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바 둑
김삿갓은 어릴 때 함께 글공부하던 친구들과 어울려 바둑을 두고 있었다. 지난 번 장기에 대한 시를 보고 감탄했던 친구들은 바둑에 관한 시도 한 수 지어보라 졸라댔고 김삿갓은 못 이기는 척 다시 한 수 읊었다.
검은 돌 흰 돌이 진을 치고 에워싸며
잡아먹고 버리기로 승부가 결정 난다.
그 옛날 사호들은 바둑으로 세상 잊고
삼청의 신선놀음 도끼자루 썩었다네.
縱橫黑白陣如圍
勝敗專由取捨棋
四皓閑枰忘世坐 *四皓란 옛날 한고조 때의 신선을 말함이요,
三淸仙局爛柯歸 三淸은 그들이 살던 집이다.
꾀를 써서 요석 잡아 유리하게 돌아가니
잘못 썼다 물러 달라 손을 휘휘 내젓는다.
한나절에 승부 나고 다시 한판 시작하니
돌 소리는 쩡쩡하나 석양이 기울었네.
詭謀偶獲擡頭點
誤着還收擧手揮
半日輸瀛更挑戰
丁丁然響到斜煇
옛날부터 바둑을 신선놀음이라 일컬어 오거니와 속세를 떠난 듯, 한가롭게 싸워가며 바둑을 두어 가는 모습을 절묘하게 묘사한 시였다.
91. 장 기
개성을 벗어나 북으로 올라가니 바로 황해도 땅이다. 황해도 曲山의 천동마을이 김삿갓의 마음의 고향이다. 할아버지 金益淳이 대역죄를 입어 가문이 파멸될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머슴의 고향이던 곡산의 천동마을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 이전의 서울에서 산 기억은 너무 어려서 나지 않고, 그 이후로도 영월로 갈 때까지 양주, 광주 등지를 전전했었지만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기억이 없으며, 오직 황해도 곡산의 천동마을만이 기억에 생생하여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천동마을에는 본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꺾쇠, 왕눈이, 개똥이 하고 별명으로 부르던 친구들은 산과 들로 싸다니며 뛰놀기도 했고, 몇 해 동안 글방에서 글을 함께 읽었으므로 그리운 정이 간절하여 황해도에 들어서자 먼저 천동마을부터 찾았는데 코흘리개 옛 친구들은 모두 장년이 되어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동리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방랑길에 나선이래. 처음으로 자기의 본명을 밝히고 옛이야기를 하자 모두들 반갑게 환대하면서 이집 저집에서 묵어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한 달 여를 천동마을에 묵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어울려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면서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김삿갓은 「장기」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즉흥시 한 수를 읊었다.
술 잘하고 시 잘 짖는 친구끼리 모여 앉아
방안에서 한 바탕 싸움판이 벌어졌네.
포가 훨훨 날아 넘어 위세가 웅장하나
상이 딱 버티고 있어 그 진세도 만만찮다.
酒老詩豪意氣同
戰場方設一堂中
飛包越處軍威壯
猛象前衛陣勢雄
차가 바로 달려 졸을 먼저 잡아먹고
모로 가는 날랜 말이 궁을 항상 엿본다.
이 말 저 말 잡아먹고 연달아 장 부르니
사 둘만으로는 당해내기 어렵구나.
直走輕車先犯卒
橫行駿馬每窺宮
殘兵散盡連呼將
二士難存一局空
장기가 막판에 몰려 존망이 경각에 달려있는 위급한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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