 의의

⑴ 이규보의 문학관 → 현실인식 + 민족적 문제의식(역사의식)

자기의 삶의 경험에 입각하여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이 시대적이거나 민족적인 문제의식과 만나야 바람직한 문학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즉 ‘문학은 증언이기도 해야 한다’는 문학사상을 가지고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⑵ 동명왕편 → 이규보의 문학관의 반영

우리나라 최초의 영웅서사시로써 고구려시조 동명성왕의 행적을 노래한 것이다(5언시 282구).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본래 중국에 못지않은 성인의 나라임을 알리고 민족의식과 민족 주체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⑶ 의의

무신란으로 고려전기의 귀족사회가 붕괴되며 새로운 계층인 신흥사대부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주체의식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다. 무신난을 겪고 귀족문화의 기반이 무너지자 이규보는 그 기회에 의식의 질곡을 깨고 민족적 전통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사상이 동명왕편에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와기공의 ‘역대가’의 영향을 받음,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영향을 줌. 현존하는 최초의 건국 서사시

江上月夜望客舟

官人閒念笛橫 蒲席凌風去似 天上月輪天下共 自疑私載一船

― 벼슬살이하며 생각이 한가로와 피리를 비스듬히 하고 부는데, 부들자리 바람에 떨리며 흡사 날아갈 듯 하네. 하늘 위에 둥근 달을 천하 사람이 공유하는 것인데도 나 혼자만이 배에 싣고 돌아가는 듯 하네(소동파의 전적벽부의 한 대목이 연상됨) ―

晩望(저녁에 하늘을 바라보며 또는 늙으막에 인생을 돌아보며)

李杜啁啾後 乾坤寂寞 江山自閑暇 片月掛長

― 이백과 두보가 읊조린 이후에 건곤(천지)이 적막하도다. 강산은 스스로 한가하고 조각달(이규보를 의미; 높디 높은 자존심. 조각달만 걸려 있음은 이두의 시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음을 의미, 조각달이 있음으로 사람이 없음을 표현)을 넓은 하늘에 걸려 있네 ―

조각달 : 이규보를 의미; 높디 높은 자존심 → 조각달만 걸려 있음은 이두의 시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음을 의미, 조각달이 있음으로 사람이 없음을 표현

※여운이 이어지는 시가 좋은 시이다 → 言盡而意不盡 意盡而味不盡

夏日卽事

輕衫小簟臥風欞 夢斷啼鶯三兩 密葉翳花春後在 薄雲漏日雨中

― 가벼운 적삼입고 작은 사자리 깔고 바람 통하는 난간에 누워있다가, 꾀꼬리 우는 두서너 마디 소리에 꿈이 깨었네. 빽빽한 잎에 가려진 꽃이 봄이 지났는데도 남아있고, 얇은 구름에 햇살이 세어 비오는 가운데에도 밝더라 ―

감상 : 매우 잘 되어 인구 회자되던 싯구. 閑의 경지를 그린시(수채화로 그린 듯이 밝고 맑은 시. 훌륭한 점은 밝은 색채로, 밝은 시어로 여름날의 卽事를 그려논 시. )

Cf) 훌륭한 시는 시의 밀도와 강도가 강해야 함 → 실사(명사어)가 많아야 한다.

(咏)井中月

山僧貪月色 幷汲一甁 到寺方應覺 甁傾月亦

― 산에 스님이 달빛이 탐이나서, 한 병속에 함께 길었네. 절에 이르러 바야흐로 깨달았네. 병을 기울였더니 달 또한 없도다(사라졌도다) ―

⑴ 色界의 속(中)에서 空界를 깨달음(覺) → 色中覺空

⑵ 色∙空은 불교의 기본 진리. 느끼는 사물(色)은 다 없는 것(空)이라하여 산승이 색계에서 공계를 깨달음

⑶ 큰 진리를 시속에 담은 ‘대표적 진리의 시’이다

Cf) 시의 느낌상 좋은 시는 → 시는 상대를 압도하는 기상이 있어야 하며, 시는 또한 읽는 사람에 따라 느낄 수 있는 내용상에 차이가 있는 것이 좋다

金克己 : 隱逸之士들과 더불어 산림을 전유하며 풍류에 빠졌었다.

조선시대의 ‘조운굴’의 『삼한시귀감』에 많은 시가 수록되어짐

∙시의 특징 : 淸新하고도 뜻이 溫厚한 詩辭를 사용

田家四時 中에서 秋景

搰搰田家苦 秋來得暫閑 雁霜楓葉塢 蛩雨菊花灣 牧笛穿烟去 樵歌帶月還 莫辭收拾早 梨栗滿空山

― 힘든 농가의 괴로움, 가을이 와서 잠시 한가함을 얻었네. 서리 맞은 단풍잎 고운 언덕엔 기러기가 날고, 국화핀 물구비에 비 내리는 데 귀뚜라미 우네. 목동의 피리 소리 구름을 뚫고 퍼지고 나뭇꾼의 노래소리는 달빛을 띠고 돌아오네. 추수가 일찍 끝났다 말하지 말라. 빈 산에 배와 밤이 가득하다 ―

⑴ 청신한 언어로 표현 : 압축으로 많은 의미를 포함

감상 : 김극기는 일생을 불우하게 살았기에 밝은 가을의 풍경도 슬프고 우울하게 표현되어 있다.

陳澕 : 고종때에 시문단에서 이규보와 쌍벽을 이룬 사람(한림학사)

⑴ 시의 특징 : 淸華하기로 유명함(맑고 화사) → 만당시풍

⑵ 최자의 평 : 陳補闕澕 淸雄華靡 變態百出

⑶ 대부분 유실되었으나, 일부는 『梅湖遺稿』에 전함

五夜

五夜不知風雨惡 醉和殘夢度晨 家童忽報南溪漲 半泛山花到石

― 온밤 내내 비바람 사나움 알지 못하고, 술 취함과 꿈이 어우러져 새벽 닭울음을 지나쳤네. 집 아이가 갑자기 남쪽 시내 넘쳐흐른다 알려오는데, 반쯤 뜬 산꽃이 돌뜨락에 이르렀네 ―

감상 : 속기에서 벗어난 선인체의 시

奉使入金

西華已蕭索 北寨尙昏 坐待文明旦 天東日欲

― 서쪽의 중화(宋)는 이미 쓸쓸하고 북쪽 성채(金)는 오히려 혼몽하다. 앉아서 문명의 아침을 기다리니, 하늘 동쪽에 해가 붉게 떠오르려 하네 ―

감상 : 송나라는 쇠락하고 북방의 유목민은 혼몽하니 조국 고려에서 문명의 아침이 밝아오기를 바라고 있음

※무신집권기 문신들의 동향

⑴ 무신집권 기간 : 정중부의 난(1170년; 의종 24) ∼ 최씨의 정방이 폐지(1258년) ∼ 林衍 부자 몰락(1270년; 원종 11)

⑵ 무신들의 문신에 대한 태도 : 처음에는 무신들의 탄압이 심했었으나 차차 시간이 흐르며 경계가 완화되고, 무신들 만으로는 사무의 처리가 어려웠으므로 문신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최씨가 정권을 잡으면서는 은거하고 있던 관인들을 불러 등용하였고 또 새로운 문인들을 새로 채용하였다. 이들은 구귀족들과는 다른 신진사대부들이었다.

⑶ 문신들의 처세동향

㈎ 정중부의 난에 도피하여 불가에 귀의하여 생애를 마친사람들 : 공주 마곡사에 있던 백운자 신준, 가야산의 오생

㈏ 정중부의 난에 도피했다가 경계가 완화된 후 돌아와 벼슬을 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불우한 인생을 보낸 부류 : 임춘, 오세재

㈐ 정중부의 난에 피신하여 처사생활로 일생을 보낸 사람 : 권돈례

㈑ 정중부의 난이후 과거를 통해 등용되거나 최씨 정권이후에 등용되었던 사람 : 이인로, 이규보, 이제현, 최자

※ 무신난이 한문학 전개에 미친 영향

⑴ 일반적으로 무신들의 난으로 인해 한문학이 침체 → 오히려 더욱 발전

⑵ 좋은 시인의 토양은 冷苦病 → 구체제의 무너짐에 대해 새로운 사상 성립과 문인들의 괴로운 시련을 통해 좋은 시와 훌륭한 작가의 배출이 됨

⑶ 문학 발전 이유

㈎ 무신들의 난으로 구귀족들이 크게 등용되지 못하자 더욱 문학에 정진

㈏ 이전까지의 유희적 문학에서 탈피하여 문학의 내용이 풍부

㈐ 인생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여 문학성을 높힘

㈑ 무신란이후 새로이 중앙에 진출한 신진사대부들의 적극적인 문학활동

※ 과거제 실시가 한문학에 미친영향(조동일, 한국문학통사)

⑴ 과거의 필요성 → 호족세력 견제, 중앙 왕권강화위한 인재 필요

⑵ 시험과목과 문학과의 관계 → 문학적 능력을 평가하는 진사과 중시

⑶ 과거제도와 학교교육 → 학교교육내용이 문학에 필요한 것

⑷ 과거제도의 문학에 대한 역기능 → 과거준비를 위한 헛된 문학

※ 신흥사대부의 문학방향

⑴ 신흥사대부의 출신 → 향리출신(이규보, 이제현 등)

⑵ 사대부의 성격 → 사상과 문학으로 불리한 처지 극복 노력

㈎ 고문(문학) : 화려한 수식을 일삼는 풍조를 일소하고 질박하며 내용이 있는 문장 추구

㈏ 신유학(사상) : 사상적으로 재무장하여 권문세족의 횡포와 탐욕을 공격하는데 적절히 활용

⑶ 사대부 문학의 방향 : 전제개혁을 통한 권문세족 독점 토지분배 과정, 새왕조 수립여부 고민 → 사대부문학은 역사의 방향, 각자의 처신, 현실인식과 유학의 의리를 두고 전개되는 갈등과 각성을 풍부하게 보여 줌

㈎ 이제현 : 원나라와 고려의 원활한 관계 유지

㈏ 이곡 : 고려사회 내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함

㈐ 이색 : 나라를 소생시키는 기본 방향 설정을 위해 고심

㈑ 정몽주 : 온건파 → 고려를 유지하며 개혁을 이루자

㈒ 정도전 : 강경파 → 새 왕조를 세워야 한다.

Ⅳ 高麗後期 詩家(1260 ∼ 1392)

→송시풍을 따랐던 시기

▶대표적 인물들 : 이장용, 김지대, 이제현, 최해, 이색, 정몽주, 이숭인

Cf) 이제현 : 고려 일대를 총대표하는 대시인. 몽고 지배시에 대표할 만한 시인.

이규보 : 무신정권시에 대표할 만한 시인

▶李藏用 : 元에 들어가 중국인들과 詩文으로 交際. ‘海東賢人’이라는 칭호 받음. 유가의 경서와 사서, 불가서에 통하고, 음양학 및 의약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중국의 司律(음률, 한시의 음악성)에 대단히 밝았다.

