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한글과 한말
浩 根 書 堂
2016. 1. 21. 02:03
한글과 한말
글;운형
<이 글은 대종사상연구소 사이트에서 퍼온 글입니다>
지금의 중국(현재의 국명) 사람들은 그들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華夏族(화하족)과 그들이 남이라고 생각하는 동이(東夷), 북적, 남만, 서융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그들의 방언분포도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 방언 분포도를 보면 중앙내륙지방이 하나의 방언지역을 이루고 북방, 동방, 남방이 각각 다른 방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방은 거의 방언의 분포가 없다.
이 방언분포도로써 알 수 있는 것은 화하족만이 그 땅을 차지했던 것이 아니라 서융은 그 흔적이 없지만 나머지 동이, 북적, 남만은 모두 합하여 그 땅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하족이 이민족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중국 땅을 지배한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원(元), 청(淸) 등이 지배한 것 말고도 우리가 막연하게 중국이라고 생각하는 위(魏), 수(隋), 당(唐) 등도 모두 화하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다.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남북조시대라 불리우는 때에 북은 위(魏), 남은 송(宋)이었다. 송(宋)은 화하족이 세운 나라이나 이 위(魏, 통칭 북위)는 화하족의 나라가 아니라 선비족이 세운 나라이다.
5胡16國의 난으로 서진(晉)의 관리와 백성이 양자강이남의 건업(동晉)으로 피난하였는데 그 수가 백성의 십중의 팔 구라 하였으니 이는 화하족이 5호의 난을 피하여 거의 대부분이 양자강을 건너 남으로 내려갔다는 말이다. 이 동진(晉)을 송(宋)이 이었으니 송은 화하족의 나라이다.
그러나 북조는 이 화하족이 거의 남쪽으로 피난하여 버렸으니 결국 오호를 중심으로 나라가 설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중 선비족이 중심이 되어 위(魏)가 선 것이다. 위(魏)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유목민의 조직구조인 부락공동체를 없앴는데 이를 사가들이 중국화하였다고 평한다. 그러나 그리했다고 하여도 말이 당장 화하족의 말로 바뀌는 것도 아니오 혈통이 화하족의 혈통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화하족이 아닌 5호의 종족을 주 구성원으로 하는 위(魏)를 바탕으로 북제(濟), 북주(周), 수(隋), 당(唐)이 차례로 이어지며 세계 제국이라는 당(唐)도 역시 선비족이 중심이 되어 세운 나라이다. 그러므로 당태종이 주위의 여러 유목국가로 부터 그들의 텬칸(天汗 = 천왕)이 되어 달라는 글도 받게 되는 것이다.
선비족은 옛 상(商)나라의 후예로서 주(周)나라가 상나라를 멸했을 때 그 난을 피해 흥안령산맥으로 이주하였던 사람들이다. 그 후에 그들의 세력이 커져서 다시 중원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상(商)은 명백한 동이족으로서 이것은 세계의 고고학계에서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간략히 역사의 일부를 언급한 것은 지금의 중국땅에 있는 사람의 말이(글이 아님) 원래부터 모두 화하족의 말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 동이족의 말도 상당히 많은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흘러 서로 그 말이 섞이어서 구분이 어려워 모두 중국말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만의 대학자였던 부사년은 우리 한국을 스승의 나라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는 "이하 동서설(夷夏東西說)"에서 한족은 동이족과 화하족의 양족이 섞이어 형성되었으며 그 문화는 동이족의 문화라고 하였다.
문화의 핵심은 철학이며 그 철학을 담는 것은 글이다.
우리 동양 철학의 핵심은 유학(儒學)이며 이 유학은 동이족이 가졌던 사유체계이다. 상(商)의 삼현(三賢) 중 하나였던 기자(其子)가 주나라 왕에게 홍범(洪範)이라는 통치철학을 가르쳐주었는데 이는 유학의 최상급의 학문체계이다.
그리고 지금 소위 한자의 뿌리는 갑골문인데 그 갑골문이 동이족인 상나라의 유물임을 또한 세계 고고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지금의 한자를 만든 사람이 우리 동이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오래 전에 신용하교수는 우골문(소뼈에 기록된 문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황하변의 갑골문보다 앞선 시기에 만주 지역에서 소뼈에 갑골문과 같은 문자를 기록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하였고 갑골문을 남긴 상나라 사람들이 동이족이므로 이는 만주지역에서 거주하던 동이족이 소뼈에 문자를 기록하다가 황하변으로 이동하여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구갑(龜甲)을 그 재료로써 채용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철학과 문자를 제공한 사람이 모두 동이족이기 때문에 부사년같은 대학자가 우리나라를 스승의 나라라고 하는 것이다.
