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才談과 곁말 慣用句 한동안 생각해 보아야 그 뜻을 옳게 알겠는 말을 흔히 才談이라 하는데, 막된 말로 곁말이라 하며, 글을 새기듯 內容을 새겨야 한다고 하여 “도장포를 낸지가 오래지 못합니다.” “어금니가 튼튼치 못해서요.” 하는 말로 받아넘기는 수가 많다. 아무개가 그 동네로 理事왔다고 하니까 “그럼 두꺼비놈은 오쟁이졌게요!”하는 말은 民間에서 “夫人을 가로채이게 됐다.”는 뜻으로 辭典에 까지 올라 있는 慣用句다. 그런 뜻으로 通用된다는 뜻이다. 日帝下 빛에 쪼들린 사람이 남모르게 北間島로 야밤에 도주를 하는 것을 흔히 “저녁 두 번 해 먹었다.”고 하면 알아듣던 것과 같은 類다.
◎ 中國人도 모르는 漢文서 筆者가 中年이 넘어 自由中國에 留學했을 때, 미리부터 와 있던 洪石蒼 和白(現 弘益大學校 美大學長)의 實技時間에 곁들여 들어갔는데, 그분께 그림 한 幅을 請해서 表具하여 내 房에 걸었었다. 아래쪽으론 蘭草가 피어 있고 바위 너머로 복사꽃이 피어 있는 그림으로 畵題로는 “蘭崖桃稼” 넉자를 쓴 것이다. 中國學生들이 놀러 왔다가 보곤 자기 나라 글이건만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재미있었다.
蘭(난초 난) 崖(언덕 애) 桃(복사 도) 稼(심을 가) 우리말로 읽으면 이렇게 멋있는 것을? 제까짓 놈들이 알 재간이 있나?
蚊(모기 문) 頤(턱 이) 癩(헌데 나) 異(다를 이)? 모기가 턱을 몰어대서 헌데가 난 것처럼 됐다고 말뜻은 通하나 멋은 없다.
◎ 읽는 소리와 內容이 다른 詩作 한 사람이 시골길 나섰다가 글 한 짝을 지었다.
요강대야방구리, 사과포두색강정 遙江大野訪舊里, 士過浦頭索江亭 먼 강 큰 돌로 옛 마을을 찾으니 선비가 갯가를 지나면서 江가 亭子를 찾는구나
漢文으로 쓰고 읽으면 그릇 이름과 과일 이름을 늘어놓은 것이 된다.
◎ 그런대로 詩 이런 것은 흔히 감삿갓이라는 別名으로 알려진 金炳淵의 글이 알려져 있어서, 모두 그랬다고들 잘하고 있다.
此竹彼竹化去竹, 風吹之竹浪打竹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대로 맡기리라.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세월대로
萬事不如五心竹 然然然世過然竹 만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만 못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나세.
이렇게만 살다보면 마음도 편하겠지.
◎ 읽는 소리와 내용이 전혀 다른 詩
破格詩
천장에 거미집 / 화로에 겻(접)불 내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이 늙으니 나비도 오지 않네그랴
국수 한 사발 / 지렁(간장) 반 종지(鍾子) 菊樹寒沙發 枝影半從池 국화 나무는 찬 서리에 꽃피는데 나뭇가지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정 빈 사과 / 대추 복숭아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월리(워리) 사냥개 / 통시(변소) 구린내 月利山影改 通市求利來 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 農이란 글 ‘農’字에는 辰(별 진)자가 들어있는데, 이것은 옛날 野生의 穀草에서 이삭을 베어 곡식을 털어서 먹던 시절. 