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態度
(1) 擇言簡重
栗谷은 남과 말을 할 때에 아주 簡潔해야 할 것을 『擊蒙要訣』 持身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多言多慮, 最害心術, 無事則當靜坐存心. 接人則當擇言簡重, 時然後言, 則不得不簡. 言簡者近道, …此當終身服膺者也.
많은 말, 많은 생각은 마음씨에 매우 해로우니, 일이 없으면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간직할 것이다. 남을 접할 때엔 말씨를 간결하고 愼重하게 택해야 하는데, 이러한 뒤에 말을 하면 말씨가 간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말씨가 간결한 것은 道에 가까운 것으로…… 이는 마땅히 終身토록 마음에 지녀 실천할 것이라는 것이다.
李德懋는 『靑莊館全書』에서 「言語要而巳」라 했다. 말이란 要點을 들어 하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言之淋漓, 豈中也哉.」라고 했다. 말을 번드르르하게 하는 것이 어찌 要點을 的中시키는 것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 정중하게 하지 않고, 얼음에 박밀 듯이, 무당의 넋두리처럼 줄줄줄줄 하는 말에는 어쩐지 眞實性이 좀 부족한 듯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言語煩率, 心無底定也. 愼簡二字, 爲口業要訣.
말을 번거롭고, 경솔하게 하는 것은 마음의 밑바닥이 安定되지 않았기 때문이니, 삼가고 간결히 하라는 두 글자를 말하기의 要訣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내용을 그의 文集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表現을 바꾸어 나타냈다.
簡以制煩, 靜以璪, 一生服膺, 是正心工夫, 故君子言簡而心靜.
간결함으로써 번거로움을 견제하고, 조용함으로써 움직임을 제어한다는 것을 一生 동안 가슴에 지니면 그것이 곧 마음을 바르게 하는 공부가 되는 것이니, 그러기에 君子는 말이 간결하고, 마음이 安靜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데서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凡對人言多則聽稀何也. 以其重重疊疊, 若風過耳也. 不若詳其理, 擧其槩, 簡言之也. 然則所聽之人, 不厭于耳, 盡其所授而行之也.
무릇 남을 대하여 말이 많으면 들을 만한 것이 드문 것은 어찜일까. 그 중중첩첩함으로써 마치 바람이 귀를 스쳐 지나가는 것 같기 때문이니, 그 條理를 자세히 밝혀 그 槪要를 들어 간결하게 말함만 같지 못하다. 이렇게 하면 듣는 이가 싫증을 내지 않고, 傳해 주는 내용을 다 알아 이를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禮記』의 「學記」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善敎者, 使人繼其志, 其言也約而達.
잘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에게 그 뜻을 잇게 하는데, 그 말인즉 簡約한 가운데 意思가 충분히 通達이 된다는 것이다. 말이란 重言復言하여 要領不得으로 할 것이 아니라 核心을 아주 簡潔하게 表出 通達하면 된다는 것이다.
(2) 듣기
『中庸』의 九思 속에 聽思聽이란 말이 있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聰明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峿堂은 이것에 관련을 지어 峿堂集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凡有所聽, 宜留神諦聽, 勿漫然糊塗, 以取後悔, 此聽之則也.
무릇 남의 말을 들을 경우에는 마땅히 정신을 차려 자세히 들을 것이요, 漫然히 희미하게 들음으로써 後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듣는 方法이라는 것이다. 자세하고 분명히 들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듣는 태도의 要諦를 꼬집어 말한 것이다. 그는 그 글에 이어 洪範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引用 소개했다.
耳司聽, 而所以聰由心, 心不在則聽而不聞.
귀는 듣는 일을 맡아 다스리고 있으나 聰明하게 듣는다는 것은 마음으로 말미암기에, 마음이 있지 아니하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洪範은 洪範九疇를 말함인데, 洪範九疇란 上古에 禹임금이 堯舜 以來의 思想을 整理하여 集成한 天地의 大法으로, 政治道德에 관한 아홉 가지의 基本的 法則이다. 그 아홉 가지 法則의 둘째가「敬用五事」인데, 五事의 넷째가聽곧 듣기에 관한 것이다.
孔子는 그의 首弟子 顔回에게 論語에서「仁」을 實行하는 네 가지 德目 중에「非禮勿聽」이란 말을 했다. 禮에 맞지 않는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남의 말을 들을 때의 態度로서 李德懋는 士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聞人之言, 煩鎖喧聒, 整頓神氣, 記其大略, 勿亂聽也.