∙서거정의 『동인시화』의 평 : 用事精切...... 氣象廣豁

慈悲嶺 → 역설적 표현의 시

慈悲嶺路十八 一劍橫當萬戈 如今四海自昇平 空有杜鵑啼落

― 자비령 길 한 없이 구불구불하여, 한 칼을 가로하고 막으면 창을 든 만명의 군사를 막을 수 있네. 지금처럼 천하가 스스로 태평한데(→역설적 표현). 부질없이 두견새가 지는 달을 보고 울고 있네(한을 인내함) ―

감상 : 고려가 몽고의 침입을 막지 못한 한을 말함(몽고족의 지배를 받는 한을 내함함)

▶金之垈 : 고종 4년(1217) 거란 침입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싸움터에 나감

愁歇院途中[수헐원(근심을 그치게 하는 곳)에 가는 길에]

花落鳥啼春睡重 煙深野闊馬行 碧山萬里舊遊遠 長笛一聲何處

― 꽃이 지고 새가 울고 봄잠이 쏟아지고(詩眼;표현이 뛰어남), 안개 깊고 들 넓은 곳 말 걸음이 더디도다. 푸른산 만리 밖 옛 놀던곳 먼데, 긴 피리 한 소리는 어디서 부는 걸까 ―

성격 : 仙을 추구하는 신선사상 내표함. 시의 분위기는 늦봄, 초여름에 작자의 悠長함이 잘 드러나 있다(계절적 특징과 이에 부합된 작자의 모습을 잘 나타냄)

▶李齊賢 : 몽고 지배시에 대표할 만한 시인. 충렬왕 27년(1301)에 15세로 진사과에 장원급제(忠烈王 ∼ 恭愍王 까지 7왕을 侍奉)

1). 作詩上 借字 또는 押韻上 中國의 作詩法에 구애 받지 않고 自家의 格式을 이룸

2). 몽고 침입시 국권회복에 노력. 중국의 만권당에서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

3). 고문가의 대표적 인물(시 뿐만 아니라 산문에 대가)

4). 사문학 작가 : 호방파 ‘菩薩巒’

5). 益齋 李齊賢의 의의

가) 이덕무의 평 : 우리나라 제 1급 詩人으로 한문학사상 탁월한 지위를 차지함

나) 정치∙외교면에서도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문필로 큰 역할

다) 한문학의 토착화 : 고려가요의 한역화(小樂府; 당시 시대적 특성으로 보아서 중국의 정서로 빠지기 쉬운 것을 막고자 함∙ 민족의식의 발로, 한문학의 영역 확대, 문학 향유 계층의 확대, 우리 민족 순수 정감을 높이 끌어 올림)

라) 한문학의 영역 확충

마) 안향, 백이정, 권부의 영향을 고루받음

바) 중국 만권당 출신의 조맹부, 염복, 요수, 원명성 등과 교류를 통해 영향 받음

사) 가정(이곡), 목은(이색)에게 영향을 줌

아) 우리나라 성리학 발전에 기여함

山中雪夜(산속에서 눈온 밤에)

紙被生寒佛燈暗 沙彌一夜不鳴 應嗔宿客開門早 要看庵前雪壓

― 종이처럼 얄팍한 이불에 한기(추위)일고 산사의 등불 어두운데, 사미승은 온밤 내내 종을 울리지 않는구나. 응당 묵은 객이 문 일찍 열었다 원망하겠지만, 요컨데 암자 앞 눈이 소나무를 누르는 것(詩眼이 되는 부분)을 보려므나 ―

감상 : 淸高(맑고 깨끗하고 높은 경지)한 시이다

濟危寶

浣沙溪上傍垂楊 執手論心白馬郞 縱有連簷三月雨 指頭何忍洗餘香

― 빨래터 시냇가 수양버들 곁에서 내손 잡고 마음을 고백한 백마 탄 임이여. 비록 처마에 연이어 석달 동안 비가 온다해도, 손 끝에 남은 향기 어찌 차마 씻어낼까 ―

∙속요를 칠언절구 소악부 시에 기록

鄭瓜亭

憶君無日不霑衣 政似春山蜀子規 爲是爲非人莫問 只應殘月曉星知

― 임 그려 옷을 적시지 않는 날이 없으니, 바로 봄산의 소쩍새와 같도다. 옳거니 그르거니 사람들아 묻지마오. 다만 응당 새벽달과 별이 알것이로다 ―

∙출전 : 소악부

居士戀

鵲兒籬際噪花枝 喜子床頭引網絲 余美歸來應未遠 精神早已報人知

― 까치는 울타리 가의 꽃가지에서 울고, 거미는 평상 머리에 거미줄을 끌도다. 내 임 돌아올날 응당 멀지 않으니, 정신을 미리 알려 내가 알게하네 ―

∙출전 : 소악부

Cf) 성리학도입[안향(익재와 교류), 백이정(익재의 스승), 권부(익재의 장인)]

→ 성리학 발전에 기여 : 益齋 李齊賢[⇐ 중국 만권당 출신(조맹부, 염복, 요수, 원명선)의 영향]

→ 家亭 이곡, 牧隱 이색

→ 圃隱 정몽주, 陶隱 이숭인, 惕苦齋 김구용, 三峰 정도전

▶崔瀣 : 중국 과시에 장원 급제, 중국의 官界에 있다가 환국

1) 산문집 : 拙藁千百

2) 우리나라 최초의 문선집 → 東人之文 : 東人之文千百(산문), 東人之文四六(騈文) 東人之文五七(시)

3) 시 30여수가 『동문선』에 수록되어 전해짐

懸齋雪夜(귀양지에서 눈 온 밤에)

三年竄逐病相仍 一室生涯轉似 雪滿四山人不到 海濤聲裏坐挑

― 삼년 동안 귀양살이에 병까지 따르니, 한 방에 갇혀있는 생애 도리어 중과 같도다. 눈 가득한 사방산에는 사람 이르지 않는데,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심지를 돋우네 ―

감상 : 외로움과 서글픔을 읊은 시. 인생무상의 강개심이 토로되어 있음

▶李穡 : 家亭 李穀의 아들. 이제현, 이규보와 함께 고려시대의 三大文豪로 손꼽혀진다. 14세에 진사과에 급제, 원에서 國子監生員으로 在學. 공민왕 3년 원의 科試에 제 2등으로 등과함. 고려말 민족의 생활상을 담고있는 풍속시를 썼다. 신흥사대부의 정신세계 반영

題牧菴卷

亂山深處路橫 日暮牛羊自識 此是老翁眞境界 淡煙芳草接天

― 어지러운 산 깊숙한 곳 길이 비스듬히 높여 있는데, 해 저물자 소와 양도 스스로 제 집을 알아보네. 이것이 이 늙은이의 참 경계이니, 얇은 안개에 쌓인 꽃다운 풀이 하늘 끝에 이어져 있네 ―

감상 : 詩辭가 아름답고, 詩意가 雄壯하여 詩篇마다에는 浩浩滔滔한 기풍이 충만하다

浮碧樓

昨過永明寺 暫登浮碧 城空月一片 石老雲千 麟馬去不返 天孫何處 長嘯倚風磴 山靑江自

―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잠시 부벽루에 올랐었네. 인적 끊긴 성엔 한 조각 달 떠 있고(비추고), 오래된 바위엔 천추의 구름이 어리었도다. 인마는 떠나고 돌아오지 않으니, 하느님의 손자(동명성왕)는 어느 곳에서 노시는가. 돌다리에 의지 해서 길게 한숨 짓는데, 산은 푸르고 강은 저절로 흐르네 ―

감상 : 인사는 변했는데 자연은 변화없음을 의미. ‘현실개탄’의 의미(옛날의

고구려는 강대국이었는데 지금의 고려의 현실에 대한 비판). 東明聖王이 九

梯宮의 朝天石에서 기린을 타고 승천했다는 고사인용

Cf) 이곡의 『가정집』 : 원과 고려의 문화 교류에 중요한 면을 보여줌

이색의 『목은집』 :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 불교에 큰 관심을 지녔다

對菊有感

人情那似物無情 觸境年來漸不 偶向東籬羞滿面 眞黃花對僞淵

― 인정이 어찌 무정한 물건 같으랴. 경계를 닿은 근래에 점점 같지 않아지네. 우연히 동쪽 울타리 향하니 얼굴이 부끄러움 가득하니, 진짜 국화를 가짜 도연명이 바라보네 ―

감상 : 사람의 지조가 국화만도 못함을 한탄한 시(모두 고려를 버리고 조선에 붙음으로)

▶鄭夢周 : 성리학의 대가. 성리학과 正音을 노래하였으나 때로는 호방하며 우아한 문학활동 전개

夢見周公 → 夢周(顧名思義; 훌륭한 성인을 생각)

懷金海舊遊 : 김해 竹枝詞

鷰子樓前鷰子廻 郞君一去不重 當時手種梅花樹 爲問東風幾度

― 연자루 앞에 제비는 돌아왔는데, 낭군은 한 번 떠나더니 다시 오지 않네. 그때에 손수 심은 매화나무는, 동풍에게 묻노니 몇차례나 피었던가 ―

∙시의 성격 : 우아하고 혼후하여 후인의 모범이 됨. 시마다 애국충정이 흘러 넘친다.

∙竹枝詞 : 사랑을 읊은 시가

春興

春雨細不滴 夜中微有 雪盡南溪漲 草芽多少

― 봄비가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밤중에 미미하게 소리가난다. 눈도 다 녹아 남쪽 시내 넘쳐나니 풀싹은 얼마나 돋았을까? ―

奉使日本

水國春光動 天涯客未 草連千里綠 月共兩鄕 遊說黃金盡 思歸白髮 男兒四方志 不獨爲功

― 섬나라 봄 빛이 흐드러지고, 하늘끝 나그네는 아직 못갔도다. 풀은 천리를 이어 푸르르고, 달은 두나라를 함께 밝혀주네. 유세하다보니 황금은 다하고, 돌아갈 생각에 백발이 생긴다. 사나이 사방으로 펼치는 뜻이, 유독 공명을 위하는 것은 아니로다 ―

江南曲

江南女兒花揷 笑呼伴侶游芳 蕩槳歸來日欲斜 鴛鴦雙飛無限

― 강남의 아가씨 머리에 꽃을 꽂고, 웃으며 짝을 불러 방주에 놀도다. 노저어 돌아올 때 해가 기우니, 원앙이 쌍쌍으로 날며 끝없이 근심하네 ―

舟中美人

美人輕漾木蘭 背揷花枝照碧 北楫南檣多少客 一時斷腸忽回

― 미인이 목란의 배에타고 가볍게 떠다니니, 등에 꽂은 꽃가지가 푸른 강에 비추도다. 남북으로 가는 다소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애태우며 문득 머리 돌리네 ―

▶李崇仁 : 陶隱, 이색의 문인. 詩와 文으로 당세에 유명

西江卽事(二首中 第 二首)

杏花如雪柳如絲 春滿江城日正 低帽短靴人不識 歸來馬上有新

― 살구 꽃 눈처럼 흩날리고 버들은 실처럼 하늘거리고, 봄 빛 가득한 강성에는 해도 진정 길도다(더디다). 모자 눌러쓰고 짧은 신을 신은 나를 남들은 알아보지 못하는데, 돌아오는 말위에서 새 시를 갖게 되었네 ―

題僧房

山北山南細路 松花含雨落紛 道人汲井歸茅舍 一帶靑煙染白

― 산의 북쪽 남쪽으로 오솔길로 나뉘고, 송화는 비를 머금고 떨어져 어지럽도다. 도인은 물길을 길어 띠집으로 도아가고, 한줄기 푸른 연기는 흰구름을 물들인다 ―

Cf) 三隱 : 麗末鮮初의 대표적인 시인(이전의 인물들에 비해서 道의 성격이 매우 강함)

文(詞章) : 牧隱 ― 陶隱 ― 圃隱 : 道(性理)

※樂府

가. 악부의 개념 : 한나라때 민간의 가요를 수집하여 곡을 붙이고 연주하

는 일을 담당했던 부서

나. 악부의 특징 : 민간의 가요를 수집한 것이므로 일상생활의 희노애락

등 진솔한 민간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 악부의 발전 : 후대에 오면 악부의 전통을 이어받아 곡은 없지만 진

솔한 민간의 정서가 들어있는 가사를 짓게되었는데 이것을 擬古樂府라함

라. 악부의 형식

⑴ 가사에 진솔한 민간의 감정이 표현되어 있다

⑵ 曲이 있다 → 의고악부는 없음

⑶ 長短句가 주류를 이룬다

마. 우리나라의 악부(小樂府)

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악부’라는 명칭을 쓴 사람 : 익재 이제현 → 악부의 정신을 살려 전래가요나 민요 등을 한시로 옮겼는데 장단구가 아닌 7언구로 옮겼으므로 ‘小樂府’라 이름함

⑵ 소악부의 의의

㈎ 고려민중의 가요를 한시로 표현하므로써 한시가 중국문학의 아류가 아닌 민족문학으로 발전

㈏ 당시의 노래를 한자로 기록하여 남겨 놓음으로써 우리가 조금이나마 고려시대 민중의 감정을 알 수 있게 됨

바. 조선시대의 악부 발전

1) 이제현의 소악부 이후에 공백기가 지속

2) 조선전기 : 김종직의 ‘동도악부’ 출현으로 다시 창작되기 시작 → 악부에 대한 개념의 혼란으로 인하여 조선전기에는 악부가 그다지 발전하지 못함

3) 조선중기 이후(17세기 이후) : 다시 악부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 뒤이은 실학사상에 의해 절정

4) 조선시대의 악부는 처음에 민간설화나 고사 등이 중심을 이루다가 후에는 역사가 주체로 등장

사. 조선시대 악부 작가와 악부

⑴ 김종직의 『東都樂府』 : 경주지방의 민간설화를 노래로 읊은 것

⑵ 성호 이익, 오광운, 심광세, 임창택 『海東樂府』 : 우리나라의 역사를 주제로 했음

⑶ 이광사 『東國樂府』 : 가사를 새로이 지은 것

⑷ 안정복 『順庵樂府』 : 역사문제를 노래로 읊었다

⑸ 신광수 『關西樂府』 : 관서지방의 생활모습을 노래

⑹ 정약용 『耽津樂府』 : 천주교사건에 연좌되어 호남에 귀양갔을 때 지은 것. 그 지방의 서민 생할을 노래한 것.

