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쨩께의 제갈량 영웅만들기

浩 根 書 堂 2013. 7. 3. 04:30

 

 

촉한공정(蜀漢工程) : 중국인들의 제갈량 영웅만들기

 

 


 

첨부이미지

제갈량(貫華堂三國志演義에서

 

제갈량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백부인 제갈현(諸葛玄)

슬하에서 자라 유년시절을 불우하게 보냈습니다.

 

제갈량이 세살 되던 해가 바로 황건 농민군의 민중봉기가

일어난 해(184 : 황건적의 난)였죠.

 

이 때의 선비들은 여유있게 경전(經典)에만 집착하여 평생을

보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의 통일을 위해 보다 실질적인 학문을 하는 풍토가 많이

조성이 되었고 따라서 병법이나 법가가 이들 지식인들의 사고를

지배한 듯합니다.

 

 

제갈량은 그 출신성분으로 봐서 중앙무대에 크게 알려진 사람은

아닌 듯하지만 전란이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형주로 피란을 오자 차츰 알려진 듯합니다.

 

그래서 적벽대전 이전의 제갈량의 정치 이력은 기록할만한 것이

없고 유비와의 만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원래 대부분의 인재란 지조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이지만

제갈량은 이 점에 있어서는 후세에 모범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뛰어난 인재들은 능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든지 등용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들 가운데 탁월한 자는 역심(逆心)을 품을 소지도 있죠.

그래서 제갈량이 유비를 선택하고 그의 아들 유선까지도 성실하

게 보좌한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도 건강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갈량은 요즘 우리나라 일부 공무원들이나 정치가들과는

달리 도덕적인 청렴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이 점만으로도 제갈량은 훌륭한 정치가였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제갈량이 위나라에 있었어도 그처럼 청렴한 정치를

구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촉이라는 나라는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하나의 주(州)에 불과하

니 자신의 의지에 따라 쉽게 통제가 되지만 위나라와 같이 큰

나라에서는 워낙 많은 호족들이 있고 사상도 복잡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도 복잡하여 제갈량처럼 행동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나라가 클 경우에는 청렴성이나 정치적 이상만으로

통치하기가 어렵지요.

수많은 정치세력과 이익단체(利益團體)들이 산재해 있고 그들과

 대화나 타협을 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음성적인 불법 정치

자금이 들어가겠습니까?

 

사실 사마의도 제갈량에 못지않은 우국지사(憂國之士)에 충신이

었지만 몇 번씩 반대파들에 의해 숙청 당하고 죽음의 문턱에 몰려

자신을 방어하려다가 결국은 정권을 장악하고 그의 손자가

새 왕조를 엽니다.

물론 새 왕조를 개창한다는 것이 반역이라면 이 책임의 일부는

사마의에게도 있겠지요.

 

우리 입장에서 제갈량을 보면 어떻게 될까요?

제갈량의 경우는 좀 지나친‘중화영웅 만들기’는 아닐까요?

 

우리 나라에도 밀우와 유유, 박제상, 계백장군, 성충과 흥수,

강감찬 장군, 최영 장군, 정몽주 선생, 황희 정승, 이순신 장군,

녹두 장군, 김구 선생 등(여기에 빠진 다른 많은 충의지사 분들께

 죄송합니다) 능력이 탁월하면서도 나라에 충성하는 걸로 치면

제갈량 못지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원숭환(袁崇煥: ?~1630), 악비(岳飛 : 1103~ 1141) 같은

이는 구국의 영웅으로 탁월한 무장이자 군사 전략가였지만

모함을 받아서 극형에 처해집니다.

 

이들의 애족 애족하는 정신은 중국인에게는 만대의 모범이기도

 하였고 그 죽음 또한 중국인들은 두고두고 애통해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제갈량이 중화 영웅만들기의 혜택을

누렸을까요?

 

악비에 대해서는 잘 아실테니 원숭환에 대해서만 간략히 말해봅시다.

원숭환은 중국 명(明)나라 때 무장으로 광동(廣東)에서 출생하여

 병부직방주사(兵部職方主事)·안찰사(按察使)를 지냈습니다.

 

1626년 청(淸)나라 군대가 영원성(寧遠城)을 공격했을 때 그는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총포를 가지고 이를 격퇴시켰고 병부상서가

되었습니다.

 

원숭환이 있음으로 하여 명나라 정벌이 어려워진 청나라 태종은

원숭환이 역모를 도모한다는 뜬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러자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인데도 원숭환을 시기하던

사람들의 모함을 받아서 원숭환은 극형을 당하게 됩니다.

 

원숭환이 죽은 후 명나라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지요. 원숭환의

모함은 아마도 그의 출신지가 과거 남만 지역이었던 광동 지역이

었던 것도 원인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 어느 나라나 지역 차별 이것이 문제입니다.

중국은 유달리 영웅(英雄) 숭상 신드롬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합니다. 즉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다민족으로 구성된 큰 나라에서는 국가적인 통치의 효율성

을 높이기 위해 국가가 의도적으로 영웅만들기에 주력합니다.

 

왜냐하면 다소 과장스럽게 영웅을 만들어야 민족적 일체감을

조정할 수 있고, 분열되기 쉬운 민족적인 배경들을 하나의 영웅을

통하여 동질성을 만들어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죠

(이제부터는 미국이나 중국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또는 어떤 사건

을 통해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들고 있나를 한번 관찰

해보세요.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의 영웅을 만드는 데 희생양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

야 하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이 점들은 유비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이미 많이 지적되었습니다.

 

사실 능력만으로 보면, 제갈량을 능가하는 사람은 많지만 유독

제갈량만이 이 혜택을 누렸는가를 따져보면 제갈량의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명나라 태조가 한족의 명예로운 부흥과 국가적인 일체성

[아이덴터티(identity)]을 위하여 한(漢)나라를 모델국가(model state)

로 선정해버리니 그 한나라의 전통을 어슬프게나마 계승한 유비

와 그의 추종자들이 도매급으로 미화될 수 있는 혜택을 받은 것이죠.

 

쉽게 말해서 명나라 촉한공정(蜀漢工程)의 수혜자(受惠者)들인셈이죠.

제갈량 영웅만들기를 통하여 중국은 두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국내적인 효과로 제갈량을 통하여 국민적 통합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죠.

다른 하나는 국제적 효과로 중화주의를 주변국가에 전파하고

결국 제갈량의 중국은 위대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대부분이 제갈량을 오매불망 존경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는 바로 이 점 때문에‘제갈량 영웅만들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제갈량은 자신의 저서에서“동이(東夷 : 과거 중국인들이 우리 민

족을 낮추어 부르던 명칭)는 상하가 화목하여 감히 건드릴 수가

 없으니 먼저 임금과 신하, 백성들 사이를 이간하여 그들이 화목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임금과 신하, 백성 들 사이에 틈이 생긴 후에도 친선을

도모하다는 것을 구실로 하여 사신을 빈번히 왕래시켜 안심시키

다가 강력한 군대로 불의에 침공해야만 이들을 정벌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바로 이 사람이 여러분들이 그 동안 눈물겹도록 존경했던

제갈량이라는 사람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촉한공정(蜀漢工程)을 통하여 제갈량이 얼마나

 위대하게 거듭났는지를 보아왔습니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요, 만화같은 이야기였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이번 기회에 우리도 제갈량과 같은 세계적인 대배우를 하나

 만들어 세계 문화시장에 내어 놓기를 제안합니다.

 

찾아보면 우리의 역사에서도 세계적인 대배우의 자질을 갖춘

위인들이 무궁 무진하니까요.

 


   Historia De Un Amor / Eydie Gorme
 

향기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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