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신언서판

浩 根 書 堂 2010. 1. 19. 03:22

내가 가는 길을 성찰(省察)하며 가자.

                                                                                                                                                                2008. 4. 14.

 

우리가 무엇을 배우려면 꼭 어떤 유명(有名)한 선생이나 거장(巨匠)에게서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사람이 행하면 반드시 스승이 있는 것이니, 그 착한 것을 가려서 쫓고, 그 착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나의 허물을 고치는 것이다.(논어 7, 21) 하였다.

 

이렇게 되면 선생이 따로 있지 않아도 우리(나)는 어디에서나, 누구에게서나 배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단지

내가 취사선택(取捨選擇)만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취사선택의 판단(判斷)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판단의 기준(基準)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옛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으로 판단을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중국에 당(唐)나라에서는 관리(官吏)를 뽑는 과거(科擧)의 기준으로 신언서판을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1,500 여 년에 일이다. 그러나 오래 됐다는 이유만으로 오래 된 것은 모두 틀리거나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들이 많다. 하나 더하기 둘은 셋인데 그게 오래 됐다고 달라질 것인가? 변(變)

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이 있다. 방법적(方法的)은 시대(時代)와 장소(場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지만

원칙(原則)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니, 셈하는 방법은 달라 질 수 있을 것이지만 정답(正答)은 항상 같은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사는 자체(自體)는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인(東洋人)이나 서양인(西洋人)이나 같은 것이다. 단지(但只)

종교(宗敎)에 따라 다르게 가르칠 뿐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말하자면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 공경(恭敬, 사랑)하고, 자기 영혼(靈魂)을 구(求,

구원받음)하는 것”이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목적(目的)인 것이다. 그래서 이 목적을 위하여 배우고,

선행(善行)도 하는 것인데 이 목적이 다르면 함께 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공자도 길(道,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같지 아니하면 서로 일을 도모(圖謀)하지 못할 것이라(논어 15, 39)고 하였다.

 

하느님을 공경하고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진리(眞理)의 길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가

달라서 상호 함께 일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고, 비록 종교는 같다고 하더라도 진리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몸을 닦는(修身)것은 사람을 편안히 하기 위함이라((修己以安人, 논어 14, 45)하였으니, 사람(이웃)을 사랑

하기 위하여 나를 수양(修養,)하는 것이며, 말을 교묘한 말(巧言)은 덕을 어지럽힌다.(巧言亂德, 논어 15, 26)

하였으니 말을 바르고 착하게(善言語)하고,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로, 벗으로써 어진 덕을 보필(輔弼)한다.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논어 12, 24)하였다.

 

그리고 판단력이 있으면 그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갖춘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모두가 사람의

최후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이지 목적은 아닌 것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방법과 목적을 구별 못하고

방법을 목적인양 착각(錯覺)하는 경우도 있다.

 

돈을 버는 것도, 인격(人格)을 수양(신원서판)하는 것도 사람이 사는 목적을 위한 방법이지 목적은 아닌

것이다. 목적에는 최후(最後)목적도 있고, 중간(中間)목적도 있다. 중간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최후목적은 사주구령(事主救靈)하는 것 뿐이고, 중간 목적은 그 최후목적에 도움이 되기 위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만일 어떤 중간 목적이 최후목적에 지장이 되면 그 중간 목적은 포기(抛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줄을 알지 못하고 계속 거기에서 떠나지 못하면 잘 못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면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바른 길인지 아닌지 점검(點檢)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것을 반성(反省), 혹은 성찰이라고 한다. 증자는 일일삼성(一日三省, 논어 1, 4)한가고 하였다.

 

                                                                                      

출처 : 연정의 먹빛여행
글쓴이 : 蓮亭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