⑺ 신위 『小樂府』 : 이제현의 소악부를 본받아 당시의 시조와 민요를 7언절구의 한시로 옮겨놓은 것. 당시의 시조라는 것은 이미 양반의 전유물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쳐 유행하는 노래였으므로 익재의 소악부와 신위의 소악부는 다를바가 없다.

Ⅴ 賦文學의 形成

1. 부문학의 형성

⑴ 고려에 들어 부문학 제작 활동이 활발(과거 시험에 부짓기 부과, 시작의 여가에 부를 지음)

⑵ 고려의 文風 : 소동파의 風(부를 즐겨 지음) → 고려인들도 소동파의 영향으로 부를 즐겨 지었다.

⑶ ‘賦’를 우리나라 국문학에 비유하면, 가사문학과 유사

⑷ 우리나라 한문학 사상 가장 많은 ‘부’가 지어진 시대 : 고려시대

2. 辭와 賦

가. 공통점

⑴ 묘사가 섬세하고 대단히 아름답다,

⑵ 운문이면서 구식이 불일정(운문과 산문의 중간위치)

⑶ 노래하지 않고 읊음

⑷ ‘兮’자 빈용

나. 차이점

⑴ 辭 : 서정적(굴원), 서∙본∙결론으로 구성(일반적), 풍유∙우의 많음, 亂曰 (끝맺기를...) → 이색 『유수사』(유가적 교훈이 함유되어 있다;맹자, 주역에서 인용) , 유가적, ‘兮’자를 구의 중간이나 끝에 씀, 운이 세차례 환운

⑵ 賦 : 서사적(송옥), 문답체가 많다, ‘兮’자의 위치 불일정 → 이인로『홍도정부』(한의 세계를 그림; 노장의 세계 추구), 노장적, ‘兮’자가 없다, 一韻到底(입성운)

Cf) ‘부’ 중에서 고려시대 가장 장편의 작품 : 崔滋의 『三都賦』

Ⅵ 散文文學과 選文學

※高麗時代의 散文文學 : 評論文學. 假傳體. 隨筆

※選文學 : 좋은 글을 분야별로 가려서 뽑은 글의 모임. 평론적 특성에 중점

1. 평론문학의 성립 → 魏文帝 曹丕 作『典論』 ‘論文篇’으로 성립

가. 이규보 『白雲小說』

⑴ 따로 평론서를 쓰지는 않았으나 그의 문집에서 짤막한 論評이 많이 있는데 이것들을 훗날 골라내어 따로 엮은 것.

⑵『白雲小說』에 대한 논란 → 이규보 作의 부정 증거

㈎ 백운소설에 나온 작품이 명대의 작품이다

㈏ 이규보의 三韻詩의 評에 落句缺이라 함 → 완성된 3운시이므로 이는 후대인의 오류

㈐ 대부분이 동국이상국집의 작품과 유사

나. 이인로 『破閑集』 → 체제 밖의 입장

⑴ 우리나라 최초의 평론서(우리나라의 평론문학이 성립).

⑵ 문학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주장하여 문학의 권위를 높힘.

⑶ 신라이후 당시까지의 시와 시인들의 문풍을 평론함.

⑷ 죽림고회의 자랑에만 치우쳤다는 평을 듣기도 함(그 중 40화가 자신의 가족, 친지, 친우, 자기 자랑으로 되어 있다)

다. 최자 『補閑集』 → 체제 안의 입장(널리 유포)

⑴ 이인로의 파한집을 모범삼은 것이다

⑵ 집권층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하였다

→ 이규보의 시(이태백, 백거이로 비유)를 높이고 이인로의 시를 폄하하였음

⑶ 당시 문학계의 주도는 소외층인 이인로 부류가 아니라, 무신 정권의 비호를 받던 이규보로 보는 경향을 조성토록 주장하게 함.

라. 이제현 『櫟翁稗說』 → 중립적 입장

⑴ 경, 사, 인물을 논하고 시, 문, 서, 화 등 여러 가지를 논평하였다

⑵ 비교적 예리하고 객관적으로 평론하였다

마. ‘詩話集’의 내용

⑴ 詩論 : 시의 이론

⑵ 詩評 : 시의 평

⑶ 詩逸話 : 시에 얽힌 이야기

2. 가전체(소설문학의 모체)

가. 가전체의 개념 : 사물을 의인화하여 표현하여 작자의 의도대로 구성하여 허구화한 戒世懲人을 목적으로 하는 창작물

나. 시작 : 무신집권기에 짓기 시작(13C), 13∼14C유행, 몽고지배기까지 독특한 문학 형태 발생

다. 발생원인(영향)

⑴ 대외적 : 중국의 『태평광기』, 한유의 『毛穎傳』, 소식의 『溫陶君傳』, 『萬石君羅文傳』

⑵ 대내적 : 우리나라 전래의 많은 설화(花王戒, 龜兎之說 등), 『殊異傳』등 전통의 영향

라. 창작 동기

⑴ 문인의 경쟁의식

⑵ 불우한 문인의 간접적 사회비판

⑶ 모화사상

마. 특징(문학사적 의의)

⑴ 비실용적이며 창조적인 문예문(후대 소설의 특징과 유사)

⑵ 사회의 모순이나 비리를 다른 사물에 가탁하여 풍자, 비판(계세징인)

⑶ 설화 문학에서 소설문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현상

⑷ 대체로 유희적, 골계적 작품이다

⑸ 작가가 뚜렷해 졌다

바. 대표적 작품

⑴ 임춘

㈎ ‘麴醇傳’ : 술을 의인화. 주인공 국순은 위진시대의 처사로써 귀인들과 항상 자리를 같이하더니 진 후주때 등용되어 급기야 세상을 어지럽히고 은퇴하여 폭사했다는 내용. 술에 의해 인간이 타락하는 것을 풍자

㈏ ‘孔方傳’ : 돈을 의인화. 돈은 두통거리이니 후환을 막으려면 이를 없애야한다는 이야기

⑵ 이규보

㈎ ‘麴先生傳’ : 술을 의인화, 국선생은 벼슬이 높았는데 아들들이 방자하여 탄핵 받아 파직되고 고향에서 병으로 죽었다.

㈏ ‘淸江使者玄夫傳’ : 거북을 의인화. 아무리 지혜로워도 실수를 범하는 것을 안타까워 함

⑶ 이곡

㈎ 竹夫人傳 : 대나무를 의인화. 죽부인을 통해 정숙한 여인상을 모사. 열녀사상의 고취와 윤리관을 일깨워 당시 여성들에게 감명깊은 교훈을 주려는 작자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⑷ 息影菴 : 丁侍者傳(직업귀천의 관념을 버리고 사람을 모시는 지팡이의 덕행을 강조한 교훈적 이미지)

⑸ 이응보 : 無腸公子傳

⑹ 혜신 스님 : 竹尊者傳, 氷道者傳

Cf) 조선 : 愁城志(인간의 마음을 의인화), 花史(꽃을 가지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의인화시켜 풀어감), 女容國(여인의 얼굴을 나라로 표현)

구한말 : 금수회의록

3. 隨筆的 作品

가. 현존 유명 작품 : 覺訓 『海東高僧傳』 →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유래와 삼국시대부터 당시까지 유명했던 불승의 행적 기록

나. 문집중 수필적 성격의 글

⑴ 이규보 : ‘命斑獒文’, ‘呪鼠文’, ‘驅詩魔文’

⑵ 이곡 : ‘弔堂錮文’

4. 選文學

가. 성립

⑴ 중국 : 南北朝 時 梁나라 소명태자 『文選』

⑵ 우리나라 : 고려 말기 選文 작업 일어남

나. 우리나라 대표적 選文書

⑴ 趙云仡 『三韓詩龜鑑』

⑵ 편집자 미상 『夾注名賢十抄詩』

Cf) 說話

1) 殊異傳(대부분이 說話文學; 崔致遠 作) → 三國遺事(현존하는 최고의 설화문학의 보고) → 운문, 산문(민요)

2) 설화 : 어느 민족이든지 원류를 찾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

3) 특징 : 구전되어짐. 기록적 차원상에서(화자와 청자가 필요, 지리적 상황에 따라 달라짐)

4) 설화의 종류

가) 신화 : 주인공이 神에 근접. 민족적 범위에서 전승

나) 전설 : 주인공이 비범한 인간. 지역적 범위에서 전승

다) 민담 : 인간 생활에서의 직접적 모습. 제한이 없음

5) 설화와 소설의 차이점

가) 설화 : 작가가 미상(구전되던 것이 문자화된 것)

나) 소설 : 작가가 대체로 분명

6) 소설 변천사에서 중요 요소는 가공적∙허구적이던 것을 믿을 만한 것으로 변화

7) 結論 : 삼국 ∼ 통일 신라까지는 산문문학이 꽤 많이 발달했었는데 고려 초에는 맥을 이을 작품이 없다.

朝鮮時代의 漢文學

Ⅰ 時代槪觀

1. 조선시대 한문학의 융성

가. 문학을 향유하는 계층이 두터워졌다

나. 한글의 창제 → 문학 향유 계층 확대. 한문학 발전 촉진

Cf) 한글창제 목적 : 백성들의 문자 생활, 한자의 이해 원활[ex) 『東國正韻』의 간행] → 한문학을 침체시키지 못함

2. 문학의 구분

가. 士大夫 : 館閣文學

處士文學 → 조식(남명), 서경덕(화담) 등

나. 方外人 → 김시습, 김삿갖

다. 閭巷(中人, 常人, 賤人) → 서고청, 어무적 등

라. 女流 : 士大夫 →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

妓女 → 황진이, 이매창 등

Ⅱ 詩文學의 盛旺과 그 狀況

1. 盛旺의 原因

가. 과거제의 실시로 출세의 목적으로 士族子弟들의 한문학에 의지를 지님

1). 初場 : 四書五經(詩經제외), 통감 → 경전에의 통달여부 ; 정도전

2). 中場 : 文學(시경포함) → 학문의 넓이, 글짓는 정도의 능력 여부 ; 변계량

3). 終場 : 策問 → 직언, 직간 등의 노리적인 글 짓는 능력 여부

나. 지나친 事大主義 때문에

1). 성리학의 우주관에 따라 세계의 중심을 중국으로 보고 중국을 섬길 것을 주장

2). 실학이 들어옴에 따라 우주관이 세계는 둥글다라고 하여 세계의 중심을 중국으로 보지 않음

다. 서민계층의 문학의식이 漸高되어, 서민이 직접 문학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1). 이양법에 의해 생활 여유

2). 상류층의 문학 및 생활상 모방하여 모두들 문학을 할 수 있게 됨

3). 따라서 한시문학의 사회적 영역이 확대되어짐

라. 右文左武정책이 주류 → 기본적으로 文治主義

마. 외교상에 唱和를 함

1). 북경 : 燕行錄

2). 일본 : 海行總載, 海槎錄

바. 상류층의 자기표현이나 消閑의 자료

2. 시문단의 상황

▶金頤叟 : 高麗詩文 詞麗氣富 而體格生疎[자유분방], 近代著述 辭纖氣弱 而義理精到[얌전한 특성]

▶洪萬宗 『小華詩評』: 麗朝規模大 而近宋, 我朝格調淸 而近唐

▶沈守慶 『遺閑雜錄』: ‘한유, 소동파’의 시에서 ‘이백, 두보’의 시(송시풍→당시풍)로 경향이 바뀜(宣祖 時)

▶權應仁 『松溪漫錄』: 今世詩學 專尙晩唐(선조시기 전야의 시문학풍)

Ⅲ 조선시대 시풍의 구분

1. 繼前期(국초:1392∼명종:1567)

가. 특징 : 송시풍이 이어진 시대

나. 대표적 詩人∙詩家 : 이첨, 김시습, 서거정, 박은, 이행, 정사룡 등

▶李詹 : 雙梅堂, 國初에서 가장 뛰어난 詩人.

⑴ 저서∙작품

㈎『雙梅堂集』 부전, 『東文選』에 시 100여수 전함.

