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堅壁淸野(견벽청야)

浩 根 書 堂 2010. 12. 29. 09:41

 

 

[고사성어](견벽청야)

 

 

[字解]

 : 굳을 견
 : 벽 벽
 : 맑을 청
 : 들 야 

 

[意義]

성벽을 굳게 하고 곡식을 모조리 걷어들인다는 뜻으로, 적의 양식 조달을 차단하는 전술의 하나이다.

 

[出典]

삼국지() 순욱전()

진서(晉書) 권104 후조재기(後趙載記) 석륵(石勒)

 

[解義]

중국에서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해온 방어전술의 하나이다.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들어 있는 모든 곡식을 모조리 성내로 걷어들여 공격해 오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이러한 전법은 우세한 적에 대한 수단으로 흔히 약자가 사용한다.

청태조() 누르하치 공격으로부터 영원성()을 사수()함으로써 패퇴시켰던 원숭환()의 견벽청야 작전은 유명하다.

 

삼국지()의 순욱전()에, 위()의 조조()가 영주의 복양에 진을 치고 있는 여포()를 강하게 공격하였으나 여포는 무리한 싸움을 피하고 지구전()으로 맞섰다.

이때 서주목사(使) 도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조는 서주를 빼앗기 위해 군사를 돌리려 하였다. 그러나 명참모 순욱이 이 작전을 말렸다.

“도겸이 죽으면서 서주의 인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깔보는 것은 금물입니다. 지금은 보리를 걷어들일 때이므로 서주에서는 주민을 총동원해 보리를 성내로 걷어들이고 성벽을 다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견벽청야’이므로 우리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을 것이며 만일 이때 여포가 이틈을 노려 공격해 온다면 그때는 끝장입니다.”

견벽청야 전술을 모를 리 없는 순욱이 조조에게 진언하고, 조조는 서주탈환 작전을 취소하고 여포공략에 힘을 쏟아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서진(西晉) 말기, 황하 유역에서 활동하던 갈족(族)의 지도자 석륵은 사나운 군사들을 이끌고 여러 차례 진(晉)나라 군대를 쳐부쉈다. 석륵은 매번 공격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죽여, 그 수효가 거의 백만에 달했다.

언젠가 석륵은 군대를 이끌고 수춘(壽春) 일대를 공격하다가 진나라 군대에게 크게 패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당시 진나라 군대는 석륵이 복병을 매복시켜 놓았을까 두려워 추격을 하지 않고 수춘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석륵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자, 부근의 백성들은 석륵의 약탈과 만행에 대항하기 위해 성벽(城壁)를 단단히 하고 들판을 깨끗이 치워 석륵의 군대가 빼앗아 갈 것이 없도록 하였다[皆堅壁淸野, 采掠無所獲]. 석륵의 군대는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서로를 잡아먹었다. 이에 석륵은 군대를 이끌고 스스로 철수하였다.

 

*勒(굴레 륵,늑)  載(실을 재)  (불깐 흑양 갈)  族(겨레 족)  壽(목숨 수)  春(봄 춘)  皆(다 개)  采(캘 채)  掠(노략질할 략,약)  無(없을 무)  獲(얻을 획)

 

[English]

-To strengthen the defences and clear the fields.[견벽청야(堅壁淸野)]

-To strengthen the defences and clear the fields to prevent  the enemy from getting food. [방어(防禦)를 강화(强化)하고 적들이 식량(食糧)을 구하지 못하도록 들판을 깨끗이 하다]

 

출처:NAVER백과사전.풀어쓴 중국고전.

 

출처 : 한문과 인생
글쓴이 : 于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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