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근 서당.

[스크랩] 내가 가르친 漢文

浩 根 書 堂 2013. 2. 17. 22:26


한글+한자문화 칼럼

내가 가르친 漢文
 
崔泰淵
前 大邱 啓聖中學校 國語ㆍ漢文 敎師 /本聯合會 推進委員


중학교 1학년 한문은 漢字와 생활 용어가 중심이고, 2, 3 학년에서는 漢字語와 짧은 문장과 漢詩도 나온다. 내가 가르친 한문 일부를 소개하여 독자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1. 漢字는 이름이 있다: ‘代表 訓+音’이 그 漢字의 이름이다.
‘醫’ 字를 例示하면, A교과서 ‘醫: 의원 의’, B교과서 ‘醫: 의사 의’, C교과서 ‘醫: 병고칠 의’, D교과서 ‘醫: 병고치다 의’로 되어 있다. 나는 C교과서처럼 漢字를 읽도록 가르쳤다. 전통적으로 A교과서처럼 가르쳤으나, ‘醫’字의 가장 많은 용례는 ‘병 고치다’이다. 그래서 ‘병 고치다’를 代表 뜻으로 정하고, 訓이 音을 수식하는 형식인 ‘병고칠 의’를 ‘醫’字의 이름으로 삼았다. A,B,D처럼 가르치는 학교도 있는데, 하나의 이름으로 통일된 한자 교육을 해야 한다. 대표 뜻(訓)을 결정하는 작업은 교육부에서 해야 한다.


(1) 전통적인 훈(뜻)을 바꾸어 ‘새로운 訓+音’을 漢字의 명칭으로 가르친 것이 있다.
○ 食 : 밥 식 → 먹을 식
○ 室 : 집 실 → 방 실
○ 己 : 몸 기 → 자기 기
○ 淡 : 맑을 담 → 묽을 담
○ 賢 : 어질 현 → 훌륭할 현
○ 競 : 다툴 경 → 겨룰 경
○ 罪 : 허물 죄 → 죄 죄

 

(2) 두 개의 뜻이 伯仲한 것은 두 가지로 읽어서 명칭을 삼았다.
○ 乾 : ①마를 건 ②하늘 건
○ 過 : ①지날 과 ②허물 과
○ 指 : ①손가락 지 ②가리킬 지
○ 敵 : ①원수 적 ②대적할 적

 

(3) 讀音이 여럿인 것은 讀音의 數만큼 名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 拓 : ①열 척 ②박을 탁
○ 樂 : ①즐거울 락 ②풍류 악 ③ 좋아할 요

 

2. 어떤 글자는 筆順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한 가지 필순이 아닌 글자 : 學 來 非 田 及 川….
기초한자의 필순은 교육부에서 표준화하여 漢文ㆍ國語 교사에게 배부해야 한다.

 

3. 대체로 四聲에 맞는 漢字音을 가르쳤다.
漢文 敎科書에는 漢字의 發音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敎師의 發音도 模範이 되지 못하고, 標準音을 참고할 資料도 없다. 물론 字典을 보지만, 거기에도 현실 음과 거리가 있는 글자가 약간 있는 것 같다. 현재 一線 學校 漢文ㆍ國語 敎師들의 漢字音 指導는 羅針盤 없는 航海와 같다. 漢字音의 (高低)長短을 無視하고 가르치면 圓滑한 국어생활을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방송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語文을 맡은 관계 당국의 책임이 크고도 크다.

 

4. 꼭 알아야 할, 漢字의 略字를 가르쳤다.
敎科書 執筆 指針에 依하면 敎科書에는 略字 使用을 禁하고 있다. 그러나 一般 社會에서는 岩(巖), ?(蟲), ?(體), 氷(?) 등은 약자인 줄도 모르고 常用되고 있다.