㈏『楮生傳』: 假傳

⑵ 시평(남용익) : 榮茂하다(송시풍의 특징) → 詩意가 풍성하여 뛰어남

▶金時習 : 梅月堂. 방외인[자아세계의 모순을 절감하고 현실세계에서 튕겨져 나간 인물(허난설헌, 이지함, 김병연)]. 3세에 詩句를 짓고, 5세에 대학에 통달함

시평 : 慷慨的이고 脫俗的 이었다

山行卽事

兒捕蜻蜓翁補 小溪淸水浴鸕鶿 靑山斷處歸路遠 橫担烏藤一箇

― 어린아이는 잠자리를 잡고 늙은 할아버지는 울타리를 고치고[두보의 ‘곡강’시 연상], 작은 시내 맑은 물에 노자새가 목욕하네. 푸른산 끊긴 곳 돌아갈 길 멀어서(석양무렵), 오등 한 가지 비스듬히 매고 가네 ―

감상 : 한적하고 유한한 모습이 잘 묘사됨(세상에서 할 일 없는 자기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乍晴乍雨(변덕이 죽끊듯 하다)

乍晴乍雨雨還 天道猶然況世 譽我便應足毁我 逃名却自爲求 花開花謝春何菅 雲去雲來山不 寄語世上須記憶 取歡無處得平

― 잠깐 맑았다 잠깐 비오고 비그치니 맑아진다. 천도가 오히려 그러하니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나를 예찬함은 문득 응당히 나를 훼손할만하고,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물리침은 이름을 구하는 것이라.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무슨 상관이며, 구름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 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평생의 즐거움 취할 곳 없도다 ―

감상 : 세상의 그릇됨을 달관 경지에서 비난함(강개적 탈속적인 시)

有客

有客淸平寺 春山任意 鳥啼孤塔靜 花落小溪 佳菜知時秀 香菌過雨 行吟入仙洞 消我百年

― 청평사에 손님이 있어, 봄 산에 뜻대로 노닌다. 외로운 탑에 새가 울어 고요하고, 꽃이 져서 작은 시내에 흐른다. 아름다운 나물이 때를 알아 돋아나고, 향기로운 버섯이 비에 맞아 부드럽다. 가면서 읊조리며 선동에 들어가니, 나의 백년근심이 사라진다 ―

▶徐居正 : 四佳亭, 관각문인 대표자(김종직과 더불어 당대 뛰어난 문인).

⑴ 저서∙작품

㈎『東文選』(우리나라의 역대 글을 집대성), 『東人詩話』(역대 시와 글에 대한 평론서)

→ 주체의식의 발로

㈏ 官撰書인 『골계전』, 『삼국사절요』, 『동국여지승람』편찬 주도 역할

⑵ 작가론

㈎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문학, 현실에 유용함을 추구하는 문학

㈏ 조선초기의 문단을 도맡았다

㈐ 시를 평가할 때 누가 썼느냐를 더욱 중요시 함

㈑『필원잡기』, 『태평한화골계전』 → 개성적 사고

㈒ 화려한 문학, 실용성있는 문학을 추구했다는 것은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사림과 달리 넓은 아량으로 민족의 전설이나 민속을 기록하여 한문학의 유산을 풍부하게 함

⑶ 시풍 : 雄放豪健 했다

菊花不開悵然有作

佳菊今年皆較 一秋淸興謾東 西風大是無情思 不入黃花入鬢

― 좋은 국화가 금년에는 비교적 늦게 피어, 한 가을의 맑은 흥취가 동쪽 울타리에 게으르도다. 가을 바람은 무정하게도, 국화에 들지 않고 귀밑머리에 들어오는 구나(늙어감) ―

감상 : 세월이가고 늙어감을 한탄한 노래

獨坐

獨坐無來客 空庭雨氣 魚搖荷葉動 鵲踏樹梢 琴潤絃猶響 爐寒火尙 泥途妨出入 終日可關

― 홀로 앉아 오는 손님 없으니, 빈 뜰에는 빗기운이 어둡구나. 물고기가 흔드니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밟으니 나무가지 끝이 너풀거리네. 거문고가 눅눅해도 줄은 오히려 소리가 나고, 화로는 찬데 불씨는 오히려 남아있네. 진흙 길이 출입을 방해하니, 종일토록 문을 걸어 두도다 ―

睡起

簾影深深轉 荷香續續 夢回高枕上 桐葉雨聲

― 발 그림자가 깊숙히 옮겨오고, 연꽃 향기가 속속히 풍겨온다. 꿈에서 돌아온(잠에서 깬) 높은 베게위에, 오동잎이 빗소리를 재촉하도다 ―

▶朴誾 : 挹翠軒, 연산군 시기의 한시문단에서 李荇과 더불어 가장 이름 높은 시인. 宋의 ‘黃庭堅, 陳師道’의 시풍을 따랐었다

福靈寺

伽藍却是新羅舊 千佛皆從西竺 從古神人迷大塊 至今福地似天 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 萬事不堪供一笑 靑山閱世自浮

― 절은 신라부터 있던 오래된 것이요, 천불은 모두 서축에서 왔도다. 옛부터 신인이 이세상을 헤메이다, 지금에야 천태산같이 복스런 땅에 이르렀다. 봄구름 비내리고자하니 새가 서로 지저귀고, 늙은 나무 무정하니 바람만 스스로 슬프도다. 모든일 견디기 힘들어 한바탕 웃음에 맡기고, 푸른 산에서 세상을 보니 스스로 먼지가 피어오른다 ―

Cf) 海東江西派 : 李荇, 鄭士龍, 朴誾

⑴ 詩語가 깨끗하고 원만하고, 詩想이 호탕하다,

⑵ 詩語의 雅俗을 가리지 않는다.

⑶ 시속에 佛敎나 老∙莊의 내용이 들어 있다.

⑷ 송, 당풍이 섞인 특징(송시풍 → 당시풍의 과도기적 시인)

⑸ 중국의 강서파의 영향을 받음

[황정견, 진사도 : 生硬(세련되지 못하고 굳세다), 用事險僻, 拗體(평측격식에 어긋남), 換骨奪胎(옛사람의 시어나 시상을 가져다가 더욱 좋게 고쳐서 사용하는 것)]

▶李荇 : 容齋. 연산군 시는 박은과 중종 시는 정사룡과 시문단에서 짝이 되어 최고시인의 자리를 지킴, 五言古體詩에 능함, 近體詩도 잘함.

∙시풍 : 溫和함이 특색.

▶鄭士龍 : 湖陰, 중∙명종시기에서대표적 시인으로 시문단에 군림.

∙시풍 : 두보의 시풍과 같이 濃厚했음

2. 詩風轉換期(선조:1568∼현종:1674)

가. 특징

⑴ 당시풍 숭상(이백, 두보 숭상)

⑵ 서민계층의 문인 출현, 시인이 많아짐

⑶ 문학 저변 확대

나. 대표적 詩人∙詩家 : 館閣三傑(정사룡, 노수신, 황정욱), 三唐詩人(최경창, 백광훈, 이달), 漢文(文章)四大家(이정구, 신흠, 장유, 이식), 八文章, 魚無迹 등

▶館閣三傑(정사룡, 노수신, 황정욱) ↔ cf)山林三傑(김시습, 남효온, 송익필) ; 방외인 문학

▷盧守愼 : 당시풍을 따른 선구자의 한사람

▷黃廷彧 : 임진왜란때 왕자를 데리고 피신하였다 포로가 되기도 했었다

次玉堂小桃韻

無數宮花依粉墻 遊蜂戱蝶趁餘 老翁不及春風看 空有葵心向太

― 수 많은 궁궐의 꽃들 흰 담장에 의지하고, 떠도는 벌 희롱하는 나비는 남은 향기를 좇는다. 노인이 봄바람 보는데 미치지 못하나, 헛되이 해바라기의 마음은있어 태양을 향하네 ―

▷宋翼弼(1534 ∼1599) : 출신이 미천하여 벼슬은 못했으나 성리학의 대가로 율곡과 어깨를 겨뤘다.

山行

山行忘坐坐忘 歇馬松陰聽水 後我幾人先我去 各歸其止又何

― 산을 가면 쉬는 것을 잊고 앉으면 걷기를 잊어(목적없이 그냥 가는 모양), 말을 소나무 그늘 아래 세우고 물소리를 듣네. 나의 뒤에 올 사람 몇 명이요, 나를 앞서 간 사람 몇 명인가? 각자 그칠 곳에 돌아가니(죽게됨) 무엇 때문에 다투는가 ―

감상 : 당시 사람들이 파쟁을 일삼음을 경계한 시

▶三唐詩人(최경창, 백광훈, 이달) : 현실생활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로서 현실불만으로 이상향 추구의 만당시풍을 따랐으며, 방랑생활. 강서시풍 버림, 주제 접근을 암시적, 정서 중시, 생활과 시 모두 낭만적, 풍류적. 唐詩文學을 가장 잘 체득. 우리문학 사상 최초의 전문시인들

▷崔慶昌

次大洞江韻

水岸悠悠楊柳 小船遙唱採菱 紅衣落盡秋風起 日暮芳洲生白

― 강 둑 아득하고 버들 빛 푸르른데, 멀리 있는 작은 배에서 마름캐는 노래소리 들려오네. 낙엽 다 지고 가을바람 불어오는데, 해 저문 섬에 흰 물결 생기네 ―

▷白光勳

弘慶寺

秋草前朝寺 殘碑學士 千年有流水 落日見歸

― 가을 풀은 전 왕조 절의 쓰러진 비석에 (한림)학사의 글이로다. 천년 동안 흘러온 물이 있는데, 지는 해에 돌아오는 구름을 본다 ―

▷李達 :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고 불우한 인생을 살다 갔다(어머니가 관기 출신).

∙시풍 : 고독과 절망을 반영, 仙界를 지향

贈因雲釋

山在白雲中 白雲僧不 客來門始開 萬壑松花

― 산이 흰 구름속에 있는데, 흰 구름을 스님이 쓸지 않도다. 손님이 와서 문이 비로소 열리니, 온 골짜기에 송화가 무르익었네 ―

▶한문사대가(月沙이정구, 象村신흠, 鷄谷장유, 澤堂이식)

→ 고문에 능했음

▶魚無迹 : 조선 연산군 때의 시인. 경상도 김해의 官奴 출신으로 김해 관장의 貪虐을 풍자하는 시를 써서 노여움을 사 도망다니다 객사함. 그가 남긴 몇 편의 시는 모두 수난 받는 민중을 구제하려는 사상이 담겨있다.

流民歎

蒼生難蒼生難 年貧爾無食 我有濟爾心 而無濟爾力 蒼生苦蒼生苦 天寒爾無衾 彼有濟爾力 而無濟爾心 願回小人腹 暫爲君子慮 暫借君子耳 試聽小民語 小民有語君不知 今歲蒼生皆失所 北闕雖下憂民詔 州縣傳看一虛紙 特遣京官問民瘼 馹騎日馳三百里 吾民無力出門限 何暇面陳心內事 縱使一郡一京官 京官無耳民無口 不如喚起汲淮陽 未死孑遺猶可救

― 백성들의 어려움이여, 백성들의 어려움이여! 흉년이 들어 너희는 먹을 것이 없구나. 나는 너희를 구제하려는 마음은 있으나, 너희를 구제할 힘이 없구나. 백성들의 괴로움이여, 백성들의 괴로움이여! 날은 찬데 너희는 이불조차 없구나. 저들은 너희를 구제할 힘은 있으나, 너희를 구제하려는 마음이 없도다. 원하노니, 소인의 심보를 돌려, 잠시라도 군자다운 생각을 하고, 잠시라도 군자의 귀를 빌려, 가난한 백성의 말을 들어보아라. 백성들 할 말 있으나 임금은 알지 못해, 올해 백성들 모두 살 곳을 잃었다네. 대궐에선 비록 백성을 근심하는 조서를 내리건만, 고을에선 일개 빈 종이로 돌려 보는구나. 특별히 경관을 파견하여 민폐를 물어 보건만, 역마타고 하루에 삼백리를 달려가 버리네. 우리 백성 문턱 나설 기력도 없는데, 어느 겨를에 마음 속 사정 대면하여 하소연할꼬? 가령 고을마다 경관이 한 사람씩 간다해도, 경관은 귀가 없고 백성은 입이 없으니, 汲淮陽을 불러 일으켜, 죽지 않은 남은 백성들을 오히려 구하는 것만 못하다네 ―

감상 : 시풍전환기에 시짓는 저변 확대 증거. 작가의 생각이 직설적으로 드러난 시로 다소 다듬어짐이 부족하지만 절박한 심정을 노래한 바이므로 직설적인 표현도 적절하다(좋은 시는 각각 경향에 따른 특성이 있다)

