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漢文聲讀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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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文聲讀考
許 鎬 九
Ⅰ. 漢文聲讀의 由來와 課程
1. 聲讀의 由來
聲讀이란 出聲讀書를 줄여서 이르는 말이다. 곧 글을 읽을 때 默讀을 하지 않고 소리를 내어 緩急을 조절하여 읽으면서 글의 뜻을 마음 속으로 默會하며 읽는 방법을 말한다.
漢文이 우리 나라에 流入된 시기를 문헌에서 찾아내어 정확히 考證할 수는 없다. 그러나 三國史記의 强首傳이나 발굴된 古碑의 碑文 등으로 볼 때 三國時代 이전에 벌써 傳來되었을 것이라는 推論은 가능하다.
漢字文化圈, 곧 중국.우리 나라.일본 등의 독서 방법은 모두 제 나라 언어의 特性에 따라 다르다. 먼저 中國은 자기 나라의 문자이기 때문에 현재 쓰는 白話의 音만으로 句讀가 떨어지는 곳에서 끊어 읽을 뿐, 따로 새기는 과정이 없다. 日本은 주로 訓讀을 하는데, 다만 訓讀의 便宜를 위하여 かえりてん(가에리땡:返點)을 사용한다. 이는 音은 읽지 않고 곧바로 뜻을 새기면서 읽는 것이다. (더러는 音을 읽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래로부터 특이한 聲讀法을 창안하여 文理를 깨우치는 捷徑으로 행하여 왔다. 이러한 聲讀이 언제부터 행하여졌는지는 역시 文獻에 전하는 것이 없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新羅 때 薛聰이 吏讀를 만들어 漢字의 뜻과 音을 빌어서 우리 말을 표기하는 데 이용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이미 한문에 우리말의 吐를 달아서 읽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시대의 佛經에는 吏讀로 口訣[吐]을 단 것이 현재까지 傳하고 있는데, 구두가 끊어지는 곳에 口訣로 토를 단 것으로 보아 이것은 聲讀을 위하여 창안한 방법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傳統은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書堂에서의 漢文學習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 聲讀으로 學習하는 課程
傳統的인 한문 학습의 과정을 보면, 대개 세 과정으로 要約해 볼 수 있다. 첫째, 말을 완전히 배우고 난 童子時節, 家塾이나 里塾에서 父祖나 訓長으로부터 한문 학습의 가장 基本이 되는 千字文·抽(推)句·童蒙先習·明心寶鑑 등을 배우는 蒙學課程이다. 둘째, 글자의 音訓과 비교적 平易한 文章의 뜻을 대강 터득하여 서툴지만 스스로 句讀을 떼고 吐를 붙여서 읽을 정도가 되면 이를 겉文理가 났다고 하며, 小學과 四書 등을 배워 읽는다. 셋째, 한층 文理가 向進하여 通하게 되면 三經과 外書를 공부하면서 높은 스승을 찾아 質正하여 學問을 擴充시킨다. 이런 세 課程을 거쳐 文理를 통하고 學問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를 다시 細論하면 다음과 같다.
① 蒙學 때에는 다음과 같은 세 과정을 거쳐서 學習한다. 첫째, 그날 배울 문장 안에 있는 모르는 글자를 배워 익히고, 둘째, 音을 붙여 읽으면서 吐를 달고, 셋째, 글의 뜻을 새겨서 의미를 아는 단계를 거치는데,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하루의 배우는 일이 끝난다. 이것을 日課라 하며, 이렇게 일과로 배운 글을 마음 속으로 뜻을 생각하면서 聲讀으로 成誦에 이르도록 수백번씩 熟讀하여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② 蒙學의 과정을 거쳐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 쉬운 글을 대충 읽어서 이해할 단계에 이르게 되면 (겉文理가 남), 스스로 日課할 분량을 정하여 預習을 한 뒤에 스승에게 나아가 자신이 붙인 吐를 달아 읽어 가면서 難解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만을 선생에게 질문한다. 이 때 선생은 잘못 단 吐를 맞는 토로 고쳐주고 이해하지 못하는 곳을 해석하여 이해되도록 해준다.
