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무이산 답사기

浩 根 書 堂 2012. 3. 12. 14:00

무이산 천유봉·무이구곡계·무이차 축제·차박물관

글·사진 ㅣ 전병열 기자  / 2010-02-03 16:38:53


상노그랜드호텔에서 하문시여유국 초청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무이산시로 향했다. 자정이 다 돼서야 무이산공항에 도착해 골프텔인 무이산 風景度假酒店(SCENERY HOLIDAY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1인 1실로 배정된 호텔은 5성급으로 침실과 넓은 거실이 별도로 된 구조였다. 이곳 무이산에서 2박을 하고 다시 하문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무이산 입구에는 ‘世界文化自然遺産武夷山(세계문화자연유산 무이산)’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강택민 주석의 친필 비석이 서있다. 무이산은 1999년 12월에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선정돼 태산과 황산, 아미산 낙산대불에 이어 중국에서 4번째로 쌍(雙)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동남쪽 최고의 명승지로 손꼽히는 무이산은 36개의 봉우리와 99개의 암석, 2개의 병풍절벽과 8개의 고개, 4개의 계곡과 9개의 여울, 5개의 웅덩이, 11개의 골짜기, 13개의 샘이 있다고 한다. 무이산은 무이암 차(大紅袍茶)가 전설로 이어질 정도로 유명하다.

무이산 제일 경치 천유봉에 오르다  
이곳 무이산은 서주(西周)시기 7민의 땅이었던 이곳으로 儒, 佛, 道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다. ‘동주에서 공자가 나왔고 남송에는 주자가 있으니 중국의 옛 문화는 태산과 무이로다’라는 말로 무이산을 칭송하듯이 송나라 때 대성리학자였던 주자가 살았던 곳이다. 주자는 이곳 무이정사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했다고 한다.
매표소를 거쳐 관광전용차를 타고 무이산 기슭까지 올라간다. 우뚝 솟은 쌍유봉이 카메라에 잡혔다. 9곡 중 8곡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8곡의 북쪽에 위치한다고 한다. 풍만한 어머니의 젖가슴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2개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마치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 같다. 어차원(御茶園)이라 새겨진 건륭황제의 친필 비석이 놓여있는 곳에서 하차해 무이산으로 걸어 올라갔다.