▶八文章 : 송익필, 이산해, 최경창, 백광훈, 최립, 이순인, 윤탁연, 하응림 → 당시 문장가들로 古文을 가장 잘 지은 사람

▶風流香徒 : 여항(위항)시인 → 한문학의 저변 확대됨을 보여줌

유희경, 백대붕, 박계미, 최기남, 박자화, 강옥서, 박인수, 권천동, 공익건 등과 모여 한 詩社를 이룸. 唐詩風

▷劉希慶 : 신분미천, 애국심이 강하고 시를 좋아했다 함.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공도 세움

月溪

山含雨氣水生 靑草湖邊白鷺 路入海堂花下轉 滿枝香雪落揮

― 산은 빗기운을 머금고 물에서는 안개가 피어오르는데, 푸른 풀로 둘러싸인 호수가에 백로가 잠을 자네. 길이 해당화 아래로 돌아들어가니, 가지 가득 향기로운 눈(꽃잎)이 휘두르는 채찍처럼 떨어지네(흩날리네) ―

▶女流詩人 : 閨房(허난설헌, 신사임당), 妓女(황진이, 이매창, 이옥봉)

▷許蘭雪軒 : 遊仙詞(신선세계,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정화시킨 시를 多作)의 시를 많이 지음

貧女吟

手把金剪刀 夜寒十指 爲人作嫁衣 年年還獨宿

― 손에 가위잡았는데, 밤이 추워 열손가락이 곧아졌네. 남을 위해 시집갈때 입을 옷을 만들어 주면서도, 해마다 다시 독수공방 하네 ―

哭子

去年喪愛女 今年喪愛子 哀哀廣陵土 雙墳相對起 蕭蕭白楊風 鬼火明松楸 紙錢招汝魂 玄酒尊汝丘 應知弟兄魂 夜夜相追遊 縱有復中孩 安可冀長成 浪吟黃臺詞 血泣悲呑聲

― 작년에 사랑하는 딸이 죽고, 금년에는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네. 슬프고 슬프도다, 광릉땅에 한쌍의 무덤이 서로 마주하고 일어섰네. 백양나무에 쓸쓸히 바람불고, 귀신불은 소나무와 오동나무를 밝히네. 종이 돈을 태워 네 혼을 부르고, 현주(맹물)로 네 무덤에 따르네. 나는 안다. 너희 자매의 혼이 있어 밤마다 서로 따라 노는 것을. 비록 배속에 아이가 있은들, 어찌 장성하기를 바랄 수 있으랴. 헛되이 황대사를 읊조리니, 피눈물이 나와 슬픔으로 목메이네(소리가 삼켜지네) ―

寄夫江南讀書

燕掠斜簷兩兩飛 落花撩亂拍羅 洞房極目傷春意 草綠江南人未

― 제비는 기울어지 처마 끝에 열심히 날고, 떨어지는 꽃잎은 소란하게 비단 옷을 때린다. 동방엔 눈에 미치는 곳마다 봄뜻을 잃었고, 풀은 푸르되 강남의 임은 돌아오지 않도다 ―

夜夜曲

玉漏微微燈耿 羅幃寒逼秋宵 邊衣裁罷剪刀冷 滿窓風動芭蕉

― 물시게 소리 나직하고 등불은 깜박거리고, 비단 휘장엔 냉기가 닥쳐 가을밤 길기도 하여라. 변방의 옷 마름질 끝나니 가위가 서늘하고, 창문 가득히 바람에 흔들리는 파초 그림자 ―

採蓮曲

秋淨長湖碧玉流 荷花深處繫蘭 逢郞隔水投蓮子 遙被人知半日

― 맑은 가을 긴 호수에 푸른 물 흐르는데, 연꽃핀 깊은 곳에 모란배 묶어두었다. 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 남이 알까 반나절 동안 부끄러웠도다 ―

▷師任堂 申氏

踰大關嶺望親庭

慈親鶴髮在臨瀛 身向長安獨去 回首北村時一望 白雲飛下暮山

― 어머니는 흰머리로 임영(강릉)에 계시는데, 이 몸은 서울을 향하여 홀로가는 심정이여. 머리돌려 때때로 북촌을 바라보니, 흰구름 돌아 내리는 저녁산이 푸르르다 ―

思親

千里家山萬疊峯 歸心長在夢魂 寒松亭畔孤輪月 鏡浦臺前一陣 沙上白鷺恒聚散 波頭漁艇各西 何時重踏臨瀛路 綵服斑衣膝下

― 천리 먼 고향은 만겹의 봉우리로 막혔으니, 가고픈 마음은 길이 꿈속에 있도다. 한송정 가에는 외로운 둥근달이요, 경포대 앞에는 한줄기 바람이로다. 모래위엔 백로가 항상 모였다가 흩어지고, 파도머리엔 고깃배가 각기 왔다 갔다 하네. 언제나 임영가는 길을 다시 밟아, 비단 색동옷 입고 슬하에서 바느질 할까 ―

▷黃眞伊 : 시조 작가로 유명, 대부분이 애인을 그리워하는 시

詠半月

誰斲崑山玉 裁成織女梳 牽牛離別後 謾擲碧空虛

― 누가 곤륜산의 옥을 깍아다, 직녀의 빗을 만들었는가. 견우와 이별하고 난 뒤로, 부질없이 푸른 하늘에 버려 두었네 ―

감상 : 허공에 떠 있는 반달을 이별한 직녀의 빗에다 비유한 시이다.

▶車天輅 :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아 명으로부터 ‘東方文士’라고 불리워 졌다.

▶權鞸 : 관각문인과 산림문인 사이에의 시 경향(사회시를 씀). 詩禍를 입은 대표적 인물

過鄭松江墓有感

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 惆悵一盃難更進 昔年歌曲卽今

― 빈 산에 낙엽지고 비가 쓸쓸히 내리니, 재상의 풍류가 여기에 적막하구나. 한잔 다시 올리기 어려움을 슬퍼하니, 옛날의 가곡이 곧 오늘 아침이라네 ―

宮柳詩

宮柳靑靑鶯亂飛 滿城冠蓋媚春 朝家共賀昇平樂 誰遣危言出布

― 궁궐 버들 푸르고 꾀꼬리 어지러이 나는데, 성안에 가득한 높은 사람 봄 햇살에 아첨하네. 조정에서 함께 축하하며 태평성대 오른 것을 즐기는데, 누가 바른말하여 포의로 쫓겨났나 ―

3. 熟爛期(숙종:1675∼순조:1834)

가. 특징

⑴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역사의 변혁의 의지로 충만한 시기, 모순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많은 사람이 노력

⑵ 중국의 한 시대의 시풍으로 고정할 수 없이 다양 : 개개인의 개성에 맞는 시를 지음

⑶ 朝鮮詩를 지음(다산) : 각 개인의 개성에 맞게 우리나라의 시를 지음, 우리나라의 속어를 즐겨 사용(일종의 민요적 성격), 자아의식을 지니고 詩作, 爲民詩를 즐겨썼으며 민중지향적인 시가 등장(민중시)

⑷ 실학시대로 朝鮮詩(우리나라 것이어야 함), 社會詩(사회의 비리나 모순을 풍자)

나. 대표적 詩人∙詩家 : 四家(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정약용

▶申緯 : ‘詩書畵 三絶’이라 이른다. 소악부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한시의 새로운 기풍을 진작 시키는데 노력했다.

觀劇詩二首

春香扮得眼波秋 扇影衣紋不自 何物龍鐘李御史 至今占斷劇風

― 춘향이 분장하여 추파의 눈길을 얻으니, 부채 그림자 옷무늬가 부자유스럽구나. 어떤 것이 못생긴 이어사요, 지금까지 연극의 풍류를 독점하고 있구나 ―

激賞時時一聲哄 廣庭人海疊人 今宵莫漫勤添炬 早有雲頭掛月

― 심히 상을 주고 때때로 한번 소리질러, 넓은 뜰엔 인산인해로다. 오늘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횃불을 더해라. 일찍부터 구름머리에 초생달 걸려있다 ―

감상 : 춘향전의 공연 장면을 시로 형상화한 작품

子規啼

梨花月白五更天 啼血聲聲怨杜鵑 儘覺多情原是病 不關人事不成眠

― 배꽃에 달은 밝고 하늘은 오경인데, 피토하며 우는 소리소리는 원망하는 두견새로다. 정이 많음이 원래 병인 것을 다 깨닫겠으니, 인간사와 관계없되 잠이루지 못하도다 ―

▶金昌翕

訪俗離山

江南遊子不知 古寺秋風杖屨 笑別鷄龍餘興在 馬前猶有俗離

― 강남의 놀던 사람 돌아올 줄 모르고, 옛 절 가을 바람에 지팡이와 신이 한가하다. 웃으며 이별한 계룡산의 여흥이 남아있는데, 말 앞에는 오히려 속리산이 있다 ―

감상 : 유유자적하는 모습

▶洪世泰

滿月臺歌

滿月臺前落木 西風殘照使人 山河氣盡姜邯贊 日月明賢鄭夢

―만월대 앞 낙엽지는 가을에, 서풍불고 지는 햇살 사람을 근심하게 하네. 산과 강의 기를 다한이 강감찬이요, 해와 달같이 빛나는 현인은 정몽주로다 ―

감상 : 옛 고려의 궁궐터에서 역사를 회고하며 쓴 시. 현재 인물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李彦瑱

壹陽舟中

恥謀妻子計 齎志學皇初 牛角看前史 航頭得古書 餘糧分與鼠 殘鱠棄爲魚 腸肛急腥腐 新詩氣筍蔬

처자를 위한 계책을 도모함은 부끄럽게 여겨, 우주의 이치를 배우는데 뜻을 두었네. 소뿔에 (책걸어 놓고) 전시대의 역사를 보고, 뱃머리에서 옛 책을 얻었네. 남은 양식 나누어 쥐에게 주고, 남은 회는 고기를 위하여 버리네. 창자와 항문에서는 누린내와 썩은 냄새로 급하고, 새로운 시는 기상이 순수하다 ―

▶정약용

⑴ 실학을 집대성

⑵ 문학을 통해 시대현실을 비판(주로 농촌문제)

⑶ ‘조선시론’ 전개 : 토속어 사용

⑷ ‘소설해도론’ : 유희적 문학 반대

▶박지원

⑴ 당대의 문학 : 고문의 정신을 본받아 당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

⑵ ‘조선풍의 시’ 추구(자기방언 운기민요)

⑶ 소설 : 『양반전』,『허생전』,『호질』 등

▶四家(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⑴ 박지원의 영향을 받음

⑵ 空理[虛]를 배격하고 實理[實]를 추구

⑶ 남의 이야기[彼] 보다 내나라의 이야기[我]를 하고자 하였다

⑷ 남의 것[假]을 흉내내기보다 참된 내 것[眞]을 하고자 함

⑸ 이들의 작품에는 참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자하는 휴머니즘과 민족의식, 중국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⑹ ‘法古創新’의 정신을 가지고 우리 문학작품을 창작하였다

⑺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은 낮다

▷李德懋

嬋娟洞

嬋娟洞草賽羅 剩粉遺香暗古 現在紅娘休詑艶 此中無數舊如

― 선연동 풀은 비단치마가 굿하는 듯 하고, 남은 분 남은 향기는 옛 무덤에 은은하다. 지금은 젊은 아가씨들 고움을 자랑 말라. 이속에 무수한 사람이 옛날에 그대와 같았다 ―

▷柳得恭

松京雜絶

門千戶萬摠成 剩水殘山春又 吹笛橋邊踏靑去 禮成江上打魚

―천, 만 집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도, 나머지 물과 남은 산에 봄은 또 다시 찾아오네. 취적교가에서 답청하며 가고, 예성강위에서 고기잡아 돌아갈까 ―

감상 : 유한한 인사와 무한한 자연을 대비시킴

▷朴齊家

曉坐書懷

掘地得黃金 萬斤空餓死 入海採明珠 百斛換狗矢 狗矢尙可糞 明珠其奈何 陸貨不通燕 海賈不輸倭 譬如野中井 不汲將自渴 安貧不在寶 生理恐日拙 太儉民不樂 太窶民多竊

― 땅을 파 황금을 얻어, 만 근이 되는데도 부질없이 굶어 죽고, 바다에 들어가 명주를 캐어 백섬이나 되는데도 개똥과 바꾼다. 개똥은 오히려 거름으로 줄 수 있지만, 명주는 그 어찌하리요. 육지의 재화는 연경과 통하지 않고, 바다 장사꾼은 왜의 물건을 실어 오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들판의 연못과 같아, 긷지 않아 말라 버리려 하도다. 안빈 낙도는 보물에 있지 않다고 하여, 살아가는 이치가 날로 졸렬해질까 두려우니, 지나친 검소 백성들 즐거워 않고, 지나친 가난 백성들 훔침이 많아진다 ―

