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이 땅은 아름답다.

浩 根 書 堂 2012. 1. 29. 05:04

이 땅은 아름답다.

 

이 땅은 아름답다. 봄꽃이 피고 여름 소낙비가 내리는 풍광이 아름답다. 가을 단풍이 물들고 겨울 눈발이 날리는 풍광이 아름답다. 대지의 축복이다. 풍광이 아름다운 데에 이유는 없다. 화려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위대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어쩌면 누추할지 모르고 어쩌면 왜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풀 한 포기, 흙 한 줌도 우리와 함께 살아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서, 아름답다. 먼 훗날에도 우리의 후손들과 함께 살아갈 것임에 소중함을 느낀다. 그래서, 아름답다. 먼 옛날에도 우리의 선조들과 함께 살아왔을 것임에 애틋함을 느낀다. 그래서, 아름답다. 세모를 앞두고 이 땅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소소한 상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누구보다 이 땅을 사랑했던 선비의 글이 하나 생각나 아래에 옮겨 본다. 그의 이름은 이종휘(李種徽, 1731-1797), 동사(東史)를 지은 역사가이다.

 

천하의 이름난 산과 큰 강을 말할 때 반드시 오악(五岳)1)과 사독(四瀆)2)을 꼽는다. 안탕산(鴈蕩山)3)과 나부산(羅浮山)4)은 산세가 하늘에 닿고, 부강(府江)은 함께 섞여 바다와 가이 없지만, 성명문물(聲明文物)과 예악도수(禮樂度數)는 저쪽에서 나고 이쪽에서 나지 않으니, 크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순의 도읍은 기()였고, 하나라는 안읍(安邑), 은나라는 박읍(亳邑), 주나라는 호경(鎬京)이었지만 어진 마을을 말할 때 반드시 추로(鄒魯)를 일컫는 것은 또한 사방으로 통하는 큰 도읍이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현(儒賢)이 대대로 배출되어 점점 변해서 풍속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명과 실이 어디에 있는지 변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주의 오랑캐가 중국에 들어가 주인 노릇을 하니 중국의 교화가 쓸려 버려 다시 남은 것이 없어져 머리를 깎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게 되었다. 이른바 중국이라는 것을 구하고자 해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오악은 불룩하게 있고 사독은 우묵하게 있고 진()과 한()의 도읍과 개봉부(開封府)와 금릉성(金陵城), 전당성(錢塘城)은 역대 황제가 차례로 살고 옮기며 법도를 경영한 곳이지만, 이제는 모두 영주(永州)의 철로보(鐵爐步)5)가 되었다. 이것으로 문물을 구한다면 보인(步人)에게 비웃음을 당하지 않는 일이 드물 것이다. 이는 명과 실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는 자인 것이다.

 

지금 온 천하가 오랑캐 땅이 되었는데 머리 깎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사람들 사이에 의관조두(衣冠俎豆)와 문물예악(文物禮樂)을 지키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기자(箕子)가 봉해진 곳이요 그 인민은 반만 명 은나라 사람의 후예요 그 이름이 천하에 알려진 것이 고군자국(古君子國)이다. 지금 세상에서 추로(鄒魯)의 풍속으로 의관을 하고 있고 이락(伊洛)의 풍속으로 예의를 지키고 있다. 저기 불룩하고 우묵한 것이 다시 오악과 사독에 양보함이 없다.

 