오늘은 무이산 제일의 경치(武夷第一勝景)인 천유봉을 답사한다. 천유봉에 오르지 않고는 무이산을 구경했다고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무이산 최고의 절경이라고 한다. 무이산 중부에 위치한 천유봉은 해발 410m로 사방에 이름난 산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고, 구곡계가 삼면을 돌아 흐르며 정상에 오르면 무이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유봉에 오르면 도교의 이상세계인 봉래선경(蓬萊仙境)에 들어선 것과 같다고 한다. 그래서 천유봉 정상의 천유각은 도교의 천궁을 본따서 지은 것이란다. 九曲의 비경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주희원(朱熹園)이 눈에 들어왔다. 천유봉 입구의 매표소를 지나면서 오솔길로 이어졌다. 여러 개의 동굴을 지나 구곡계에서 뗏목을 탄 관광객들의 즐거운 비명소리를 들으며 천유봉 밑에 도착했다. 정상까지는 가파른 838개의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노약자나 등산에 자신이 없는 관광객은 계곡에서 쉬고 있는 게 좋겠다는 가이드의 전달을 뒤로 하고 정상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천유봉은 거대한 1개의 바위덩어리였다. 바위를 깎아 계단을 만들었으며 난간이 있지만 불안했다. 꼬리를 문 관광객들은 외길로 정상까지 이어졌다. 되돌아 갈 수도 없을 정도로 이어진 관광객들이 군데군데 쉬면서 비켜설 수 있는 곳에 몰려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정상에 오를수록 천 길 낭떠러지가 아찔하게 했다. 하지만 자욱한 운무(雲霧) 위로 기암절벽과 우뚝 솟은 암산봉우리가 어우러진 가운데 구곡계의 쪽빛 물길이 무이산을 휘돌아 가며 펼쳐진 전경은 그야말로 천궁을 유람하는 듯 했다. 절경에 혼이 빠져 자칫 외투를 잃을 뻔한 사고도 있었다. 당시 외투 속에는 여권과 지갑이 들어있어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역은 치안이 불안해 여권 분실이 우려된다며 여권을 잃어버리면 한 달 정도는 체류해야 된다고 했는데, 다행히 사진 촬영했던 장소에 떨어져 있었다. 산 정상이라 추운 날씨로 예상했지만 햇볕이 나면서 무더워 외투를 벗어 들은 게 실수였다. 중국관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여권분실이라고 했는데... 하늘 아래 펼쳐진 한 폭의 산수화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정신을 놓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천애의 절벽 아래, 고산 준봉의 계곡으로 흐르는 하늘 빛 물길이 선경을 수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정상에 오르니 대왕봉, 옥녀봉 등 이름 있는 봉우리들과 굽이치는 구곡계가 한 눈에 들어왔다.
뒤로 돌아오는 하산길에서는 두 사람이 맨 일인용 가마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정상까지 280위안(약 55000원)이란다. 이곳에 ‘中正公園’이라고 새긴 큰 패방이 세워져 있어 장개석공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려오면서 마주한 무이산 전경은 새롭게 아름다운 경관으로 보여졌다. 석양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무이산의 암산 봉우리들과 九曲의 잔잔한 쪽빛 수면 위에 비친 그 모습은 위대한 자연 유산이었다. 무이산은 정상에 올라야 구곡의 물을 감상할 수 있으며, 구곡의 물가에서 올려다 봐야 산을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가히 무릉도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구름이 나온다는 굴 운와(雲窩)와 무이정사(武夷精舍)가 보였다. 운와는 굴속에서 항상 구름이 피어올라 운해, 운룡, 불광, 홍교, 탄운, 와운 등 여러 가지 자태를 나타냈다고 알려진 곳이다. 무이정사는 1183년 주자가 만들었으며, 이곳에서 10년 동안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이차박물관 답사
식사 후 무이차박물관(中華武夷茶博園)으로 향했다. 바쁜 일정에 쫓겨 종종 걸음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곳은 무이차를 테마로 만든 공원이다. 차의 역사와 함께 재배, 가공과정 등을 스토리로 조각상을 만들어 배치했다. 광장에 차잎 형상의 조형물을 만들고, 구곡의 모형으로 조성해 배열함으로서 무이산이 차의 고장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또 이곳에서는 무이암차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며, 최초로 차를 발견했다는 신농씨(神農氏 머리는 소, 몸체는 인간)와 800여 년을 살았다는 붕군, 무이산의 산신인 무이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외에도 육우의 저서 ‘茶經’ 조각품과 차의 전파에 공헌한 선인들의 동상들이 세워져있다. 또한 당나라 시인 노통의 ‘7배차’ 시비도 건립돼 있다. 이 시에는 ‘차 한 잔에 단맛이 돌고, 두 잔에 고독이 풀리며, 석 잔에 시장을 느끼며 5천자를 익히고, 넉 잔에 땀 흘리며 피로를 푼다, 다섯 잔에 근골이 깨끗해지며. 여섯 잔에 신과 소통하게 되고, 일곱 잔에는 찬바람이 돈다’고 읊어 7잔 이상은 해롭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 이채로웠다. -시문 해석은 중국 가이드의 설명에다 기자의 해석을 첨삭한 것임- 새 차잎이 돋아날 때 제일 먼저 소리쳐 알리면 물이 솟구치는 우물 통선정(通仙井)도 모형이 조성돼 있었다.  
박물관 주변은 중국의 ‘영상대홍포’ 드라마 세트장이 조성돼 촬영중이었으며, 무이산 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무이산산수차체육여유축제’ 전야제 만찬에서 공연 관람과 함께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무이산 천유봉 등정에 쌓인 피로를 객실 욕조에서나마 풀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중국 무이산 산·수·차·체육 여유제
‘중국 무이산 산·수·차·체육 여유제’ 개막식이 거행된 광장에는 거대한 공연이 펼쳐졌다. 식전 행사로 중국 전통 복장의 화려한 무희들과 함께 우아한 여인의 차를 따르는 모습이 퍼포먼스로 진행됐다. 웅장한 배경과 오색 연기가 어우러진 무대, 기마병들의 열병은 무이산의 아름다운 산과 청정한 물로 빚은 차가 건강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개막식 참관 후 복건성 여유국장(곽항명·郭恒明) 간담회를 위해 무이산장으로 향했다. 무이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은 중국에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간담회에서는 이번 차문화 축제의 의의와 복건성에 대한 관광정책 및 관광명소 소개가 있었다. 중국은 국가차원에서 관광대국이 되기 위해 많은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대만과의 양안 관계도 관광 교류로 해소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 답사단으로부터 관광상품과 서비스 등에 대한 소감을 듣고자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보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중국 고위층의 관광 마인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관광상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은 우리나라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곳 복건성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년간 9000만 명이며, 외국관광객은 300만 명으로 이 중 한국인은 30만 명 정도라고 했다. 곽 국장이 마술 시범을 보이는 등 소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리드해 즐거운 점심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인간세계의 별천지 무이구곡계
식사 후 무이산관광의 백미로 불리는 구곡계 뗏목체험에 나섰다. 뗏목을 타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급행료를 내고 ‘새치기’ 하는 중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뗏목(주파이)은 굵은 대나무를 엮어 만들었으며, 비가 안 와 담수량이 적다고 했다. 4명씩 한 조를 이뤄 탔으며 2명의 사공이 노를 저었다. 500여 척의 뗏목이 하루에 2~3회, 성수기에는 7회 정도 운항한단다. 계곡의 길이가 9.5㎞로 1.5~2시간 정도 걸린다. 구곡에서 일곡까지 이어진 기암절벽과 기기묘묘한 형상들이 즐비하게 둘러서 있다. 불상에서부터 동물모형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얽힌 전설적인 사연들을 사공들로부터 전해 들으며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주자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가 탄생한 곳으로도 유명한 구곡계의 답사는 구곡에서부터 시작한다.