남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번거롭고 자질구레하며 시끄러우면 精神을 가다듬어 그 大略을 記憶할 것이요, 亂雜하게 듣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같은 곳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客或善談淫媟, 不可酬應, 子弟在坐, 故使之事也, 出而勿使聽之.
손님이 혹 猥褻(외설)한 이야기를 잘할 때에는 말 상대를 하지 말 것이며, 子弟가 그 자리에 있으면 짐짓 심부름을 시키어, 밖으로 나가서 듣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茶山은 側近者들의 말을 들을 때의 주의로 牧民心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左右近習之言, 不可信聽, 雖若閑話, 皆有私意.
側近者의 말은 그대로 다 들을 것이 아니니, 별것도 아닌 듯이 하는 이야기 속에도 다 제나름대로의 뜻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側近者의 말은 다 그른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무엇이든 다 全幅的으로 믿지도 말 것이요, 충분한 根據며 妥當性이 있나를 살펴 들어야 할 것이다. 웃사람된 이에게 크게 參考될 말이다. 茶山은 또 같은 데서 이런 말을 했다.
案侍妓侍童侍奴之等, 私相間答, 佯若呵止, 實令流入者多矣. 姦詭萬狀, 胡不慮矣.
생각건대 侍妓 侍童 侍奴의 무리가 저희끼리 사사로이 問答하면서, 아주 몹시 나무라는 듯이 하는 것은 實은 그 소리가 웃사람의 귀에 흘러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 많은즉, 姦邪한 여러 모양을 어찌 걱정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때로는 저희끼리 演劇을 꾸며 일부러 上典의 귀에 들리도록 하는 경우가 많은즉, 그러한 姦計에 의한 造作된 소리를 일일이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다는 것은 더구나 主心이 서 있지 않고 귀가 여린 웃사람으로서는 특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에 尹宣擧란 이는 「倱定編錄(혼정편록)」이란 글에서 古人의 말을 다음과 같이 引用했다.
聽言之道, 必以事觀之, 則言者不敢妄言.
남의 말을 올바르게 듣는 방법은 반드시 그 사람의 行動擧止를 봄이니, 그렇게 하면 말하는 者가 敢히 허투루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言行一致 면에서의 말의 責任感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겠다.
2. 問答要領
언어 酬酌(수작)의 要領은 첫째는 어떠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한 어찌하는 것이 禮節에 맞는 것인가를 지적한 것이다.
問은 疑問에서 온다. 孔子는 九思의 하나로 「疑思問」이라 하였다. 疑問이 생기면 물어볼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論語에서는 「疑思問」의 註에 「思問則疑不蓄」이라 하였다. 의문이 생겼을 때 質問할 것을 생각하고 묻는다면 疑問이 그때마다 해결되어 쌓이지를 않게 된다는 것이다.
栗谷은 問答에 대해서 『石潭日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珥曰, 問者蓄疑, 答者發啓可也. 强作而間, 强作而答, 有何滋味乎.
묻는 것은 쌓인 疑問에 대한 것이요, 대답한다는 것은 그 의문을 해결해주는 것이면 좋다. 억지로 묻게 하고, 억지로 대답하게 하는 것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이는 問答이 필요에 따라 自然스럽게 행해질 대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것이지, 공연히 形式에만 치우친다면 所期의 成果를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禮記의 學記에는 問答의 要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善問者如攻堅木, 先其節目, 及其久也, 相說以解, 不善問者反此. 善待問者如撞鐘, 叩之以小者則小鳴, 叩之以大者則大鳴. 然後盡其聲, 不善答者反此.
質問을 要領있게 한다는 것은 단단한 나무를 다스리는(加工하는) 것과 같아서 먼저 그 마디와 옹이를 찾아 오랜 時間을 들여 점차로 다스려 나아가면, 마침내는 서로 흐뭇하게 解決이 되는 것이며, 要領 없는 質問은 이와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質問을 잘 處理하는 것은 종을 치는 것과 같아서, 작은 것으로 치면 작게 울리고, 큰 것으로 치면 크게 울려, 그렇게 한 뒤에 그 鐘이 지니고 있는 소리를 다하게 하는 것이며, 要領이 좋지 못한 대답은 이와 반대가 된다는 것이다.
『退溪集』을 보면, 退溪의 言行에 관하여 여러 곳에 言及이 있다. 問答을 鄭重, 嚴正히 하며, 發言은 精審하게 했다는 것이다. 먼저 問答을 鄭重히 한 예를 보자.