그러니, 지금 중국을 구하려는 자는 마땅히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지 않으니 다시 하필 종남(終南)과 위수(渭水), ()()()()6)의 사이에서 찾을까? 천하의 중앙을 알고 싶다면 북쪽의 연()도 좋고 남쪽의 월()도 좋다. 연에도 도읍이 있고 월에도 도읍이 있으니 중앙이란 것이 정해진 곳이 없음이다. ()에는 오두막이 없고 호()에는 활과 수레가 없다.7) 이는 사물에 정해진 것이 없음이다. 사람이 능히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능히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니, 중국이 중국인 까닭도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 땅에도 천하가 있다하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옛날 맹자는 등나라 임금에게 권하기를 왕자(王者)가 일어나면 취해 법으로 삼으라하였으니, 압록강 동쪽을 들어 강한(江漢)의 풍속을 기대해도 주()의 이남(二南)8)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논어에서는 나는 그 나라를 동주(東周)로 만들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이 책은 동주직방지(東周職方志)’라 불러도 좋다. ‘소중화광여기(小中華廣輿記)’라 일러도 좋다. ‘동국여지승람이라고 한 것은 황조(皇朝)의 세상을 만난 배신(陪臣)의 말이었다.

 

주석

1) 오악(五岳) : 중국의 오대 명산. 역대로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동으로 태산(泰山), 서로 화산(華山), 남으로 형산(衡山), 북으로 항산(恒山), 가운데에 숭산(崇山)이 그것이다.

2) 사독(四瀆) : 중국의 사대 강. 역대로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장강(長江), 황하(黃河), 제수(濟水), 회수(淮水)가 그것이다.

3) 안탕산(鴈蕩山) : 중국 절강성(浙江省)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높은 절벽, 기이한 봉우리, 폭포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4) 나부산(羅浮山) : 나부는 중국 광동성(廣東省) 동강(東江) 북쪽에 위치한 산 이름으로 진()나라 갈홍(葛洪)이 도를 닦았던 곳이다.

5) 철로보(鐵爐步) : 당나라 유자후(柳子厚)가 철로보지(鐵爐步志)라는 글을 지었는데, “전에는 철공소(鐵工所)가 있었으므로 철로보(鐵爐步)라 하였지만 지금은 철로가 없는데도 그대로 철로보라 하니 이름만 있고 실제는 벌써 없어졌다.” 하였다.

6) ()()()() : 사독과 오악. , (), (), (), ()가 사독(四瀆)이고 대(), (), (), (), ()이 오악(五岳)이다.

7) ()에는 오두막이 없고 호()에는 활과 수레가 없다 : 주례(周禮)고공기(考工記)秦無廬胡無弓車라는 구절이 있다. 진에 오두막이 없다는 것은 오두막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오두막을 만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오두막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이고, 호에 활과 수레가 없다는 것도 활과 수레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활과 수레를 만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활과 수레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이다.

8) ()의 이남(二南) : 원문은 周之有二인데 문맥상 二南으로 생각된다. 이남은 시경(詩經)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가리킨다. ‘二南風化라는 말이 있듯 도적적인 교화를 상징한다.

 

- 이종휘 (李種徽), 「『동국여지승람의 뒤에 부친다(題東國輿地勝覽後), 수산집(修山集)

 

 

겸재의 그림_겨울풍경

 

<원문>

 

天下名山大川必稱五岳與四瀆也鴈蕩羅浮勢極于天府江混同與海無涯而聲名文物禮樂度數者出於彼而不出於此則非以其大也唐虞都冀夏居安邑殷亳周鎬而言仁里者必稱鄒魯則亦非以通都大邑也儒賢世出而漸漬於成俗知乎此者可以卞名實之所在也自滿藩入主中國而中國之敎蕩然無復存者髡首左袵欲求其所謂中國而不可得矣五岳窿如四瀆窪如如秦京漢都開封之府金陵錢塘之城皇王帝伯所以更居迭遷經營規度者皆永州之鐵爐步也以是而求其文物其與爲步人之笑者幾希此不知名實之所在者也今有擧天下甌脫而衣冠俎豆文物禮樂於髡首左袵之間而其國箕子所封也其人民半萬殷人之裔也其號於天下者古君子國也其在今世鄒魯而衣冠也伊洛而禮義也彼窿如窪如者又不讓於五岳而四瀆也則今之求中國者宜在此而不在彼又何必終南渭水河嵩濟岱之間哉欲知天下之中央燕之北越之南是也燕亦有都粤亦有都是中無定處也秦無廬胡無弓車是物無定物也夫人而能爲此也夫人而能爲此也則中國所以爲中國盖亦在人而不在地也語云郢有天下豈不然哉昔者孟子勸滕君以爲有王者作而取法焉則擧鴨綠以東而庶幾江漢之俗無媿於周之有二論語曰吾其爲東周乎然則是書也謂之東周職方志可也謂之小中華廣輿記亦可也其云東國輿地勝覽者當皇朝世陪臣等之言也