구곡에는 평천(平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의 경치가 무릉도원으로 불린다. 무이구곡가에서 ‘구곡에 다달으니 눈앞이 활연히 트이는데 상마(桑麻)에 맺힌 이슬, 평천을 바라보네. 뱃사공은 다시금 무릉도원가는 길을 찾지만 이곳이 바로 인간 세계의 별천지라네’ 라고 칭송하고 있는 곳으로 구곡의 암벽에 새겨져 있다. 팔곡에는 사자와 거북, 낙타,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 모양의 바위들이 즐비해 물위의 동물원으로도 불린단다. 이곳에는 쌍유봉이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칠곡에서는 무이산에서 가장 높은 삼양봉(해발 717m)이 보이며, 도원동(桃源洞)에는 금계동(金鷄洞)을 지나 방생담(放生潭)의 물이 돌아가는 곳에 무릉도원이 있다고 한다. 신선의 손바닥 같은 선장암이 위치한 육곡에는 천하절경이라는 천유봉을 만날 수 있으며, 원나라 황실의 다원이 있었다는 다동(茶洞)에는 무이산 암차(巖茶)인 대홍포(大紅袍)가 있다고 한다. 오곡에는 주자가 세운 무이정사가 있다. 사곡의 대장봉은 도가(道家)의 대장경을 숨겨둔 곳이며, 대장봉 아래의 와룡담은 구곡 중에서 제일 깊은 곳으로 36~43m나 된다고 한다.

삼곡에 위치한 가학선관은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남긴 배로 배안에 유골을 남겼는데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전해온단다. 이곡에는 옥황상제의 딸 옥녀의 전설을 간직한 옥녀봉을 만날 수 있으며, 소장봉 바위굴의 홍판교와 가학선관(架壑船棺)도 보인다. 일곡의 북쪽에 대왕봉이 솟아있고 왼쪽에 위치한 만정봉(曼亭峯)은 무이군(武夷君)이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란다. 천애절벽인 암벽에는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북벌 길에 지은 시문도 새겨져있다. 또한 암벽 깊숙이 나있는 뱃사공들의 철봉 자국들이 구곡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경력 22년차인 붕씨(48세)와 같은 뱃사공들의 익숙한 스토리텔링이 ‘뗏목관광’의 관심과 흥미를 고조시키는데 크게 기여하는 것 같다.
무이산박물관을 둘러보고 무이산 차 생산업체(皇龍袍茶業)를 방문해 소홍포차와 철관음차, 대홍포차를 음미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일부 일행들은 선물용 차를 구입했다. 여종업원들이 관광객들에게 차시음을 하도록 한 후 구입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상술이 돋보였다.
무이산공항에서 밤 10시 20분발 비행기로 하문고기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자정 무렵 처음 머물렀던 상노그랜드호텔에 도착했다. 일행과 인근 식당에서 맥주를 구입해 마시면서 숨가쁜 일정으로 쌓인 피로를 달랬다.
<기사가 넘쳐 다음호에 ‘고랑서’ 답사가 이어집니다>


출처 : 동양고전연구소
글쓴이 : 산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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