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漢詩가 있는 에세이 -할아버지와 손자

浩 根 書 堂 2013. 2. 2. 21:40

漢詩가 있는 에세이

할아버지와 손자
孫子夜夜

鄭震權


지금 우리 집 뜰에 눈이 하얗게 내리고 있다. 저 눈 위를 개가 달리면 발자국마다 매화꽃이 떨어질 것이다. 눈 위에 나는 개 발자국은 매화꽃과 똑같은 모양이다. 저 눈 위를 닭이 돌아다니면 발자국마다 댓잎이 찍힐 것이다. 눈 위에 나는 닭 발자국은 댓잎과 똑같은 모양이다.

 

내가 우리 집 뜰에 쌓이는 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옛날 어느 술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그 어린 손자가 문득 떠 올랐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蔡壽(채수), 손자의 이름은 蔡無逸(채무일), 이 할아버지와 손자의 다음 이야기는 柳夢寅(유몽인)의 『於于野談』에 전한다.

 

어느 날 밤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 누워 한 句 읊었다.


孫子夜夜不讀書      손자는 밤마다 글을 안 읽어


어린 손자가 즉각 짝구를 읊었다.

 

祖父朝朝藥酒猛       할아버진 아침마다 술이 과하셔


 

자, 손자의 이 짝구를 들은 할아버지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손자는 밤마다(孫子夜夜)"에 대한 "할아버진 아침마다(祖父朝朝)"라는 對句도 그럴 듯하거니와, 글 안 읽는다는 할아버지에게 술이 과하다는 말은 또 얼마나 귀여운 反擊인가.

 

어느 눈 오는 날 할아버지는 손자를 업고 또 한 구 읊었다.


 

犬走梅花落     개가 달리니 매화꽃 떨어지고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자가 짝구를 이었다.

 

鷄行竹葉成      닭이 거니니 댓잎이 찍히네


 

참 기막힌 대구다. 할아버지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어린 손자의 그 빛나는 才致가 여간 놀랍지 않았다. 어른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 놀라움이 가시자 이번에는 손자를 업고 함께 글귀를 짓는 할아버지의 훈훈한 정이 잔잔한 感動으로 밀려왔다.

 

지금의 할아버지들이라고 그런 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특수한 안부를 제외하고는 다 떨어져서 따로 사는 세상이니, 할아버지들에게는 어린 손자를 안고 누울 기회도 없고 거닐 기회도 없다. 그러니 무슨 수로 함께 글귀를 짓겠는가?

 

머잖아 설이다. 우리 착한 어린 손자들이여, 비록 떨어져 산다 하더라도 이번 설에는 꼭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그 흔한 말, "할아버지 사랑해." 한번 말해 보렴. 할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실까? 옆에 계시는 할머니도 덩달아 좋아하실 거야.


 

1) 蔡壽(1449∼1515) : 조선 中宗 때의 文臣. 號는 懶齋(나재). 시문에 능했다. 저서로 『懶齋集』

2) 蔡無逸(1496∼1516) : 조선 明宗 때의 文臣. 號는 逸溪(일계). 그림과 글씨, 음률 등 다방면에 능했다.

3) 柳夢寅(1959∼1623) : 조선 先祖 때의 文臣, 文人. 號는 於于堂. 說話文學의 大家. 저서로 『於于野談』 등.




출처 : 說文解字(재미나는 한문)
글쓴이 : 樂而忘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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