先生與學者講論到疑處, 不主己見, 必博采衆論. 雖章句卑儒之言, 亦且留意聽之, 虛心理會, 反復參訂, 終歸於正而後已. 其論辨之際, 氣和辭暢, 理明義正. 雖羣言競起, 而不爲參錯. 說話必待彼言之定然後, 徐以一言條析之. 然不必其爲是, 第曰鄙見如此, 未知如何. (金誠一)
先生이 學生과 講論하여 疑問나는 데에 이르면, 자기의 意見을 주장하지 않고 반드시 衆論을 모았다. 비록 겨우 章句나 띌 정도의 水準 낮은 儒者의 말이라도 留意해서 듣고, 虛心坦懷하게 理會를 하고, 反復 參訂하여 마침내 옳은 곳에 이르러서야 그만둔다. 그 論辨할 때에는 말씨가 溫和하고 暢達하며 條理가 分明하고 뜻이 올바르다. 비록 여러 가지 말이 다투어 일어난다 하더라도 混同하는 일이 없다. 이야기할 때에는 반드시 相對方의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徐徐히 한 마디로 判斷을 내린다. 그러나 꼭 자기 의견이 옳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내 意見은 이러한데, 어떨지?" 할 뿐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退溪의 學問的 態度의 全般을 볼 수 있는 듯이 느껴지는데 특히 疑問이 났을 때엔 여러 사람, 설령 그것이 별로 보잘것없는 사람의 意見이라 해도 愼重히 검토하고 생각을 거듭하여 一旦 옳은 結末을 얻은 다음에도 그것을 絶對的이라고 고집하지 않는 謙遜한 태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의견이 一時에 일어난다 하더라도 절대로 混同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든지, 相對方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서 徐徐히 자기의 의견을 披瀝했다는 態度도 오늘날의 話法의 理論에 비추어 그 原理的인 면을 실천했다고 하겠다. 또 이러한 말이 보인다.
與人論辨, 有所不合, 則猶恐己之所見, 或有未盡, 不主先入, 不分人己, 虛心紬繹, 求之於義理, 質之於典訓, 己言合理而有稽, 則更與辨說, 期於解彼之惑. 舊見或有末安, 卽舍己而從人. 故人莫不悅服. (李德弘)
다른 사람과 論辨해서 意見이 一致되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自己의 所見이 혹 未盡한 데가 있나 하여 先入見을 固執하지 않고, 남과 나를 가릴 것 없이 虛心坦懷한 心情으로 解決의 실마리를 찾되, 이를 原理原則에서 求하고 先賢의 가르침에 물어, 자기의 말이 合理的이어서 해결점에 이르게 되면, 다시 辨說해서 相對方의 疑惑을 풀고야 말았다. 그전 생각이 혹 不安定하다 여겨지면 곧 자기 생각을 버리고 남의 옳은 생각을 좇았기에 사람들이 悅服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기서도 退溪의 늘 反求諸己하고, 자기가 옳다고 여겨지면 끝내 상대방을 說得시키며, 그르다고 여겨지면 欣然히 옳은 쪽의 생각을 따랐다는 鄭重하고도, 그러나 감칠맛이 있는 태도를 볼 수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不能舍己從人, 學者之大病. 天下之義理無窮, 豈可是己而非人.
자기가 그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의 意見을 좇지 못하고 자기를 고집하는 것은 學者의 큰 病弊인데, 이 세상의 事物의 理致는 헤아릴 수 없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어떻게 자기만이 옳고 남은 그르다고 하겠는가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남이 아무리 淺近한 質問을 해도 반드시 잠깐 동안 留意했다가 대답을 하지 應口輒對하는 일이 없었다.
人有質問, 則雖淺近說話, 必留意少間而答之. 未嘗應聲而對. (金誠一)
남이 質問이 있을 때 비록 淺近한 이야기라도 반드시 잠깐 留意했다가 대답하지 묻자마자 대답하지 않았다.
남과 論辨할 때 취할 태도는 다음과 같았다.
凡與人論辨末契處, 亦不遽回不是, 但云義理恐不如是耳. (禹性傳)
무릇 남과 論辨함에 分明치 않은 점이 있어도 갑자기 틀렸다고 되돌려치지 않고, 단지 原理가 그렇지 아니할 텐데 하였던 것이다. 퇴계가 얼마나 嚴正한 태도로 問答을 하였는가는 다음 記錄들로 충분히 알 수 있다.
先生對人應物動靜語黙, 各有節. 人若不當問而問, 不當言而言, 則必正色不答. 先生與衆人言, 其言有理則欣然應之. 如有不當者, 則黙而不答. 人自悚惕, 若無所容. 是故慢褻 之言, 庸鎖之說, 未嘗至於耳矣.