 

<해설>

 

역사와 지리는 국가 지식의 보고(寶庫)이다. 그 나라의 시간과 공간이 여기에 담겨 있다. 조선시대 국가 지식의 보고는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이었다. 그런데, 동국통감을 누가 읽느냐는 옛말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동국여지승람의 경우 다행히도 그런 옛말은 보이지 않지만, 역시 후대로 갈수록 실용적인 가치는 낮아졌다.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이 개탄했듯 성종대에 제작된 동국여지승람이 중종대에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새 단장을 한 후 오랫동안 업그레이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윤석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종휘는동국여지승람에서 기쁨을 느꼈다. 아니,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다. 그 고전적인 가치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이종휘가 동국여지승람에 특별한 애착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천부적인 산수벽(山水癖) 때문인 것 같다. 이 땅의 아름다움을 몹시도 사랑했던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 땅 전체를 다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국토를 흐르는 물줄기의 원위와 형세를 자세히 연구해서 청구수경(靑邱水經)을 지었다. 조선수(朝鮮水) 11, 삼한수(三韓水) 18, 예맥수(濊貊水) 7, 옥저수(沃沮水) 5개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종휘가 사랑한 이 땅이 단지 아름다운 산수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땅은 자연과 더불어 문화가 있는 곳이고, 오늘날의 사람과 더불어 옛날의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부여나 경주와 같은 고도(古都)에 가도 옛 역사를 까마득히 망각하고 단지 산수만을 볼 뿐이라면, 폐허로 남은 유적지를 보아도 아무런 사연을 생각지 않고 망설임 없이 휙휙 지나갈 뿐이라면, 그는 진정으로 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 땅이 곧 옛 사람이 태어난 동방의 나라이고, 내가 타고난 언어와 기품과 성정이 곧 옛 사람도 타고난 동방의 풍기라는 사실에 감동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보는 수풀과 들판을 옛 사람도 보았던 것이고, 내가 입는 옷과 내가 먹는 음식도 곧 옛 사람이 입고 먹었던 것이라는 사실에 감동할 수 있는 사람! 이 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이종휘는 이런 마음으로 청구고사(靑邱古史)를 지었다.

 

지리와 역사가 어우러져 문화를 이룩한다.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은 근원적으로 이 땅의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확대되고 이 땅의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전승된 이 땅의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확대된다. 나의 순수한 양지(良知)가 이 땅과 만날 때, 그 땅은 역사가 되고 그 땅은 문화가 되어 찬란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종휘는 양명학에 공감한 인물이다. 양명학의 정감으로 이 땅의 아름다움을 심득(心得)한 순간,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열정을 견디지 못했다. 그것이 청구수경청구고사의 편찬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동국여지승람동주직방지소중화광여기라고 이름을 바꿀 것을 제안한 이유였다. 이 땅의 아름다움의 본질은 수 천 년 정련된 도덕 문명이니, 그리고, 지금은 세계 유일의 도덕 문명을 영위하고 있으니, 이제 이 땅의 이름을 동국에서 동주로 또는 소중화라고 불러 주자는 것이었다.

 

새해에는 이 땅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산을 깎아 버리고 강을 파헤쳐 버리고 바다를 메워 버렸던 이욕(利慾)의 세파가 맑게 정화되었으면 좋겠다. 이 땅이 곧 역사이고 이 땅이 곧 문화이고 이 땅이 곧 문명임을 생각하는 인문학적인 감성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출처 : 가양주(家釀酒) 빚는 사람들
글쓴이 : 묵향(지명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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