물가에서 나는 큰 조개껍질을 딱 때려서 알맹이는 꺼내 먹고, 껍질이 깨어질 때 생기는 날로 이삭을 자르던 데서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글자 모양도 조개가 반쯤 입을 벌리어 속살이 들어나 보이는 것을 본뜬 것인데, 여기에 ?(벌레 충)을 더하면 “조개 신(蜃)”으로 읽게 된 것이다. 바닷가에 가면 아침 저녁 해가 뜨고 질 때, 水蒸氣의 屈折作用으로 바다 건너 경치가 맞은 편에 거꾸로 펼쳐져 보이는 적이 있는데, 이것을 蜃氣樓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身邊에서는 한여름 대낮에 自動車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달리면 恰似 길바닥에 질펀하게 붙어 괴어 있는 것처럼 보여서 運轉者들을 놀라게 하는 수가 많은데 이것도 原理에서는 蜃氣樓와 같은 현상이다. 그런데 이것을 글로 쓰자면
蜃氣는 朝開氣運(조개기운)요 (신기는 아침에 기운이 열리고) 蚊聲은 暮起疏籬(모기소리)라 (문성은 저물 때 성긴 울타리에 난다)
훌륭한 對句가 成立되고 蜃氣와 蚊聲의 설명도 된다. 이런 關心을 가져 모으면 달리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고장의 地名을 엮어서 말이 되는 것 淸酒 按酒는 大口魚요 맑은 술의 안주로는 大口가 알맞고(세가지가 다 지명이다. 淸州, 安州, 大邱)
喪主 長短은 哭聲이라 부모의 喪을 입은 喪制(흔히 喪主라고 함)에게 音樂의 박자(장단)를 맞추라면 우는 소리라야 된다.(尙州, 長湍, 谷城 세군데가 다 지명이다)
◎ 茂朱?長水?高城(또는 固城) 이것은 조금 說明을 要한다. 한 때 戰亂 중 “꿀꿀이 죽”이나 지금도 通하는 “部隊찌개”라는 말과도 관련되는 꺼림직한 말에 母酒라는 것이 있었다. 母酒는 술을 在來式으로 빚을 때 藥酒를 떠낸 찌꺼기나 막걸리를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는 滓糠(재강)이라고도 하여 먹을 것이 됐는데 여기에 물을 부어 다시 끓여낸 것을 말한다. 추운 겨울 날 새벽 골목 안에 화덕을 놓고 배추 줄기같은 것을 넣고 끓여서 팔면 막일을 하러 나온 勞動者들이 그것도 穀氣가 있다고 몇푼씩 내고 사서 먹고 禦寒을 했는데 그것을 母酒라고 하였다. 그것을 “모주~무주”라고들 불렀는데 일정한 位置가 없이 적당한 공터에서 끓여 팔았기 때문에 “무주(모주) 장수 고성”이다.
◎ 좀 才致있는 얘기로 돌아가 黑猫는 拒門顧요(흑묘는 검은 괴(고양이)요) 白鼠는 下椽走라(하얀 쥐는 툇마루에 내려와 달리는 구나)
風吹葉八分이요(바람이 부니 잎이 너푼너푼(합하면 팔푼) 鳥飛枝二月이다(새가 나니 가지가 한달한달(합하면 두달)
◎ 다음 飛躍하여 漢詩 짓는 쪽으로 넘어간다. 봄날 선비들이 산골짜기 개울가에 모여 花煎놀이를 하는데 웬 중놈이 배를 쑥 내밀고 그 가운데로 들어섰다. 當時만해도 중은 八賤이라고 하여 옳은 待接을 않던 때라, 선비 하나가 나무랬다. “여기는 風月로 멋있게 詩를 짓고 노는 자리인데 중놈이 어디로 감히, 더구나 배를 내밀고 들어서는고?” “글이 가득해 그렇습니다. 韻字만 부르십시오.” 그래 무슨 사 字인지도 말 않고 “사”자를 불렀더니 應口輒待로, “무지막지 중이사” 다그쳐 “가”자를 부르니까 “兩班 常놈 알리까” 다시 “가”자를 불렀더니 “목이 컬컬합니다. 술 한盞 주십시오 그려.” 그래 “다”자를 부르자, 큰 盞을 받아 한그릇 주욱 들이켜고는 “日暮西山 歸路遠하니” 하고 두손을 合쳐 合掌을 하면서 “少僧 바빠 갑니다.” 그랬다는 얘긴데, 이런 類의 얘기는 쏠쏠히 많다.
