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논어- (曾子三省)

浩 根 書 堂 2012. 3. 7. 20:06

 

曾子曰 吾 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증자왈 오 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증자가 말하기를, 자신의 잘못을 하루 세 번씩 반성함은 생활에 보다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曾子)증자 : 자는 자여(子輿).

공자의 문하생으로써 공자보다 46세가 적음.

대학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대학은 예기의 한 부분이며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로,

유가의 덕목인 충(忠)과 서(恕)의 중요성을 강조함.

논어(論語)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孝로써 알려진 인물.

(孝)효의 3단계 : 부모를 기리며,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부양한다.



吾(오) : 나, 우리

三省(삼성) : 세 번 반성하다

爲人謀(위인모) : 남을 위하여 일을 꾸밈




증자가 말하는 하루 세 번의 반성은 다음과 같다.


1. 남과 같이 일을 함에 있어 진심을 다 했는가,

2. 친구와 사귐에 있어 믿음과 의리를 다 했는가,

3. 아는 체 하며 잘못된 것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견 해>


一日三省 : 남을 위해 성심을 다하고 신의를 지키며 내공을 쌓으라.


 

<펌>-증자 이야기-


공자(孔子)의 제자(弟子) 가운데 증자(曾子)는 孝行(효행)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에 관한 많은 일화(逸話) 중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번은 증자가 참외밭을 매다가 잘못해 그만 참외를 뿌리째 뽑고 말았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 증석(曾晳)이 몽둥이로 등을 마구 후려쳤는데

얼마나 맞았는지 까무라쳐 한동안 일어나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한 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증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까 제가 아버님께 죄를 지었을 때 아버님께서 너무 힘껏 훈계하셔서 혹 병환이나 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거문고를 타면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아버지께 보여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행동을 어찌 보면 아버지를 위한 효라고 하기에는 미련스러워 보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제(齊)나라에서 그를 불러 경(卿)을 삼고자 했으나,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다면서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계모 밑에서 몹시 구박을 받고 자랐지만 묵묵히 변치 않고 잘 봉양했으며,

아내가 부모의 조석 상에 덜 익힌 나물을 올렸다고 해서 쫓아내고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효행(孝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반성(反省)한 사람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남을 도와주면서 정말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큼 성실하게 도와주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건성에 불과할 뿐이니 진정한 도움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친구와 교제(交際)를 하면서 혹 신의(信義)없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면 결국 신의를 해치는 것이 되며, 나아가 자신의 해악(害惡)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깊이 새길 만하다 하겠습니다.

여기서 친구는 굳이 벗의 개념을 넘어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스승에게 배운 바를 잘 익혔던가 하는 점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게을리 하면 결국 그 도(道)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고 또한 잘못된 지식을 다시 제자에게 전하는 이중의 죄악(罪惡)을 범하게 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은 증자가 주창한 것이라고 하여 증자삼성(曾子三省)이라 불리어졌으며 원문으로 보면,

 

“위인모이불충호”(爲人謀而不忠乎),

“여붕우교이불신호”(與朋友交而不信乎),

 “전불습호”(傳不習乎)

라 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부터 2500년 전의 이야기라 현실성이 다소 결여된 감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眞理)의 뿌리는 영원하며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뿌리가 튼튼하다면,

그 진리는 빛을 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은 진실(眞實), 신의(信義), 노력(努力)을 강조한 것이니 말입니다.


증자는 소문난 효자였지만 스승인 공자의 눈에는 조금 미련하게 보였나 봅니다.

공자는 스승을 찾아온 증자를 문전박대하면서,

 

"옛날 순(舜) 임금은 어릴 적 아버지와 계모의 미움을 받았지만 효심이 지극했다.

 부모가 노여워 때리고자 회초리를 들면 무릎 꿇고 맞았지만,

 죽이고자 몽둥이를 들면 달아나서 부모님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고로 그 부모는 자식을 죽이는 큰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증자는 부친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고 기절까지 한 적이 있다, 누가 더 효자인가?"

하면서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조선 전기의 학자 강희맹(姜希孟)의 등산설(登山說)에 보면

 노(魯)나라에 아들 셋을 둔 사람이 있었는데,

첫째는 성품이 침착하였으나 발을 절었고,

둘째는 기이(奇異)한 것을 좋아하고 몸이 온전하였으며,

막내는 행동이 경박(輕薄)스러웠으나 몸이 날래고 용맹(勇猛맹)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들 삼형제는 태산(泰山)을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둘째와 막내는 자신들의 재주만 믿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산 중턱에 겨우 당도(當到)했을 무렵 어둠이 내렸으므로 중도에서 포기를 해야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절름발이지만 성품이 침착한 첫째는 쉬지 않고 걸어 정상(頂上)에 올랐고,

 다음날 새벽에는 일출(日出) 광경(光景)까지 목격(目擊)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자식들로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듣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자로의 용맹과 염구의 재주로도 끝내 공자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노둔한 증자는 마침내 이르렀으니, 너희들은 이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라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공자에게 지혜로운 제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결국 증자가 공자의 제자로서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하루에 세 번 반성하여도 성인이 될 수 있는바 사람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한다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출처 : 예등
글쓴이 : 禮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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