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나는 몹시 실망했다 -김구지(金仇知)-

浩 根 書 堂 2019. 1. 24. 02:43







나는 몹시 실망했다 
-이황이 아들 준에게 보낸 답장[答寯]


김구지(金仇知) 등이 와서 네 편지를 받아 보고, 네가 무탈한 것을 알게 되어 몹시 기쁘다. 나는 앞서 이질을 앓았는데, 이제는 벌써 다 나았다. 다만 말을 타고 나가면 두 다리가 때때로 부어 염려스럽다. 네가 이제 기일에 맞춰 와서 별시(別試)를 본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동접(同接)의 여러 벗이 모두 와서 시험을 보고, 사방의 사람들이 온통 몰려들어 시끄러운데 너 홀로 물러나 향촌에 앉아 있으면서 격동되는 마음이 없다면 되겠느냐? 그래서 앞서 편지에서 여러 벗들과 함께 와서 구경 한 뒤에 머물러 겨울을 나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네 편지를 보니 시험을 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줄을 스스로 알아 기일에 맞춰 와서 시험을 보려 하지 않는 게로구나. 이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네가 평소에 세운 뜻이 없어, 이같이 사림(士林)이 고무되는 때를 당하여서도 또한 격앙되어 분발하려는 뜻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몹시 실망스럽다.

 

하지만 이제 여러 벗들이 이미 모두 길을 떠났을 테니 너는 기일에 맞춰 오지 못할 게다. 그렇다면 9월 보름에도 굳이 올라올 것 없다. 게다가 서울집은 춥고 고생스러워서 겨울나기도 어렵다. 그래서 조카 복(宓)과 조윤구(曺允懼) 등도 시험을 치른 뒤에는 모두 내려가려고 한다. 네가 비록 이곳에 오더라도 함께 공부할 사람이 없으니 오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본시 배움에 있어 뜻이 독실치 못하다. 만약 집에 있게 되면 그럭저럭 날이나 보내며 더더욱 공부를 폐하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서둘러 조카 완(完)이나 그밖에 뜻이 독실한 벗과 함께 책상자를 지고서 절로 올라가, 삼동(三冬)의 긴긴 밤을 부지런히 독서하도록 해라.

 

내년 봄에 복이 등이 모두 올라오려 한다니, 너도 그때 함께 서울로 와서 동접들과 여름을 나면 아주 좋을 것이다. 네가 지금 부지런히 공부하지 않으면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가서 한번 가면 뒤쫓기가 어렵다. 마침내 농부나 병졸이 되어 일생을 보내려 한단 말이냐? 천번 만번 마음에 새겨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가을 걷이 같은 일은 비록 성근 구석이 있더라도,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金仇知等來, 得見爾書. 知爾無病, 深喜深喜. 余前患痢疾, 今已平復, 但騎馬出行, 則兩脚時時浮腫, 爲慮爲慮. 且汝於別試, 雖及來見, 固知無益. 然同接諸友, 皆來赴試, 四方之人, 雷動雲合, 汝獨退坐鄕村, 無感激之心可乎? 以此前書, 欲令與諸友偕來, 觀光後, 仍留過冬云云 今見汝書, 自知無益, 而不欲及來見試. 此無他. 汝素無立志, 當此士林鼓舞之時, 亦不起激昻奮發之意也. 余甚失望失望. 然今則諸友皆已發行, 汝不及來矣. 然則九月望時, 不須上來也. 且京家苦寒, 過冬亦難. 故宓姪及曺允懼等, 過試後, 皆欲下去, 汝雖來此, 無與同學, 不如不來. 然汝本不篤志於學, 若在家, 悠悠度日, 尤爲廢學, 須速與完姪, 或他篤志之友負笈, 上寺, 三冬長夜, 勤苦讀書. 來年春, 宓等皆欲上來, 汝其時偕來于京, 同接過夏, 甚善甚善. 汝今不勤苦做業, 隙駟光陰, 一去難追, 終欲作農夫隊卒以過一生耶? 千萬刻念, 無忽無忽. 至於秋收等事雖云虛踈, 學者不當掛懷也.

1542년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앞서 편지에서 동접들이 과거 시험 보러 상경하는 길에 함께 올라와서 시험도 보고, 서울집에 머물며 겨울을 나라고 일렀었다. 하지만 공부에 자신이 없었던 아들은 시험을 본댔자 떨어질 것이 뻔하니 이번에는 올라가지 않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아버지는 아들이 과거 시험장에 들어가 팔도에서 모여든 인재들의 열띤 분위기를 보고 분발하는 마음을 키워 공부에 더 매진하게 할 작정이었는데, 자신감을 잃고 제풀에 주저 물러앉은 아들이 못내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매정스럽게 과거를 보러 올 양이 아니면 아예 올라오지도 말고, 바로 산사로 들어가 겨우내 발분해서 공부를 하라고 다그쳤다. 추수 따위의 집안 일은 다소 문제가 생겨도 상관 없으니,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에만 몰두하라고 주문했다. .

  'TIP' 서당(書堂)-김홍도(金弘道)|

• 작품명 : 서당



• 작가 : 김홍도


• 제작연대 : 18세기 후반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재 료·크 기 : 종이에 옅은 채색, 27.0×22.7㎝

방금 훈장으로부터 회초리를 맞은 학동은 한 손으로 대님을 매고 다른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훈장의 얼굴에는 웃음을 참느라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고, 학동들은 까르르 웃고 있다.

 

 이 그림에서도 맨 아래 등을 보이는 학동의 표현이 흥미로운데,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구불구불한 옷선에서 쿡쿡 웃는 모습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웃음과 울음의 표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청각적인 효과마저 살아나고 있다. 이 그림은 등장인물 간의 감정 표현을 적절하게 구성한 작품이다


 





출처 : 아름다운황혼열차(黃昏列車)
글쓴이 : 석양*노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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