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를 찾아서

浩 根 書 堂 2011. 12. 10. 16:07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를 찾아서

 

홍성은 천안과 함께 충절의 고장인 충청남도 안에서도 애국지사와 충신 등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최영장군과 사육신 성삼문선생, 그리고 이름없이 죽어간 9백의총에 묻친 영령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 중 오늘은 만해 한용운선생의 생가지를 방문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얼마전 서해고속도로를 타고 안면도를 가는 길에 홍성 톨게이트로 빠져나오자 마자 만해 한용운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안내판이 나란히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김좌진 장군 생가지는 홍성톨게이트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고, 한용운선생의 생가지는 그 앞을 통과하여 10여분 더 가야했다. 나는 그날 정해진 일정 때문에 부득이 주마간산격으로 둘러 보았는데도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오늘 또 다시 집중적으로 취재를 해 보야겠다는 생각이들어 방문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천안에서 출발하여 예산을 거쳐 홍성을 향해 달리는데, 홍성읍 가까운 곳을 통과하려니 만해 한용운선생과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안내판이 역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두 분의 생가지가 방뱡이 같고 거리상으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홍성에서 갈산방면을 향해 달리다 구항을 지나니 한용운선생의 생가지인 결성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와 오늘은 김좌진 장군생가 쪽을 통과하지 않고 직접 결성으로 달렸다.

 

 

한용운선생 생가지(韓龍雲先生 生家址)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앞에 안내판이 있어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

 

"이곳은 일제 식민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불교시인인 한용운(한용운, 1879~1944)선생께서 1879년(고종16년)에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1904년에 강원도 인제 내설악산의 오세암(五歲庵)에 출가하고 1095년 백담사(百潭寺)에서 득도하였다. 계명(戒名)은 봉완(奉阮)이고 법호(法號)는 만해(卍海), 법명(法名)은 용운(龍雲)이다.1919년 3.1독립운동을 이끈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의 공약3장(공약삼장)을 작성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 받았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간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서고 민족혼을 깨우려고 노력하였다. 1944년 5월 9일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66세를 일기로 입적하니 유해는 망우리에 안장되었다. 선생은 세상를 마칠 때까지 불교를 통한 애국청년 운동과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사상을 북돋워 일으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 되었다."

 

만해체험관

 

주차장 안쪽에 만해체험관이 있는데 내용을 보충하여 4월에 다시 문을 연다고 하여 들어가 보지 못했다.

관리인의 설명에 의하면 특히 단체로 방문하는 학생들을 위한 훌륭한 산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한다.

 

 

 만해체험관 앞에 세워 놓은 동상

 

 

시비공원쪽 풍경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넓은 공원이 보인다. 주위에는 어록비와 몇개의 시비가 있

고 멀리 소나무가 있는 산에는 민족시인 20명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성역화기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오른쪽에는 만해한용운선생 생가지 성역화기비가 있고, 왼쪽에는 아래 사진의 공

약3장이 서로 마주보고 서있다. 이곳을 성역화비는 1,999년에 세웠다.

 

公約三章(공약3장) 

 

 

公約三章(공약삼장)

 

ㅡ.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生存(생존),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 (민족적) 要求(요구)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ㅡ.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 히 發表(발표)하라.

ㅡ.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옛 우물 터

 

공원 내에는 만해 한용운선생이 마시고 자랐다는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곳을 찾는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어록비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생가원경

 

공원 왼쪽 솔받 아래에는 한용운 선생의 생가가 잘 복원되어 있다. 뒷산의 소나무와 집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들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울타리 앞 마당 옆에 있는 뒷간이 시골출신 관광객들에게 더욱 향수

를 느끼게 한다.

생가 근경

 

초가 3칸짜리 생가, 방 2개에 부엌이 딸려 있다.

 

만해의 글씨 전대법륜(轉大法輪)과 한 서예가가 쓴 "님의침묵"

 

 

관리사무소

 

한용운 선생의 생가 앞에는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초가집이 하나 더 있다. 이곳은 관리

사무소인데 초가집을지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 놓앗다. 이곳의 관리소에 가면 면장출신으로 정년퇴임을

한 전하수씨가 홍성군문화관광해설사로서 수고를 하고 있다. 젊은 아가씨 안내원보다 경륜이 있는 지역

사회 유지가 헌신적으로 수고 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만해사당으로 가는 길

 

사당은 생가와 관리사무소 사이를 통해 올라가면 된다.

만해사

 

사당인 만해사(卍海祠)는 一자형으로 되어 있고, 안에는 만해 한용운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만해

사(卍海祠)라는 편액 글씨는 수덕사 방장스님을 지내신 원담스님이 썼다.

만해 한용운 선생 영정

 

 

민족시비공원

 

생가 오른편 뒷산에는 민족시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한용운선생을 위시하여 김소월. 이상화. 변영로. 심훈. 정지용. 김광섭. 유치환. 백석. 이육사. 김달진. 조치훈. 박두진. 윤동주. 구상. 정한모. 김수영. 신동엽. 조태일. 김남주선생등 민족시인들의 주옥 같은 시를 아름다운 돌에 새겨 세워 놓았다.

 

시비공원 올라가는 길

 

나는 한용운선생 생가를 방문하기 전에는 이곳에 이렇게 훌륭한 시비공원이 있을줄 몰랐다.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돌에 새겨 놓은 주옥 같은 시를 돌아 보노라니 애국심이 절로 솟아 오르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애국정신을 길러주는 산 교육의 장으로 이와같이 훌륭한 곳도 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비는 앞으로 계속 연재하며 내 자신 공부를 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김좌진장군 생가지 앞을 통과하여 달리다

보면 위의 이정표가 나온다.

 

삼거리에 세워 놓은 마지막 이정표

 

출처 : 반석 같은 친구
글쓴이 : 푸른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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