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조선시대의 논 한마지기 가격은.

浩 根 書 堂 2016. 1. 16. 07:20

 

 

 

 

1877(고종14) 과부 주씨(朱氏)는 남원(南原) 중방방(中方坊) 신기촌(新基村)에 있는 주자답(宙字畓) 3두락(斗落), 13() 3()60()에 팔면서 매매문서인 명문을 작성하였다. 그런데 이 명문을 보면 두락(斗落), (,) (), (), 등의 단위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단위들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그것들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이 단위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알지 못하고 이 단위들이 현재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두락(斗落)이라는 단위를 보자. 두락(斗落)이라는 단위는 요즘 쓰이고 있는 마지기와 같은 의미이다. 이 마지기라는 단위는 두락이라는 한자를 한글로 풀어서 쓴 표현인데, 이는 한 말의 씨앗을 파종할 수 있는 넓이의 면적이다. 원래는 말지기라고 해야 하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탈락되어 마지기라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러한 마지기라는 단위는 파종량에 따라 토지면적을 산출하는 방법으로 조선시대 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농촌에서 쓰이고 있다. 한 마지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200평 정도인데 이는 우리가 다녔던 학교 교실 한 개의 넓이가 50평이라고 볼 때, 교실 4개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국가에서 정한 토지면적 계량법은 결부법(結負法)이었고 세금도 이 결부법(結負法)에 의해 납부하였다. 이 결부법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토지면적을 계량하는 방법으로 곡식단 한 줌을 1(,) 10() 1(), 10()1(), 100()1()이라 하였다.

그런데 과부 주씨(朱氏)가 작성한 명문에 보면 토지의 면적을 표기할 때 파종량에 의한 단위인 3두락(斗落)이라는 표현과 수확량에 의한 표현인 13() 3()이라는 두 가지를 함께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파종량에 의한 토지면적과 수확량에 의한 토지면적을 함께 표시한 것은 이러한 토지계량의 방법들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를 상호 보완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조선시대 쓰였던 화폐단위는 문(), (), (), ()이며 10()1(), 10()1(), 10()1()이 된다. 우리가 흔히 옆전 한닢, 두닢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데, 이는 조선시대 가장 널리 쓰였던 상평통보(常平通寶) 동전 한 개, 두 개라는 의미이며 상평통보 한 닢은 1()에 해당한다. 위에서 과부 주씨가 3두락(斗落) 즉 세 마지기를 60()에 팔고 있는데, 당시 논 한마지기의 가격이 20()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한 마지기를 200평이라고 할 때 요즘 논 값이 평당 4만원이라고 가정하면, 한마지기 논의 값은 대략 800만원 정도가 된다. 결국 800만원과 20()이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대개 우리가 한 냥(), 두 냥()이라고 할 때 별로 그 가치가 높지 않게 생각하는데, 조선시대(1877) 한 냥()의 가치는 지금의 40만원정도로 매우 높은 것이었다.

 

출처 : 석양 노을에Evening sun sunset,
글쓴이 : 문집선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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