③ 文理가 通하게 되면 혼자서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있는데, 이 수준에 이르면 聲讀을 하기도 하고 默讀을 하기도 하며, 묵독을 할 때에는 吐를 달지 않고 句讀만을 떼어서 읽어내린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聲讀을 하건 默讀을 하건 읽는 글의 뜻이 저절로 마음 속에 融會되면서 斷句되는 곳에 알맞는 吐가 자연스럽게 달아지게 되는데, 이를 文理가 났다 한다.
Ⅱ. 聲讀하는 方法
① 散文(經典)
漢文 聲讀에는 크게 散文(줄글)·韻文(귀글)과 諷詠으로 詩唱·文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讀書와 誦書의 基本은 散文의 聲讀으로 보아야 되며, 나머지는 모두 이것에서 派生 發展한 것으로 認識되어야 할 것이다.
聲讀을 할 때에는 먼저 몸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 衣冠을 단정히 하고 坐를 하거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上體를 똑바로 한 뒤, 정신을 가다듬어 눈으로 읽을 文行을 주시하면서 읽는다. 읽는 소리는 지나치게 높지도 작지도 않게 내어야 하며, 한 구절 안에서도 글자의 새기는 순서에 따라 글자마다 위로 붙일 것인지 아래로 붙일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하여 천천히 읽어야 한다.
例① : 學而 時習之面不亦 說乎牙
例② : 孟子 見 梁惠王爲時隱大 王曰 叟 不遠 千里而 來爲時尼 亦將 有以 利
吾國乎是可
聲讀을 할 때에는 高低長短을 四聲의 平仄에 맞추어 읽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유로 예전에는 한문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漢詩를 지을 줄 알아야 되고, 한시를 짓자면 반드시 平仄을 알아야 되기 때문에 平仄에 맞추어 聲讀을 하므로써 글자의 高低長短을 익히고, 여기에 맞추어 聲讀을 하면 따로 음의 平仄을 배우는 이중의 수고를 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音의 高低를 익히는 것이 하루 아침에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蒙學의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여름에는 夏課라 하여 주로 귀글(詩)을 읽으며 作詩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 때에 聲韻과 平仄을 배워서 익히게 된다. 禮記 王制에 "春秋 敎以禮樂 冬夏 敎以詩書(봄·가을에는 예와 악을 가르치고, 겨울·여름에는 시와 서를 가르친다.)"라 하였기에, 겨울에는 주로 經典을 공부하고 여름철에는 詩를 諷誦하며 過夏하는 일을 전통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② 귀글(句文 : 詩)
귀글이란 散文에 相對하여 定型的인 句로 이루어진 韻文을 이르는 말이다. 글의 體裁가 散文과 다르다 보니 自然히 聲讀하는 方法에도 差異가 있으며, 읽는 詩中에 感情이나 景槪 등을 뛰어나게 묘사한 구절에 이르면 저절로 興趣가 일어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느끼는 感興에 따라 抑揚과 가락이 생겨나게 된다.
귀글을 읽는 방법에도 귀글의 종류에 따라 絶句·律詩의 聲讀과 歌唱에 해당하는 律唱(詩唱)·古風唱 등이 있다. 絶句나 律詩의 聲讀은 五言과 七言에 따라 글자를 떼어서 쉬는 부분이 다르다. 싯귀의 뜻에 따라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나, 주로 5언시는 둘째 글자에서 떼어 쉬고 7언시는 넷째 글자에서 떼어 읽는다. 五言絶句인 王維의 山中詩를 보자.
荊溪에 白石出하니 형계의 물 말라 흰돌이 드러났는데
天寒에 紅葉稀라 쌀쌀한 날씨에 단풍잎도 얼마 남지 않았네
山路 元無雨인대 산길엔 원래 비온 일이 없건만
空翠 濕人衣라 푸른 산기운이 공연스레 옷을 적시네
이와 같이 五言詩에서는 각 구절 둘째 글자에 토가 달릴 경우에는 토를 달면서 쉬어 읽고, 토가 달리지 않는 경우에는 떼어서만 읽는다.
다음은 李白의 早發白帝城이라는 七言絶句를 보자.
