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식물이 처음으로 알려진 시기는 1800년대 중반이며 우리말 식물명은 1900년대 초반부터 기록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森爲三은 1921년에 『Enumeration of plants』를 펴내면서 713종류의 한글 식물명을 수록했으며, 국내 전문가에 의한 한글 식물명 기록은 1937년에 2,000여 종의 식물이름을 모은 『조선식물향명집』이 최초이다. 그러나 현재 일부의 나무이름은 전문가의 식견에 따라 제각각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어 통일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독자와 만날 수 있게 됐다. 올해에는 ‘나무이름 유래’에 대한 내용으로 여러분을 만난다. 이는 『산림』편집자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책임감이 따른다. 읽을거리를 최대한 제공해야 한다. 부실한 내용으로 말미암아 『산림』지의 전체적인 편집방향에 누를 끼쳐선 절대로 안된다. 만약 그럴 경우엔 필자 스스로 알아서 즉시 투고를 중단해야만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사랑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필자는 지난해에 연재했던 「닮은나무 식별법」처럼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관심이 있을 때라야 필자의 지면이 계속해서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제 허락된 본 지면을 메운다.
일반인은 나무이름 뜻풀이에 관심 많아
나무는 왜 나무인가. 이것은 창작 기반의 어원을 묻는 질문이라고 하자. 그리고 답을 바라는 물음이라고 하자. 이때 국문학 분야의 전문가는 어근 ‘남’에 접미사 ‘오’가 붙어서 된 형태의 ‘나모’가 변한 말이 나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필자는 이런 물음의 답을 알지 못하므로 선뜻 답변할 수 없다. 물론 필자에게 이런 따위의 어려운 질문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런데 일반인들은 나무이름의 뜻풀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필자는 ‘때죽나무는 왜 때죽나무인가’라는 질문을 곧잘 받는다. 이때 필자는 어원 따위가 아니라 명명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보아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처음에는 우스갯소리로 ‘이 나무는 물고기를 떼로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대답한다. 옳지 않은 대답임을 알면서도 10여 년 넘게 이렇게 답변했다. 그래서인지 필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설명하는 경우를 들었으니 말이다. 재미삼아 그렇게 대답했지만 괜히 잘못된 뜻풀이를 해준 데 대한 죄송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때죽나무의 이름은 열매와 나무껍질의 물로 ‘때를 쭉 뺀다’는 뜻에서 ‘때쭉나무’로 불리다가 때죽나무로 된 것이란다. 그보다 거의 실제에 가까운 해석이라면 나무껍질이 검은빛이어서 때가 많은 껍질의 나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식물명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이 기반
이렇듯 우리나라의 나무는 제각각 세계공통어의 학명 이외에 우리말 고유 이름을 가진다. 이런 이름이 어떻게 해서 붙여졌는지, 구성이나 유형의 특징은 어떠한지, 명명 기반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다음 호부터 점차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이번 호에서는 우선 나무이름이 사회성을 띠면서 일반화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기로 한다. ‘나무이름 유래’를 본격적으로 쓰기에 앞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기본적인 참고자료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식물이 처음으로 알려진 시기는 1800년대 중반. 1854년 러시아의 B. A. Schlippenbach가 동해안에서 채집한 50여 점의 식물을 네덜란드로 보내면서 기록되기 시작했다. 1899년에는 러시아의 J. W. Palibin이 좥조선식물개요(Conspectus Florae Koreae)좦라는 제목으로 525종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식물을 총정리한 최초의 종합보고서이다. 그후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中井盟之進, 石戶谷勉, 森爲三, 植木秀幹 등에 의해 우리나라 식물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식물이름과 관련해서는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어사전』에 일부가 수록되면서 알려지게 됐다. 식물학자에 의한 우리말의 식물이름은 일본의 中井盟之進이 1915년부터 연차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좥조선삼림식물편좦에서 몇 종류의 식물을 영어 또는 일본어, 한글로 기록하기도 했다. 즉 식물의 우리말을 한글이 아니라 소리나는 우리말 그대로 영어나 일본어로 적어놓았던 것이다. 