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문자공부에 들어가기

浩 根 書 堂 2016. 1. 21. 20:42

들어가는 글 


1.

한자의 기원을 상고하는 일은 문명의 기원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예를 들어 동굴의 벽화와 같은 그림을 문자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그림과 문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고대에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녹도문(鹿圖文), 가림다문(加臨多文), 설형문(楔形文), 쐐기문(쐐기문), 과두문(蝌蚪文)…등 역사서에 그 이름이 거론된 이들 문자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신시엔 산목(算木)이 있었고 치우에게 투전목(鬪佃目)이 있었으며 부여엔 서산(書算)이 있었다.」, 「신시엔 녹서(鹿書)가 있고 자부에겐 우서(雨書)가 있고 치우에겐 화서(花書)가 있어 투전문(鬪佃文) 등은 즉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게는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에게는 신전(神篆)이 있었으니 이들 글자들은 널리 백산․흑수․청구․구려에 쓰여졌다」는 한단고기의 기록은 또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섬서 서안의 반파유지에서 발견된 bc3500년대의 도문(陶文)은 문자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지만 그 결론을 내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힐조자(倉頡造字)’설을 만들어 냈다.


2.

‘한자의 기원’에는 의례히 ‘창힐조자(倉頡造字)’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황제의 사관이었던 창힐이 최초로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창힐조자(倉頡造字)’ 이야기의 사실여부를 증명할 길은 없다. 다만 한자는 존재하는 것이므로 언제나 그 기원이 화제에 오르게 되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설이 ‘창힐조자(倉頡造字)’와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한자의 기원을 논한다면 당연히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태만큼이나 다양한 동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농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지는 한자가 있는가 하면 유목생활이 반영된 한자도 있고 자연의 형상을 본 뜬 글자가 있는가 하면 필요에 의해 새로 창작된 한자도 있다.


또 하나 한자의 기원과 관련하여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자 만드는 법’으로 알려진 이른바 ‘6서법(六書法)’이다. 6서법에 의하면 상형(象形)과 지사(指事)자는 ‘본체자(本體字)’이고 그 밖의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자는 본체자를 이용하여 만든 ‘용체자(用体字)’이므로 한자는 본체자인 상형과 지사자로부터 시작되는 셈인데 사실은 상형자가 주를 이루는 까닭에 ‘한자는 상형문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한자 가운데는 ‘사람의 이름자’로부터 시작되는 한자도 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금문의 종류 가운데 소위 ‘명씨금문(命氏金文)’이다.

명씨금문과 관련해서는 곽말약(郭沫若)의 다음 글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글자는 인명(人名) 이외에 다른 뜻이 없다”

고대인들은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자신의 이름자로 사용하였는데 이 사실을 제대로 지적한 사람이 바로 정당(鼎堂) 곽말약(郭沫若)이다. 갑골문에 관한 탁월한 연구로 나진옥, 왕국유, 동작빈과 더불어 ‘갑골4당(甲骨四堂)’으로 꼽히는 곽말약은 변증법적 역사 유물주의의 입장에서 갑골문을 연구하여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대학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그런 대학자의 주장이므로 그 주장의 신빙성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자는 갑골문(甲骨文)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주장이다.

1900년대 초 은허(殷墟)에서 갑골문이 대량으로 발견된 이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는 ‘현대 한문의 체계를 갖춘 최초의 시원자는 바로 갑골문’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골문의 위세에 밀려 아직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오제시기(五帝時期) 금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갑골문보다도 시대가 앞선 고금문(古金文)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 금문이 오제시기의 원시상형체문자다.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의 선후관계에 대해서는 그 소재가 짐승의 뼈(거북이나 소의 뼈)와 금속(청동기)이라는 차이에서 오는 선입견 - 금속이 등장하는 것은 뼈에 비하면 아무래도 후대일 것이라는 -때문에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그러나 금문 가운데서는 갑골문보다도 그 글자의 형태가 훨씬 원시적인 모양의 문자가 드러나면서 금문도 시차를 두고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제금문(원시상형체 문자), 은주금문(殷周金文), 춘추금문(春秋金文) 등은 금문을 시대를 중심으로 구분하여 부르는 명칭인데, 이 가운데 오제금문은 은나라 때 주로 사용된 갑골문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서 사용된 것으로 그 가운데에 사람의 이름자를 표시하는 금문이 있으므로 이를 ‘명씨금문(命氏金文)’이라 일컫는다.

원시상형체금문과 갑골문의 회화성을 살리면서 한 단계 발전한 글자를 대전(大篆)이라 부르며 대전을 조금 더 간편하게 정리한 문자가 진시황의 통일기에 환성된 소위 ‘소전(小篆)’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옛 상형체문자의 형체를 유지하던 한자는 그러나 진시황의 어사(御使)였던 정막(鄭邈)이 ‘예서(隸書)’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그 회화성을 잃고 단순한 형태로 탈바꿈하게 된다. 상형체 문자가 한번의 굴절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 예서를 또다시 ‘모범이 될만한 서체’로 정리하여 출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로 ‘해서(楷書)’다.

