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발이 얼어서 곡소리가 슬프다[足凍哀哭] 한 喪主가 아침에 상식을 지낼 때에 이웃에 있는 벗 여러 명이 와서 방에 앉아 있었다. 喪主의 哭하는 소리가 전에 비하여 더욱 슬퍼함을 듣고, 상식이 마치자 한 손님이 喪主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날로 어떤 감회가 있어서 상식을 지낼 때 곡하는 소리가 전에 비해 더욱 애통한가?” 상주가 두 손으로 두 발을 움켜 쥐면서 대답했다. “별다른 감회로운 일이 있는 게 아니고 오늘은 날씨가 매우 酷甚하게 추워서 두 발이 얼어 붙어서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다네. 그래서 哭소리가 저절로 크게 나왔다네.” 앉은 자리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足凍哀哭 一喪人이 過朝上食時에 隣友數人이 來坐房中하야 聞喪人之哭聲이 比前益哀하고 上食訖에 一客이 問喪人曰 今日은 何日로 有何感懷하야 上食時에 哭聲이 比前에 益哀痛也오 喪人이 兩手로 ?兩足而答曰 非有別般感懷事라 今日은日寒이 極酷하야 兩足이 凍寒에 不堪自苦라 因此哭聲이 自然大發이라 하니 一座가 失笑矣러라
■작품 해설 祭禮는 愛敬과 孝로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한다. 그러나 슬퍼서 곡소리가 크게 난 것이 아니고 酷寒에 견딜 수 없어서 자연히 곡소리가 커졌다고 해서 下敬하다고 볼 수는 없다. 추운 것은 춥고, 배고픈 것은 배고프다고 내면의 진실을 숨김없이 드러냄은 바로 인간성 긍정의 바탕을 다지는 것이 된다.
15. 어리석은 원이 비웃음을 받다 [愚?貽笑] 옛날에 한 고을원이 어리석고 용렬하기가 비할 데 없었다. 赴任한 뒤로 모든 일을 동쪽인가 서쪽인가 분간 못하고 일이 크고 작고 간에 모두 결정하지 못했다. 동각에 거처하는 아내가 물었다. “여러 해 경영하여 다행히 한 고을을 맡았는데 온전하게 일을 다스리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 능히 백성을 다스리겠습니까? 이제부터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와 더불어 상의한 뒤에 처결하는 것이 매우 좋겠습니다.” 원이 말했다. “당신의 말과 같이 하겠소.” 하루는 刑吏衙前이 모 고을 모 마을에 農牛가 병들어 죽었는데 껍데기를 벗겨서 본전 세우는 길을 청한다고 아뢰었다. 고을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두라고 하고 안에 들어가서 실내를 향하여 말했다. “마침 백성의 호소장이 한 장 있는데 그 말 뜻이 여차여차하니 무엇이라 적어서 주면 좋겠소?” 실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극히 쉬운 일을 이와 같이 하니 정말로 매우 답답할 뿐입니다. 호소장에 겁데기를 벗겨서 본전을 세우겠다고 하니 가죽과 소심과 뿔은 규례대로 관청에 바칠 뜻으로 적어 주시오. 만약 뒷날에도 이와 같은 호소가 있으면 반드시 안에 들어오셔서 저에게 묻지 말고 이번 題辭한대로 하시면 어떠하겠습니까?” 원이 “좋소”라고 했다. 며칠 지난 뒤 刑吏衙前이 面任이 문서로 보고한 내용 중에 아무 마을에 두 놈이 서로 싸우다가 한 놈이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고 했다. 고을원이 이에 응했다. “가죽은 벗겨 본전을 세운 후에 가죽과 심과 뿔은 規例대로 官廳에 바치는 것으로 결정하라.”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抱腹絶倒했다.