-------
"글은 말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서양 사람의 생각이다. 서양 사람에게는 우리처럼 따로 글이 있지 않았으므로 이 말이 맞다. 만일 우리가 이 말을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서양의 언어학에 세뇌된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다." 이것은 우리의 경우이다. 우리에게는 서양사람에게는 없는 글이 있다. 우리의 글은 말을 기록하려는 발음기호가 아니고 사물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며 "말을 기록한 것은 글이 아니고 발음기호이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훈민정음이라는 발음기호가 있고 그리고 예서(隸書)라는 글이 있다.
훈민정음은 옛 가림토를 그 뿌리로 한다. 가림토는 "가리어주는(분별해주는) 토"를 줄여서 그것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추정이 되는데 훈민정음은 이것을 편집한 것이지 새로이 만든 것이 아니다. 정인지의 상소문을 보면 이점이 명확히 나와 있다. 훈민정음은 기원전 2000년 전으로 그 근원이 올라가야, 동일한 문자로 보이는 인도의 구자라트 지방에 있는 문자나 일본의 신대문자와의 관계가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商)의 갑골문을 이은 것으로 예서(隸書)가 있다. 예(隸)는 붓을 들고 먹물을 찍어 글을 쓰는 형상을 표현한 글이다. 이렇게 붓으로 글을 쓰던 사람들이 끌려와서 만리장성을 쌓는 노역에 부림을 당하다가 죽어갔으므로 노예(奴隸)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즉 노예(奴隸)는 진(秦)나라 내에 있었던 호(胡, 동이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글씨 쓰는 예인(隸人)들이 쓰던 글씨체가 지금의 예서(隸書)이다. 우리 동이족의 글이 이 예서(隸書)이며 그 유명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비문이 바로 이 예서(隸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글"이라는 말은 잘못된 이름이다. "한말"이나 "한음"으로 고치든지 해야 올바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글인 이 예서(隸書)를 "한글"이라고 해야 앞뒤가 맞는 말이 된다.
글;운형
<이 글은 대종사상연구소 사이트에서 퍼온 글입니다>
지금의 중국(현재의 국명) 사람들은 그들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華夏族(화하족)과 그들이 남이라고 생각하는 동이(東夷), 북적, 남만, 서융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그들의 방언분포도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 방언 분포도를 보면 중앙내륙지방이 하나의 방언지역을 이루고 북방, 동방, 남방이 각각 다른 방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방은 거의 방언의 분포가 없다.
이 방언분포도로써 알 수 있는 것은 화하족만이 그 땅을 차지했던 것이 아니라 서융은 그 흔적이 없지만 나머지 동이, 북적, 남만은 모두 합하여 그 땅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하족이 이민족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중국 땅을 지배한 경우가 매우 많았는데 원(元), 청(淸) 등이 지배한 것 말고도 우리가 막연하게 중국이라고 생각하는 위(魏), 수(隋), 당(唐) 등도 모두 화하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다.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남북조시대라 불리우는 때에 북은 위(魏), 남은 송(宋)이었다. 송(宋)은 화하족이 세운 나라이나 이 위(魏, 통칭 북위)는 화하족의 나라가 아니라 선비족이 세운 나라이다.
5胡16國의 난으로 서진(晉)의 관리와 백성이 양자강이남의 건업(동晉)으로 피난하였는데 그 수가 백성의 십중의 팔 구라 하였으니 이는 화하족이 5호의 난을 피하여 거의 대부분이 양자강을 건너 남으로 내려갔다는 말이다. 이 동진(晉)을 송(宋)이 이었으니 송은 화하족의 나라이다.
그러나 북조는 이 화하족이 거의 남쪽으로 피난하여 버렸으니 결국 오호를 중심으로 나라가 설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중 선비족이 중심이 되어 위(魏)가 선 것이다. 위(魏)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유목민의 조직구조인 부락공동체를 없앴는데 이를 사가들이 중국화하였다고 평한다. 그러나 그리했다고 하여도 말이 당장 화하족의 말로 바뀌는 것도 아니오 혈통이 화하족의 혈통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화하족이 아닌 5호의 종족을 주 구성원으로 하는 위(魏)를 바탕으로 북제(濟), 북주(周), 수(隋), 당(唐)이 차례로 이어지며 세계 제국이라는 당(唐)도 역시 선비족이 중심이 되어 세운 나라이다. 그러므로 당태종이 주위의 여러 유목국가로 부터 그들의 텬칸(天汗 = 천왕)이 되어 달라는 글도 받게 되는 것이다.