朝辭 白帝 彩雲間하니 아침에 채운 사이로 백제성을 떠나니
千里 江陵을 一日還이라 강릉땅 천리길을 하루에 돌아오리
兩岸 猿聲은 啼不住하고 두 언덕의 원숭이는 울어 예고
輕舟는 已去 萬重山이라 빠른 배 벌써 겹겹산을 지났어라
七言詩에서는 이렇게 각 구절의 넷째 글자에서 떼어 읽는 것이 정형이나, 간혹 둘째 글자에서 토를 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때에도 넷째 글자에서 조금 쉬어 읽는다. 그러나 杜甫의 曲江詩 둘째 聯의 "且看 欲盡花 經眼하고, 莫厭 傷多酒 入唇하라"와 같은 구절은 앞의 두 글자, 중간의 세 글자, 끝의 두 글자를 떼어서 읽는 경우도 있다.
詩唱(律唱)과 古風唱은 현재 거의 脈이 끊기어 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모든 詩唱(古風唱 포함)은 七言律詩를 부르는 律唱이 基本이 되며, 이를 擴大 發展시킨 古風唱은 높은 音으로 속소리가 실처럼 가늘고 고우면서 시원스럽게 불려지나 청이 높고 호흡이 길어 부르기에 매우 힘이 든다. 현재 石北 申光洙가 지은 關山戎馬(原題;登岳陽樓嘆關山戎馬)는 무형문화재 29호로 지정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古風唱은 주로 妓生들이 불러서 전하여 왔으며, 閑良들도 흥취가 일어났을 때 불렀는데, 詩唱에 비하여 감정의 표출이 심하여 조금은 가벼운 느낌을 준다. 반면에 詩唱은 주로 士大夫나 선비 사이에서 불렀는데, 무거우며 점잖은 느낌을 자아낸다. (聲讀의 實際 Ⅳ.7참고)
Ⅲ. 聲讀을 하는 이유
우리의 先人들은 經典을 배워 熟讀 成誦을 하였기에 읽은 글을 一生 동안 銘心 記憶하므로써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討究 思索하며 著述에 活用하여 왔다. 그러자니 쉽게 외울 수 있고 오랫동안 胸中에 담아 두는 방법을 講究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要求에 의하여 開發된 方法이 聲讀이 아닌가 한다. 더욱이 聖賢의 經典을 神明처럼 받들었던 朝鮮時代 道學者(性理學者)들의 讀書觀을 살펴서 讀書의 方法으로 聲讀을 重要視한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조선의 儒學史上 最高의 學者로 推仰받는 退溪 李滉은 宋代의 新儒學(理學)을 集大成한 朱子(朱熹)를 지극히 尊崇하여 그의 性理學 체계를 깊이 연구하였다. 退溪는 朱子의 敎訓을 通해서 學問的 實踐的 標準을 삼아 讀書를 통하여 聖賢이 말한 道理를 밝혀내려고 애썼다. 때문에 退溪는 朱子의 讀書論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의 讀書觀을 발전시키고 있다. 퇴계는,
" '책을 반드시 외워야 된다'는 張子(宋의 理學者 張載를 말함. 橫渠先生이라 한다)의 格言은, 天下의 모든 책을 다 외우려는 것이 아니다. 나의 학문에 절실한 聖賢의 글을 외우라는 것이다.
[書須成誦 張子之格言 非謂天下諸書 盡欲其成誦也 聖賢之書 切於吾學者 誦之]"
라 하여 나의 학문에 필요한 글은 반드시 외워야 된다고 하였다. 학문에 절실한 글은 반드시 熟讀하여 외우라는 것으로, 이는 글을 외워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沈潛하여 사색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퇴계는 또 독서하는 방법으로,
"단정히 앉아서 마음을 수습한 다음 소리를 내어 읽고 외우되, 읽는 횟수를 많이 쌓으면 난숙해진 나머지 의리가 저절로 남김없이 해석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글을 익히는 일이다.