愚?貽笑 古에 一?가 愚庸無比러니 赴任以後로 每事를 不分東西하고 事無巨細히 幷不能爲決이어늘 東閣室內가 問之曰 積年經營에 幸得一邑而 全不理事如是하니 安能臨民乎아 自今以後로는 若有難決之事면 與我相議然後에 處決이 甚好矣라 한대 ?曰 當如君言矣리라 一日은 刑吏가 告課以爲某面某里에 農牛가 病斃에 請去皮立本云云하야 ?가 無以應하고 姑令置之라가 入內에 向室內言曰 適有民訴一張而 辭意가 如此如此하니 何以題給則 好耶아 室內가 笑曰 至易之事를 如此하니 誠甚畓畓耳라 以依所訴之去皮立本하니 皮筋角은 依例納官之意로 題給하고 日後에 若有此等訴者면 不必入內問我요 依今番題辭하야 爲之가 如何오 한대 ?曰 諾다 過數日後에 刑吏가 告課以面任牒報內에 某村兩漢이 相鬪라가 一漢이 竟至致死云云矣라 하니 ?가 應曰 去皮立本後에 皮筋角은 依例納官으로 爲題라 하야 聞者絶倒러라
■작품 해설 어리석은 원[愚?] 이야기는 愚?와 같은 구조를 지닌다. 즉 바보가 미리 조종자의 힘을 얻어 일을 처리하는데, 첫 일은 무사히 처리했으나 뒷일에 바보스러움이 나타난다. 이 작품 속의 원은 싸우다가 한 놈이 죽었다는 訴狀에, 앞서 있었던 소[牛] 사건을 적용하여 판결한다. 즉 가죽은 벗기고 본전을 세운 후에 가죽과 심과 뿔은 規例대로 관청에 바치라고 한다. 『攪睡?史』에 실린 「邑?善亡」도 어리석은 원의 이야기이다.
16. 속(世俗)에서 꺼리는 것 때문에 아비를 죽게 하다[因忌父死]
옛날 어떤 노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은 성질이 매우 의심을 잘하고 겁을 내어 일마다 모두 俗忌(민간에서 꺼리는 일)에 구애되어 의심하지 않은 것이 없어 바로 행동하지 못했다. 하루는 그 아비가 뒷간에 가다가 담이 무너져 그 담에 깔려 위급했다. 작은아들이 급히 형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방금 무너진 담에 깔려 있으니 형이 급히 나와 함께 구하자.” 그 형이 머리를 들어서 보고 그 아우에게 말했다. “담이 이미 무너졌는데 경솔하게 먼저 흙을 걷어낼 수 없으니 내가 冊曆을 보고 土王이 用事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오겠다.” 형이 冊曆을 보러 간 사이에 아비의 목숨이 이미 끊어졌다. 俗忌에 구애되는 의혹이 아비가 장차 죽는 것을 보고도 생명을 구출하지 못하는데 이르렀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 어리석음을 비웃고 분통하게 여기지 않은 이가 없었다.
因忌父死 古에 一老가 有二子而 長子는 性甚疑劫하야 每事를 皆拘俗忌에 無不持疑而 未卽行之어늘 一日은 其父가 如厠이라가 墻이 崩頹하야 被壓危急이러니 小子가 急謂兄曰 父親이 方被壓頹墻하니 兄其急出하야 同我救之라 한대 其兄이 擧頭而視하고 謂其弟曰 墻旣頹矣라 不可輕先捲土니 吾當看曆書하야 詳察土王用事而來리라 하며 往見曆書之間에 父命이 已絶이라. 拘忌之惑이 至於見父之將死而 未及救命하니 聞者 莫不笑其愚而 憤痛之러라.
■작품 해설 俗忌가 人倫을 저버렸다. 미신에 眩惑되지 말라는 측면에서 보면 앞에서 살핀 「垈神告退」와 비슷하다.
