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 - 선생과 스승의 차이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自古로 우리 나라에는 위대한 스승들이 많았다.
新羅에는 一切無碍人의 경지에 도달한 元曉大師가 있었고,
世俗五戒의 實踐倫理를 역설하여 花郞道에 精神的 支柱가 된 圓光法師가 있었다.
高麗에는 王子의 몸으로 宋나라에 가서 佛道를 닦아 天台宗을 일으킨 大覺國師가 있었고,
禪의 三昧境에 들어가 曹溪宗을 창건한 普照國師가 있었다.
朝鮮朝에는 陶山書院을 만들어 天下의 英才養成에 一生을 바친 儒學의 大儒 退溪가 있었고,
弱冠 20세에 聖人이 되려는 큰 뜻을 세우고 救國濟民의 經綸을 폈던 탁월한 大哲 栗谷이 있었다.
韓末에는 務實力行의 철학을 실천한 民族魂의 化身 島山이 있었고,
赤手空拳으로 축적한 全財産을 育英事業에 바친 탁월한 信仰人 南岡이 있었다.
온 겨레가 우러러보는 千秋萬代의 위대한 스승들이 계셨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東北亞의 중심에 自主獨立 국가로서 우뚝 서 있다.
이런 스승들이 안 계셨더라면 우리는 賤民社會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지금 교육의 큰 危機에 직면했다.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드물다.
학생은 不知其數지만 弟子는 적다.
교육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선생과 스승은 精神姿勢가 다르고, 人格의 次元이 틀린다.
資治通鑑(정치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란 뜻)의 名著를 쓴 北宋의 유명한 碩學이요, 정치가인 司馬光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經師易遇 人師難遭
經師는 만나기 쉬워도 人師는 만나기 어렵다.
經書를 가르치는 선생은 많지만 인간의 올바른 道를 가르치는 스승은 드물다.
교과서의 강의를 잘 하는 선생은 많이 있지만 사람의 올바른 道理와 성실한 인격과 敦篤한 정신을 가르치는 스승은 드물다.
인생은 너와 나와의 깊은 만남이다.
인간은 만남의 存在다. 학생은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고, 스승은 훌륭한 제자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만 참된 敎育이 이루어진다.
인간의 一生을 통하여 가장 感激性이 강하고 吸收力이 왕성하고 成長力이 발랄한 시기는 20세를 前後한 때다.
우리는 이 때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 좋은 말씀을 듣고 깊은 感動을 받고 靈魂의 눈을 뜨고 理想의 큰 꿈을 꾸고 새로운 自我를 발견하고 자기의 使命을 자각해야 한다.
새로운 자아의 誕生에는 뛰어난 스승과의 깊은 만남이 필요하다.
플라톤은 스무살 때 哲人 소크라테스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발견했다.
阿難은 젊은 시절에 석가를 만나 진지한 求道者가 되었다.
顔淵은 多情多感한 젊은 시절에 孔子를 만나 精神的 開眼을 경험했다.
젊은 栗谷은 退溪를 만나 충격적 感銘을 받았다.
세상에 훌륭한 스승처럼 고마운 분이 없고 그러한 스승을 만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없다.
스승의 使命과 役割이 무엇이냐.
스승의 사명을 簡潔明快하게 說破한 것은 唐나라의 유명한 文學者요, 思想家인 韓退之다.
그는 「師說」에서 이렇게 말했다.
師者所以傳道授業解惑也
스승의 職分은 세 가지다.
첫째는 전도요,
둘째는 수업이요,
셋째는 해혹이다.
첫째로 스승은 眞理의 傳達者가 되어야 한다.
聖賢의 가르침을 바로 전해야 한다.
올바른 人生觀을 제시하고 인생을 바로 사는 智慧와 信念과 勇氣를 제자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眞理의 탐구와 正義의 실천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둘째는 學業을 가르치고 좋은 강의를 해야 한다.
현대는 高度情報 사회다. 아는 것이 힘이요, 지식과 기술은 인생의 武器요, 생활의 資本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인간으로서의 一般敎養과 전문지식과 전문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일찍이 孟子는 學不厭 敎不倦을 강조했다.
배우는 데 厭症을 느끼지 말고, 가르치는 데 倦怠를 느끼지 말라.
이 여섯 글자는 스승의 金科玉條요, 교육자의 座右銘이다.