[端坐收心 出聲讀誦 多積遍數 爛熟之餘 義理自至於融釋 是爲習之之事]"
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는 이어서 "때때로 聲讀을 그치고 정신을 집중하여 뜻을 깊이 玩索하여야 되니, 이것은 사색하는 일이다" 하면서 익히는 일과 사색하는 일은 모두 독서를 난숙하게 하는데 달려 있다 하였다. 退溪는 글을 읽을 적에는 반드시 聲讀해야 되고 여러번 많이 읽어서 마음 속에 젖도록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하여 읽은 글이 내 마음에 刻印되어 잊어버리지 않음으로써 나의 것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어떤 弟子의 독서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退溪는,
"다만 난숙하게 읽어야 된다. 독서하는 사람이 글의 뜻을 알았더라도 만일 난숙해지지 못하면, 읽어나가면서 곧 잊게 되어 마음에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問讀書之法 先生曰 止是熟 凡讀書者 雖曉文義 若未熟則旋讀旋忘 未能存之於心]"
이와 같이 독서의 目的을 道理의 融會에 둔 退溪는 熟讀과 精讀을 권장하고 있는데, 熟讀과 精讀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聲讀을 해야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熟讀과 精讀을 독서의 가장 좋은 方法으로 제시한 退溪는 많은 양의 글을 貪讀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 글을 읽을 적에는 마음이 피곤하여 나태해지게 하지는 말아야 되니, 많은 양의 글을 읽는 일은 꼭 피해야 된다. [看書 勿至勞心 切忌多看]"
古人들은 많은 양의 글을 읽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였는데, 한번에 많은 글을 읽으면 熟讀이 되지 않아서 마음에 간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退溪는 "글을 읽을 적에는 똑바로 앉아서 엄숙한 소리로 읽으면서, 글자에서는 그 訓을 찾고 글귀에서는 그 의미를 찾아서 거친 마음으로 대담하게 읽지 않았다. 한 글자 한 획의 미세한 곳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한다.
朝鮮時代의 理學에 있어 退溪와 雙璧을 이루면서 畿湖學派의 鼻祖가 된 栗谷 李珥의 독서관도 朱子.退溪의 독서에 대한 인식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栗谷은 그의 명저 擊蒙要訣의 讀書章에서
"道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치를 窮究하는 일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入道莫先於窮理 窮理莫先乎讀書]"
라 하여 독서를 통하여 聖賢의 말씀을 이해하고 善惡을 구별하여 당연히 행하여야 할 道理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栗谷은 독서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하고는 독서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독서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히 두 손을 마주 잡고 꿇어 앉아서 공경히 책을 대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한결같은 뜻으로 마음을 전일하게 가져 생각을 정밀히 하고 글 속에 잠겨서 의미를 깊이 깨쳐야 된다.
[凡讀書者 必端拱危坐 敬對方冊 專心致志 精思涵泳 深解義趣]"
이것은 몸의 자세를 바르고 엄숙히 가져야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전일하여 글이 마음 속으로 쏙쏙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며, 聲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이러한 자세에서 벌써 聲讀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漢文을 익힐 때에 默讀을 지양하고 聲讀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衣冠을 바르게 갖춘 다음 몸을 단정히 하고 앉아서 엄숙한 소리로 글을 읽으면 정신이 읽는 글 속에 집중되어 산만해지지 않는다.
둘째, 읽는 글의 종류에 따라 흥취와 감정에 어울리는 가락을 넣어 노래를 하듯 聲讀하므로서 눈과 마음에 글이 刻印되어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 (읽은 구절을 쉽게 기억하는 방편으로, 옛날 明經業을 하는 사람이 읽는 책에 講譜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필요한 글자와 구절마다 5색의 채색으로 ○△ 따위의 記號를 표시하여 記誦하기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다.)
셋째, 급박하지 않게 천천히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글의 意味를 음미하며 읽기 때문에 앞에서 깨닫지 못했던 眞意를 터득하게 된다.
넷째, 붙이고 떼는 곳과 정확한 吐를 붙여 聲讀하므로써 한 글자 한 구절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 成誦하기에 매우 쉽다.
이상과 같이 옛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漢文을 익히고 文理를 터득하는 방법으로 聲讀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간주되어 왔다. 예전에 漢文을 學習하는 사람들은 初學者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學問이 純熟한 老儒일지라도 글을 莊誦하므로서 舊學을 잊지 않는 동시에 前日에 未盡했던 義理를 新得하는 方便으로 聲讀을 해왔다. 지금도 시골의 書堂에서는 이 傳統이 그대로 傳承되어 오고 있다. 또한 漢文을 工夫하려는 後學들도 이 聲讀法을 利用하여 文理를 깨치고 記誦하는 方法으로 이용하는 것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빠른 길이 되리라고 믿는다.