17. 바지를 빌려 입은 것이 탄로가 나다 [借袴綻露] 옛날에 한 원이 집이 가난하기가 견줄 데가 없었다. 한 고을을 제수받아서 그 날로 조정에 하직할 참인데 입을만한 바지가 없었다. 아내는 일이 임박해서 만들 수도 없고 또한 빌릴 데도 없었다. “제가 혼인 때 입었던 가는 누비바지가 있으니 부득이 잠시동안 입기는 하는데 여인네의 바지 밑이 남자의 웃옷과는 합치지 못합니다. 만약 합친 것이 벌어지면 탄로가 나니 반드시 오로지 명심해서 두루막으로 깊이 무릎을 덮어서 앉으면 부끄럽고 우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원이 “그렇다.”하고 사랑에 나갔다. 아내는 우연히 다락창에 올라가서 바라보니 형리가 엎드려 문장을 고하고 물러나려는데 고을원은 안석에 기대어 한 다리를 펴고 누웠는데 ?衣(벼슬아치가 평소에 입는 웃옷)가 젖혀 바지 밑이 벌어져서 腎囊(신낭)이 완전히 드러났다. 실내가 이를 보고 크게 놀라서 급히 짤막한 편지를 만들어 아이종을 시켜 원에게 바쳤다. 고을원이 그 형리에게 글을 내주어 아뢰게 하였다. 형리가 머뭇머뭇하면서 감히 읽지 못하고 말했다. “이것은 마나님이 보낸 편지여서 황송해서 감히 읽지 못하겠나이다.” 고을원은 “무릇 文狀(관청에서 쓰는 서류)은 본래 형리가 告課(下官이 上官에게 아뢰는 것)하는 것이니라. 너 어찌 감히 가는 목소리로 읽는고?”라고 하며 읽으라고 독촉했다. 형리는 부득이 큰 소리로 읽었다. 마치 백성들의 고소장 아뢰기와 같았다. 그 글에 ‘집이 가난하여 옷을 만들지 못하여 임시로 여인의 바지를 입었는데 아까 부탁한 말은 어찌 명심하여 생각하지 않습니까? 옷을 헤쳐서 누워 있으니 아랫도리가 다 드러나 아랫것들이 보는데 어찌 놀랍고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곧 무릎을 거두어서 단정하게 앉으십시오.’라고 했다. 고을원이 고과하는 것을 듣고 눈섶을 찡그리고 바쁘게 소리쳤다. “웃습다, 웃습다. 나는 그래도 이런 바지가 있으나 自家는 작고 해진 옷도 없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좌우가 가만히 웃었다.
借袴綻露 古에 一?가 家貧無比러니 得除一邑하야 將當日辭朝而 無可着之袴어늘 室內가 以爲臨急에 無以製之요 又無以借之라 吾有婚時에 所着紬縷緋袴하니 不得不暫着而 女人之袴底가 不合男子之上衣라 若散則 必綻露리니 必須明心하야 以?衣로 深掩?膝而坐면 無恥笑리라 하야 ?가 諾之而 出舍廊하고 室內는 偶上樓窓望見則 刑吏가 伏退告課文狀에 ?則 倚案席而 以一脚으로 偃臥에 ?衣捲而袴底開하여 腎囊이 全然露出이라 室內가 見之大駭하야 急裁短札而 使童奴로 納于?러니 ?가 出書給刑吏하야 使之告課케 한대 刑吏가 逡心不敢讀曰 此是內書簡이니 惶悚不敢讀이니이다 ?曰 凡文狀은 本是刑吏之告課者라 汝何敢細讀고 促令告課하니 刑吏가 不得已 高聲讀之에 如民訴之告課則 其書에 曰 家貧에 衣未製하야 權着女人袴러니 俄者所托語는 何不明心思오 散衣偃臥에 下部가 盡露하야 下輩所視에 寧不駭慙이리오 卽爲斂膝坐云云이라 하였거늘 ?가 聞告課하고 蹙眉疾聲曰 可笑可笑라 吾則 尙有此袴나 自家則 短?衣도 亦無之하니 更何言也오 한 대 左右?笑러라
■작품 해설 조선조 후기 사회로 오면 신분은 양반이지만 생활상으로는 사회적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沒落兩班이 대량으로 나타난다. 이런 몰락양반은 생활이 곤궁해서 행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돈 많은 천민보다 못할 경우가 많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몰락양반이다. 곤궁한 중에도 고을원이 되어 부임하는데, 입을 옷이 없어서 부인의 옷을 입은 것이 탄로가 난다. 이는 부인의 주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때문이고 부인의 주의 편지를 刑吏가 읽게 하여 借袴(차고)는 白日下에 탄로난다. 형리가 告課하는 것을 듣고 바쁘게 “우습다, 우습다”,고 소리치면서, “나는 그래도 이런 바지가 있으나, 自家[원의 아내]는 작고해진 옷도 없으니 다시 무슨 소리를 하는가”.라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군색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원에게 안타까움과 동정어린 시선이 다가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