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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입춘첩·춘첩·춘첩자(春帖子)·입춘방

浩 根 書 堂 2012. 12. 12. 09:07

입춘첩·춘첩·춘첩자(春帖子)·입춘방

입춘날 봄이 온 것을 기리어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 입춘(立春)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이자 봄을 맞는 날이므로 이날 봄의 형상에 적합한 축하·기원·경계 등의 글을 쓰는데, 이를 입춘축(立春祝)·춘축(春祝)이라 한다. 그리고 종이를 잘라 좋은 글을 쓰고 입춘일에 각 집마다 대문이나 기둥 등에 붙인다고 하여, 입춘첩·춘첩·춘첩자(春帖子)·입춘방(立春榜)·춘방(春榜)·문첩(門帖)이라 하며, 또는 입춘(立春)붙인다고 한다. 그리고 문이나 기둥마다 대구의 글을 지어 붙인다고 하여, 춘련(春聯)·대련(對聯)·문대(門對)라고도 한다.


문첩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중국 황제(黃帝) 때 흉악한 귀신을 쫓기 위해 설날 도부(桃符)에 신도(神荼)와 울루(鬱壘)의 형상을 그려 문에다 걸었다는 것에서, ‘신도울루(神荼鬱壘)’ 넉 자를 써서 붙인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춘련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입춘에 봄을 맞이하여 봄의 행운을 부른다는 ‘의춘(宜春)’ 두 자를 써서 문에 붙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 진운첨(陳雲瞻)의 『잠운루잡화(簪雲樓雜話)』에 의하면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섣달 그믐날 하루 전에 공경대부와 일반 서민들로 하여금 대문 위에 춘련(春聯) 한 폭씩을 붙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춘첩자는 고려시대부터 보이는데, 『동문선(東文選)』에는 김부식(金富軾)이 쓴 내전(內殿) 춘첩자가 기록되어 있으며,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송나라 서긍(徐兢)이 개경 광화문(廣化門)에 붙여져 있는 “눈 자취 아직도 삼운폐에 있는데(雪痕尙在三雲陛) 햇살이 비로소 오봉루에 오르네(日脚初升五鳳樓) 제후들 잔 올려 축수하니(百辟稱觴千萬壽) 곤룡포 자락에 서광이 어리네(袞龍衣上瑞光浮)”라는 춘첩자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도 어전(御殿)과 태후전(太后殿)의 춘첩자가 있는데, 대체로 장수를 기원하는 5언 또는 7언시이다.

동국세시기』나 『경도잡지(京都雜志)』 등에 전하는 춘첩으로,

‘문신호령(門神戶靈) 가금불상(呵噤不祥)’,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세풍(時和歲豊)‘ 등의 대구어(對句語)가 있으며,

 

여염집의 기둥이나 문설주에는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

거천재(去千災) 래백복(來百福)’,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요지일월(堯之日月) 순지건곤(舜之乾坤)’,

‘애군희도태(愛君希道泰) 우국원연풍(憂國願年豊)’,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대영(子孫萬代榮)’,

‘천하태평춘(天下太平春) 사방무일사(四方無一事)’,

‘국유풍운경(國有風雲慶) 가무계옥수(家無桂玉愁)’,

‘재종춘설소(災從春雪消) 복축하운흥(福逐夏雲興)’, ‘

북당훤초록(北堂萱草綠) 남극수성명(南極壽星明)’,

‘천상삼양근(天上三陽近) 인간오복래(人間五福來)’,

‘계명신세덕(鷄鳴新歲德) 견폐구년재(犬吠舊年災)’,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봉명남산월(鳳鳴南山月) 인유북악풍(麟遊北嶽風)’,

‘문영춘하추동복(門迎春夏秋冬福) 호납동서남북재(戶納東西南北財)’,

‘육오배헌남산수(六鰲拜獻南山壽) 구룡재수사해진(九龍載輸四海珍)’,

‘천증세월인증수(天增歲月人增壽) 춘만건곤복만가(春萬乾坤福滿家)’ 등의 대련(對聯)을 많이 쓴다.

 

또한 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단첩(單帖)에는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상유호조상화명(上有好鳥相和鳴)’,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楣)’,

‘일진고명만제도(一振高名滿帝都)’ 등이 있다.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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