Ⅳ. 聲讀의 實際
1. 論 語
○ 子曰 學而 時習之면 不亦 說乎아
有朋이 自 遠方來면 不亦 樂乎아
人 不知而 不慍이면 不亦 君子乎아
○ 顔淵이 喟然 歎曰 仰之 彌高하며 鑽之 彌堅하며 瞻之 在前이러니 忽焉 在後로다
夫子 循循然 善誘人하사 博我以文하시고 約我以禮하시니라
欲罷不能하여 旣竭吾才호니 如有所立이 卓爾라 雖欲從之나 末由也已로다
○ 子路 曾晳 冉有 公西華 待坐러니 子曰 以吾一日 長乎 爾나 毋 吾以也하라
居則曰 不吾知也라하나니 如或 知爾면 則何以哉오.
子路 率爾而 對曰 千乘之國이 攝乎 大國之間하여 加之 以師旅요 因之 以饑饉이어든 由也 爲之면 比及 三年하여 可使有勇이요 且知方也케하리이다 夫子 哂之하시다.
求아 爾는 何如오 對曰 方 六七十과 如 五六十에 求也 爲之면 比及 三年하여 可使足民이어니와 如其禮 樂엔 以俟君子하리이다
赤아 爾는 何如오 對曰 非曰 能之라 願學焉하노이다 宗廟之事와 如 會同에 端章甫로 願爲小相焉하노이다
點아 爾는 何如오 鼓瑟希러니 鏗爾 舍瑟而 作하여 對曰 異乎 三子者之 撰호이다
子曰 何傷乎리오. 亦 各言其志也니라 曰 莫春者에 春服이 旣成이어든 冠者 五六人과 童子 六七人으로 浴乎 沂하며 風乎 舞雩하여 詠而 歸호리이다
夫子 喟然 嘆曰 吾與點也호리라
2. 孟 子
○ 孟子曰 君子 有三樂 而王天下 不與存焉하니 父母俱存하며 兄弟無故 一樂也오 仰不愧於 天하며 俯不怍於 人이 二樂也오 得天下英才而 敎育之 三樂也니 君子 有三樂 而王天下 不與存焉이니라
○ 孟子曰 不仁哉라 梁惠王也여 仁者는 以其所愛로 及其 所不愛하고 不仁者는 以其 所不愛로 及其 所愛니라
公孫丑曰 何謂也이꼬 梁惠王이 以 土地之故로 糜爛 其民而戰之라가 大敗하고 將 復之호대 恐 不能勝 故로 驅其 所愛子弟하야 以殉之하니 是之謂 以其所不愛로 及其 所愛也니라
3. 五柳先生傳(陶潛)
先生은 不知 何許人이오 亦 不詳其 姓字라 宅邊에 有 五柳樹하여 因以爲號焉하니라 閑靖少言하고 不慕榮利하며 好讀書호되 不求甚解하고 每有意會면 便 欣然忘食이러라 性 嗜酒호되 家貧하여 不能常得하니 親舊 知其如此하고 或 置酒而 招之면 造飮輒盡하여 期在必醉하고 旣醉而 退하여 曾不 吝情去留하니라 環堵蕭然하여 不蔽風日하며 短褐穿結하고 簞瓢屢空호되 晏如也러라 常著文章自娛하여 頗示己志하고 忘懷得失하더니 以此 自終하니라
贊曰 黔婁 有言호되 不戚戚於 貧賤하며 不汲汲於 富貴라하니 極其言인댄 玆若人之 儔乎인저 酣觴賦詩하여 以樂其志하니 無懷氏之 民歟아 葛天氏之 民歟아
4. 嚴先生祠堂記(范仲淹)
先生은 漢光武之 故人也라 相尙以道러니 及 帝握赤符하고 乘六龍하여 得 聖人之時하여 臣妾億兆하니 天下 孰加焉고 惟 先生이 以節高之하니라 旣而 動星象하고 歸江湖하여 得聖人之 淸하여 泥塗軒冕하니 天下 孰加焉고 惟 光武 以禮下之하니라