▶趙秀三 : 신분이 낮았지만 글재주는 아주 높아서 사대부들과 어울림. 83세에 진사과 급제

司馬唱榜日口呼七步詩

腹裏詩書幾百擔 今年方得一襴衫 傍人莫問年多少 六十年前二十三

― 배 안에 시와 글이 거의 백 짐은 되는데, 금년에야 한 난삼(과거 급제 복)을 얻었네. 곁에 있는 사람들아 나이 많고 적음을 묻지마라. 육십년전에는 나도 23살이었네 ―

감상 : 이시는 작자가 83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지은 시이다

4. 終末期(헌종시:1835∼멸망:1910)

가. 특징

⑴ 우국충절시

⑵ 갑오개혁(189⑷시 과거제도 폐지로 한시문학의 종말을 맞이함

나. 대표적 詩人∙詩家 : 김택영, 황현, 이건창

▶金正喜

悼亡

那將月老訴冥府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時悲

― 어찌하면 장차 저승에서 월하노인에게 하소연하여, 내세에 남편과 아내를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죽고 그대는 천리밖에 살아있다면, 그대로 하여금 나의 이때의 슬픔을 알게 할텐데 ―

감상 : 추사가 제주에 유배되었을 때 부인의 부음을 듣고 지은시

▶金炳淵

自嘆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靑雲難力致非顧 白髮惟公道不悲 驚罷還鄕神起坐 三更越鳥聲南枝

― 아! 천지간의 남자여. 평생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부평초처럼 삼천리를 헛되이 떠돌고, 거문고와 책 사십년 공부가 헛된 글이로다. 청운에는 힘으로(억지로) 이루기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고, 백발에는 공도를 생각하니 슬프지 않도다. 고향가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 깨어보니, 삼경에 월나라 새가 남쪽 가지에서 울고있네 ―

九月山

去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色長九月

― 작년 구월에 구월산을 찾았고, 금년 구월에도 구월산을 찾았다네. 해마다 구월이면 구월산을 찾는데, 구월산의 산 빛은 길이(늘) 구월이로구나 ―

▶金澤榮

『麗韓九家文』 : 김부식, 이제현, 장유, 이식, 김창협, 박지원, 김매운, 홍석주, 이건창 + 김택영

→ 『麗韓十家文』

▶李建昌 : 古文운동

無忘樓感懷

百濟宮邊雪滿城 三田渡外少人行 穿倉老鼠長搜粟 繞堞寒鴉大點兵 弱國君臣千載恨 異時中外一家情 登臨此日重惆悵 漢上高樓已失名

― 백제의 궁궐가에 눈이 성안에 가득하고, 삼전도 바깥에는 다니는 사람도 적구나. 창고를 뚫은 늙은 쥐는 곡식을 찾고, 성가귀 두레에는 서리맞은 갈가마귀가 크게 군대를 점호하네. 약한 나라의 임금과 신하의 천년토록 한스러움은, 때에따라 안팎이 다르나 한 집안의 뜻이로다. 이날 올라 임하니 거듭 슬픈 것은, 한강가의 높은 누대 이미 이름을 잃었음이라 ―

高靈歎

人生會止此 至此亦大難 恩封府院君 大匡議政官 子孫數十人 一一登朝端 賜宅第一區 賜號稱保閑 ...중략... 英陵好孫子 聖人曾有言 千秋萬歲後 望卿念此孫 此孫在何處 此事不可論 淸冷浦水淸 子規啼夜月 ...중략... 先王在我上 謹甫在我傍 仁叟與太初 伯高與仲章 人生會止此 此事難又難 願世爲臣者 勿復有此嘆

― 인생이 여기에 이르니, 여기에 이르는 것 또한 크게 어렵도다. 은혜스럽게도 부원군에 봉해지고, (벼슬은) 영의정이라. 자손 수십인이, 하나하나 벼슬에 올랐고, 제일 좋은 구역에 저택을 하사하시고, 호를 내리시어 보한이라 일컬으셨다...중략...영릉(세종)께서 손자를 사랑하시어 성인(세종)께서 일찍이 말씀하시되, 천만년 뒤에(내가 죽은 뒤에), 경들에게 바라노니 이 손자를 생각할지어다. 이 손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고, 이 일은 논할 수 없구나. 청랭포(단종이 죽은 곳)의 물은 맑고, 자규새는 달밤에 우는 구나...중략...선왕은 내 위에 계시고, 근보(성삼문)는 내 곁에 있도다. 인수(박팽년)는 태초(유성원)와 함께 있고, 이개는 하위지와 함께 있도다. 인생이 여기에 이르니 이일은 어렵고 또한 어렵다. 원컨대 세상의 신하된 자는, 다시 이런 한탄이 있지 말지어다 ―

⑴ 형식 : 5언 고시(역사 서사시, 풍자시)

⑵ 수사법 : 대구법, 문답법

⑶ 주제 : 변절자에 대한 경계

⑷ 감상

㈎ 이 시는 작자가 우리 역사를 읽다가 그 아우의 청에 따라 지어준 작품

㈏ 내용은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집현전 학사 신숙주가 단종을 돌보라는 고명을 저버리고, 수양대군의 정권찬탈 계획에 동조하여 단종과 집현전의 동료학자들을 죽인 후 홀로 부귀 영화를 누림으로써 천추에 오명과 한탄을 남긴 데 대한 풍자

㈐ 신숙주가 임종을 앞뒤고 지난 날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현재―과거회상―현재의 형식으로 진행됨

▶黃玹 : 망국에 의한 『絶命詩』 4수 남김 → 선비로서의 자세

絶命詩(4수중 3번째)

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 조수도 슬피 울고 산과 바다가 찡그리니, 무궁화 세상은 이미 가라 앉았다. 가을 등잔에 책을 덮고 지난 역사를 생각해 보니, 인간세상에 지식인 노릇 어렵도다 ―

Ⅳ 古小說의 歷史的 展開

1. 準備期

가. 시기 : 고려시대

나. 특징

⑴ 口傳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비로소 문자화 된 것이 많음

⑵ 금오신화 출현에 앞선 과도기적 형태의 假傳體 文學(설화와 소설의 교량적 역할)

⑶ 醒世訓人을 목적으로 사물을 의인화하여 허구적 처리, 보다 소설적 접근 시도

다. 대표적 작품 : 설화문학 및 가전체

2. 發生期

가. 시기 : 조선초기(∼세조)

나. 특징 : 한국 소설사에서 최초로 소설다운 형태를 지님

다. 금오신화의 특징

⑴ 소설다운 형체를 갖춘 최초의 소설이다

⑵ 작가의 의식이 뚜럿하게 반영되었으며, 인물묘사가 부각되었다

⑶ 한국의 독창성을 잘 발휘하였다

⑷『剪燈新話』의 영향(구조, 문체)을 받았으나, 한국적 독창성 발휘(우리나라의 배경, 풍속 삽입하여 향토색 발휘) → 자주적 정신에 입각된 것으로 비교문학적 의의로 높이 평가

라. 금오신화의 구성

⑴ 萬福寺樗蒲記

㈎ 내용 : 남원의 양생이 부처님과 내기에서 이겨 2년전에 죽은 여인의 혼과 인연을 맺었다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

㈏ 주제 : 빈곤과 고독 또는 미천한 처지의 사람들이 사회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저주하고, 또 그 고민을 神佛에게 호소하며, 비타당적인 사회를 도피하려 한 사상의 반영작

⑵ 李生窺墻傳

㈎ 내용 : 개성의 이생이 양반집 최씨의 딸과 인연을 맺었으나 홍건적의 난으로 여자가 죽었는데 그 죽은 아내와 다시만나 수년을 살았다는 이야기

㈏ 주제 : 禮敎的 구속하에서 자유스러운 인간이 되고자함과 참된 인간성을 지니고자함을 부르짖은 작품

Cf)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의 작가관

㈎ 연애지상주의 : 애정은 생사를 초월한다

㈏ 자유연애주의 : 선택의 의지를 이야기함

㈐ 작자의 사회관 반영 : 주인공의 의지를 방해하는 것을 전쟁으로 설정

㈑ 인생관 : 운명에는 순종해야 한다. 죽은 여인과 현실적 인간과 다름없는 애정생활을 영위하였으나 결국에는 운수가 다하여 중단되었다는 이야기

⑶ 醉遊浮碧亭記

㈎ 내용 : 개성의 홍생이 부벽정에서 箕子의 딸과 놀았던 이야기로 이승의 사람과 죽은 사람의 혼이 交遊한 이야기

㈏ 주제 : 不義한 현실사회를 한탄하며 이상향을 그리는 심정을 나타내며 은연중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는 작품

㈐ 작가관 : 性愛에서 탈피한 聖愛 → 연애감정의 궁극적 경지 표현

⑷ 南炎浮洲志

㈎ 내용 : 경주의 박생이 저승에서 염라대왕과 놀았던 이야기

㈏ 주제 : 작자의 사상과 정치관을 말한 것으로 유가사상에 의한 공명정대한 의로운 정치를 행할 것을 주장하는 작품

㈐ 작가관 : 시사 문제를 논하되 그 배경을 지옥으로 설정 → 지옥과 같은 현실세계

⑸ 龍宮赴宴錄

㈎ 내용 : 개성의 한생이 용궁에 초대받아 용궁을 구경하고 돌아왔다는 내용

㈏ 주제 : 名利를 구하지않고 불우한 일생을 산 작자 자신의 형편을 모델로 한 작품(용왕 : 세종, 한생 : 김시습)

㈐ 작가관 : 용궁은 이상향, 仙境. 용궁의 이야기는 술마시고 노래하고 글짓는 것(예술은 정치보다 우위에 있다는 작자의 의지 반영). 정치가 거론된

곳은 지옥이나 文士가 부름 받은 곳은 용궁 → 문학 그 자체에 궁극적 목적을 둠

마 김시습(1435∼1493) : 작가 의식이 뚜렷,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주적 정신에 입각하여 저술

바 대표적 작품 : 『금오신화』

3. 展開期

가. 시기 : 조선중기Ⅰ(∼임병양란)

나. 특징

⑴ 군담소설

㈎ 임∙병양란의 영향으로 군담소설 출현

㈏『삼국지 연의』의 영향을 받음

㈐ 왜와 호족에 대한 적개심 강조 → 당시 시대정신의 반영

㈑ 유충렬전 : 善格과 惡格의 양극으로 나뉘는 인물 묘사 법 → 군담소설, 후대 고소설의 典範이 됨

⑵『홍길동전』→ 최초의 국문소설

㈎ 군담소설과 같은 시기에 등장

㈏ 義賊小說은 동서문학의 공통된 주제

㈐ 양반 관료에 대한 비판, 적서차별에 대한 주제설정 등 → 참여문학

다. 대표적 작품 : 군담소설(『劉忠烈傳』『壬辰錄』), 허균 『洪吉童傳』

4. 發展期

가. 시기 : 조선중기Ⅱ(∼숙종)

나. 특징

⑴ 김만중 : 한국인은 학국토속어로 작품을 써야 한다는 국민문학론 제창

⑵『九雲夢』 : 환몽구조와 空觀思想으로 주제와 사상이 혼연일체됨

⑶『南征記』 : 봉건가족 제도에서 일어나는 씨앗싸움의 비상을 소재로 한 가정, 풍자 소설(숙종의 인현왕후 폐위, 장희빈 맞이한 사건을 소재로함)

⑷ 『구운몽』과『남정기』의 의의

㈎ 군담소설적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현실성에 접근

㈏ 소설기법의 다양화된 흔적으로 중도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을 등장(남정기)

다. 대표적 작품 : 김만중 『구운몽』, 『남정기』

5. 結實期

가. 시기 : 조선후기(∼영∙정조)

나. 특징

⑴ 평민문학이 문학의 주도권을 장악함에 따라 소설도 자연 근대화된 요소를 지니게 되었음

⑵ 소설사적 의의 : 현실성에 바탕을 둔 강력한 시대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비현실성이 사라지고, 하류천민이 작품상의 주인공으로 등장), 참다운 근대성 발견

⑶ 박지원 소설

㈎ 의의 : 당시에 팽배했던 실학사상 바탕으로 양반계층 풍자

① 위선적 인간성에 대한 풍자 : 위정자의 무능. 부자들의 어리석음. 인간의 아첨하는 모습. 양반 및 열녀의 위선적 행위

② 왜곡된 사회질서에 대한 풍자 : 상인계급의 천시 풍조. 양반사회의 허구성. 북벌의 허구. 열녀의식의 잔학성

㈏ 풍자의 최종 목표는 이상세계의 건설, 풍자를 통해 서민의식을 옹호

㈐ 주된 표현 기법 : 사실주의(진실 추구). 독창성(세태와 역행). 자주성(내 것을 추구). 풍자와 골계(현실의 지혜로운 고찰)

㈑ 고문 정신을 본답아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할 것을 주장

㈒ ‘法古創新’ 주장 : 고문의 정신을 본받되 새롭게 창조

⑷ 판소리 소설 →『춘향전』

㈎ 제도화된 탐관오리 풍자, 庶女 출신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정 → 참다운 근대성 발견

다. 대표적 작품

⑴ 박지원 소설 : 『양반전』『허생전』『虎叱』『廣文者傳』『閔翁傳』『烈女咸陽朴氏傳』『穢德先生傳』『金神仙傳』『虞裳傳』『易學大盜傳』 『鳳山學者傳』

㈎『양반전』: 몰락한 양반과 신흥부자,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변혁표현. 양반의 무능을 고발 폭로

㈏『허생전』: 현실사회를 진실하게 반영하고 당시 사회문제를 제기하였다. 독서계층은 현실을 인식해라. 나라의 생산력이 너무나 미약하다. 도적떼가 일어나는 것은 생업을 얻지 못해서이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나 현실에서는 뜻을 펼 수 없다.