끝으로 세째는 解惑이다.
제자가 懷疑와 苦悶과 迷惑에 直面하여 右往左往할 때 그것을 옳게 풀어주고 明快한 解答을 제시해야 한다.
젊은 시절은 인생의 惑이 많은 때다.
올바른 解惑을 하려면 총명한 智慧와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스승은 슬기로운 明智人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關係的 存在다.
인간의 여러 관계 중에서 師弟관계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스승은 제자를 자식처럼 사랑하고 제자는 스승을 부모처럼 존경해야 한다.
上敬下愛, 愛敬은 사제관계의 根本倫理다.
나는 인간생활에서 師弟愛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장 높이 評價한다.
師弟愛는 東洋思想, 특히 儒敎思想의 위대한 傳統이요, 자랑스러운 遺産이다.
우리는 이 고유한 전통과 유산을 길이 保存하고 존중해야 한다.
君師父一體의 사상은 儒敎文化圈 밖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倫理다.
임금과 어버이와 스승을 같은 次元, 같은 水準에 놓고 존중한다는 것은 참으로 卓越한 發想이다.
옛날의 先人들은 이렇게 갈파했다.
七尺去不踏師影
스승과 제자가 同行할 때에는 웃고 떠들어서는 안 된다.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七尺쯤 떨어져서 따라가야 한다.
얼마나 갸륵한 心情인가.
1962년에 나는 일년동안 美國에 交換敎授로 갔던 일이 있다. 그 때 미국교수들에게 君師父一體 思想을 강연했다.
미국 교수들은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하면서 東洋의 精神文化의 뛰어난 面을 알았다고 놀라움을 表示했다.
中國 戰國時代 末期의 사상가인 荀子는 그의 名著 『荀子』의 ‘勸學論’에서 이렇게 말했다.
靑出於藍 而靑於藍
靑色은 원래 藍(쪽 람)이라는 풀에서 取하지만 藍보다 더 푸르다.
弟子는 본래 스승한테서 배우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스승을 凌駕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이 이 문장의 깊은 뜻이다.
이러한 경지를 「出藍之譽」라고 한다.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되어라.」라고 독일의 哲學者 니체는 갈파했다.
靑色이 본시 藍이라는 풀에서 나왔지만 藍보다 더 푸르듯이, 우리는 스승한테서 배우지만 스승보다 더 뛰어난 人物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참으로 훌륭한 제자다.
三字經에 이런 말이 잇다.
養不敎 父之過 敎不嚴 師之惰
자식을 낳아서 기르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過失이요,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 嚴格하지 않는 것은 스승의 怠慢이다.
스승은 제자를 자식처럼 사랑해야 하지만 가르칠 때에는 秋霜처럼 峻嚴해야 한다.
스승이 溫情主義에 빠지어 제자를 엄격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제자의 實力이 생기지 않는다.
論語 述而篇에는 이런 名言이 있다.
子溫而?● 威而不猛 恭而安
이 글은 孔子의 調和的 人格을 제자가 간결하게 설명한 말이다.
선생님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溫和하지만 가을의 서릿발처럼 峻嚴하고 엄격하였다.
?●는 사나울 려 字다.
공자는 威嚴이 있었지만 威壓的이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恭遜하고 조심성스러웠지만, 對하기가 부드럽고 平安했다.
溫과 嚴, 따뜻함과 엄격함이 잘 조화된 孔子의 원만한 人品을 설명한 이 유명한 문장은 스승에게 그대로 該當되는 말이다.
스승은 溫?●兼備해야 하고 柔와 剛을 구비해야 한다.
敎育은 人生의 大本인 동시에 국가의 大本이다.
“국가의 興亡盛衰는 靑年敎育 如何에 달려있다”라고 플라톤은 강조했다.
교육이 일어나면 나라가 일어나고, 교육이 衰退하면 나라가 쇠퇴한다.
교육은 국가의 生命線이요, 興國의 根本이다.
“天下의 英才를 모아서 가르치는 것은 인생의 三樂이다.”라고 孟子는 갈파했다.
歷史는 훌륭한 스승을 가다리고 있다.
민족은 才德兼備의 젊은 스승을 간절히 待望하고 있다.
민족과 역사의 간절한 부르심에 勇敢하게 應答하는 젊은 人材들이 많이 輩出하기를 鶴首苦待하면서 이 글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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