식물학자 중에서 우리나라의 식물이름을 순수한 우리말의 한글로 기록한 전문가는 일본의 森爲三이다. 森爲三은 1921년에 『조선식물명휘(Enumeration of plants)』를 펴내고 우리나라의 총식물 3,344종을 기록하면서 그 가운데 ‘가 나무(가래나무)’ 등 모두 713종류의 한글 식물명을 수록했다. 이 책은 아마도 우리말의 식물이름만을 종합적으로 묶어 찾아보기를 수록한 최초의 서적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볼 때에 이 책은 식물이름의 관련 자료로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쉽다면 우리나라 전문가가 아닌 일본의 전문가가 정리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우리나라 전문가에 의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한글 식물명 기록은 1937년에 이뤄졌다. 일본의 中井盟之進과 森爲三의 연구에 많은 협력을 했던 鄭台鉉을 비롯해 都逢涉, 李德鳳, 李徽載 등이 방언을 토대로 2,000여 종의 식물이름을 모은 『조선식물향명집』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식물이름의 원전이 됐다. 그후 1949년에는 우리나라 식물 3,000여 종을 정리한 『조선식물명집』과 4,500여 종을 수록한 『우리나라 식물명감』이 출간됐으며, 특히 『조선식물명집』은 초본편과 목본편을 따로 정리해 나무이름을 독립적으로 수록한 최초의 문헌이다. 1980년 이후에는 『농식물자원명감(1981)』, 『한국식물명고(1996)』, 『한국자원식물명총람(1997)』 등이 발행됐다.
나무이름 제각각으로 통일안 없어 문제
이처럼 우리나라의 나무이름은 이상의 문헌자료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지방 고유의 방언(향토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탄생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말의 나무이름은 가능하면 1937년에 정리된 『조선식물향명집』을 선취권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실상은 현재 이의 자료를 따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물론 시대의 사회상에 따라 맞춤법이 다르거나 유사식물의 복잡성, 언어의 사회성, 식물특성의 부적절한 의미부여 등의 이유 때문에 선취권을 완전 인정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보다는 전문가 또는 학자의 학연 맥락에 따라 나무이름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혼란을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1980년대에 발행된 이창복의 『대한식물도감』과 1900년대에 출간된 이우철의 『한국식물명고(1996)』, 이영노의 『한국식물도감(1998)』은 저자의 식견에 따른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몇 종류의 나무이름을 제각각 달리하는 경우 등이다. 다시 말하면 저자들은 선취권을 인정하는 통일안을 만들어 단일의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고 나름대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앞으로 이 지면의 연재를 통해 비교해 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어쨌든 나무이름을 바꾸는 것은 이유가 타당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문가의 아집에 따른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나무이름은 북한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명칭과의 차이도 문제가 될 것 같다. 남북으로 갈라져 단절된 한반도의 특수한 여건 때문에 나무이름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루빨리 남북한 식물명 통일안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게다가 젊은 전문가들도 그들만의 식견에 따라 제각각으로 나무이름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이다. 이는 앞선 전문가들이 통일안을 내놓지 못하는 데에 따른 일종의 무언적 반항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선각자가 통일안의 토대를 확고하게 다져 놓았으면 이런 일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아무튼 필자는 『산림』의 「나무이름 유래」를 본격적으로 쓰기에 앞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무이름의 전체적인 역사적 배경을 참고삼아 적어 보았다. 마침 정부에서는 몇 년 전 학계에 의뢰해 우리나라 식물이름의 통일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통일안은 현재 거의 끝나 발표만 남은 상태여서 나무이름 유래의 연재가 시의 적절한 일면도 있다. 가능하면 통일안이 발표됐을 때에 이를 분석한 내용도 소개하고 싶지만 그런 기회가 있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더불어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통일안과는 별개로 ‘남북통일안식물명고’를 준비하고 있어 의미가 있다. 본 지면에 대한 독자의 관심과 지적을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