㈐『호질』: 북곽선생과 東里子 그리고 호랑이를 등장시켜 양반계층의 모든 가식과 위선을 폭로. 풍자와 해학이 동일 질서위에 구축되었다

㈑『예덕선생전』: 똥 푸는 사람인 예덕선생이 자기의 분수에 알맞게 빈천한 생활을 하면서도 대인 군자에 못지않게 의리와 덕행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통하여 양반들의 허식적 생활을 비판

㈒『광문자전』: 가장 천한 걸인의 삶에서 인간적 진실성과 정서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 → 양반의 위선을 풍자하려는 태도

⑵ 판소리 소설 :『춘향전』

6. 終結期

가. 시기 : 조선말기(순조 이후∼ )

나. 특징

⑴ 『채봉감별곡』 : 가곡체 소설

㈎ 조선말기의 양반관료층의 부패성과 정치적 혼란을 드러냄

㈏ 비현실성의 완전한 소멸과 더불어 인물묘사, 사건의 처리 등에 거의 신소설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古小說과 新小說의 교량적 역할의 작품)

⑵ 『배비장전』 : 판소리의 소설화, 풍자와 야유로 점철

다. 대표적 작품 :『채봉감별곡』『배비장전』

※ 한국 고소설은 그때 그때의 時代思潮에 호응하여 황당한 비현실성이 점차로 가셔지며 발전되어 왔다.

Ⅴ 평론문학의 발전

1. 분류

가. 서거정 『동인시화』

⑴ 조선시대 최초의 평론문학 전서

⑵ 신라에서 조선초기까지의 시와 시인들을 평론함

나. 허균 『성수시화』

다. 홍만종 『소화시평』

라. 이제신 『청강시화』

2. 특징 : 평론서는 많지는 않으나 여러문인들이 지은 많은 저서에 문학에 대한 평이 많이 들어 있어서 조선시대의 평론문학이 크게 발전했었음

Ⅵ 선문학 : 고려시대에 시작, 조선시대에 본격적 발전

1. 분류

가. 서거정 『동문선』

⑴ 왕명으로 편찬

⑵ 신라이래 조선초까지의 시∙문∙부들을 수록

나.『소대풍요』『풍요속선』『풍요삼선』→ 조선시대 여항문인들의 시를 골라 모은 것

다. 『동양역대여류시선』 : 1909년 작. 우리나라, 중국, 일본 여류시인의 시 5500수를 수록하였다

※ 조선초기 문학의 전개양상(관각문학, 처사문학, 방외문학)

고려말의 신흥사대부들은 성리학을 도입하여 사상적으로 재무장하면서 성과 리를 사상적 핵으로 하여 문예적 기교보다는 도를 중시하는 재도적 문학관을 갖게 되었다

가. 관각문인(훈구파, 사장파) : 정도전, 서거정, 권근 등

고려말의 신진사대부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인하여 혁명파와 고려왕조를 계속유지하며 개혁을 꾀하는 절의파로 나뉘게 된다. 관각문인은 조선왕조 건국후에 국가를 정비하고, 정치적 현실문제에 부딪치며, 도를 전달하는 문보다 문의 실용적인 면과 문학의 장식적인 면에 치중하게 되었다. 그들은 성리학과 문학이 둘 다 소중하며 문장을 가다듬는 능력을 키워야 조선왕조의 기반을 온전하게 다지며 그 위엄을 빛낼 수 있다고 믿었다.

나. 처사문인(사림파, 도학파)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신왕조 자체를 부정하며, 초야에 묻혀살던 처사문인들은 여전히 도를 중시하는 재도적문학관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은둔자적하면서 참된 왕도정치를 이루고자 학문과 제자양성에 주력하였으며, 문학이 자기 성찰의 구실을 하는데 역점을 두며 표현자체보다는 그 속에 녹아있는 도를 더욱 중시하였다. 이들이 세력을 키워 중앙정계에 진출한 것은 김종직을 필두로하여 성종때부터 였으며 이후 훈구파와 사림파의 권력다툼에의한 사화가 일어나게된다. 사림파는 고려말의 길재, 정몽주로부터 김숙자에게 이어졌으며 김숙자의 아들인 김종직에게 이어졌다

다. 방외문인(김시습, 남효은, 김병연, 이달 등)

관각문인과 처사문인의 양대 흐르속에 이들가 구별될 수 있는 또다른 부류가 있었으니 이들을 방외문인이라 이른다

이들은 체제 밖의 인물들로써 지배체제 속에서 주어진 위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을 보이며 이념적으로도 이단을 택하는 사람들이었다. 방외문인들은 지체에 결함이 있는 말단 사대부이거나 또는 그 이하여서 사회적 진출을 바랄 수 없는데다가 자기의 재능에대한 자부심이 반발을 촉진해서 방랑과 비판으로 일생을 보내기 일쑤였다.

여항문학 : 중인층의 문학, 홍세태, 김창협, 고시언, 천수경, 유재건 등

실학파와 민족문학

가. 실학의 학풍

조선후기에 들어 서양의 자연과학이 유입됨에 따라서 중국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당시 민중의 현실은 외면한 채 공리공론만 일삼던 주자학이 현실과 괴리된 학문이라는 것을 깨닿게 되었다. 따라서 실학인들은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학문을 연구하고자 하였고 그에따라 실용적이고 실증적이며 독창적이며 나아가 민족적 독자성과함께 근대지향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나. 실학의 문학양식

실학정신이 문학에도 반영되어 근대적 민족주의를 주장함과 동시에 민족문학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실학파의 문학론은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김만중, 홍대용을 중심으로한 국문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요, 다른 하나는 한문학에 있어서의 독자성 추구이다

다. 국문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국민문학론)

국민문학론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서포 김만중이다. 그는 ‘우리가 남의나라말을 배워 비슷하게 하더라도 그것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우리말로된 문학이야 말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라. 한문학의 독자성 추구

실학파문인들의 보편적 경향은 현실주의적 창작관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시와 현실을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문학에 반영하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문학이야말로 참된문학이요, 살아있는 문학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창작관은 필연적으로 민중의 삶과 체험을 쓰도록하였고 그에따라 상말, 속언, 토속어들이 문학작품속에 녹아들게하였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이익, 박지원의 조선풍, 정약용의 조선시론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자주적, 독창적)

실학파 문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선의 역사나 국토 민족에 대한 애정어린 시각과 주체적 시각을 문학을 통해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성호 이익의 해동악부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은 이러한 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민중지향적, 민족적)

조선후기의 여항문학

가. 개념 : 중인증의 문학

나. 중인의 성격

중인이란 조선후기에 부각된 신분으로써 사대부와는 구별되는, 기술분야에 종사하던 신분계층을 말한다. 이들은 주로 서울 근교에 거쳐하면서 사대부에 버금가는 신분으로 직무수행에 필요한 재능은 물론 상업의 발달로 인한 경제적 부를 누렸다.

다. 중인(여항인)의 문학 참여

이들이 문학에 참여하여 지위상승을 꾀하는 한편 현실인식을 바탕으로한 새로운 작품세계를 개척하게 되었다.

여항인들은, 누구나 훌륭한 문학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홍세태는 이론을 세시하여 문학담당층의 확대를 정당화하고자 하였으며, 일반백성을 대표하는 위치에 선다고 자부하였다. 또한 문학도 인간의 성정을 순수하게 표현하여야 한다는 天機論을 주장하였다. 여항문인은 사대부 문학과 시인 문학적 성격을 겸한 중세에서 근세로의 이행기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라. 대표자

⑴ 최기남(1586 ∼ 1665) 『육가잡영』

⑵ 홍세태(1653 ∼ 1725) 『해동유주』 → 중인문학이론 확립 : 문학은 ‘천기의 중을 얻어 태어났으며 정에 느낀바를 시로 나타내는 데는 귀천이 없다’

⑶ 고시언(1671 ∼ 1734) 『소대풍요』 → 여항시인의 시를 집성한 것

⑷ 천수경(1757 ∼ 1818) 『풍요속선』

⑸ 유재건(1793 ∼ 1880) 『풍요삼선』

마. 여항문학의 한계

⑴ 시에만 치중하고 다른 문학에는 개척이 없었다.

⑵ 여항문학은 사대부에로의 신분상승, 혹은 旣得한 상층문화의 향유라는 범주를 크게 넘지 못했을 뿐아니라, 기존의 사회체제에 대한 의지적인 개혁이나 혁신을 이루려는 노력이 미약하였다.

⑶ 19세기에 들어 시민의 경제적 활동이 왕성해지고 시민문학이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자, 중인들은 이들을 대변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상층의 일원임을 주장하였고, 근대지향의 새로운 문학을 창조하는 주도권을 시민과 하층의 민중들에게 넘겨주었다.

조선초기 재도적 문학관

가. 고려말의 상황

신진사대부의 재도적 문학관(참된 문학은 도를 싣는 그럿이므로 문장의 수식과 기교보다는 도가 중시되어야 한다는 입장) → 절의파와 혁명파로의 분열

나. 조선건국 후의 상황

⑴ 절의파 : 여전히 재도적 문학관을 견지. 도는 도학의 도를 말한다

⑵ 혁명파 : 재도적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도의 개념이 달랐다. 도학의 도보다는 정치경국치세의 도,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도, 실천적이고 ㅇ용성을 추구하는 도였다(정도전, 서거정)

서거정의 동문선 편찬 배경과 의의

가. 편찬 배경

조선왕조가 들어서 여러방면에 걸친 민족문화 정리사업을 할 때 한문학 작품을 집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업이라 여겨 『동문선』을 편찬하게 된다. 『동문선』은 중국의 『문선』을 모방하여 신라시대 이래 우리나라의 역대 글들을 집대성한 것이다(1478년, 성종 9년)

서거정은 『동문선』서에서 ‘우리 동방의 문은 송원의 문도아니요, 한당의 문도 아니요, 바로 우리나라의 문이다.’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한문학 작품이 중국에 비해 손색이 없고, 중국과는 다른 특색을 지녀서 더욱 소중하다고 자부하고 따라서 물려받은 유산을 인멸되지 않게 보존, 전승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 『동문선』의 의의

⑴ 주체의식의 발로(문학에 대한 서거정의 주체적 시각)

한문학의 유산을 풍부하게 함(작품수집시 우리 것이면 어느것이든지 소중하다는 사상을 가지고 수집)

조선후기 문학론의 전개

가. 문학론 전개방식의 다양화

고려후기에 문학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고 조선전기에 그 후속작업을 하면서 문학은 성리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어야한다는 점이 강조되게 되었다. 즉, 문학은 유학의 경전을 모범으로 삼고 심성의 바른 도리를 전해야한다는 재도적 문학관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문제는 도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들어 문학담당층이 확대되고 문학의 실상이 변화됨에 따라 문학론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향이 제시되었다. 허균, 김만중, 박지원 등에게서 그러한 양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은 문학은 시대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하고 현실의 생동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작품이 가치있는 작품이라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나. 시문학에 있어서의 성정론과 천기론

성리학에서는 성을 상위개념으로 놓고 인심보다 도심을 중시하여 인욕을 물리치고 도심에 따르기 위한 수양을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

황현의 시는 농촌생활을 노래한 것이 많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우국충절의식이 더욱 돋보인다. 그는 직접 의병활동에 가담하지 앟았지만, 나라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 위인이나 많은 의병장들의 영웅적 행적을 찬양하여 당시의 의병활동을 고무시키고 격려하는 것으로써 문장보국을 꾀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절명시』 사수를 남기고 자살하였다. 황현의 문집 『매천야록』은 한말 역사연구에 중요한 문헌이 되고 있다.