 

5. 두 개의 短文 해석
(1) ⓐ 君子之交 淡若水,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고, (교과서의 해석)
ⓑ小人之交 甘如醴.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다.
위의 해석이 잘못된 것은 ‘淡’을 ‘맑을 담'으로 알기 때문이다. ’淡‘字는 ‘맑다'의 뜻이 없다.
淡 : ①묽다(濃淡) ②엷다(淡彩畵) ③짠맛이 없다(淡水) ④욕심이 없다. 맛이 진하지 않고 산뜻하다(淡淡ㆍ淡泊) 등으로 쓰일 뿐이다. '君子之交 淡若水'의 뜻은 '군자의 사귐은 싱겁기가 (맹)물과 같다.'는 뜻이다. ⓐ, ⓑ는 對句인데, 군자의 사귐과 소인의 사귐을 '맛'으로 對比하고 있다. ‘군자의 사귐은 맑기가 물과 같다.(깨끗하다)'라고 하니까 그럴 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런 의미는 전혀 아니다.
‘君子↔小人, 淡↔甘, 水↔醴'가 對語인데, '淡↔甘'은 맛의 對比이고, 淸濁과 無關하다.


(2) 人生不滿百이언만, 常懷千年憂라 : 인생이 백을 채우지 못하면서, 천년의 근심을 품는다. 즉 ‘인생은 유한한데 할 일도 많다.’는 뜻이다.(교과서의 해석)
直譯은 문제가 없고, 意譯에 문제가 있다. 이 문장의 속뜻이 ‘인생은 유한한데, 할 일도 많다.’가 아니다. ‘백년도 못 사는 人生인데, 천년 만년 살 것처럼 부질없는 근심걱정을 한다’는 뜻인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3) 漢詩에도 解釋에 問題點을 가진 것이 몇 篇 있지만, 紙面 關係로 여기서는 필자의 주장대로 바로 고쳐진 두 編의 詩만 살펴보겠다. 崔致遠의 秋夜雨中과 賈島의 尋隱者不遇이다.


秋風唯苦吟이나,           가을 바람에 고심하여 시를 지으나, (교과서의 해석)
世路少知音이라.           세상엔 알아주는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요,              창밖엔 한밤중에 비가 내리고,
燈前萬里心이라.           등불 앞에서 마음은 아득하여라.


이 시는 교과서마다 나와 있고, 하나같이 위의 해석처럼 되어 있는데, 起, 承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 起句에서 ‘秋風’은 主語이고, ‘苦吟’은 敍述語다. 가을 바람이 쓸쓸히 불고 있는 것을 擬人法을 써서 표현한 것이다. 이 苦吟은 漢文辭典의 ‘애써 詩句를 지음’의 뜻이 아니다. 承의 ‘知音’도 ‘작자의 詩(=苦吟)를 알아준다’는 뜻이 아니고 ‘知友’의 뜻이다. 苦吟과 知音을 관련시키는 것은 牽强附會다. 起 : ‘가을 바람은 쓸쓸히 부는데’, 承 : ‘세상에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知友마저 없구나’로 解釋해야 된다. 少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논증이 더 필요하지만 紙面 때문에 줄인다. 필자의 거듭된 주장으로 지금은 이 詩가 바로 해석되고 있다.

 

松下問童子하니,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교과서의 해석)
言師採藥去라.                   스승은 약을 캐러 갔다고 말하네.
只在此山中이나,                다만 이 산 속에 계시나,
雲深不知處라.                   구름이 깊어 계신 곳을 모른다네.


교과서의 해석을 보면 承句에서 結句까지 童子가 말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잘못이다. 童子가 그렇게 길게 말했다면 그것은 詩가 아니고 說明文이다. 童子가 한 말은 承句의 “선생님은 藥(草)을 캐러 가셨습니다.”라고 한 것뿐이다. 轉, 結은 隱者를 찾아간 사람이 童子의 말을 듣고, 雲山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獨白이다.
이 詩는 오래 전부터 잘못 해석되어 온 것 같다. 古文眞寶의 註釋에 ‘童子言 師入山採藥 白雲深處 無?尋覓’으로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詩도 필자의 주장대로 고쳐졌다.
그리고 어떤 敎科書는 ‘松下問童子’를 ‘소나무 아래에 있는 동자에게 묻다’라고 해석했다. 어떻게 그런 해석이 나올 수 있을까? ‘소나무 아래에서 童子에게 묻다’이다. 敎科書와 指導書만 믿고 가르치는 교사가 대부분이므로 교과서와 지도서는 완벽해야 한다. 교과서는 經典과 같은 책이다. 중학교 한문의, 얼마 안 되는 문장과 詩에도 이런 誤讀이 있었다.
詩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도 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출처 : 說文解字(재미나는 한문)
글쓴이 : 樂而忘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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