◎ 林白湖의 멋진 얘기 어느 花煎놀이 자리에 덥수룩한 過客이 들어서며 “좋은 자리에 술 한盞 얻어먹읍시다.” “여기는 글짓는 자리라 글을 짓지 못하면 술이 남아도 줄 수는 없소.” “짓지는 못해도 말도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야 되지” “적은 시냇가에 솥을 돌로 받쳐놓고” 받아쓰는 사람이 有識한 선비라 “鼎冠 撑石 小溪邊하니.” 쓰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하얀가루와 맑은 기름으로 진달래꽃(杜鵑花)을 지질 적에” 그대로 서슴없이 “白粉淸曲 煮杜鵑하니” 過客은 洽足한 듯이 싱그레 웃으면서 “두개 젓가락으로 집어올 제, 香臭가 입에 가득하고” “雙箸挾來 香滿口요” 一年동안 봄빛을 뱃속에 傳하였네. “一年春光 腹中傳이라” 받아 적던 이가 붓을 내려놓으면 깜짝 놀란다. “이렇게 適切한 글은 다시 없는 것이다.” 그래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신 누구요?” “나? 林悌라고 하며 號는 白湖외다.” “뭐야? 여보게들 白湖 先生이 오셨네, 모두들 모이세…” 이 얘기가 의례히 뒤따르게 마련이다.
◎ 송아지 몰고 갈망정 어떤 건달들이 개울가에 濯足놀이를 하다가, 지나가는 牧童을 불러 세우고 술을 勸할 듯 하다가 도루 내려놓고 글을 지어야 먹을 수 있다고 빈정거렸다. 그랬더니 즉석에 부르는데, 犢鼻에 貫 ㆁ(이응)하고 ― 송아지 코에는 코뚜레를 꿰었고 腰下에 佩 ㄱ(기억)이나 ― 허리 아래 낫을 찼을망정 歸家에 修 ㄹ(己 몸기자가 된다)하나니 ― 집에 돌아가서는 己(몸)을 닦나니 不然이면 ? ㄷ(合하면 亡자가 된다)이다. ― 그렇지 않다면 亡하리라 그래 젊은이들의 콧대를 꺾어 놓았다는 그런 얘기다.
◎ 영감들이 주막거리에 앉았는데, 그 앞으로 新婚行列이 지나간다. 新婦가 탄 가마 지붕을 호랑이 가죽으로 덮은 것을 한 늙은이가 뇌까렸다. “범 죽에 호사(虎死 - 豪奢)로다” 그랬더니 그것도 호랑이라고 개가 보고 놀라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이 짝을 채웠다. “개가 놀라는 것도 구경(求景 - 狗驚)일세” 그 옆으로 돼지가 꿀꿀거리고 지나는 것을 보고 “그 돼지 배가 크니 거북(巨腹)하겠다.” 그랬더니 나무에 매어 놓은 염소를 가리키며 “그 염생이 이마(頂)가 모나서(方) 방정(方頂)맞겠다. 모두가 才談의 連續이다.
◎ 淸溪川 가에서 들은 이야기 서울이 收復되자 淸溪川 양쪽 언덕으로 술집이 줄을 지었는데 거기서 들은 실지 이야기다. 점잖은 손님들이 坐板에서 술상을 對해 談笑하는데 中年하나가 새로 찾아온 친구를 보고하는 소리다. “벌써 돌아왔다던데, 어른을 이제야 찾아뵙다니 高(높을 고)자 賢(어질 현)자 高賢 놈이로고!” 그랬더니 相對便 紳士가 하는 말이다. “인사의 先後가 있든? 巨(끌 거)자 志(뜻 지)자 巨志 같은 놈 다 보겠네.” 外貌나 口辯으로 보아 相當한 水準의 人士들로 보였는데, 누구인지는 確認못하였다. 멋이란 마음의 餘裕에서 생기는 법인데, 이제는 거의 들을 수 없게 됐으니 글자 그대로 “不亦딱乎이”다. 어떤 친구가 論語 첫머리의 “不亦樂乎아”한 것을 뒤집어서 “不亦딱乎?”로 쓰는데, 번번히 適切하게 써서 모두들 웃었다. 한번은 敎育의 現場을 慨嘆하면서 “요새 젊은애들커녕 늙은이들도 한마디 못알아들으니 ”不亦딱乎아“로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