선비족은 옛 상(商)나라의 후예로서 주(周)나라가 상나라를 멸했을 때 그 난을 피해 흥안령산맥으로 이주하였던 사람들이다. 그 후에 그들의 세력이 커져서 다시 중원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상(商)은 명백한 동이족으로서 이것은 세계의 고고학계에서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간략히 역사의 일부를 언급한 것은 지금의 중국땅에 있는 사람의 말이(글이 아님) 원래부터 모두 화하족의 말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 동이족의 말도 상당히 많은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세월이 많이 흘러 서로 그 말이 섞이어서 구분이 어려워 모두 중국말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만의 대학자였던 부사년은 우리 한국을 스승의 나라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는 "이하 동서설(夷夏東西說)"에서 한족은 동이족과 화하족의 양족이 섞이어 형성되었으며 그 문화는 동이족의 문화라고 하였다.
문화의 핵심은 철학이며 그 철학을 담는 것은 글이다.
우리 동양 철학의 핵심은 유학(儒學)이며 이 유학은 동이족이 가졌던 사유체계이다. 상(商)의 삼현(三賢) 중 하나였던 기자(其子)가 주나라 왕에게 홍범(洪範)이라는 통치철학을 가르쳐주었는데 이는 유학의 최상급의 학문체계이다.
그리고 지금 소위 한자의 뿌리는 갑골문인데 그 갑골문이 동이족인 상나라의 유물임을 또한 세계 고고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지금의 한자를 만든 사람이 우리 동이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오래 전에 신용하교수는 우골문(소뼈에 기록된 문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황하변의 갑골문보다 앞선 시기에 만주 지역에서 소뼈에 갑골문과 같은 문자를 기록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하였고 갑골문을 남긴 상나라 사람들이 동이족이므로 이는 만주지역에서 거주하던 동이족이 소뼈에 문자를 기록하다가 황하변으로 이동하여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구갑(龜甲)을 그 재료로써 채용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철학과 문자를 제공한 사람이 모두 동이족이기 때문에 부사년같은 대학자가 우리나라를 스승의 나라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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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말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서양 사람의 생각이다. 서양 사람에게는 우리처럼 따로 글이 있지 않았으므로 이 말이 맞다. 만일 우리가 이 말을 맞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서양의 언어학에 세뇌된 것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다." 이것은 우리의 경우이다. 우리에게는 서양사람에게는 없는 글이 있다. 우리의 글은 말을 기록하려는 발음기호가 아니고 사물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며 "말을 기록한 것은 글이 아니고 발음기호이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훈민정음이라는 발음기호가 있고 그리고 예서(隸書)라는 글이 있다.
훈민정음은 옛 가림토를 그 뿌리로 한다. 가림토는 "가리어주는(분별해주는) 토"를 줄여서 그것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추정이 되는데 훈민정음은 이것을 편집한 것이지 새로이 만든 것이 아니다. 정인지의 상소문을 보면 이점이 명확히 나와 있다. 훈민정음은 기원전 2000년 전으로 그 근원이 올라가야, 동일한 문자로 보이는 인도의 구자라트 지방에 있는 문자나 일본의 신대문자와의 관계가 보다 합리적으로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商)의 갑골문을 이은 것으로 예서(隸書)가 있다. 예(隸)는 붓을 들고 먹물을 찍어 글을 쓰는 형상을 표현한 글이다. 이렇게 붓으로 글을 쓰던 사람들이 끌려와서 만리장성을 쌓는 노역에 부림을 당하다가 죽어갔으므로 노예(奴隸)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즉 노예(奴隸)는 진(秦)나라 내에 있었던 호(胡, 동이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글씨 쓰는 예인(隸人)들이 쓰던 글씨체가 지금의 예서(隸書)이다. 우리 동이족의 글이 이 예서(隸書)이며 그 유명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비문이 바로 이 예서(隸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글"이라는 말은 잘못된 이름이다. "한말"이나 "한음"으로 고치든지 해야 올바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글인 이 예서(隸書)를 "한글"이라고 해야 앞뒤가 맞는 말이 된다.
출처 : 설문한자
글쓴이 : ccheo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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