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설문해자

浩 根 書 堂 2016. 1. 21. 17:22


<說文解字>

오늘날 우리가 쉽게 소전을 볼 수 있는 것은 중요한 2개의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진나라 때의 문물, 예를들면 진대의 석각(예를 들면, 태산각석, 랑아대각석, 봉산각석)들은 서로 이사의 책을 통해서 전해진다. 또다른 하나는 동한의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이다.

 

허신의 자는 숙중(叔重)이다. 여남 소릉(召陵, 今 河南 郾城)인이다. 그는 동한의 저명한 경학대사이며 진대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까닭에 소전의 전모를 충분히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만 해도 이 경학가는 옛 사람들이 문자를 만든 조례를 잘 몰랐기 때문에 예서에 근거하여 임의로 해석하여 충분히 믿기에는 오류가 많았다. 이런 정황의 토대위에 허신은 경서를 해독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한자에 대하여 그 뿌리를 찾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는 소전에 대하여 분석을 마쳤고 한자의 결구에 대한 규칙을 찾아내 마침내 540개 부수로 정리하였으며 9353개의 전문과 1163개 중문을 살펴 그들의 결구 규율과 각 부수 아래 분별하여 배열하였다. 그런 후에 그들의 형체 결구에 근거하여 다시 매 한자마다 조합원칙과 최초의 본 뜻을 도출해 냈다. 이렇게 해서 중국 최초의 후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자전 즉 <설문해자>가 쓰여지게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쉽게 소전을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갑골문, 금문, 주문 등의 고문자에 대해서도 쉽게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 공을 전부 허신과 그의 <설문해자>에 돌려야 한다.

 

그는 중국 제일의 과학적, 계통적 한자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며 우리나라 문자학의 비조요 그리고 <설문해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한자학의 기초석이 된 것이다.

 

소전은 당연히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의 자체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단 소전은 진나라 이전의 각종 고문자와 매우 근접해 있으며 가이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다.그들은 모두 갑골문으로부터 금문에 이르기까지 전국 문자의 형체구조와 서사 풍격을 계승했으며 거기에 단지 규범과 통일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소전은 우리가 고문자를 연구하고 변식하려 할 때 거쳐야할 불가결한 단계라 할 수 있다. <설문해자>로 말미암아 소전에 대해서 세밀하고 깊은 분석 연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고문자에 대한 연구와 번역에 반드시 거쳐야할 교량이 된 것이다.

 

허신이 보지 못한 갑골문, 금문을 비롯하여 옛 문자에 이르기 까지 또 시대적인 한계상황으로 인해 오늘날의 과학화와 현대화를 상상할 수도 없었으므로 <설문해자>에는 많은 한계와 오해가 있지만 그러나 이 것은 단지 하연 벽에 붙은 티(微瑕)일 뿐이다.

소전과 <설문해자>는 한자 발전사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며 하나의 이정표에 해당한다.

출처 : 설문한자
글쓴이 : ccheo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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