※ 18세기에 성행한 영사악부의 특성을 논하고 그 성립배경과 문학사적 의의에 대하여 논하라

가. 영사악부의 특성

18세기는 악부가 절정을 이루던 시대였다. 이 시기의 악부작품들을 구분해보면, 중국의 작품을 본받은 의고악부, 서민의 노래를 짧은 노래로 옮겨놓은 악부, 풍속을 다룬 기속악부, 그리고 역사를 다룬 악부가 있는데 이것을 영사악부라고 한다. 이익의 해동악부, 오광훈의 해동악부, 심광세의 해동악부, 안정복의 순암악부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 영사악부의 성립배경

당시에 풍미했던 실학사상은 중국중심에서 탈피하여 우리의 것을 찾고자 하였으며, 문학에 있어서도 중국것을 모방하는 것을 그만두고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자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정통성을 찾게되었고 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되었던 것이다.

다. 문학사적 의의

문학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를 재조명해 봄으로써 우리민족의 주체의식을 높혔다.

추사 김정희의 성령론

성령이란 순수한 마음의 바탕을 말하는 것이다. 시를 쓰는데 있어서 시의 격식을 중시하기보다 작가의 순수한 영감이 반영되어 독자로 하여금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중시하는 것이 성령론이다. 즉 시에있어서 성령의 표현이 중시되는 것이다.

성령론은 19세기에 대두된 개념인데, 이전에 천기론이 유행하고 있었다. 천기론에서는 시에 성과 정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그런데 이 성정이란 인간이 가지고있는 정감의 세계이다.

이 천기론이 19세기에 들어와 성령론으로 변한 것이다

다산의 ‘조선시 선언’과 연암의 ‘조선풍’에 대하여 설명

가. 시대적 배경∙발생원인

실학시대의 자주적 정신은,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시를 쓰는데도 중국의 역사, 지명 등을 빌려쓰는 것을 반대하고 우리의 역사, 민족, 풍속 등을 노래하려 하였다

나. 다산의 조선시 선언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의 거두인 다산은 문학을 통하여 농촌의 피폐, 관리들의 횡포를 주제로하여 시대의 모순을 발견하고, 시대현실을 비판하며 애국우민의 대책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시에 있어서 조선시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시속에 우리의 민족적인 것을 담기에 노력하였고, 따라서 맥령(보리고개), 고조풍(높새바람) 드으이 토속어를 사용하였고 민요를 한시로 읊기도 하였다. ‘노인일쾌사’라는 시에서 ‘아시조선인 감작조선시’라고 하여 조선사람이 굳이 중국의 시작법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 나름의 시를 쓰자는 주체의식을 피력하였다. 다산은 한문학의 민족문학파라 할 수 있다.

다. 박지원의 조선풍

연암은 당대의 문학을 중시하였다. 당대의 문학이란 당시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생명력이 넘치는 문학을 말한다. 지금의 시경은 시경시가 나오던 당시의 현실을 솔직하게 반영한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생명력이 넘쳐나고 지금까지 경전으로 추앙되는 것이다. 따라서 연암은 고문을 본답되 그 문구를 그대로 본받는 것이 아니라 그 고문의 정신을 본받고자 하였다. 이처럼 고문의 정신을 본받아 시대의 현실을 충실하게 표현하다보니 자연히 조선풍의 시가 지어졌던 것이다. 연암은 ‘말을 문자로 옮기고 민요를 운율에 맞추기만하면 문장이 이루어지고 진기가 발견된다(자기방언 운기민요 자연성장 진기발현)’고하여 정통 시문관에서 일탈을 강조하였다.

한문단편에 대하여

가. 이야기꾼의 등장(→ 한문 단편 발생배경)

조선후기에 양반집의 사랑이나 골목길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직업적인 이야기꾼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여겨 그것을 글로 옮기는 이들이 있었고 19세기에는 『청구야담』, 『동야취집』 등 광범위하게 수집되었다

나. 한문으로 정착된 경로

몰락한 양반계층의 사람들은 권력층에 대한 저항적, 비판적 태도를 견지함에 있어서 그 정당성을 민중에서 찾음. 따라서 민중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특별하였으며 민중의 이약는 그들에의해 정착되게 된다

다. 한문으로 정착된 까닭

이야기꾼들의 한문 표현능력이 없었으며 자신이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작가의식도 없었다.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양반층에의해 기록되게 된다. 또한 국문으로 표기되어 널리 읽혀질만한 상업성도 부족하였다

라. 특징

⑴ 우리의 언어정감에 밀착(속담, 생활어휘 구사)

⑵ 구체적 사실적으로 다양하게 인간의 삶의 현실을 반영하였다

⑶ 민중속에서 창조적, 적극적, 저항적인 새로운 인간 형상 창출

마. 의의

근대사회를 향한 움직임속에서 민중의 기질을 담고 민중에 의해 창출된 것으로 종전의 소설에서 발돋움한 근대소설로 접근해 가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필기문학에 대하여(조선전기)

가. 개념

사대부의 생활을 토대로하여 형성되어 사대부 문화를 기록하고 사대부의 정서와 사상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기록되었다. 내용적 특성으로 소속집단의 생활모습 묘사와 이를 통한 자아를 확인하는 태도, 역사에 대한 관심,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특징이 있다.

나. 성립배경

조선초에 들어와 견문잡기류가 매우 성황을 이루었다. 이러한 현상은 당대의 현실문제와 그에 얽힌 사대부들의 생활 및 중국 문학의 영향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성립되었다.

다. 저술 동기

⑴ 사대부생활의 안정을 토대로 형성된 생활의 여유를 바탕으로 동료에 대한 관심 확대

⑵ 중국에대한 자주의식을 토대로 민족문화에 대한 긍지

⑶ 현실적 세계관 및 현실주의적 사고

라. 소재 : 평소에 들은 것과 친구들과 담소한 것으로 익살스럽거나 비리한 말도 포함됨

마. 필기의 종류

⑴ 일화 : 사건을 소개하여 한 인물의 품이나 재능을 나타냄. 한 인물의 성품이나 재능을 평면적으로 소개한 것, 구체적 사건을 통해 성격, 재능, 재치를 드러낸 것, 일화를 통해 작자의 견해를 피력하려는 것

⑵ 시화 : 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

⑶ 야사 :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되어 벌어진 것을 기록한 것. 당대의 역사적 뒷이야기나 정치제도

⑷ 변증문

※ 소설문학의 확립과 발달

소설문학의 확립

高麗時代 : 萌芽期(假傳體文學)

朝鮮時代 : 세조이후 → 소설의 형식적∙내용적으로 완전한 확립

소설발달 원인 및 촉진역할 : 문사들의 소설문학에 대한 관심, 중국소설에 의한 영향으로 모방작 및 유사작품 등장, 대중의 기호에 의하여

소설문학의 형식과 작풍

漢文小說의 形式 → 傳奇體(중국의 文言文小說과 동일)

단편적이며 내용은 대개 단조로움

漢文小說의 作風 → 귀족 계급적, 서민 계급적

貴族階級的 : 중국 소설 모방적, 권선징악적, 향락적

庶民階級的 : 독창적, 풍자적, 사회적, 비판적

숙종 이전의 작풍에 이러한 경향이 농후하다

숙종이후에 발흥한 서민의식에 영향을 받아 대중과 호흡을 같이하여 예교적입장을 타파코자 하였다.

또한 대부분 소재가 중국의 인명∙지명 등을 택하였다 → 일종의 사대적 관념과 유가들의 소설작가에 대한 핍박을 피하려는 의도

작품과 작가

三期

고려시대 연장기(국초 ∼ 단종 시) : 고려시대의 작품과 유사

전기소설 확립기(세조 시 ∼ 명종 시) : 김시습 『금오신화』가 충실한 형식과 내용의 소설문학으로 지어짐

발달기(선조 시 ∼ 국말) : 문인들의 소설문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대중들의 소설 기호는 곧 국문소설을 낳게 하는 데에 이름

類別 分類

神怪類 : 금오신화, 원생몽유록, 수향기, 채생전, 최고운전, 호질 등

艶情類 : 주생전, 옥루몽, 옥연몽, 옥린몽, 홍백화전, 운향전 등

義俠類 : 검승전, 삼교지귀, 남홍량전, 임진록, 오대검협전

別傳類 : 저생전, 용부전, 유연전, 만덕전, 황고집전, 마조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양반전, 광문자전, 허생전 등

歷史類 : 수성지, 화사, 남흥기사, 삼한십유, 한당유사

道德類 : 천군연의, 장선감의록, 육미당기, 천군본기, 장화홍련전, 열녀함양박씨전 등

한문소설의 내용에 따른 분류(대표적 작품을 통해)

▷金鰲新話 : 김시습이 금오산에 있는 동안 저술, 明의 瞿佑의 『前燈神話』의 영향받음 → 神怪類

1. 萬福寺樗蒲記 : 빈곤과 고독 또는 미천한 처지의 사람들이 사회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저주하고, 또 그 고민을 神佛에게 호소하며, 비타당적인 사회를 도피하려 한 사상의 반영작

2. 李生窺墻傳 : 禮敎的 구속하에서 자유스러운 인간이 되고자함과 참된 인간성을 지니고자함을 부르짖은 작품

3. 醉遊浮碧亭記 : 비리적, 비의적인 현상을 지닌 현실사회를 한탄하며 이상향을 그리는 심정을 나타내며 은연중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하는 작품

4. 南炎浮洲志 : 작자의 사상과 정치관을 말한 것으로 유가사상에 의한 공명정대한 의로운 정치를 행할 것을 주장하는 작품

5. 龍宮赴宴錄 : 名利를 구하지않고 불우한 일생을 산 작자 자신의 형편을 모델로 한 작품

◎ 周生傳 : 艶情類

전기소설의 체재를 완전히 갖춘 우리 한문소설의 최초의 걸작

염정 소설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唐代의 元稹의 『會眞記』와 匹敵할만함 → 周生, 俳桃, 仙花 간의 삼각관계 묘사

비합리적인 사회에서 천한 신분을 벗어나고자 하는 여인의 생애 또한 어두운 규방에서 부자연스럽게 지내는 부녀의 입장을 밝혔다

뛰어난 문재를 지닌 작가(權鞸) 자신을 주생에게 의탁하여 지음

내용상∙형식상의 특징

형식상 : 작품의 간간에 ‘詞’가 들어 있음 → 작가가 ‘사’에 대한 조예가 깊음

내용상 : 비극적 종말 → 작자의 문학관을 알 수 있음

◎ 壬辰錄 : 義俠類

宣祖時의 임진왜란의 상황을 가지고 작품화한 것

기술수법은 중국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를 따르기는 하나 내용은 내 나라를 구하자는 의기를 발로했음을 보인다.

◎ 許生傳 : 別傳類

작품안에 설정한 모델에 의탁해서 현실사회를 진실하게 반영함

효종 ∼ 숙종 간의 許鎬를 모델로 삼았다고 보기도 함

당시 사회의 문제를 작품을 통해 암암리에 제공

독서계층의 각성을 통한 현실사회의 인식필요

매점매석의 가능은 나라의 생산력의 미약을 보여줌

사람마다 자기의 생업의 부족함

국가 경제를 원활히 하며 외국과의 무역을 통한 부강책의 필요

현실 실정으로 인한 인재의 의지 좌절됨

◎ 花史 : 歷史類

의인소설의 대표작품이며 전한문소설중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

고사서(古史書)의 본기 기술 방법의 편년식을 취함

어지러운 인간사회를 폭로하고 광명의 세상을 희구하는 사상을 표현하려는 진실한 문학정신에 기초를 둔 작품

林悌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봄, 여름, 가을의 꽃 중 매화, 모란, 부용을 三王으로 비유하여 이야기 전개를 하며 권선징악∙정치의 大道 등을 말함

◎ 彰善感義錄 : 道德類

14回로 된 章回小說이며 우리의 전 고소설 중 긴 작품중의 하나(많은 등장인물, 상당한 기간, 다기적인 사건의 전개, 많은 장소의 이동, 복잡한 내용)

忠孝心 昻揚을 주제로 한 도덕소설

인과관계가 지극히 엄밀하며, 도교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尊上卑下의 계급적 관념이 철저히 발로되어 있음 → 조선시대 양반계급의 인간성과 생활면을 대변한 문학의 전통 고수

儒佛仙의 세 사상을 배경으로 내용 전개

출처 : 說文解字(재미나는 한문)
글쓴이 : 樂而忘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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