사람이 不當한 것을 묻거나 不當한 말을 하면 대꾸하지 않고, 그 말이 理致의 닿으면 欣然히 應酬하였다. 그러므로 不當한 말을 해서 黙殺을 當한 사람은 어쩔 줄을 모르기 때문에 버릇없는 말이나 쓸데없는 말이 들려 오는 일이 없었다. 이것은 條理에 닿지 않는 것에 대꾸하지 않는 例라겠다.
問答에서 가장 效果가 종합적으로 나는 것은 說得力이라 하겠다. 모든 發言은 결국 相對方이 잘 알아들어, 자기의 말한 意圖가 잘 貫徹될 때 그 效果가 가장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두 가지만 들어 보겠다. 그 하나는 朴寅亮이 遼의 國境侵入을 沮止한 일이요, 다른 하나는 그보다 앞서 徐熙가 契丹의 蕭遜寧(소손녕)을 물리친 事實이다. 熙奉國書, 如遜寧營, 使譯者問相見禮. 遜寧曰, 我大朝, 貴人宜拜於地. 熙曰, 臣之於君, 拜下禮也. 兩國大臣相見, 何得如是. 往復再三, 遜寧不許. 熙怒還, 臥所館不起. 遜寧心異之, 乃許升堂行禮. ……遜寧語熙曰, 汝國興新羅地, 高句麗之地, 我所有也, 而汝侵蝕之. 又與我連壤而越海事宋, 故有今日之師. 若割地以獻, 而修朝聘, 可無事矣. 熙曰, 非也. 我國卽高句麗之舊也. 故號高麗都平壤. 若論地界, 上國之東京, 皆在我境, 何得謂之侵蝕乎. 且鴨綠江內外, 亦境內, 今女眞盜據其間, 頑黠變詐. 道途梗澁, 甚於涉海, 朝聘之不通, 女眞之故也. 若令逐女眞還我舊地, 築城堡通道路, 則敢不修聘. 將軍如以臣言達之天聰, 豈不哀納. 辭氣慷慨, 遜寧知不可强, 遂且以聞契丹帝曰, 高麗旣請和, 宜罷兵. 熙가 國書를 받들고 遜寧의 營에 가서 譯者로 하여금 相見禮에 대한 問議를 하게 하니, 遜寧이 말하기를 "우리는 大朝이니, 貴人이 마땅히 뜰에서 절을 할지니라." 하였다. 熙가 말하기를 "臣下가 임금께는 아래서 절하는 것이 禮이나 兩國의 大臣이 서로 만나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으리요." 하여 再三 왔다갔다 하였으나 遜寧이 不許하거늘, 熙가 怒하여 돌아와서 宿所에 들어 누워 일어나지를 않았다. 遜寧이 마음 속으로 奇異히 여겨 드디어 堂에 올라 禮할 것을 許諾했다. 遜寧이 熙에게 말해 가로되, "너희 나라는 新羅의 땅에서 일어났고, 高句麗의 땅은 우리의 所有인데, 너희가 侵蝕했으며, 또 우리와 國土가 連接해 있는데 바다를 건너 宋을 섬기기에 오늘의 出兵이 있는 것이니, 만약 땅을 베어 바치고 朝聘하면 可히 無事하리라."하였다. 熙가 가로되 "아니라. 우리 나라는 곧 高句麗의 그루터기이기에 高麗라 이름하고 平壤에 都邑하였느니라. 만약 土地의 境界를 論할진댄 上國의 東京이 다 우리 境域에 있는 것이어늘 어찌 侵蝕이라 이르느뇨? 또한 鴨綠江 안팎이 다 우리 境域 안에 있는데, 이제 女眞이 몰래 그 어간에 자리잡고 頑强하고 狡猾하게 거짓을 變造하여, 通路가 막힘이 바다를 건넘보다 더 심하니, 朝聘의 통치 못함은 女眞 때문이라. 만약 命令해서 女眞을 쫓아 버리고 우리 옛 땅을 돌려주어 城堡를 쌓고 道路를 通하게 한다면 어찌 敢히 修聘을 하지 않으리요. 將軍이 만약 臣의 말로써 天子께 奏達하신다면 어찌 哀納하지 않으시리요." 하여 辭氣가 慷慨했다. 遜寧이 可히 强要할 수 없음을 알고, 드디어 갖추 契丹帝에게 알리어 가로되, "高麗가 이미 和親을 請했으니 마땅히 罷兵함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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