원시금문(原始金文), 갑골문(甲骨文), 금문(殷, 周, 春秋金文), 대전(大篆), 소전(小篆), 예서(隸書), 해서(楷書) 등으로 변하는 한자의 이름이 말해주듯 한자는 사실 여러 차례의 가공을 겪게 되고 이 과정에서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특히 예서의 경우를 참고로 살펴보면, 예서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정막이라는 사람은 진나라에서 감옥의 사무를 담당하는 관리였다. 그가 죄를 범하여 감옥에 갖히게 되었는데 무료한 시간을 면해볼 요량으로 이전에 관리로 근무할 때 보았던 한자들을 조금 더 쉽게 써보기를 반복하였다. 긴 획은 짧게 줄이고 상하로 이어진 결구를 좌우로 정리하는 식으로 모양을 다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진시황에게 바쳐진 글자가 ‘예서(隸書)’다.

그 내용을 통달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문자를 단순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에서 무료함을 달래려고 그냥 정리해본 ‘예서’는 그 굴절이 얼마나 심했을 것인가. 지금의 한자와 한자의 시원자가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또한 이에서 설명이 될 수 있다.


4.

사람은 일생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이름을 갖는다.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 관공서에 출생을 신고해야 하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관례(冠禮)를 치르고 자(字)를 받게 되며 이후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서 많은 별명과 호(號)를 갖게 된다. 이러한 전통은 고대로부터 전승된 문화에 속한다.

고대에는 어린 자녀가 탄생하면 집안의 대부(代父)가 되는 어른으로부터 이름자를 받게 된다. 이어서 장성하여 결혼하게 되면 또 새로운 이름자를 받게 되고 관직에 나아가거나 벼슬이 바뀌게 되면 직위 변동을 계기로 또 새 이름을 갖게 된다. 봉지(封地)를 받게 되면 이를 계기로 이름을 받아 봉지와 동시에 이름자로 사용하기도 한다.

초기 원시상형체문자를 만든 당사자들은 고대 조선의 왕족으로써 그들의 신분이 임금이거나 재상이거나 차기 임금이 될 사람으로 대제사장의 직위를 가지고 하늘과 조상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런 신분의 사람들로부터 새 이름을 갖게 되는 관례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명씨금문에 의하면, 한자는 이렇게 고대 조선 왕실의 핵심인물들의 이름자를 통하여 세상에 출현한다.


5.

하늘을 나는 날짐승을 통칭 ‘새’라고 부르는데 하늘과 땅의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새(사이)는 또 다른 말로 ‘금’이라고도 한다. 서로 다정한 사이가 깨지면 ‘금이 갔다’고 한다. 이 때의 금은 사이가 생겼다는 말이다. 그래서 새를 또 금(禽)이라고 한다. 금수(禽獸)는 날짐승과 들짐승을 부르는 말이다.

금(禽)은 또 금(金)이다. 금은 또 쇠다. 쇠는 다시 우리말 사이다. 

또 ‘새’는 해(太陽)를 말하기도 하므로 태양 속에 산다는 새 삼족오(三足烏)의 이야기는 음운학적으로도 풀이가 가능한 이야기다. 어린시절 ‘형’을 ‘성’이라고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ㅎ’과 ‘ㅅ’의 상관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새는 또 '새(新, new)'이다. 해는 매일 매일 목욕을 하고 다시 올라오기 때문에 해는 노상 새로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말과 한자는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발전해왔다. 한자는 지나글이고 한글만이 우리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역사의 무지에서 오는 지독한 편견이다. 원시상형체문자를 해석하는 데에는 오히려 우리의 토속적인 말이 진가를 발휘한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한글과 한자를 동시에 창제한 우수한 문화민족의 후예임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새(鳥, 隹 또는 禽)와 사이(間), 해(太陽)와 새(新, new) 그리고 쇠(金)가 서로 의미나 음가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관계에 대한 이해가 문자를 공부하는데 꼭 필요하다. 고대인들이 문자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음이 같으면 서로 빌려다 쓰거나 의미가 같으면 또 같이 통용하였다.


6.

문자는 그릇이다. 역사나 사상, 문화, 이념을 담아놓는 그릇이다. 반면에 역사는 문자가 탄생하는 과정에 작용을 한다. 이 상호작용으로 인해 역사는 문자에, 문자는 역사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까닭에 명씨금문을 배우다보면 그 문자에 관련된 인물 즉 문자 탄생의 주체와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며 그 문자에 녹아있는 그 시대의 역사를 저절로 알게 되는 이로움이 있다.

반면 우리가 고전을 통하여 접할 수 있었던 동양의 가치와 문화에 다소간 가공되고 왜곡된 부분이 포함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재료를 통하여 우리의 고대사와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엄청난 경험이 될 수 있다.

오늘 나를 감싸고 있는 상식화된 여러 제도와 관념, 문화 그리고 사상의 실상을 직접 들여다보고 비교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문에 대한 연구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4천년 동안 동양사회를 지배한 권위와 가치에 대하여 비교하고 비판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되었다. 이로부터 얻어지는 기쁨은 독자들께서 직접 체험해 보기를 희망한다.

비로소 학문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고대문자를 배우면서 덤으로 얻게 되는 즐거움이다.

출처 : 설문한자
글쓴이 : ccheo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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