在蠱之 上九에 衆方有爲어늘 而獨 不事王侯하고 高尙 其事라하니 先生이 以之하고 在屯之 初九에 陽德方亨이어늘 而能 以貴下賤하여 大得民也라하니 光武以之라 蓋 先生之 心은 出乎 日月之 上하고 光武之 量은 包乎 天地之 外하니 微 先生이면 不能成 光武之 大요 微 光武면 豈能遂 先生之 高哉리오 而使 貪夫廉하고 懦夫立하니 是 大有功於 名敎也라
仲淹이 來守是邦하여 始 構堂而 奠焉하고 乃 復其爲後者 四家하여 以奉祠事하니라 又 從而歌曰 雲山이 蒼蒼하고 江水 泱泱이라 先生之 風은 山高水長이로다
5. 杜律(杜甫)
① 恨別
洛城을 一別 四千里하니
胡騎 長驅 五六年이라
草木은 變衰 行劍外요
干戈 阻絶 老江邊이라
思家 步月 淸宵立이요
憶弟 看雲 白日眠이라
聞道 河陽이 近乘勝하니
司徒는 急爲 破幽燕하라
② 曲江
一片 花飛도 減却春커든
風飄 萬點이 正愁人이라
且看 欲盡花 經眼하고
莫厭 傷多酒 入唇하라
江上 小堂엔 巢翡翠요
苑邊 高塚엔 臥麒麟이라
細推 物理 須行樂이라
何用 浮名 絆此身가
6. 朱詩(朱熹)
觀書有感
①
半畝 方塘에 一鑑開하니
天光 雲影이 共徘徊라
問渠 那得 淸如許오
爲有 源頭 活水來라
②
昨日 江邊에 春水生하니
艨衝 巨艦이 一毛輕이라
向來에 推移 枉費力터니
此日 中流에 自在行이라
7. 古 風
① 代李太白魂 誦傳竹枝詞(李縡)
西南 峽口 巫山碧 大江 翻瀾 神曳人을
騎鯨 仙子 浪吟過 魍魎 秋色 迷長天을
乾坤 不老 月長在 寂寞 江山 今百年을
騷壇 鼓角 有新聲 水驛 淸宵 誰繫船고
風流 太史 遠謫去 竹枝 悲歌 成一篇을
蠻娘 吟弄 滿寒空 旅館 蕭條 人不眠을
詩人 氣習 尙如舊 不辭 慇懃 情眷連을
寒燈 欲滅 夜色闌 落月 多意 空樑懸을
莊園 蝴蝶 太怳惚 桂旂 來時 風肅然을
君知 竹溪 逸士否 前代 淸名 詩酒仙을
文章 窮厄 古今同 玉訣 行色 眞堪憐을
殊方 客愁 我先知 憶曾 春林 聞杜鵑을
淸詞 三疊 倚窓曉 楚竹 蕭蕭 聲暗牽을
江湖 舟楫 已失墜 滄海 明珠 嗟久捐을
② 論鄭嘉山守節事 歎金益淳罪通于天(金炳淵)
曰爾 世臣 金益淳 鄭公 不過 鄕大夫를
將軍 桃李 隴西落 烈士 功名 圖末高를
詩人 到此 亦慷慨 撫劍 悲歌 秋水涘를
宣川 自古 大將邑 比諸 嘉山 先守義를
淸朝 共作 一王臣 死地 寧爲 二心子랴
升平 日月 歲辛未 風雨 西關 何變有오
尊周 孰非 魯仲連 輔漢 人多 諸葛亮을
我(同)朝 舊臣 鄭忠臣 抵掌 風塵 立節死를
嘉陵 老吏 揭(揚)銘旌 生色 秋天 白日下를
魂歸 南畝 伴岳飛 骨埋 西山 傍伯夷를
西來 消息 慨然多 問是 誰家 食祿臣고
家聲 壯洞 甲族金 名字 長安 行列淳을
家門 如許 聖恩重 百萬 兵前 義不下를
淸川 江水 洗兵馬(波) 鐵瓮 山城(樹) 掛弓矢(枝)를
吾王 庭下 進退膝 肯向 西城 凶賊徒(跪)랴
魂飛 莫向 九泉去 地下 猶存 先大王을
忘君 是日 又忘親 一死 猶輕 萬死宜를
春秋 筆法 爾知否 此事 流轉 東國史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